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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 최신 언어로 읽기 쉽게 번역한 뉴에디트 완역판, 책 읽어드립니다
혜경궁 홍씨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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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조선왕실의 역사에서 최악의 비극으로 꼽히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사도세자의 비극에 대해서 지금까지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제작됐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모든 것을 겪은 '혜경궁'의 기록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이 책은 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에서는 혜경궁 홍씨가 세자빈으로 궁에 들어온 뒤 시아버지와 남편의 사랑을 받은 일, 이후 정조를 낳고 환갑을 맞기까지의 여러 가지 일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2,3권은 임오화변의 주체인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위태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비범한 탄생과 뛰어난 자질, 죽은 경종의 궁인들에게 세자를 보육하게 한 영조와 선희궁에 대한 원망, 사도세자의 비행으로 겪었던 마음고생, 임오화변 당시의 상황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1권에 비해 사건에 대한 혜경궁 홍씨의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4권에서 혜경궁 홍씨는 영조의 총애를 받던 화완옹주에게 세손을 돌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모자 사이가 서먹해지고 친정집에는 안 좋은 일만 계속됩니다. 이에 혜경궁 홍씨는 이 일들이 모두 모함이며, 그녀의 친정은 나라와 집안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5권은 화완옹주의 양자인 정후겸과 김귀주의 이간으로 혜경궁 홍씨 집안이 겪게 된 일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벼슬을 시켜주지 않은 일로 아버지 홍낙춘에게 앙심을 품은 홍국영이 훗날 정조의 신임으로 권력을 손에 쥐자, 혜경궁 홍씨의 중부 홍인한과 동생 홍낙임을 대역 죄인으로 몰고 간 일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홍국영이 자신과 정조, 중전과 정조 사이를 이간하며 세도를 누리려 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지막 6권은 1~5권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정조에게 후사가 없던 것을 걱정하던 중 가순궁이 순조를 낳은 일과, 정조가 순조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에 사도세자의 일과 외가의 죄를 씻어 주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영조에서 정조, 순조에 이르는 조선 왕조 3대에 걸친 권력투쟁의 궁중정치는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욱 드라마틱한 현실의 역사입니다. 그녀가 체험한 역사적 사건 그 자체가 너무나도 기구하고 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자신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을 아무리 말을 바꾸어 설명하려해도 그렇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과거를 회고합니다. 비록 안타까운 남편의 죽음과 몰락한 가문에 대한 억울함에 대해 호소하고 있지만, 그녀 특유의 섬세하고 우아한 표현, 담담함으로 당시의 정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정황이나 인물들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의 글에서는 애끓는 심정이 절절하게 드러납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혜경궁과 가문의 인생이 휘둘리는 데도 속 시원하게 항변할 수 없었던 지난 세월이 있었으니 당연히 그랬을 것입니다.

혜경궁 홍씨는 왕비가 되기 위해 아홉 살 어린 나이에 궁으로 들어왔지만 왕후, 대비가 될 수 없는 신분으로 비운의 삶을 살다가 생을 마칩니다. 남편이 죽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가 귀양을 갈 때도 조용히 하늘의 뜻을 인정했습니다. 자기의 옮음을 버리고 궁중의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을 막고 자손을 지킨 혜경궁 홍씨의 지혜는 본받을 만합니다.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매정한 아버지로, 그의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들로 역사에 남았지만, 이 작품은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축이 되어줄 소중한 작품이었습니다.

천지가 맞붙고 일월이 캄캄하게 막히는 변을 만나, 내 어찌 한시라도 세상에 머물 마음이 있으리오...한편 생각하면 열한 살 된 세손에게 크나큰 아픔을 주지 못하겠고, 내가 없으면 세손의 앞날은 어찌하리오. 참고 참아 모진 목숨을 보전하고 하늘만 보고 부르짖었다.
- P61

새롭게 기억을 더듬으니 마음과 정신이 놀랍고 답답하며 간과 폐가 찢어지는 듯하여, 한 글자 한 글자가 눈물이 쏟아져 글씨가 써지지 않는구나.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어디 있으리오. 원통하고 억울하다
- P72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눈 앞에 생생하고 고통이 가슴에 박히어 어찌 써내라. 이제 이것을 써내려고 하니, 영조와 경모궁께서 하시던 일이 세상에 부족한 덕이 드러나실 듯하여 죄스럽지만 실상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으니 종이를 대하여 가슴이 막힐 뿐이다
- P92

