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 미국 중앙은행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망가뜨렸나
크리스토퍼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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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방준비제도는 사실 중앙은행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곳은 반은 민간은행이며 반은 정부기관이다. 이는 미국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미국은 유럽의 왕정에 반발하여 생겨난 국가로 태생자체가 중앙집권을 싫어한다. 그렇기에 미국은 역사상 중앙은행을 두 번 만든 적이 있지만 단기간이었고 조건을 제한하고 기간이 지나자 바로 없앴다. 그래서 지금의 연준은 하나가 아니라 지역 연방준비은행의 네트워크다. 그래서 각 지역엔 지역 연방준비은행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전체적으로 워싱턴의 지휘를 받는다. 물론 이 연방준비은행은 전체를 아우를 필요가 강해지면서 워싱턴의 입김이 강해져왔다. 워싱턴의 연준 이사회에는 7명의 이사가 있다. 이들은 대통령이 지명하며 의회의 인준을 받는 공직자다. 이들은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하기에 사실상 안건설정을 한다. 

 연준은 틍화공급과 관련한 전권을 갖는다. 하지만 이 과정을 민간은행을 거쳐서 한다. 그리고 선출기구가 아니기에 유권자의 영향을 받진 않지만 자신들의 통화 정책에 대해서 정치인들에게 설명할 의무를 갖는다. 

 연준은 단 한 가지 방법으로 돈을 창출한다. 뉴욕 연방은행의 트레이더들은 프라이머리 딜러라고 불리는 약 24곳의 금융기관들과 늘 금융거래를 한다. 프라이머리 딜러 등 은행들은 연준에 계좌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지급준비금 계좌라고 한다. 연준은 이 프라이머리 딜러들이 갖고 있는 채권을 구매하거나 이들에게 채권을 파는 형식으로 이들의 지급준비금 계좌의 통화량을 조절한다. 이 방식으로 통화량이 결정되고 금리가 결정되는 형식이다. 

 1970년대는 미국은 자산과 물가가 모두 오르는 대인플레이션 시대였다. 당시는 연준이 은행들을 철저히 통제하는 시대였다. 은행들은 대출을 해주고 담보를 잡는데. 이 담보가 자산이 된다. 담보 가치가 높으면 은행은 더 높은 대출이 가능했다. 연준은 이를 감시하는 과정에서 담보가치가 은행이 생각하는 것보다 낮다고 생각하면 은행은 반드시 그 차이 만큼 위험을 보충하기 위해 대손충당금을 준비해야만 했다. 

 70년대 미국은 자산이 인플레되면서 은행이 잡고 있던 담보가치도 자연히 커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은행은 더욱 공격적으로 대출을 하게 되었는데 연준은 그럼에도 낮은 금리를 유지하여 사태를 키워나갔다. 금리가 낮으니 가계와 기업을 저축도 하지 않았다. 당시 연준이 이런 인플레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낮춘것은 실업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비재와 자산의 가격을 계속 끌어올렸다. 

 70년대 펜스웨이 은행은 저금리 시대에 지나치게 위험한 사업을 벌였다. 대출을 증권화하였고, 페이퍼 컴퍼니등을 동원해 갖은 금융수법으로 자기 자본금 이상의 대출을 벌였다. 결국 금리가 인상되자 도산의 위험에 처했다 연준은 펜스웨이를 망하게 두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지루하고 안전한 은행으로 생각한 콘티넨탈은행이었다. 여기는 미국에서 가장 큰 상업, 산업대출은행이었다. 콘티넨탈은 은행과도 거래가 많았는데 무려 2300곳이었다. 콘티넨탈은 펜스웨이와 거래가 많았다. 그래서 같이 위험에 처한 것이다. 콘티넨탈의 예금 중 절반 이상이 예금자보호제도의 보호대상이었다. 때문에 펜스웨이 사태로 예금자보호제도는 유례없는 압박을 겪게 되었다. 콘티넨탈마저 버릴 수 없었던 연준은 역사상 처음으로 콘티넨탈에 15억 달러를 구제금융패키지로 제공한다. 이러한 콘티넨탈 구제금융은 어떤 은행이 충분히 크고 다른 은행과 연루되어 위험을 많이 퍼뜨릴수록 연준에 의해 구제될 것이라는 안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된다.

