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안진이 옮김 / 윌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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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최고의 발명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보통 전기가 1번으로 많이 언급되고, 먹는 피임약도 빠지지 않습니다. 피임약은 여성인권과 인구제한을 통한 식량과 질병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고 합니다.

누에의 똥과 양의 털 그리고 목화의 꽃같이 허접해보이는 먼지뭉치를 풀어서 실을 만들고, 그 거미줄보다 변변치 못한 실을 다시 엮어서 옷감을 만든 것 말입니다. 이제는 나일론을 거쳐 고텍스, 기능성 섬유에 이르기까지 발전한 천(fabric)은 정말 위대한 발명입니다.

몸에 난 털이 짧아 외부온도에 약한 인간은 반드시 옷을 입어야 하는데, 이 옷을 만드는 천이 너무 튼튼해서 인류는 의식주 중에서 맨 앞에 나오는 ‘의’는 확실히 극복했습니다. 튼튼하다보니 버려진 옷들도 입을만 해서, 아사 직전의 빈국 사람들이나 전쟁 피난민들 사진을 봐도 의복만큼은 크게 험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그들이 처한 어려움이 혹시 엄살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생길 지경입니다. 이제 옷은 보온기능을 넘어 자신을 나타내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튼튼한 청바지를 찢어 구멍을 내고는 인습으로부터의 자유를 표현하고, 옷감을 절약할 목적이 아님에도 몸을 간신히 가리는 옷을 입고는 자신의 섹시미를 어필하는 세상입니다. 현대의 과학기술이 의복 문제는 완전히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의복에 가장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이 실입니다.

이 책은 직물과 실에 대한 13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리넨으로 시체를 감싼 이집트인들, 고대 중국의 비단 제작의 비밀, 중세 유럽 왕족들의 레이스 경쟁 등 특별한 직물과, 인간 한계를 넘기 위한 우주복 이야기, 전신 수영복 이야기도 다루고 있습니다. 힘과 권력에 가려졌던 그 뒤에 숨은 인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실과 직물로 떠올릴 수 있는 제품은 옷이나 가구의 가죽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이 익숙하게 존재하지 않았던 ‘발견’과 ‘발명’의 의미가 있던 때 직물은, 어떤 일의 가능과 불가능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정 장소에서 예측 가능한 옷의 기능 외에 직물은, 사람과 일종의 상호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책 곳곳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실과 직물은 잘 썩기 때문에, 또 주로 여자가 취급하기 때문에 역사에 기록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에 미친 영향이 작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실을 통해 역사를 보는 것은 권력과 힘이 만들어낸 역사의 한 장면만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작지만 끈질기게 역사를 움직여온 일상을 발굴하는 일입니다. ‘실과 직물의 역사’가 남성 중심적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났다는 것이 이 책의 관점입니다. 당연히 저자는 그것을 다시 복구하겠다는 의지를 책 곳곳에서 내비치곤 합니다.

옷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게 해주었지만, 정작 레이스를 뜬 사람에겐 그것을 걸칠 기회는 아예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유와 화려함을 과시하는 매체인 직물이 노예에게는 그들을 더욱 강하게 속박하는 일종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어떤 이는 면 제조업 성공으로 부와 직업적 성공을 이뤘지만, 어떤 이는 그 공장에서 강도가 심한 노동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인류가 이렇게 여러 천들의 혜택을 받고 살 수 있도록 실과 바늘을 만든 위대한 발명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최초의 직물은 식물에서 추출한 섬유 또는 양과 염소에서 뽑은 털로 만들어졌으며, 원시시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도구였다. 직물은 무기보다도 중요했다. 직물은 몸을 보호하고, 따뜻하게 해주고, 나중에는 지위의 시각적인 상징물이 됐다. 또 직물은 인류의 가장 매력적인 자질 중 하나인 창의력을 발휘하는 통로를 제공했다. 불에 타버린 트로이의 어느 집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을 윤기 흐르는 천과 줏주아나 동굴의 섬유로 만들어진 물건들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 물건들을 직접 볼 수 없을 것이고 그 물건들이 제작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 물건들을 만든 사람이 고민을 하고 정성을 기울였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 P58

비단은 대부분 중국에서 수출했다. 중국은 누에나방의 서식지인 동시에 누에의 먹이인 뽕나무가 많이 자라는 나라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세계 최초로 양잠을 시작했다
- P120

고고학자들은 붓, 수건, 양동이 같은 도구를 가장 많이 쓴다. 사라 파칵에게는 다소 특이한 도구 하나가 더 있었다. 그 도구는 바로 인공위성이었다.
- P137