무릇 하늘이 부자 두 분 사이를 그렇게 만드신 듯 하다. 아버니께서는 말고자 하시다가도 누가 시키는 듯 도로 미운 마음이 생겨나시고, 아드님은 아버지를 뵈올 때마다 숨기는 일 없이 당신의 잘못을 감추지 않으셨다... 하늘의 뜻이 어찌하여 이 조선에 만고에 없는 슬픔을 주시는지 애통할 뿐이로다
- P137

세손이 어린 나이에 세상에 없는 큰 아픔을 당하고, 또 왕가의 당치않은 변고를 당하셔서 지나치게 애통해 하셨다. 상복을 벗으실 때 곡읍하는 소리가 천지에 사무쳐 초상에 천지가 깜깜하게 꽉 막히던 때의 설움보다 더하셨다
- P195

모년의 일은 내가 차마 기록할 마음이 없었다. 다시 생각하니 주상이 자손으로서 그때의 일을 모르는 것이 망극하고 또한 옳고 그름을 분별치 못 하실까 민망하여 마지못해 이렇게 기록한다
- P201

임오화변의 계기는 부자간의 사이가 예사롭지 않으시기로 전전하여 된 일이니, 내 평생의 뼈에 사무친 지극한 한이요 원이로다. 영조 대왕께서 아드님께도 그러하셨으니 한 다리 먼 손자에게 또 어떠하실지 알리오.
- P258

주상이 나이 어리시고 나라의 위태로움이 한 터럭 같은데 인심과 세태가 갈수록 이러하여, 마침내 어미도 몰라보는 세상이 되기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참으로 나라와 인륜을 생각하여 통곡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P322

서럽고도 서롭도다!
차마 갑신년의 일을 어찌 다 일컬을 수 있으며 그때 몹시 애달프고 망극하여 모자가 서로 붙들고 죽을 바를 모르던 모습이야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선왕께서 겪으신 지극한 아픔이 예로부터 제왕가에 없는 일이니, 비록 나라를 위하여 임금의 자리에 임하시나 한평생 아픔을 품으시고 추모하심이 해가 갈수록 더욱 깊어지셨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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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과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에 대한 기록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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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국경의 높은 장벽을 가볍게 넘으며 남녀노소나 지위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든 같은 확률로 덮칩니다. 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극복과 좌절의 역사입니다. 인간 존재를 뿌리부터 위협하는 질병이야말로 실제적인 역사의 동인이었습니다. 그리스 도시국가와 로마 제국 멸망은 역병의 만연 때문이었고, 중세 유럽을 끝장낸 것이 페스트였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입니다.

이 책은 한때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군림했던 최고 권력자에서부터 유명인에 이르기까지 질병이 어떻게 그들을 무너뜨리고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는지, 질병과 역사 사이의 상관관계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유럽의 흑사병, 천연두, 콜레라, 인플루엔자, 에이즈 등 그동안 인류의 역사를 위협했던 역대급 전염병이 발생한 당시 이야기와 역사적 인물,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줍니다.

대표적인 전염병으로 '두창'(마마·천연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두창은 현재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불과 1950년대까지 국내에서만 수만 명에 달하는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이었습니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마마·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당시 두창에 대한 두려움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p115 천연두에 걸린 유명인들 중 괴테와 모차르트는 흉터 자국이 꽤 많은 편이었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은 그 둘에 비하면 훨씬 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천연두 바이러스, 즉 두창 바이러스는 대두창 바이러스와 소두창 바이러스 두 가지로 나뉜다

그런가 하면 결핵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결핵이 인류를 끈질기게 괴롭힌 데는 강한 전염성 외에도, 1세기부터 수천 년간 지속된 질환에 대한 완곡한 미화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핵은 과거 '예술가 질병'이나 '아름다운 질병' 등으로 미화됐습니다. 19세기 많은 문학작품들이 결핵을 '젊고 아름다운' '부유한 계급'의 여성이 가진 질환으로 묘사했습니다. 덕분에 당시 사람들은 결핵을 고상하고 청아한 죽음과 결합시켰고, 치명적인 질병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여성이 결핵 환자처럼 보이고 싶어 할 정도였습니다.