 80년대 폴볼커의 고금리 시대를 지나자 어느 정도 회복된 월가는 80년대 중후반 막대한 대출과 펑펑쓰는 소비가 특징인 골드러시 시대를 경험한다. 이 시기는 기업사냥꾼의 시기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리처드 기어가 바로 이 기업사냥꾼으로 나왔다. 이들은 싼 비용으로 회사를 사들인 뒤 다른 회사와 합병 분할 후 되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미국의 90년대는 더 좋아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에도 고용이 증가하지 않았다. 이는 70년대 부터 이어진 타격으로 80년대의 고금리로 인해 그 때의 빚을 가계와 기업이 아직도 상환중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연준 의장인 그린스펀은 경제가 성장함에도 금리를 낮추어 돈을 쉽게 쓸 수 있는 이지머니 시대의 시작을 열게 된다. 90년대의 연준은 과거와 달리 인플레에서 자산을 제거하고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만 산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전과 달리 소비자 물가만 오르지 않는다면 연준은 얼마든지 통화 공급을 늘리고 금리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90년대 말 그린스펀은 소비자 물가 상승없이도 경제성장을 촉진하여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90년대 내내 이뤄진 낮은 금리로 자산가격이 상당히 올랐다. 99년 S&P 지수가 19.5%상승하였고 나스닥은 무려 80%나 올랐다. 그 결과 2000년의 주식시장 붕괴가 일어난다. 3-11월 사이 280개 인터넷 주식 1조 7600억 달러 가치가 증발한다. 그린스펀은 그간 자산 인플레는 무시해왔고 막상 자산 가격이 붕괴하자 개입해서 시스템을 구제한다.

 이런 버블위기 국면 타개를 위해 연준은 지속적으로 금리를 더 인하하였고 이는 2000년대 미국주택가격상승으로 이어진다. 2003-2007년까지 미국의 주택시장은 무려 38%나 상승한다. 주식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금리를 6년 간 낮게 유지하자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다시 값싼 돈이 풍부히 흐르는 환경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작은 파장이 일어나는데 2007년 8월 프랑스의 거대은행인 BNP파비라바 주택대출에 기반한 몇몇 파생 상품의 정확한 가격에 대해 의문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은행 건정성의 기저인 자산 가치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파장이 흘러 1년 사이 미국 주택가격의 10%가 빠졌고 2009년엔 20%가 하락한다. 그 2년 사이 주택가격 하락으로 미국인은 10조 달러의 부를 상실하게 된다. 

 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연준은 1조 달러를 찍어보낸다. 하지만 이 돈은 대부분 주택가격으로 고생하는 서민이 아니라 도산위험에 처한 은행으로 흘러들어간다. 결국 주택담보부실로 인해 미국에서 무리하게 집을 구매한 수백만 가구가 퇴거당하게 되고 이 고통은 무려 10년 간 이어진다. 2009-2016년까지 미국에서 무려 800만건의 주택 압류가 이뤄진 것이다. 

 이런 일련의 경제 혼란이 수십년 간 이어짐에도 미 정치권과 여론은 연준에 무관심했다. 사실 미국의 대공황을 극복한 것은 연준의 힘이 아니라 미국 정치권이었다. 하지만 연준이 점차 경제의 전권을 시행하면서 선출된 재정당국은 무언가를 할 유인이 작아지게 되었다. 중앙은행은 또한 잘못된 행위에 대해 정치적 책무를 지는 다른 정부기관과는 다르게 소수 경제 엘리트로 구성되었으면서도 전문성 뒤에 숨어 책임은 지지 않는 전능한 기관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양적완화라는 시대에도 2007-2011년 미국에서 나온 30만건의 기사 중 오바마는 8%였던데 반해 당시 연준 의장인 버냉키는 고작 0.13%밖에 관련하지 않았다. 심대한 의사결정을 내림에도 여론의 영향을 지나치게 덜 받는 셈이었다.