사각형 리넨을 돛으로 쓴다는 발상은 배의 중앙에 가림막을 높이 매달던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추측된다. 이런 풍경은 고대 유적에 묘사된 종교적 기념 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배에 내걸린 가림막이 바람을 붙잡았기 때문에 배가 물살을 거슬러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 P143

양모 교역은 12세기와 13세기 시토 수도사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들을 세속화했다. 그들이 거래하는 ‘하얀 금’의 양이 늘어날수록 수도사적인 이상과는 멀어졌다.
- P176

레이스는 그것을 두른 사람의 지위와 취향, 부를 과시하는 것 외에 별다른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 하지만 17세기 유럽 사회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레이스를 통해 겉치레를 하려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었다. 옷에 레이스가 없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고 한 마디씩 할 정도였다. 레이스가 인기를 끌고 비싼 가격에 팔리게 되자 레이스는 특권의 상징이 되었으며 고용을 창출했다. 레이스 생산량과 소비량의 증감이 국가들 간 외교 관계에 긴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 P187

푸앵 드 프랑스(베네치아산 레이스는 대체한 프랑스산 레이스의 이름)가 유럽 패션의 정점에 섰을 때 프랑스 레이스 직공들은 콜베르에게 감사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콜베르의 후임자들은 레이스 직공들을 그만큼 살뜰하게 보살피지 않았다.
- P201

데님이라는 이름은 그 직물이 처음 만들어진 장소에서 따온 듯하다. 원래 데님은 프랑스의 님Nimes이라는 도시에서 만들던 두꺼운 모직 서지serge(짜임이 튼튼한 모직물) 직물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장소에서도 값싼 면을 이용해 데님을 점점 많이 만들었고 ‘서지 데 님스serge de Nimes(님스의 서지)‘라는 말이 축약되어 ‘데님denim‘으로 변했다
- P242

면을 사용 가능한 직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도 낭비가 많다. 청바지 1벌을 만드는 데 물 11,000리터가 소요된다. 게다가 청바지 염색에 사용되는 식물인 쪽도 이제는 대부분 합성해서 만든다. 청바지의 제작과 염색 과정에 사용된 후 배출되는 화학 물질은 시내와 강으로 흘러간다
- P246

두 원정대의 가장 큰 차이는 겉옷이었다. 영국 원정대는 개버딘(한 가닥 한 가닥 방수 코팅이 된 실로 촘촘하게 짠 가벼운 면 직물) 하의와 외투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반면 로알 아문센의 원정대는 개버딘 위에 사슴 가죽이나 물개 가죽으로 만든 모피 웃옷과 바지를 입었다
- P253

거미줄은 경이로운 공학 기술과도 같다. 오직 단백질로만 구성된 거미줄은 대단히 질기고 원래 길이의 40퍼센트까지 늘려도 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의학과 군사용 바이오 기술에서 혁신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은 거미줄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 재생술, 화려한 의류, 방탄조끼의 소재인 케블라의 대용품에 이르는 다양한 활용 방도를 제시한 바 있다.
- P368

이제 우리초창기 이집트 연구자들처럼 미라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보물을 찾기 위해 미라에 감긴 리넨을 북북 찢어낼 것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인이 가지고 있었던 정성과 솜씨를 배워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인류는 3만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섬유에서 실을 뽑아내고, 그 실로 옷감을 짜고, 뜨개질을 하고, 매듭을 지어 경이로운 물건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자잘한 곳까지 조금만 더 신경을 쓰자는 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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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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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 중에 임진왜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만큼 우리 역사에서 주요한 사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임진왜란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쓰디쓴 침략의 역사이면서 이순신의 전투 기록을 본다면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조선 중기 문신 류성룡이 임진왜란 동안에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었던 류성룡이 전쟁이 끝난 뒤, 뒷날을 경계하고자 하는 뜻에서 1592년(선조245년)에서 1598년까지의 일을 직접 기록한 것입니다.

무력한 조선군. 자기 살 길만 쫓아 달아나는 관리들. 병법도 모르고 덤벼드는 조선의 장군들. 왜적이 10일 만에 한양까지 들어왔습니다. 그 동안 조선이 한 일이라고는 ‘도망’과 ‘무모함’, ‘탁상공론’이 전부였습니다.

백성들이 매순간 죽어갈 때 왕과 대신들은 피난가기에 바빴고,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위와 같은 현실성 없는 대책뿐이었습니다. 도망가기에 바빠 전략적 요충지도 다 버렸습니다다.