세계사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역사뿐 아니라 의학적 지식까지 함께 덤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역사적 질병을 이겨낸 기록들을 바탕으로 현재의 질병을 이겨내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질병은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 희망 그리고 편견을 투사해주는 스크린입니다. 질병은 역사를 바꿉니다. 코로나19와의 전쟁 중인 지금, 질병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직접 체험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인류가 미래에 맞부딪힐 질병에 희망이나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욱더 진화하고 있는 질병과 결코 끝나지 않는 경주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 혹은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들은 미래의 후손들에게 어떤 역사로 기억될까요? 여러 가지로 유용한 생각거리들을 던져주는 흥미로운 역사책이었습니다.

질병은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의 흐름을 뒤흔들었다. 이 책에서는 심각한 질병에 걸린 몇몇 유명 인물들이 겪은 고통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동시에, 그 인물들이 만약 그 질병을 앓지 않았다면 역사의 여신 클레이오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도 상상해보고자 한다. 특히 프리드리히 3세와 메리 여왕은 유럽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두 나라를 통치한 이들이지만, 질병 때문에 두 사람의 재임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또한 페스트나 콜레라, 매독 등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를 덮치며 한 시대를 휩쓸어 버린 질병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 P9

뇌염은 바이러스가 뇌를 공격하는 병으로, 기존에 안고 있던 질병이나 반사회적 성향 등을 강화하는 특성을 지닌다. 칼리굴라가 뇌염에 걸렸고, 그 때문에 정신이상 반응을 보였다고 추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병을 앓고 난 후 칼리굴라가 보여주었던 행동들이 꽤나 변덕스럽고 극단적이었기 때문이다.
- P31

페스트의 발병 원리를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우선 페스트균이 쥐벼룩의 소화기에 장애를 일으킨다. 식도가 막혀 아무것도 삼킬 수 없게 된 벼룩은 굶주림을 극복하기 위해 숙주의 몸을 더 열렬하게 뜯으며 피를 빨아먹는데, 이때 벼룩의 위 속에 있던, 박테리아에 감염된 내용물들이 침샘에 섞여 나온다. 벼룩은 한 마리 쥐에서만 피를 빨지 않는다. 이 쥐, 저 쥐를 옮겨 다니고, 다른 동물과 인간도 공격한다.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의 희생양이 된 생물은 죽음을 맞이한다
- P39

통풍은 푸린 대사가 잘 되지 않아 요산 결정이 체내에 과잉 출적되는 질병으로 통풍 환자들은 초기에 관절과 엄지발가락 등에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통증부위가 부어오르거나 붉게 변하기도 한다.
- P135

질병은 이미 권좌에 오른 이의 앞길을 막아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지만, 권력이 보장된 자를 덮쳐서 사망에 이르게도 만들고, 이를 통해 다른 이에게 앞길을 터주기도 한다.
- P142

윌슨이 어느 날 느닷없이 뇌졸중이라는 날벼락을 맞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윌슨은 한나라의 수장이 되기에는 부적절할 정도로 예전부터 건강 상태가 좋지 못했고, 뇌졸중은 그간 누적된 병들이 집약적으로 표출된 결과였다.1856년 버지니아 주 스텐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토머스 우드로 월슨은 평생 단 한 번도 건강한 적이 없었다
- P199

레닌의 비교적 이른 죽음이 역사의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꺾어 놓았을까? 비록 동맹경화증을 앓고 있기는 했지만, 1~2년 정도 더 살았더라면 소련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 P224

민주주의 국가의 수반이라 해서 그러한 피해망상증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민주국가의 수장들 중에도 정적이 언제든지 자신을 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그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각종 불법 행위를 자행한 이들이 많다.
- P291

국가 권력이 단 한 명에게 집중될 경우, 그 한명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하면 효율적 통치 체제는 무너진다. 그리고 사람이 나이가 들면 중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도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소련 말기가 그랬다. 서기장은 물론이고, 당 지도부 전체에 당장 은퇴해도 좋을 정도로 노쇠한 인물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 P342