 2008 금융위기 국면에서 연준은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양적완화라는 정책을 최초로 도입한다. 이는 과거의 저금리와는 차원이 다른 정책이다. 양적완화의 방법은 이렇다. 연준의 트레이더들은 프라이머리 딜러들의 채권을 매입한다. 과거 이렇게 통화량을 공급해 금리를 낮추었는데 채권의 양이 물리적 한계가 있었기에 더 나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프라이머리 딜러를 활용해 그 한계를 한참 뛰어 넘는다. 먼저 헤지펀드 회사가 미국채를 매입한다. 그리고 프라이머리 딜러로 하여금 그 국채를 연준에 팔게한다. 그리고 헤지펀드는 프라이머리 딜러가 연준에 국채를 판 대금을 다시 빌려 이걸로 또 국채를 산다.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사실상 제한없는 통화공급, 즉 양적완화가 가능해진다. 

 양적완화로 인해 금융계의 규칙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간 연준은 미국채를 매입할 때 단기국채를 주로 매입했었다, 히자만 양적완화로 인해 모든 채권, 즉 10년 만기 장기국채도 매입하게 되었다. 연준이 장기국채를 대량으로 모두 매입하자 장기국채가 희소해져 가격이 상승했고 그로 인해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이는 모든 금융주체들에게 안전하게 어느 정도 수익성을 보장하던 상품이 사라진 것을 의미해다. 금리도 제로 금리이다보니 모든 경제주체들은 수익률을 찾아 헤메게 되었고 이것이 회사채, 주식, 부동산, 미술품, 암호화폐등으로 향하게 되었다.  

 자산 가격은 그 어느 때보다 실물경제와 유리되었고 각종 위험한 금융거래가 생성되었다. 기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부채를 갖는다. 하나는 회사채로 금리와 만기가 정해져있다. 대출과의 차이점은 일반 대출은 이자와 원금을 같이 조금씩 상환해나가는 반면 회사채는 만기일전까지 이자만 지급하다 만기일에 원금을 모두 갚는 형식이라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회사들은 회사채 만기일이 도래하면 원금을 모두 갚기 보다는 다른 회사채를 만들어 원금을 갚고 새로 갈아타는 행위를 주로 한다. 다른 하나는 레버리지 론으로 은행이 해당기업에 맞게 직접적으로 발행한다. 그렇다보니 회사채와는 다르게 표준화가 어렵다. 

 CLO가 바로 이 레버리지 론과 관련한다. MBS는 2008금융위기 당시 주택담보부실과 같이 무너져 내렸지만 CLO는 살아남았다. 그런 잔상때문인지 이 상품은 조금 더 안정적으로 보였다. CLO는 여러 레버리지 론을 합쳐서 증권으로 표준화한 것이다. 하나의 CLO 꾸러미에는 세 등급이 있는데 가장 안전한 트리플 에이, 메자인, 에퀴티 순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위험도가 커져서 이자율은 큰 반면 원금 손실시 상환에 위험이 따른다. 

 제로금리로 수익률 추구에 떠몰린 투자자들이 이 CLO로 몰렸다. 하지만 레버리지 론은 변동금리가 적용되기에 금리 상승시에 차입자가 위험을 떠 맡는다. 하여튼 CLO는 이런 위험에도 2010년 3천억달러에서 2018년 6170억 달러로 규모가 커진다. 좋은 투자처가 씨가 마르면서 레버리지 론을 제공하는 사모펀드 같은 것들이 소위 갑이 위치를 갖게 된다. 이들은 투자자를 보호하는 약정인 코버넌트를 매우 약화시키고 차입자에거 더 큰 유연성을 주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이걸 코버-라이트라고 하는데 이것이 일반화하여 2019년엔 무려 85%까지 상승한다. 

