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스타가 된 한젬마의 대필 의혹은 정지영 아나운서의 마시멜로 파문을 닮았다. 본인이 강력하게 부인을 하고, 그럴수록 의혹이 더 커져만 갔다는 사실이. 출판사에서 내놓은 한젬마의 초고를 읽어보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투박할지언정 묶어놓으면 그래도 책 한권을 만들 수 있는 게 초고일진대, 한젬마의 그것은 거의 메모 수준으로, 출판사에서 작가에게 제시한 기획안 정도에 불과했다. 서둘러 닫아버린 한젬마의 홈페이지를 가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별반 글쓰기에 소질이 없다는 걸 대번에 알아차렸을 거다. 정지영 파문이 출판사의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한젬마 사건은 저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더 큰 배신감을 준다. 물론 초고 자체를 아예 내놓지 못한 정지영에게 더 큰 죄를 물을 수도 있지만, 마시멜로가 번역서라 누가 해도 글 내용에선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 데 비해, 한젬마의 책은 저자가 자신의 지식과 감성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라는 점에서 죄질이 더 나쁘다고 할 것이다.


비록 제대로 된 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정지영 아나운서는 자신이 맡고 있던 프로그램에서 물러남으로써 간접적이나마 잘못을 시인했다. 하지만 한젬마에게 그런 일을 기대하는 건 어려울 듯하다. 언론에서 더 이상 파문이 확산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현대 사회는 언론의 시대며, 아무리 큰 사건도 언론에서 보도를 해주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되어 버린다. 예전의 종이신문이 갖고 있던 의제 설정권이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로 넘어온 건 이미 오래 전의 일, 한젬마 사건을 나같은 사람이 알게 된 것도 그게 24일 밤 네이버의 주요 기사란에 떴기 때문이다.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는 걸 보면서 “이거 문제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었는데, 그 다음날 아침 한젬마의 대필 의혹은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일제히 사라져 버렸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했고 네티즌의 댓글에 일일이 답을 해주며 의욕을 보였던 한국일보 기자 역시 ‘초고비교’ 이후 후속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댓글을 달고 싶어도 기사가 없는데 어떡하나? 나를 비롯한 네티즌들은 닭 쫓던 개가 된 심정으로 나무 위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정지영 사건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의혹이 확산되자 네이버에서 댓글을 차단해 버린 것. 그뿐이 아니었다. 정지영 아나운서는 2005년 12월, 한경 비즈니스와의 인터뷰 도중 이런 말을 했었다.

“(번역하는 동안) 몸은 고단했지만 유익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번역을 하면서 몇 번이나 읽었고 지금도 틈나는 대로 다시 읽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책이에요. 방송에서도 여러 번 읽어 준 적이 있는데 청취자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이제는 어떤 이야기가 몇 페이지에 있는지 알 정도가 됐어요.”

이 인터뷰는 “자기 번역본과 다른 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는 물음에 정지영 옹호자들이 했던 “바빠서 책을 안읽어봤을 것”란 변명을 무색하게 만든다. 정지영 의혹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 중엔 이 기사가 실린 사이트를 링크시킨 게 몇 개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네이버 측에서 원 기사를 삭제해버려, 해당 주소로 들어가도 기사를 찾을 수가 없게 된 것. 그래서 난 네이버는 왜 정지영을 이렇게 감싸는지 의아했었는데, 한젬마 대필의혹을 보니 할말을 잃게 된다. 댓글차단이 네티즌의 공분을 사서 더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유치한 전략이라면, 기사 자체를 빼는 건 아예 사건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고도의 전략이 아닌가.