최고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건강상의 문제를 늘 왜곡된 사건으로 중화시키려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자신의 직무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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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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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식물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감자, 토마토, 후추, 고추, 양파, 차, 사탕수수, 목화, 밀, 벼, 콩, 옥수수, 튤립’ 등 13가지 식물들이 나옵니다.

p12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위대한 식물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자, 토마토, 후추, 고추, 양파, 차, 사탕수수, 목화, 밀, 벼, 콩, 옥수수, 튤립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식물들은 어떻게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오늘의 세계지도를 만들었을까? 물론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식물들 하나하나가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평범한 식물들이 인류 역사의 큰 흐름을 만들고 바꿀 수 있었던 까닭은 '후추'처럼 특정 시대마다 특정 식물에 인간의 들끓는 욕망이 모이고 강하게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으로 이 책을 읽다 보면 의외의 즐거움과 인문학적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감자

감자는 안데스 지역에서 유럽에 전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요리법을 몰라 악마의 작물로 불리기도 했지만 결국 유럽의 식량문제를 해결해 줬을 뿐만 아니라 돼지들의 먹이문제도 해결하면서 다양한 돼지이용 상품들이 유럽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유럽의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고, 인구의 증가는 노동력의 증가로 결과적으로는 산업혁명을 통한 유럽의 공업화를 이끌었습니다.

반면 감자를 주산업으로 하던 19세기 아일랜드에서는 감자역병으로 인해 대기근이 닥쳤고, 기근을 피하기 위해 400만명의 국민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은 미국의 성장과 세계패권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p26 베르사유의 장미는 프랑스 혁명을 그린 만화이다. 이 만화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궁전에 핀 고고한 장미 한 송이에 비유했다. 하지만 왕비가 실제로 사랑한 꽃은 만화 제목에 있는 장미가 아니었다. 흥미롭게도 그녀가 사랑한 꽃은 감자꽃이었다. 고귀한 왕비 신분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왜 장미나 백합같은 화려한 꽃이 아니라 감자꽃을 사랑했을까?

p31 서양인들은 흔히 성서가 언급하지 않는 식물을 사악한 존재로 여겨 꺼리고 피했다. 그런 이유로 감자는 결국 한동안 ‘악마의 식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다

*후추

육식 중심의 유럽에서는 고기가 중요한 식량이었으나 부패가 쉬워 오래 보존하기 어려웠습니다. 후추는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는 등 여러 방식으로 저장된 고기를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마법사였습니다.

한 상류층이 지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해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추를 확보하는 것은 막대한 이익과도 결부되었습니다.

후추는 아열대 식물로 인도에서만 재배되었으므로 멀고 험한 육로를 상인들이 걷고 걸어 유럽에 들여왔습니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 육로가 아닌 해로를 개척해 인도에서 후추를 대량으로 들여올 궁리를 했는데 콜럼부스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포르투갈은 후추와 같은 향신료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축적하게 되었고, 스페인, 네덜란드 등이 해상무역에 뛰어들면서 대교역(대항해)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p76 향신료가 있다면 고기를 어느 정도 양호한 상태로 보존할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하면 향신료는 '언제나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주고 풍요로운 식생활을 구현해주는 마법의 약이었다

p90 사치스러운 식생활을 즐긴 귀족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귀족이나 상류층에서 후추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실용적인 목적보다 자신의 높은 지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한 상징성이 컸다. 이것은 설탕이 귀하던 시절 사람들이 설탕을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양파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양파는 중세유럽에서는 드라큘라, 마녀 퇴치용 등으로 사용하는데 그쳤으나 이집트 등에서는 피라미드 건설현장 인부들의 보양강장제로 쓰이는 등 에너지원으로서 인정받았습니다.

p129 양파를 세로 방향으로 반으로 자르면 가장 안쪽에 '심' 같은 게 들어 있는데, 그 부분이 바로 양파의 줄기다. 그 줄기에서 차곡차곡 포개지며 잎이 나온 것이다. 양파는 건조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잎 부분을 두툼하게 만들어 영양분을 저장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마트에서 사다 반찬으로 해 먹고 즙을 짜서 먹는 양파는 줄기와 잎으로 구성된 먹을거리인 셈이다

