
98번째 술
일시: 7월 12일(월)
누구랑?: 학장님이 새로 학과장이 된 사람들을 모아 저녁을 샀다.
나빴던 점:
-삼겹살을 너무 많이 먹어 전날 테니스 친 게 허사가 되었다
-이것 때문에 월요일 선을 화요일로 미루어야 했다.
99번째 술
일시: 7월 13일(월)
누구랑?: 아는 작가랑. 선보고 나서 한잔....
좋았던 점:
-그녀가 술을 샀다
-재미있었다. 그녀는 나와 정치적으로 코드가 맞는 몇 안되는 친구다.
나빴던 점:
-한시까지 마셨다. 와서 책보다 두시 넘어 잤다. 졸려 죽겠다.
-맥주를 마셨더니 바지 호크가 안채워진다.
1)서론
3번째 선을 봤다. 그간 난 선을 본다고만 얘기했지, 어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 행여나 상대방이 여기 들어와 내 글을 볼지도 모르며, 내 글로 인해 그녀가 불쾌하다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이번 선에 대해 글로 쓰기로 작정한 것은 마지막 대화 때문이다.
나: 혹시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어디인가요?
여자: 없어요. 전 그저 메일만 체크해요.
나: 싸이월드도 안하세요?
여자: 네. 그쪽은요?
나: 아, 저도 그래요.
그래, 만판이다!
2) 어머니
두 번째 선을 볼 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아쉬운 표정으로 부탁을 했다.
"민아, 이번에 한번 더 뛰어 줘야겠다. 그대신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줄게"
하지만 세 번째 선은 자뭇 명령조였다.
"보라면 봐! 웬 말이 많아!"
갑자기 변한 어머니의 태도에 놀란 나는 앞으로도 쭉 이어질 어머님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깜찍한 생각을 했다.
나: 선 한번 볼 때마다 밥값이 장난이 아닌데, 히유, 돈도 없고 어떻게 선을 보나.
듣고있던 어머니; 걱정 마. 내가 선 볼때마다 돈 주면 되잖아!
10만원은 너무한 것 같고 해서 1회당 5만원에 계약을 했다. 하지만 어제 아침, 어머님은 막상 돈을 주려니 아까운 모양이다.
엄마: 돈 여기 있다. 그런데 니가 밥을 왜 사니? 커피를 사면 밥은 그쪽에서 사야 되는 거 아니니?
나: 에이, 엄마도. 어떻게 그래요.
엄마: 그건 옛날식이지. 요즘 누가 밥이랑 커피랑 다 얻어먹냐.
5만원이 아까우신 어머님의 태도로 보아 4차 선은 안봐도 될 것 같다. 혹자는 내가 진짜로 5만원을 뜯어낸 것에 분개하겠지만, 이건 선을 보지 않기 위한 자구책으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
3) 여자 (내 외모도 끝장이면서 여자 외모를 비판하냐고 하지 말기를. 지렁이도 짝이 꿈틀한다고, 못생긴 남자도 여자 외모를 따질 수 있는 법이다)
두 번째 선을 보고 나서 어땠냐고 묻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얼굴이.... 14인치 모니터만해!"
엄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
나: 오늘 봤어!
하지만 불행히도, 어제 선을 본 여자 역시 14인치 모니터였다. 세명을 봤는데 두명이 14인치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평소 말발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광활하기 짝이 없는 여자의 얼굴을 보자 말이 안나왔다. 그러다보니 5초 이상 침묵이 이어지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내 유머는 비에 젖은 솜사탕이 되어 버렸다. 그녀의 말이다.
"연애 경험이 별로 없으신가봐요?"
어쩌다 한번 웃기자 이런 말도 했다. "어머나, 농담도 하실 줄 아네요?"
이 말을 들으니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4) 중매장이
만나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중매장이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자리에 앉는다. 여자랑 원래 잘 아는 사이고, 우리 엄마랑도 친하다고 했다. 하지만 날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내 얼굴을 보시더니 매우 놀란 듯 했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저 보시고 많이 놀라셨죠?"
중매장이는 이내 간다고 일어서더니, 여자를 밖으로 불러냈다. 아마도 이런 말이었을게다.
"이번 일은 미안해. 다음엔 좋은 사람 소개시켜 줄게"
5) 허기
7시 반에 만났는데, 난 이미 다섯시부터 배가 고팠다. 만나자마자 저녁을 시키자고 졸랐더니 자기는 밥을 늦게 먹어서 배가 안고프단다. 그래서 난 맛도 없는 커피를 먹으면서, 그리고 서비스로 나오는 물을 계속 들이키며 배고픔을 이겼다.
헤어지고 난 뒤 집에 가면서 엄마한테 "저 저녁 안먹었으니까 도착하면 밥을 바로 먹을 수 있게 차려 놓으시면 안될까요"라는 말을 전화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역시나 통화중이었다. 집에 가는 내내 전화를 했지만 내가 도착하는 순간에도 어머니는 전화를 하고 계셨다. 휴대폰으로도 수차례 걸었건만 역시나 엄마는 받지 않으셨다. 집앞에서 사먹고 들어올 수도 있었지만 공연히 맘이 삐딱해져 집으로 갔고, 한숟가락 남아있는 식은밥을 먹으면서 "엄마는 전화를 너무 많이 해! 급한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라고 공박했다. 전화는 엄마의 취미이자 기쁨인데, 언제 올지도 모를 아들의 밥차리라는 말 때문에 전화를 포기해야 하는 걸까. 맘이 삐딱해진 이유는 잘 모르겠다. 14인치 때문인지, 배가 고프다보니 사람이 이상해진 건지.
커피 두잔만 마셨는데 2만6천원이 나왔고, 하여간 어제 난 2만4천원 이득을 봤다. 그게 유일한 위안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