그 결과 정지영은 갔지만, 한젬마는 살아남을 것이다. 한젬마가 TV에 나올 때마다, 혹은 책을 새로 낼 때마다 일부 네티즌들은 “저거저거 대필이래”라며 볼멘소리를 하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즐거운 마음으로 한젬마의 지식과 미모를 감상할 것이다. 한젬마의 대필의혹을 신경쓰기엔 사람들이 너무도 바쁘고, 대필과는 비교도 안되는 사건사고는 날이면 날마다 일어난다. 한젬마 사건을 계기로 출판계에서 암암리에 벌어지던 대필이 자취를 감춘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는다 해도 뭐가 문제인가? 당장 내 밥먹고 사는 데 하등 영향을 주지 않는데 말이다. 포털에 모든 것을 빼앗긴 나라, 그 나라에도 사흘 후면 새해가 온다. 새해라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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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12-29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뉴스가 다 없어졌나요? 저도 잘 몰랐네요.
그나저나 한젬마씨의 그 초고라는걸 보고 저도 기절초풍했지요.
(저도 한젬마씨 책을 한두권 가지고 있거든요;; 이건 뭐 완전 사기당한 느낌;;)
대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걸 꿈에도 생각 못한 제가 한심한건지
아니면 출판사들이 너무한건지 참 기가 막힐 따름이에요.

마태우스 2006-12-29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키티님 오랜만이어요!! 제가요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첫번째 책인 그림 읽어주는 여자가 문장이 워낙 투박해서 거의 다 손을 봐야 했다고. 그런데 첫번째 책과 최근 책은-읽어보진 않았지만-문체가 아예 다르다네요. 아무리 발전할지언정 문체는 지문과 같은 거라 흔적이 남아 있는데, 아예 다르다는 건 좀 수상하잖아요...

마노아 2006-12-29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속 시원히 긁어주셨어요. 비록 속 시원한 개선은 보이지 않지만요. 그래도 사흘 뒤면 새해가 밝아오고, 우린 더 열심히 살아야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로쟈 2006-12-29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집니다!..

세실 2006-12-29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허탈합니다. 이 책 재미있게 읽었고, 2권도 책상위에 있는데....
배신감으로 읽기 힘들것 같네요.
그래도 우리는 행복한 2007년 맞이합시다~~~
마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6-12-29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6-12-2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미녀라고 할지라도 저런짓을 파렴치하게 저질렀다면 그녀는 더 이상 미녀의
자격이 없는 미물일 뿐입니다.(혹시 이대로 가다간 포털사이트의 사장들이 대선 출마
하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상상했었습니다.)

oldhand 2006-12-2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제 설정권을 독식하기 시작한 포털, 그 영향이 참으로 심각하고,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水巖 2006-12-2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미술관 찾아다닐때 참고하려고 한 권을 샀더니 한 권을 더 주더군요. 읽다보니 좀 이상하게도 느꼈지만 목적이 미술관 가는 길이니까 그냥 꽂아 둡니다.
그런데 마태우스님의 글은 모두 합당한 말씀인데요. T/t 가 있느걸 보니 이 책을 추천하시는건지 의혹이 생기는군요. ㅎㅎㅎ

레와 2006-12-2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신감.. 배신감.. 이런 배신감이!!!

아흑.....

울보 2006-12-2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뉴스를 보면서 그런생각을 했는데
언론이 참 무서운것같아요,
종종 드는생각인데 역시 마태우스님은 우리의 가려운점을 확실히 긁어주시는 군요,

기인 2006-12-2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필작가가 안 됬다는 생각도 들지만, 대필작가의 윤리성도 문제가 있네요. 스타들의 글을 써주는 대필작가의 인생. 이에 대한 책이나 정보가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춤추는인생. 2006-12-2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사색 탈퇴는 또 뭐랍니까;; 게시판마저 없애는 그녀를 보고 정이 뚝.
진짜 마음같아서야 메피님이 빌려주신다는 오일로 화악 책 불사지르고 싶어요.
소송을 운운하더군요 그녀는 .,.

stella.K 2006-12-29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그렇게 된 거로군요. 저 책 나올 때 많은 사람들이 마땅찮게 여겼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역시 지성과 미모가 대세군요.ㅜ.ㅜ