*차

산업혁명시기 공장 노동자들은 홍차에 열광했습니다. 끓이기 쉬운데다 항균성이 있고, 카페인은 졸음을 쫓아 머리를 맑게 해주었습니다. 영국은 식민지였던 미국에 홍차를 비싼 값에 팔아 또 다른 식민지 개척 비용으로 충당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인들이 네덜란드에서 홍차를 싼 값에 밀수를 했는데 영국이 이를 강력하게 단속하자 미국인들이 보스턴 항구의 영국 상선을 기습해 차를 모두 바다에 버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른바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이다. 이 충돌이 결국 1775년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영국(서양)과 청나라(동양)가 정면으로 맞붙었던 1840년 ‘아편전쟁’도 홍차가 원인이었습니다.

*사탕수수

사탕수수(설탕)은 인도에서 십자군 원정대를 통해 유럽에 전파되었습니다. 인류의 필수품인 당분은 설탕을 통해서 섭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설탕은 사탕수수를 통해 추출하게 됩니다. 특히 홍차의 유행으로 유럽에서의 설탕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목화

인도에서 영국으로 유입된 목화는 유럽에서의 면직산업을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면직산업의 발전을 위해 증기기관을 이용한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이것은 결국 산업혁명이라는 인류사의 대전환기를 촉발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도산 면화가 부족하게 되면서 미국에서의 목화산업이 도입되고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목화산업 발전은 역시나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아프리카노예무역은 더 성행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콩

콩(대두)은 동아시아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대공황을 거치면서 값비싼 옥수수 식용유의 수요가 감소하고 대신 가격이 저렴한 대두식용유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미국은 대두산업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식물과 그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이런 테마의 책을 만났었다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재미없게 무조건 외우기만 하고 시험끝나면 머리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지던 지리, 세계사의 내용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어, 지식이 한뼘정도 자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p284 만약 지구 밖에서 온 생명체가 지구를 관찰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의 눈에 비친 지구의 진정한 지배자는 누구일까?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식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한발 더 나아가 그 외계인은 인류를 '지배자인 식물의 시중을 드는 가엾은 노예'로 자신의 별에 보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이 당신의 통념을 깨고 사고의 틀을 넓히는 유용한 도구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세계사는 반드시 알아야할 필수 지식입니다. 세계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가 아닌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식물들에 대한 지식은 현재의 우리에게 유용한 것들입니다. 세계사에 대해 알고 싶지만 방대한 양에 시작하기가 두려운 사람들, 쉽게 기억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우리 몸이 캡사이신의 독성을 중화해서 배출하려고 다양한 기능을 총동원하면 순간적으로 혈액순환이 빨라지고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갑작스러운 캡사이신의 침투로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판단한 뇌는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을 배출한다. 다시 말해 캡사이신으로 통각자극을 받은 뇌가 몸이 고통을 느끼는 것을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판단해 완화하려고 앤도르핀을 분비하는 것이다.
- P110

당나라 시대의 어느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첫 모금은 목과 입을 넉넉히 적시고, 두 번째 모금은 외로움을 말끔히 녹여주고, 세 번째 모금은 시심을 깨워주고, 네 번째 모금과 다섯 번째 모금은 일상의 불평불만을 깨끗이 씻어내 주고 몸을 정화해준다. 그리고 여섯 번째 모금을 마시면 신선의 경지에서 노닐게 된다."
- P134

문 뒤에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씨앗은 인간에게 식량이 되어준다. 그리고 씨앗이 떨어지지 않는 작물의 밑동에서 씨앗을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심으면 씨앗이 떨어지지 않는 성질을 지닌 밀을 얻는 길이 열린다. 이는 운이 따라준다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농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P207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문명에 힘입어 작물이 발달했을까, 아니면 작물이 문명 발달에 기여했을까?’ 단언할 수는 없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세계 문명의 기원이 작물의 존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 P268