왜적의 침입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고 전쟁 준비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번번이 묻혔습니다. 임진왜란이 진행되는 기간에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 못해 굶었습니다. 아비는 아비 노릇하기 힘들어졌고, 어미는 제 자식 젖조차 물릴 힘이 없었습니다.

그때도 ‘정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파직되고 서로 복권되었습니다. 나라가 찢겨가는 전쟁 중에도 대신들은 서로를 헐뜯으며 찢기 바빴습니다. 안에서부터 썩은 나라는 전쟁을 준비할 힘이 없었습니다. 전쟁도 정쟁에 묻혔습니다.

류성룡이 이 책을 기록한 이유도 누구를 헐뜯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속에는 잘못한 과거가 들어 있습니다. 장수들의 무능함과 대신들의 잘못이 들어 있고, 류성룡 자신의 실책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군주는 도성도 버리고 도망갔지만, 내 고장 버리지 않고 지킨 의병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성을 지키다 죽은 함안 군수 조종도, 자신의 죽음조차 승리에 방해가 된다며, 버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임진왜란은 국가의 무능이 부른 미증유의 대재앙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언급된 문집은 있지만, 사건의 과정을 총체적으로 기술한 동시대의 서적은 이 책이 사실상 유일할 것입니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류성룡의 시점에서 임진왜란이 어떻게 일어나고 당시 참혹했고 위험했던 상황들을 생생하게 느끼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기록들을 보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게 됩니다. 특히, 사건의 발달은 문신과 당파 싸움에서 일어나는 것은 지금도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똑같은 일을 겪어야 과거의 잘못을 경계하고 삼갈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씁쓸한 생각을 해봅니다.

징비란 시경의 소비 편에 나오는 문장인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러한 집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조정 내의 분란, 나아가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발생한 모든 일을 더하고 뺌 없이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 P10

4월 1일, 두 사람은 서울로 돌아와 임금께 보고했다. 그 무렵 집으로 찾아온 신립에게 내가 물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큰 변이 일어날 것 같소. 그렇게 되면 그대가 군사를 맡아야 할 터인데, 그래 적을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있소?" 신립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까짓 것 걱정할 것 없소이다." 나는 다시 말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과거에 왜군은 짧은 무기들만 가지고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조총을 갖고 있습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소." 그러나 신립은 끝까지 태연한 말투로 대꾸했다. "아, 그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는답디까?" 신립은 내 말은 무시한 채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 P42

후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왜군을 쫓아 조령을 지나다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이런 천혜의 요새지를 두고도 지킬 줄을 몰랐으니 신총병(신립)도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로구나."원래 신립은 날쌔고 용감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전투의 계책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장수가 군사를 쓸 줄 모르면 나라를 적에게 넘겨준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후손들에게 경계가 될것이라 생각해 상세히 적어 둔다.
- P68

당시 요동에서는 왜적이 우리 나라를 침략했다는 말을 엄자 전에 들었다. 그런데 다시 임금이 서울을 버리고 서쪽으로 피란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이윽고 왜적이 평양까지 닿았다는 소식을 접하자 의심을 품기까지 했다. 아무리 왜적이 강하다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올라올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조선이 왜구의 앞잡이가 되어 이끌고 온다."고도 했다.
- P90

"이 모습을 본 성 안의 아전과 백성들이 난동을 부렸다. 그들은 칼을 빼어 길을 막고 나서며 폭행했다. 신주는 길에 떨어지기도 하였는데, 그들은 재신을 지목하며 말했다. `너희들은 평소에는 편히 앉아 국록만 축내더니 이제 와서는 나라를 망치고 백성마저 속이는구나?‘ 이 무렵 연광정에서 임금께로 향하던 나는 아녀자와 어린 아이까지 분노를 감추지 않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았다. `성을 버리고 갈 거면 왜 우리는 성 안으로 들어오게 했소? 이야말로 우리를 속여 적의 손에 넘겨주려는 속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 P92

결국 전라도와 충청도를 보전하고 아울러 황해도와 평안도 연안 지방까지 지키게 됨으로써 군량의 조달과 통신체계가 확립될 수 있었다. 이는 곧 나라를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요동과 천진 지방에 왜적의 손길이 닿지 않게 되어 명나라 군사들이 육로를 통해 우리나라를 구원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이순신이 한 번 이긴 결과였다
- P122

언젠가 큰비가 내린 날이었다. 굶주린 백성들이 밤중에 내 숙소 곁에서 모여 신음 소리를 내는데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주위를 살펴보자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 P165

게다가 조선 전역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군량 운반에 지친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힘이 있는 자들은 모두 도적이 되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해 살아남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잡아먹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이는 지경에 이르러 길가에는 죽은 사람들의 뼈가 잡초처럼 흩어져 있었다
- P185