 양적완화시대에는 소위 말하는 자사주 매입도 유행한다. 지금은 안하면 이상할 지경인데 역사상 이걸 하는 편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자사주 매입이 합법화한 것은 1982년의 일이다. 자사주 매입은 주식 수를 줄이므로 기업의 경영실적과는 무관하게 주당 순이익을 높인다. 대신 회사 여유자금을 사용하기에 회사의 부채를 늘린다. 그래서 기업의 잠재적 성장력과 재무건정성을 약화시킨다. 자사주 매입엔 대규모 자금일 필요한데 양적완화시대의 싼 돈에서는 웬만한 기업이 이를 쉽게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헤지펀드들은 어느 덧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실상 은행 역할을 하는 그림자 은행으로 취급되기 까지 한다. 헤지펀드는 위험한 거래인 베이시스 거래를 행한다. 이는 미국채 현물과 선물 사이의 가격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채 현물을 매수 후 선물과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이득을 챙긴다. 하지만 그 차이가 미미하여 수익이 적은데 이를 횟수로 만회한다 현물로 매수한 미국채를 미국 레포시장에 담보로 내놓아 거액을 대출하여 다시 투자한 것이다. 이는 미국 레포시장을 흔드는 행위로 매우 위험했다.

 미 레포시장은 금융기관의 자금 정리를 위한 현금융통시장이다. 매일 거래를 정산하며 은행은 남는 금액을 빼고 모자란 금액을 일시적으로 채워야 했는데 그것을 위함이다. 그래서 이들은 가장 안전한 자산인 미국채를 담보로 돈을 빌렸다. 리스크가 낮은 담보이기에 레포시장의 금리는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헤지펀드들의 위험한 거래로 인해 미 레포시장의 금리가 크게 뛰어오르는 일이 있었고 연준은 이를 막기 위해 레포시장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여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헤지펀드들은 큰 이득을 보게 된다.

 책을 정리하면 연준은 1980년대 후반 또는 1990년대부터 자산 가격을 인플레 요인에서 제거하고 저금리 기조를 유지한다. 이는 자산가격을 부풀렸고 자산가격은 관리를 하지 않다보니 2000년 주식 버블, 2008 금융위기, 2019코로나 위기를 맞게 된다. 이 때마다 연준 일부에서는 금리를 올릴 것을 주문했지만 반대세력이 주류였으며 이런 중요한 의사결정에 미국 정치권이나 여론은 무관심했다. 그 결과 고통스러운 위기를 겪을 때마다 돈을 공급하는 미봉책을 쓰게 된다. 이는 갈수록 그 규모를 크게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다보니 유례없는 통화량을 전세계에 뿌려지게 되었다. 이는 매우 큰 불평등을 야기했고, 상당한 위험을 미래로 전가하게 되었다. 

 이런 거대한 풍선은 아직도 유지 중이다. 미 주식시장 및 코인 등 자산 가격은 유례 없이 최고치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 실물경제는 이렇다하게 좋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언젠간 터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 때 저런 결정을 내린 연준의 관계자들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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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붕괴 -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 공격에서 당신의 돈을 지키는 법
데이비드 A. 스톡맨 지음, 한다해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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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한국은행이 있듯 미국엔 연방준비제도란게 있다. 이들은 사실상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데 사실 중앙은행은 아니다. 아마 한국인이더라도 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연준기사를 더 많이 보았을 것이며, 연준의 정책에 더 관심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만들어 내는 게 기축통화인 달러이기 때문이며 전 세계의 경제를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의 목표는 미국 경제의 안정이다. 그리고 그 지표로 삼는 것은 고용 극대화, 즉 낮은 실업률과 물가 안정이다. 그런데 물가 안정과 실업률은 전통 경제학에서 반비례 관계다. 그래서 이걸 적절히 조절하는게 연준의 역할 인 것이다. 그 방법은 통화 공급을 통한 금리 조절이다. 연준은 실업률이 높다 싶으면 금리를 내려 경기를 활성화해 고용을 촉진한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심상치 않다 싶으면 금리를 올려 물가를 하락 시킨다. 연준은 이런 방식으로 통화를 공급해왔다.