인류에게 식물은 어떤 존재일까? 인간은 언제나 식물을 자기 욕망을 충족하는 도구로 여기며 이용해왔다. 동물처럼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거부하지 못하며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살아야 했다.... 과연 식물은 인류에게 이용당하는 피해자로만 살아왔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번쯤 식물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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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어록 - 인간과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 문장들 사기 (민음사)
김원중 지음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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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권장되는 책이 바로 사마천의 ‘사기’라고 합니다. 또,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위한 첫걸음은 사마천의 사기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2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인간학의 교과서라고 불리며 회자되는 ‘사기’는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겪으면서도 혼을 담아 써내려간, 영원한 고전입니다. 그 쉼 없는 생명력의 원천은 바로 인간 개개인의 고뇌와 갈등을 통찰한 데 있습니다.

이 책은 ‘사기’에서 200여 편의 명구를 뽑아 그것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지혜를 정리한 책입니다.

1부에서는 무엇이 나를 높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2부는 타인을 진심으로 대하는 법에 대해 들려 줍니다. 3부는 세상과 더불어 사는 법인 정공법과 기습을 말하며, 4부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통치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p50 미세한 털은 볼 수 있어도, 자신의 속눈썹은 보지 못하는 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앞뒤에 하나씩 두개의 자루를 매고 다닌다고 합니다. 앞에 있는 자루에는 남의 허물을 모아 담고 뒤에 있는 자루에는 자기의 허물을 주어 담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뒤에 있는 자루는 보이지 않으니까 앞에 있는 자루에만 남의 허물을 잔뜩 집어넣기 마련이죠.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앞에 있는 자루에는 그렇게 집어넣는데도 앞이 무거워 넘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뒤에 있는 자루에 언제나 자기 허물이 꽉 차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정죄할 만큼 깨끗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고치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허물을 고쳐야 할 것입니다.

 

p112 용모로써 사람을 취한다면 자우에게 실수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최초로 받게 된 상대방의 정보를 이후에 알게 된 것들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이 처음으로 알게 된 것, 믿게 된 것이 진실이며 진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부분만으로 상대방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초의 정보 파워란 것은 정말 너무나 어마어마하기에, 알고 있어도 적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경계하는 구절입니다.

p126 성공과 실패가 뒤바뀌며 도는 것이 비유하면 먹줄을 긋는 것과 같다

사람에게는 살아가면서 공평하게 기회도 몇 번 주어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회가 와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그 좋은 기회를 붙잡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나에게는 이제 기회는 없어”라고 하기 보다는 준비되지 않은 자신을 탓해야 합니다. 현재의 절망에 굴복하면 결코 미래는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단지 운이 좋고 기회가 와서 그런 것 같지만 그들 대부분은 끊임없이 노력하며 준비해온 사람들입니다. 무언가를 기대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에겐 성공이란 두 글자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준비하는 자에게만 기회가 오고, 그 기회 역시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습니다.

 

p386 ...법도만을 따르는 공으로는 세속을 초월하기 어렵고, 옛날을 본받는 학문으로는 지금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오

변화를 읽는 눈을 키워야 합니다. 시대의 변화를 읽는 눈이 약하면 예측력도 떨어집니다.

지금 우리에게 다가와 있는 변화는 매우 빠르고 다양합니다. 우리가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눈높이를 높여 변화를 빠르게 흐름을 읽고 받아들이면 앞서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도태될 것입니다.

 

‘고전’이라고 하면 초보자들에게는 부담스럽고 어렵게 생각되기 마련입니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는 배경지식 없이 읽기엔 어려울 수 있는데, 해설이 가미된 이 책으로 먼저 시작하신 후 접한다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왼쪽 페이지는 사마천의 문장, 오른쪽 페이지는 그에 대한 배경지식과 현대적 사유를 담았 기 때문에, 천천히 읽으며 구절을 곱씹고 생각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

아까워서 혹은 먹먹해서, 어릴 적 맛난 과자를 몰래 숨겨두고 조금씩 아껴 먹었듯,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며 읽을 책입니다. 한꺼번에 후루룩 읽어치우기엔 너무 아깝고, 생각을 정리하고 가야 할 대목, 의미가 깊어서 지나칠 수 없는 구절이 숱하게 많습니다. 눈에 띄는 대로 멈춰 새기고 가려니, 끝까지 읽어내려면 뜻하지 않게, 곁에 두고 아껴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생각을 깊이 해서 마음으로 그 뜻을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 본 것이 별로 없고 들은 바가 적은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진실로 어렵다 - P28