이순신이 한산도에 머무르고 있을 때 운주당이라는 집을 지었다. 그는 그곳에서 장수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를 연구하면서 지냈는데, 아무리 졸병이라 하여도 군사에 관한 내용이라면 언제든지 와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모든 병사들이 군사에 정통하게 되었으며,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는 장수들과 의논하여 계책을 결정하였던 까닭에 싸움에 패하는 일이 없었다.
- P192

이순신은 말과 웃음이 적었고, 용모는 단정하였으며 항상 마음과 몸을 닦아 선비와 같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담력과 용기가 뛰어났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행동 또한 그의 뜻이 드러난 것이었다
- P215

그리고 지옥의 전쟁 임진왜란은 끝이 났다. 명나라 장군 진린은 이순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의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주저 앉으며 통곡했다. 우리 군사와 명나라 군사들은 각 진영에서 통곡을 그치지 않았는데, 마치 자기 부모가 세상을 떠난 듯 슬퍼했다. 그의 영구 행렬이 지나는 곳에서는 모든 백성이 길가에 나와 제사를 지내면서 울부짖었다.
- P218

훗날 나라의 앞날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나같은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그냥 지나치지 말고 활용하기 바란다. 적을 막는 방법으로는 꽤나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 P229

병법에는 정해진 형식이 없고 전투에는 특별한 법칙이 없다. 때에 따라서 그에 적절한 법을 시행하면서 나아갔다가는 물러나고 모였다가는 흩어지면서 특별한 묘책을 끝없이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결국 지휘관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천 마디 말이나 만 가지 계략이 다 필요 없고, 오직 뛰어난 장수 한 사람이 중요하다. 거기에 조조가 말한 세 가지 요소가 누락되지 않고 더해진다면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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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 최신 언어로 읽기 쉽게 번역한 뉴에디트 완역판, 책 읽어드립니다
혜경궁 홍씨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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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조선왕실의 역사에서 최악의 비극으로 꼽히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사도세자의 비극에 대해서 지금까지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제작됐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모든 것을 겪은 '혜경궁'의 기록을 읽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이 책은 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에서는 혜경궁 홍씨가 세자빈으로 궁에 들어온 뒤 시아버지와 남편의 사랑을 받은 일, 이후 정조를 낳고 환갑을 맞기까지의 여러 가지 일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2,3권은 임오화변의 주체인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위태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비범한 탄생과 뛰어난 자질, 죽은 경종의 궁인들에게 세자를 보육하게 한 영조와 선희궁에 대한 원망, 사도세자의 비행으로 겪었던 마음고생, 임오화변 당시의 상황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1권에 비해 사건에 대한 혜경궁 홍씨의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4권에서 혜경궁 홍씨는 영조의 총애를 받던 화완옹주에게 세손을 돌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모자 사이가 서먹해지고 친정집에는 안 좋은 일만 계속됩니다. 이에 혜경궁 홍씨는 이 일들이 모두 모함이며, 그녀의 친정은 나라와 집안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5권은 화완옹주의 양자인 정후겸과 김귀주의 이간으로 혜경궁 홍씨 집안이 겪게 된 일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벼슬을 시켜주지 않은 일로 아버지 홍낙춘에게 앙심을 품은 홍국영이 훗날 정조의 신임으로 권력을 손에 쥐자, 혜경궁 홍씨의 중부 홍인한과 동생 홍낙임을 대역 죄인으로 몰고 간 일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홍국영이 자신과 정조, 중전과 정조 사이를 이간하며 세도를 누리려 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지막 6권은 1~5권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고 정조에게 후사가 없던 것을 걱정하던 중 가순궁이 순조를 낳은 일과, 정조가 순조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에 사도세자의 일과 외가의 죄를 씻어 주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영조에서 정조, 순조에 이르는 조선 왕조 3대에 걸친 권력투쟁의 궁중정치는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욱 드라마틱한 현실의 역사입니다. 그녀가 체험한 역사적 사건 그 자체가 너무나도 기구하고 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자신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을 아무리 말을 바꾸어 설명하려해도 그렇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과거를 회고합니다. 비록 안타까운 남편의 죽음과 몰락한 가문에 대한 억울함에 대해 호소하고 있지만, 그녀 특유의 섬세하고 우아한 표현, 담담함으로 당시의 정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정황이나 인물들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의 글에서는 애끓는 심정이 절절하게 드러납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혜경궁과 가문의 인생이 휘둘리는 데도 속 시원하게 항변할 수 없었던 지난 세월이 있었으니 당연히 그랬을 것입니다.