2006-12-29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29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6-12-30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그렇게 하겠습니다^^
꽃양배추님/님의 지적이 옳습니다. 지금 고쳤구요, 님 서재에 글 남겼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해요. 쓸 때 저도 고민했던 부분인데요 뭐라 써야할지 생각이 안났었거든요. 제 불찰입니다
속삭이신 분/그렇군요... 제 입장에서는 그냥 기사를 믿고 혼자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분이 제게 이 주소를 가르쳐 주시더군요.

http://www.isamtoh.com/separat_volume/sub_board07_view.asp?seqid=44
읽고나니 제가 잘못 생각한 건 아닌지 싶었어요. 전 그냥, 왜 출판사는 반론을 안하나 싶었었는데 제가 댓글 달 공간이 없었던 것처럼 출판사도 그럴만한 공간이 없었던 것인가봐요. 님이 알고 계신 진실은 무엇인가요? 사실이 아니라면, 한국 기자는 뭘 믿고 그런 기사를 썼는지요???
스텔라님/어머 그렇게 된 게 언제적 일인데요.. 이건 조크인데요 제 첫 책이 망한 이유가 표지에 실린 제 얼굴 때문이라는 설이 있어요. 물론 제 얼굴 없이 낸 책도 망했지만요^^
춤추는인생님/억울한 일이 있다면 소송으로 풀어야겠지요... 글구 불지르는 건 저같은 사람한테 시키세요. 미모의 님이 직접 기름을 묻히는 건 비극이어요 아 맞다 야클님 시킵시다 우리.
기인님/아직 의혹일 뿐이지만...돈을 벌 수단이 그거밖에 없다면 저도 기꺼이 할 것 같아요.....그놈의 돈...
울보님/또 가려운 데 있으심 말씀하삼.^^
레와님/토닥토닥..제가있잖습니까^^
수암님/오옷 댓글 말미에 진정한 의혹을 제기하시다니... 수암님 센스쟁이!
올드핸드님/글게 말입니다... 한젬마란 이름이 검색인기순위에서 싸악 빠질 땐 허탈하더이다...
나머진 이따가...

마태우스 2006-12-29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미녀에 단호할 수 있는 멋진 메피님...^^
속삭이신 분/아직 의혹이니까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사실이라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죠....
세실님/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2007년은 아름다울 것 같은데요^^
속삭이신 분/올해 수확 중 하나가 님을 알게 된 건데 어찌 님을 미워하겠습니까. 너무 맘쓰지 마소서
로쟈님/님 칭찬 받으니 기분이 아주 좋아집니다 꾸벅
마노아님/님두 복 많이 받으시어요! 새해엔 열심히 해보도록 해요!

짱꿀라 2006-12-2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글 아주 훌륭합니다. 꾸벅 좋은 밤 되세요.

stella.K 2006-12-30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너무 자책 하지 말아요. 마태님 못 생긴 건 사실이지만 매력덩어리잖아요.^^

모1 2006-12-30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필의혹이 있다는 기사는 본적이 있는데 그 정도일줄은 몰랐군요. 책에 글을 쓰신분에 대해 표기했다나 뭐라나..했다고 하던데...전 어느 정도는 한젬마씨가 쓰시고 글보충정도 하신줄 알았는데...책과 많이 달랐나보죠? 에휴...다른 책들은 안 그런지 좀 궁금해지는군요.

다락방 2006-12-30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를 비롯해서 다른 연예인들이 글을 쓰면 저절로 대필이겠지, 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는건 그러니까 제 잘못만은 아닌거군요. 씁쓸합니다.

조용히 추천 한방.

픽팍 2006-12-3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사실 좀 충격이었어요. 저는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와방 실망해 버려서 좀 그랬던 사건이었죠. 정지영 사건도 실망스러웠고, 책도 상품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은 알지만 정말 실망스럽네요. 한젬마씨의 뻔뻔스러운 태도도 정말 짜증났지만 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언론도 좀 싫더라구요. 한국일보 만이 유일하게 이 사건을 다루었던데 다른 신문들은 도대체 뭐 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