그러므로 밝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밝은 귀에도 들리지 않는 것이 있다. 사람이 비록 현명해도 왼손으로 네모를 그리면서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릴 수는 없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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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 : 식모, 버스안내양, 여공 - 시대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름
정찬일 지음 / 책과함께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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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직업에 귀천은 없지요. 하지만 사회적인 인식이 부정적이었던 직업은 있었습니다.

‘식순이’라 불린 식모와 ‘차순이’라 불린 버스안내양과 더불어 여공인 ‘공순이’들이 그것이죠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부잣집 식모살이’는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많은 맏언니, 10대 소녀들이 ‘식모’가 되었습니다.

박카스와 ‘무언지 모르는’ 주사약으로 버티며 철야 작업을 하던 외딴방의 ‘여공’과, 낯선 서울땅에 올라와 남동생과 오빠의 학비를 대고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안내양’을 했던 영자는 그렇게 번 돈으로 남동생과 오빠의 학비를 대고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는 어느 가족의 착한 딸이자 누나 혹은 여동생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던 1960~1970년대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다른 이름입니다.

저자는 식모, 버스 차장, 여공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과 투쟁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식모를 고용하는 집에서는 침식을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적은 월급을 주고 값싼 노동력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식모살이는 고되고 비참했습니다. 주인들로부터 욕설을 듣거나 구타를 당하기 일쑤였고 월급을 제때 받지도 못했습니다. 휴일도 거의 없었고 밥도 주인 식구들과 같이 먹지 못했습니다.

p37 임금도 최저 수준이었다. 조선인 가정의 경우 1910년대 중반까지는 월 3원정도였고, 1920년대 후반에 5-6원, 10940년대 8-10원으로 인상되었다. 1921년 기준 쌀 한 가마니 가격은 16원 4전이었다. 두 달 뼈 빠지게 일해도 쌀 한가미 살 수 없었다.

p63 전쟁으로 수많은 가정이 피해를 입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식모를 두던 습관은 전쟁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식모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니 식모를 구하기가 쉬운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전쟁까지 겹치면서 식모를 구하는 사람들이 훨씬 유리해졌다.

p103 가장 큰 고역은 겨울에 찬물로 일하는 것이다. 찬물로 밥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걸레질하노라면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물을 데워 쓰는 건 아궁이 좋을 때고, 시간을 벌기 위해 찬물로 후닥 해치운다. 겨울에 손등이 밭이랑처럼 터도 어쩔 수 없다

식모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더러 있었다. 범죄는 멸시하고 학대하는 사회에 대한 반항과 보복 심리가 원인이었다. 주인집 귀중품을 훔쳐 달아나다 절도죄로 처벌받거나 주인집 아이를 유괴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p133 신문들은 주인집의 횡포보다는 식모가 저지른 범죄를 더 많이, 더 비중있게 다루었다. 이는 실제로 식모에게 가해진 폭행이나 횡포가 많지 않음을 의미하기보다는 식모와 주인이라는 종속적 관계 속에서 주인이 식모에게 저지른 범죄가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묵인되었음을 의미한다.

p161 '식모‘라는 말도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인간 대접 못 받는 인상이 워낙 강해 ’식모‘라는 말 자체가 비하하는 단어로 굳어졌다. 하녀,식순이,부엌데기보다는 나았지만, 식모들은 자신을 ’식모‘라고 부르는 데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식모가 점차 줄어든 것은 산업화로 여성들의 일자리가 많이 생겨서입니다. 아파트 중심의 주거 구조 변화와 핵가족화도 식모의 필요성을 감소시켰습니다.