 그런데 현재 이 통화공급이 심상치가 않다. 미 경제의 평균성장률인 연 3%성장에 따라 통화를 정상 공급해왔다면 현재 미국의 통화량은 1조3천억 달러가 적당하다. 하지만 실제는 8조 8천억 달러에 달한다. 이런 과잉통화공급은 저금리를 초래했고 각 경제 주체의 부채를 엄청나게 증가시켰다. 2000년엔 연방정부의 GDP대비 부채가 54.9%였으나 2021년엔 129%로 상승했다. 막대한 통화공급은 자산가치도 폭등시켰다. 미 전체의 소득대비 자산비율은 현재 9.6배다. 1959-1970년은 5.8배였는데 이에 비하면 엄청나게 상승한 셈이다. 다른 수치는 더 엄청나다. 미국의 GDP가 5배 성장할 동안 명목화폐는 33배나 상승했다. 공공민간부채는 1987년 11조 달러였으나 지금은 94조 달러다. 

 이런 팽창은 현재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부의 분배를 가져왔다. 이 유동성 대잔치로 인해 자산가는 돈 방석에 앉게 되었으며 노동자, 저축가, 은퇴자, 소상공인을 비롯한 중산층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되었다. 

 물론 연준은 아무런 근거 없이 돈팽창을 하진 않는다. 언급한 것처럼 이들에겐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통제가 중요하며 이 수치에 따라 경제정책을 행한다. 저자가 책에서 지적하는 문제는 바로 이 수치가 틀렸다는 점이다. 연준은 실업률에 대해선 일반 실업률 수치를 사용한다. 하지만 여기엔 실업자와 시간제 근로자가 포함되지 않는다. 즉, 구직 활동자만 집계되어 허수가 많다. 더 큰 문제는 물가를 산정하는 PCE디플레이터다. 이 수치는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인플레이션을 감지 하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 연준은 통화를 팽창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고 만다.

 PCE디플레이터는 고정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측정하지 않는다. 계속 변화하는데 그렇다보니 누락과 임의 조정이 많다. 이것의 문제는 100%로 본다면 가장 큰 문제는 53%를 차지하는 헤도닉 기법이다. 이는 물건의 품질이 향상되었다면 오른 가격을 상쇄해버리는 놀라운 기법이다. 가령 자동차 가격은 해마다 6%가량 올라왔다. 하지만 연비나 내구성, 탑재되는 소프트웨어나 각종 안전도, 기능이 향상되면 그걸 상쇄하는 것이다. 이는 말이 안된다. 성능이 아무리 우수해져도 소비자는 여전히 자동차 한 대가 필요하다. 성능이 아무리 좋아져도 1대가 10대 역할을 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17%는 주택 임대료인데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에게 자가 임대료를 추측하게 한다. 마지막은 30%정도로 공공재화와 기업 중간재 가격에 대해 노동 통계국이 추측을 한다. 이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연준이 처음부터 돈을 마구 뿌린 것은 아니다. 베트남 전의 여파로 미국은 감히 금본위제를 폐기한다. 그러자 달러 구매력이 극심한 타격을 입는다. 1970년대는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는데 1980년대 연준의장 폴볼커가 강력한 고금리 정책으로 이를 바로잡는다. 문제는 후대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때부터다. 그는 놀랍게도 인플레이션의 개념에서 소비재 및 서비스와 자산을 분리해냈다. 즉, 소비재와 서비스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인플레이션으로 생각하고 이는 통제해야하며, 자산 가격은 얼마든지 상승해도 그다지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연준의 목표 인플레이션 수치는 2-3%정도로 고정된다. 이는 금과옥조처럼 적용되어 이것이 넘지만 않으면 돈을 얼마든지 풀어도 된다는 논리로 고착한다. 