혜경궁 홍씨는 왕비가 되기 위해 아홉 살 어린 나이에 궁으로 들어왔지만 왕후, 대비가 될 수 없는 신분으로 비운의 삶을 살다가 생을 마칩니다. 남편이 죽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가 귀양을 갈 때도 조용히 하늘의 뜻을 인정했습니다. 자기의 옮음을 버리고 궁중의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을 막고 자손을 지킨 혜경궁 홍씨의 지혜는 본받을 만합니다.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매정한 아버지로, 그의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들로 역사에 남았지만, 이 작품은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축이 되어줄 소중한 작품이었습니다.

천지가 맞붙고 일월이 캄캄하게 막히는 변을 만나, 내 어찌 한시라도 세상에 머물 마음이 있으리오...한편 생각하면 열한 살 된 세손에게 크나큰 아픔을 주지 못하겠고, 내가 없으면 세손의 앞날은 어찌하리오. 참고 참아 모진 목숨을 보전하고 하늘만 보고 부르짖었다.
- P61

새롭게 기억을 더듬으니 마음과 정신이 놀랍고 답답하며 간과 폐가 찢어지는 듯하여, 한 글자 한 글자가 눈물이 쏟아져 글씨가 써지지 않는구나.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어디 있으리오. 원통하고 억울하다
- P72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눈 앞에 생생하고 고통이 가슴에 박히어 어찌 써내라. 이제 이것을 써내려고 하니, 영조와 경모궁께서 하시던 일이 세상에 부족한 덕이 드러나실 듯하여 죄스럽지만 실상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으니 종이를 대하여 가슴이 막힐 뿐이다
- P92

무릇 하늘이 부자 두 분 사이를 그렇게 만드신 듯 하다. 아버니께서는 말고자 하시다가도 누가 시키는 듯 도로 미운 마음이 생겨나시고, 아드님은 아버지를 뵈올 때마다 숨기는 일 없이 당신의 잘못을 감추지 않으셨다... 하늘의 뜻이 어찌하여 이 조선에 만고에 없는 슬픔을 주시는지 애통할 뿐이로다
- P137

세손이 어린 나이에 세상에 없는 큰 아픔을 당하고, 또 왕가의 당치않은 변고를 당하셔서 지나치게 애통해 하셨다. 상복을 벗으실 때 곡읍하는 소리가 천지에 사무쳐 초상에 천지가 깜깜하게 꽉 막히던 때의 설움보다 더하셨다
- P195

모년의 일은 내가 차마 기록할 마음이 없었다. 다시 생각하니 주상이 자손으로서 그때의 일을 모르는 것이 망극하고 또한 옳고 그름을 분별치 못 하실까 민망하여 마지못해 이렇게 기록한다
- P201

임오화변의 계기는 부자간의 사이가 예사롭지 않으시기로 전전하여 된 일이니, 내 평생의 뼈에 사무친 지극한 한이요 원이로다. 영조 대왕께서 아드님께도 그러하셨으니 한 다리 먼 손자에게 또 어떠하실지 알리오.
- P258

주상이 나이 어리시고 나라의 위태로움이 한 터럭 같은데 인심과 세태가 갈수록 이러하여, 마침내 어미도 몰라보는 세상이 되기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참으로 나라와 인륜을 생각하여 통곡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P322

서럽고도 서롭도다!
차마 갑신년의 일을 어찌 다 일컬을 수 있으며 그때 몹시 애달프고 망극하여 모자가 서로 붙들고 죽을 바를 모르던 모습이야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선왕께서 겪으신 지극한 아픔이 예로부터 제왕가에 없는 일이니, 비록 나라를 위하여 임금의 자리에 임하시나 한평생 아픔을 품으시고 추모하심이 해가 갈수록 더욱 깊어지셨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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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과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에 대한 기록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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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국경의 높은 장벽을 가볍게 넘으며 남녀노소나 지위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든 같은 확률로 덮칩니다. 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극복과 좌절의 역사입니다. 인간 존재를 뿌리부터 위협하는 질병이야말로 실제적인 역사의 동인이었습니다. 그리스 도시국가와 로마 제국 멸망은 역병의 만연 때문이었고, 중세 유럽을 끝장낸 것이 페스트였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입니다.

이 책은 한때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군림했던 최고 권력자에서부터 유명인에 이르기까지 질병이 어떻게 그들을 무너뜨리고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는지, 질병과 역사 사이의 상관관계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유럽의 흑사병, 천연두, 콜레라, 인플루엔자, 에이즈 등 그동안 인류의 역사를 위협했던 역대급 전염병이 발생한 당시 이야기와 역사적 인물,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줍니다.