 

‘버스안내양’이라는 직업이 등장한 것은 서울에서 1961년부터 버스안내원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면서였습니다. 1965년 전국의 버스안내양 수는 1만7160명. 대부분 18세 전후의 나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배움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직업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버스안내양은 인기 직종이었습니다. 별다른 훈련이 필요없는 데다 다른 직종에 비해 보수도 높은 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침식이 제공된다는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농촌 출신의 상경 소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숙식 제공의 실태도 들여다보면 열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보통 2평짜리 방에 9명이 모여 살고 나머지는 차주집에서 횡포에 가까운 감시·감독을 받으며 지냈습니다.

p288 저임금과 더불어 악명을 떨친 것은 근무시간이었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근무 형태로서 승무하는 날 근무시간은 18시간이었다. 휴일하루를 감안하면 일일 평균 근로시간은 12시간이 된다...임금,후생복지 등이 해마다 개선되기는 했지만, 1인당 하루 18시간 근무는 버스안내양이 사라질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버스가 제 속도를 내고 달릴 때에도 버스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다 태우고 안전하게 문 닫고 출발하기에는 배차 시간이 밟혔습니다. 미처 문을 닫을 수가 없던 차 안에서 그 열린 문을 두 팔로 버티고 수십 명의 체중을 감당해야 했던 건 안내양들의 초인적인 힘이었습니다.

p308 달리는 차에 아슬아슬 매달려가는 안내양들은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안내양은 미어터지려는 버스의 최후 보루였다. 그가 못 버티면 승객들이 쏟아져 나와 대형사고가 날 수 있었다.

p322-323 늘 교통사고에 노출되고, 승객과 흔들리는 버스에 시달리는 안내양의 몸은 ‘종합병동’이었다. 맨손을 대면 차문에 쩍 달라붙는 겨울에는 동상에 자주 걸렸다. 손발이 트는 것을 예방하는 값산 ‘동동구리무’는 화장품이라기보다는 생활필수품이었다.

1970년대 중반 5만 명에 육박했던 안내양은 1982년 9월 10일 시민자율버스가 등장하면서 줄기 시작했습니다. 안내양이 지키던 문 하나뿐이던 시내버스에 앞문이 달리고, 승객들이 돈을 내게 된 것입니다.

 

여공들은 섬유ㆍ의류ㆍ봉제ㆍ전자업에서 주로 일했습니다.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 인권의 사각지대는 그들이 처해 있던 현주소였습니다. 수출산업의 70%를 차지할 만큼 수출에 기여했지만 세상은 그들을 ‘공순이’라 불렀습니다.

p442 여공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이중적이었다. ‘고향의 가족을 부양하는 소녀’가 동전의 앞면이라면 그 뒷면에는 ‘타락과 문란’이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공들이 또래끼리 모여 생활하므로 성적으로 탈선하기 쉽다고 단정했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구로동과 가리봉동 일대에 크고 작은 공장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먼지로 가득한 공장 안에선 시골에서 갓 상경한 언니, 오빠들이 밤낮없이 기계를 돌렸다.

p383 고향을 떠나 취직한 그들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임금 형태는 대체로 일급제였고 생산량에 따라 임금이 지불되는 도급제였다. 하루 12시간 주야 교대로 일했고 일요일만 쉬었다.

1970년대에는 노동 야학, 대학생 위장 취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을 비관하지 않고 부당한 법과 제도,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운 여공들도 많았는데, 이들의 투쟁은 노동조합의 설립 등 한국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이 달라진 느낌을 받습니다. 여성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던 과거 정부에 대한 반작용인지, 아니면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충분히 높아졌다는 일부의 인식인지 모르겠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인식개선이 과거보다는 많이 변화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여성상위시대’니 ‘남성역차별’이니 하는 용어가 스스럼없이 사용되고 있지만, 직업 전선에서 많은 여성들이 부딪치는 현실은 아직 냉혹하기만 합니다. 일부 여성의 사회경제적 약진 뒤에는 아직도 저임금과 차별로 고민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과거의 역사 속에만 존재했던, 이제는 사라진 ‘식모, 여공, 버스안내양’은 우리의 어머니일수도 있고, 우리의 언니(누나)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계를 위한 처절함과 가족을 위해 희생을 무릅쓴 그녀들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여성들이 겪었던 고초를 인터뷰, 신문 기사, 대중 문화, 사진 등으로 생생하게 고증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특히 당시의 신문 기사를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지금의 여성들이 가진 직업이 30년,50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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