 저자는 통화팽창이 미산업을 붕괴시켰다고 보기도 한다. 미국은 1965-1990년까지 대량의 산업재롤 전 세계에 값싸게 생산하는 국가였다. 국내생산능력과 노동이 국내에 모두 흡수된 시기 였다. 그리고 그 때만 해도 증가하는 미국의 수요가 딱히 없었고 있다 해도 이를 충족시켜줄만한 해외생산기지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통화가 팽창하니 국내에는 수요가 과잉되었다. 그리고 유동성은 해외로 빠르게 이동하여 동아시아와 중국에 새로운 저비용 수출공장을 설립하게 된다. 여기서 생산도니 저비용을 내구재는 오랫동안 통화팽창에도 미국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반면 미국 국내는 임금과 비용, 가격이 상승하여 산업생태계가 붕괴되는 영향을 만들게 된다. 결국 미국산업의 붕괴는 자본주의나, 자유무역, 탐욕이 아니라 연준의 통화 정책 때문이라는게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다.

 중국은 거대 흑자와 밀려드는 달러 홍수에 대비해 1993년 11월 환율을 달러당 8.3위안으로 고정한다. 때문에 중은 낮은 가격에 수출을 계속하게 되었는데 쌓이는 달러를 소화하기 위해 이를 위안화로 바꾸어 지역에 공급한다. 그 결과 중국의 지역은 막대한 부채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가계, 기업, 정부의 총 부재는 1995년 5천억 달러에서 2020년엔 42조 5천억 달러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저자가 보기에 중국은 경제적이지 않고 긍정적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않는 투자의 자금을 더 마련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부채를 지속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성장기계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런 정책으로 인해 산업이 붕괴하고, 꾸준히 적자를 내는 나라가 되고 만다. 인플레이션을 중국으로 수출하고 값싼 내구재를 소비했는데 그래서 물가는 양분된다. 서비스지수는 매년 2.52%상승하지만 내구재지수는 매년 1.83% 감소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감추는 또 다른 요인이 되어 왔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를 맞이 하고 있다. 1995-2019년은 미중전쟁이 본격화 하기 이전으로 저자는 이 시기를 대인플레이션 안식 시대로 명명한다. 미국의 통화가 중국으로 흘러가 그곳을 생산기지화 하고 거기서 들어온 값싼 내구재로 넘치는 통화에도 미국의 인플레가 없던 시기다. 하지만 이것이 종말을 보이고 있다. 수입물가지수가 상승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꽤 성장하여 잉여노동력을 거의 소진했다. 베트남도 이미 처지가 비슷해지고 있으며 중국같은 이렇다할 저임금 국가가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미국은 그 동안 값싼 중국 내구재로 인해 제조업 주급의 상승이 연 2%에 그쳐왔다. 그래서 고임금부분의 임금상승은 정체되어 왔고, 전체 고용에서 저임금 일자리의 비중이 커져왔다. 지금은 막대한 경기 부양비, 학자금 대출 채무자의 모라토리엄등으로 근로자가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 그래서 레저, 관광 등 서비스 업의 임금상승률이 지난 1년간 10%나 상승한다. 값싼 내구재의 압력도 감소하면서 제조업 임금상승률도 2%에서 5.4%로 50%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그동안 숨겨져온 인플레가 드러나고 있고, 그것을 감추는데 일조한 값싼 내구재의 시대도 끝이 나고 있다. 이는 결국 한계에 도달한 연준이 가까운 시일내에 강한 금리인상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수십년간의 머니펌핑으로 자산시장에 낀 거품은 엄청나기만 하다.

