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 시절, 아침에 오자마자 내가 한 일은 교수님 세분한테 커피를 타드리는 거였다. 비서가 있긴 했지만 9시나 돼야 오기 때문에 일찍 출근하는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한분은 믹스 커피를 드셨지만 다른 두분은 원두커피를 드셨다. 그래서 난 커피 몇 알을 넣어 믹서로 갈고, 필터로 거르고, 기계로 커피를 거르고, 각자의 컵에 따라 갖다 드리는 일을 아침마다 반복했다. 한번은 그 원두커피가 무슨 맛인지 궁금해 한모금 마셔봤는데,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원두커피는 너무 썼다. 그건 내가 커피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맛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난 졸릴 때를 제외하면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다.
한달하고도 보름 전, 난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이름하여 원두커피 기계. 착하고 귀여운 예과 조교의 생일 선물이었다. 커피를 잘 안마시긴 하지만, 기계를 선물받고 보니 이젠 좀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커피가 없었다. 그렇게 한 보름쯤 방치해 놨는데, 내 방에 놀러온 미자라는 학생이 그걸 보더니 커피를 선물했다. 이래서 난 이삼일에 한번은 원두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냥 쓴 맛이었는데 마음을 먹고 마셔서인지 커피맛이 어떤 것인지 점차 눈을 뜨는 것 같다. 무엇보다 커피향이 방 전체에 가득해지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원두커피 마시는 걸 그만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미녀라고 극찬을 했던 슈퍼 아가씨 때문이다. 그런 미녀에게 우리 슈퍼는 너무 좁은 물이 아닐까 늘 불안했는데, 요즘 한 사흘간 미녀 아가씨의 모습을 슈퍼에서 볼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새로 온 아주머니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잠깐 일이 있는 거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는데, 오늘 병원 안에 있는 커피집에 가보니 글쎄 그 미녀가 거기서 일하고 있는 거다. 슈퍼에 있을 때의 모습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흰 브라우스에 치마를 입은 커피집 점원으로서의 모습은 덜 예뻐 보였지만, 그래도 내가 매일같이 가서 커피를 사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누가 내 방에 놀러라도 오면 무조건 이래야겠다.
“제 방은 좀 지저분하니 병원 커피숍 가서 얘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