대표적인 전염병으로 '두창'(마마·천연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두창은 현재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불과 1950년대까지 국내에서만 수만 명에 달하는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이었습니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마마·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당시 두창에 대한 두려움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p115 천연두에 걸린 유명인들 중 괴테와 모차르트는 흉터 자국이 꽤 많은 편이었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은 그 둘에 비하면 훨씬 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천연두 바이러스, 즉 두창 바이러스는 대두창 바이러스와 소두창 바이러스 두 가지로 나뉜다

그런가 하면 결핵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결핵이 인류를 끈질기게 괴롭힌 데는 강한 전염성 외에도, 1세기부터 수천 년간 지속된 질환에 대한 완곡한 미화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핵은 과거 '예술가 질병'이나 '아름다운 질병' 등으로 미화됐습니다. 19세기 많은 문학작품들이 결핵을 '젊고 아름다운' '부유한 계급'의 여성이 가진 질환으로 묘사했습니다. 덕분에 당시 사람들은 결핵을 고상하고 청아한 죽음과 결합시켰고, 치명적인 질병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여성이 결핵 환자처럼 보이고 싶어 할 정도였습니다.

세계사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역사뿐 아니라 의학적 지식까지 함께 덤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역사적 질병을 이겨낸 기록들을 바탕으로 현재의 질병을 이겨내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질병은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 희망 그리고 편견을 투사해주는 스크린입니다. 질병은 역사를 바꿉니다. 코로나19와의 전쟁 중인 지금, 질병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직접 체험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인류가 미래에 맞부딪힐 질병에 희망이나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욱더 진화하고 있는 질병과 결코 끝나지 않는 경주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 혹은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코로나 19와 같은 전염병들은 미래의 후손들에게 어떤 역사로 기억될까요? 여러 가지로 유용한 생각거리들을 던져주는 흥미로운 역사책이었습니다.

질병은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의 흐름을 뒤흔들었다. 이 책에서는 심각한 질병에 걸린 몇몇 유명 인물들이 겪은 고통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동시에, 그 인물들이 만약 그 질병을 앓지 않았다면 역사의 여신 클레이오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도 상상해보고자 한다. 특히 프리드리히 3세와 메리 여왕은 유럽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두 나라를 통치한 이들이지만, 질병 때문에 두 사람의 재임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또한 페스트나 콜레라, 매독 등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를 덮치며 한 시대를 휩쓸어 버린 질병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 P9

뇌염은 바이러스가 뇌를 공격하는 병으로, 기존에 안고 있던 질병이나 반사회적 성향 등을 강화하는 특성을 지닌다. 칼리굴라가 뇌염에 걸렸고, 그 때문에 정신이상 반응을 보였다고 추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병을 앓고 난 후 칼리굴라가 보여주었던 행동들이 꽤나 변덕스럽고 극단적이었기 때문이다.
- P31

페스트의 발병 원리를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우선 페스트균이 쥐벼룩의 소화기에 장애를 일으킨다. 식도가 막혀 아무것도 삼킬 수 없게 된 벼룩은 굶주림을 극복하기 위해 숙주의 몸을 더 열렬하게 뜯으며 피를 빨아먹는데, 이때 벼룩의 위 속에 있던, 박테리아에 감염된 내용물들이 침샘에 섞여 나온다. 벼룩은 한 마리 쥐에서만 피를 빨지 않는다. 이 쥐, 저 쥐를 옮겨 다니고, 다른 동물과 인간도 공격한다.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의 희생양이 된 생물은 죽음을 맞이한다
- P39

통풍은 푸린 대사가 잘 되지 않아 요산 결정이 체내에 과잉 출적되는 질병으로 통풍 환자들은 초기에 관절과 엄지발가락 등에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통증부위가 부어오르거나 붉게 변하기도 한다.
- P135

질병은 이미 권좌에 오른 이의 앞길을 막아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지만, 권력이 보장된 자를 덮쳐서 사망에 이르게도 만들고, 이를 통해 다른 이에게 앞길을 터주기도 한다.
- P142

윌슨이 어느 날 느닷없이 뇌졸중이라는 날벼락을 맞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윌슨은 한나라의 수장이 되기에는 부적절할 정도로 예전부터 건강 상태가 좋지 못했고, 뇌졸중은 그간 누적된 병들이 집약적으로 표출된 결과였다.1856년 버지니아 주 스텐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토머스 우드로 월슨은 평생 단 한 번도 건강한 적이 없었다
- P199

레닌의 비교적 이른 죽음이 역사의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꺾어 놓았을까? 비록 동맹경화증을 앓고 있기는 했지만, 1~2년 정도 더 살았더라면 소련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 P224

민주주의 국가의 수반이라 해서 그러한 피해망상증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민주국가의 수장들 중에도 정적이 언제든지 자신을 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그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각종 불법 행위를 자행한 이들이 많다.
- P291

국가 권력이 단 한 명에게 집중될 경우, 그 한명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하면 효율적 통치 체제는 무너진다. 그리고 사람이 나이가 들면 중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도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소련 말기가 그랬다. 서기장은 물론이고, 당 지도부 전체에 당장 은퇴해도 좋을 정도로 노쇠한 인물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 P342

최고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건강상의 문제를 늘 왜곡된 사건으로 중화시키려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자신의 직무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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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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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식물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감자, 토마토, 후추, 고추, 양파, 차, 사탕수수, 목화, 밀, 벼, 콩, 옥수수, 튤립’ 등 13가지 식물들이 나옵니다.

p12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위대한 식물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자, 토마토, 후추, 고추, 양파, 차, 사탕수수, 목화, 밀, 벼, 콩, 옥수수, 튤립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식물들은 어떻게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오늘의 세계지도를 만들었을까? 물론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식물들 하나하나가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평범한 식물들이 인류 역사의 큰 흐름을 만들고 바꿀 수 있었던 까닭은 '후추'처럼 특정 시대마다 특정 식물에 인간의 들끓는 욕망이 모이고 강하게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으로 이 책을 읽다 보면 의외의 즐거움과 인문학적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감자

감자는 안데스 지역에서 유럽에 전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요리법을 몰라 악마의 작물로 불리기도 했지만 결국 유럽의 식량문제를 해결해 줬을 뿐만 아니라 돼지들의 먹이문제도 해결하면서 다양한 돼지이용 상품들이 유럽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유럽의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고, 인구의 증가는 노동력의 증가로 결과적으로는 산업혁명을 통한 유럽의 공업화를 이끌었습니다.

반면 감자를 주산업으로 하던 19세기 아일랜드에서는 감자역병으로 인해 대기근이 닥쳤고, 기근을 피하기 위해 400만명의 국민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은 미국의 성장과 세계패권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p26 베르사유의 장미는 프랑스 혁명을 그린 만화이다. 이 만화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궁전에 핀 고고한 장미 한 송이에 비유했다. 하지만 왕비가 실제로 사랑한 꽃은 만화 제목에 있는 장미가 아니었다. 흥미롭게도 그녀가 사랑한 꽃은 감자꽃이었다. 고귀한 왕비 신분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왜 장미나 백합같은 화려한 꽃이 아니라 감자꽃을 사랑했을까?

p31 서양인들은 흔히 성서가 언급하지 않는 식물을 사악한 존재로 여겨 꺼리고 피했다. 그런 이유로 감자는 결국 한동안 ‘악마의 식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다

*후추

육식 중심의 유럽에서는 고기가 중요한 식량이었으나 부패가 쉬워 오래 보존하기 어려웠습니다. 후추는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는 등 여러 방식으로 저장된 고기를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마법사였습니다.

한 상류층이 지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해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추를 확보하는 것은 막대한 이익과도 결부되었습니다.

후추는 아열대 식물로 인도에서만 재배되었으므로 멀고 험한 육로를 상인들이 걷고 걸어 유럽에 들여왔습니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 육로가 아닌 해로를 개척해 인도에서 후추를 대량으로 들여올 궁리를 했는데 콜럼부스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포르투갈은 후추와 같은 향신료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축적하게 되었고, 스페인, 네덜란드 등이 해상무역에 뛰어들면서 대교역(대항해)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p76 향신료가 있다면 고기를 어느 정도 양호한 상태로 보존할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하면 향신료는 '언제나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주고 풍요로운 식생활을 구현해주는 마법의 약이었다

p90 사치스러운 식생활을 즐긴 귀족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귀족이나 상류층에서 후추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실용적인 목적보다 자신의 높은 지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한 상징성이 컸다. 이것은 설탕이 귀하던 시절 사람들이 설탕을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양파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양파는 중세유럽에서는 드라큘라, 마녀 퇴치용 등으로 사용하는데 그쳤으나 이집트 등에서는 피라미드 건설현장 인부들의 보양강장제로 쓰이는 등 에너지원으로서 인정받았습니다.

p129 양파를 세로 방향으로 반으로 자르면 가장 안쪽에 '심' 같은 게 들어 있는데, 그 부분이 바로 양파의 줄기다. 그 줄기에서 차곡차곡 포개지며 잎이 나온 것이다. 양파는 건조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잎 부분을 두툼하게 만들어 영양분을 저장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마트에서 사다 반찬으로 해 먹고 즙을 짜서 먹는 양파는 줄기와 잎으로 구성된 먹을거리인 셈이다

*차

산업혁명시기 공장 노동자들은 홍차에 열광했습니다. 끓이기 쉬운데다 항균성이 있고, 카페인은 졸음을 쫓아 머리를 맑게 해주었습니다. 영국은 식민지였던 미국에 홍차를 비싼 값에 팔아 또 다른 식민지 개척 비용으로 충당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인들이 네덜란드에서 홍차를 싼 값에 밀수를 했는데 영국이 이를 강력하게 단속하자 미국인들이 보스턴 항구의 영국 상선을 기습해 차를 모두 바다에 버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른바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이다. 이 충돌이 결국 1775년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영국(서양)과 청나라(동양)가 정면으로 맞붙었던 1840년 ‘아편전쟁’도 홍차가 원인이었습니다.

*사탕수수

사탕수수(설탕)은 인도에서 십자군 원정대를 통해 유럽에 전파되었습니다. 인류의 필수품인 당분은 설탕을 통해서 섭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설탕은 사탕수수를 통해 추출하게 됩니다. 특히 홍차의 유행으로 유럽에서의 설탕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목화

인도에서 영국으로 유입된 목화는 유럽에서의 면직산업을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면직산업의 발전을 위해 증기기관을 이용한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이것은 결국 산업혁명이라는 인류사의 대전환기를 촉발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도산 면화가 부족하게 되면서 미국에서의 목화산업이 도입되고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목화산업 발전은 역시나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아프리카노예무역은 더 성행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콩

콩(대두)은 동아시아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대공황을 거치면서 값비싼 옥수수 식용유의 수요가 감소하고 대신 가격이 저렴한 대두식용유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미국은 대두산업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식물과 그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이런 테마의 책을 만났었다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재미없게 무조건 외우기만 하고 시험끝나면 머리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지던 지리, 세계사의 내용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어, 지식이 한뼘정도 자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p284 만약 지구 밖에서 온 생명체가 지구를 관찰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의 눈에 비친 지구의 진정한 지배자는 누구일까?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식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한발 더 나아가 그 외계인은 인류를 '지배자인 식물의 시중을 드는 가엾은 노예'로 자신의 별에 보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이 당신의 통념을 깨고 사고의 틀을 넓히는 유용한 도구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세계사는 반드시 알아야할 필수 지식입니다. 세계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가 아닌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식물들에 대한 지식은 현재의 우리에게 유용한 것들입니다. 세계사에 대해 알고 싶지만 방대한 양에 시작하기가 두려운 사람들, 쉽게 기억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우리 몸이 캡사이신의 독성을 중화해서 배출하려고 다양한 기능을 총동원하면 순간적으로 혈액순환이 빨라지고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갑작스러운 캡사이신의 침투로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판단한 뇌는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을 배출한다. 다시 말해 캡사이신으로 통각자극을 받은 뇌가 몸이 고통을 느끼는 것을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판단해 완화하려고 앤도르핀을 분비하는 것이다.
- P110

당나라 시대의 어느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첫 모금은 목과 입을 넉넉히 적시고, 두 번째 모금은 외로움을 말끔히 녹여주고, 세 번째 모금은 시심을 깨워주고, 네 번째 모금과 다섯 번째 모금은 일상의 불평불만을 깨끗이 씻어내 주고 몸을 정화해준다. 그리고 여섯 번째 모금을 마시면 신선의 경지에서 노닐게 된다."
- P134

문 뒤에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씨앗은 인간에게 식량이 되어준다. 그리고 씨앗이 떨어지지 않는 작물의 밑동에서 씨앗을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심으면 씨앗이 떨어지지 않는 성질을 지닌 밀을 얻는 길이 열린다. 이는 운이 따라준다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농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P207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문명에 힘입어 작물이 발달했을까, 아니면 작물이 문명 발달에 기여했을까?’ 단언할 수는 없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세계 문명의 기원이 작물의 존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 P268

인류에게 식물은 어떤 존재일까? 인간은 언제나 식물을 자기 욕망을 충족하는 도구로 여기며 이용해왔다. 동물처럼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거부하지 못하며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살아야 했다.... 과연 식물은 인류에게 이용당하는 피해자로만 살아왔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번쯤 식물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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