 저자는 특히 미국의 테크기업들을 비판한다. 먼저 테슬라다. 테슬라는 잉여현금흐름대비 시가총액이 무려 470배에 달한다. 즉, 기업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잉여현금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뜻이다. 테슬라는 지난 5년간 탄소배출권의 판매로 33억달러의 이득을 얻었다. 미국의 정책으로 인해 내연기관차 업체는 내연기관차의 판매를 위해 탄소배출권을 테슬라에게서 구입했어야만 했다. 그리고 테슬라의 순이익은 7억 21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전치가 판매로 결국 8역 7900만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는 의미다. 이는 차량 한대당 1800달러의 손실을 의미한다. 이런 테슬라의 시총이 엄청나다는건 저자가 보기에 기가막힌 일이다. 테슬라는 주식수도 어마어마한데 무려 9억 9천만 주나 된다. 이런 회사가 글로벌 자동차 완성업체 전체 시가총액의 2배에 달하는 가치를 지녔다는게 넌센스자체다. 

 아마존도 껍데기다. 아마존의 잉여현금흐름은 매출의 1.5%에 불과하다.이는 그들이 자랑하는 전자상거래업이 아닌 거의 AWS즉, 클라우드 사업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는 로컬서버와 pc의 클라우드 전환때문으로 곧 경쟁과 기술창조가 없는 사업이라 포화상태에 이르게 도니다. 아마존의 전자상거래는 생각보다 많은 비용을 초래하는데 직영배송트럭, 물류센터, 배송드론개발비, 물류시스템 인력등에 많은 돈이 든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미 연준은 1990년대 잘못된 인플레이션 수치 측정도구와 실업률 측정 도구를 가지고 진단을 잘못하고 통화팽창 정책을 꾸준히 추구했다. 이는 잘못된 경제진단과 값싼 중국산 내구재등으로 내부 산업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비교적 건실하게 유지해왔다. 하지만 극도로 부푼 자산가격과 대인플레이션안식년의 종식으로 수입물가지수가 치솟고, 내구 서비스 물가도 상승일로로 가고 있다. 연준은 결국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는데 자산가격이 버블수준으로 치솟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테크기업들은 이렇다할 수익이 없는 매우 취약한 상태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비하기 위한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한다. 우선 장기적 금리 상승이 불가피하므로 빚은 더 부담되지 전에 상환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이다. 다음은 저축자들은 장기채권, 정크부채, 중국부실어음, 고평가 주식의 위협에서 자금을 빼내 양도성예금증서, 단기 국채 등을 통해 안정을 도모하고 어느 정도 수익을 노리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횡보, 하락할 주가에 대비해 풋옵션 매수를 지속적으로 시도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은 이런 상황에서 가장 안정적 자산인 금을 보유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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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수용소군도 1 열린책들 세계문학 258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김학수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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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은 광주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어쩌면 도시 하나를 깡그리 날려버리려고 한 건 아닐까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나중에 재계 10위인 국제그룹도 날려버린 적이 있기도 했다. 당시 광주는 큰 도시지만 대한민국 전체로 보면 그리 큰 손실이 아닐 정도의 2% 정도의 인규 규모이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적 숫자는 75만으로 엄청난 숫자이며 그 하나하나의 삶은 너무 소중하다. 하지만 독재자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 정도 쯤은 " 같은 생각을 할 수 도 있다.

 구 소련의 절대적 독재자 스탈린도 더하면 더 했지 비슷했을 것이다. 스탈린이 숙청한 사람의 수는 정확하진 않지만 100만명 정도는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스탈린은 인간 백정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재임 기간 중 2차 대전과 각종 경제적 실패와 숙청과 탄압으로 죽은 사람의 숫자는 2천만에서 4천만으로 추정된다. 이 모든 건 소비에트 이상주의 사회건설이란 모토를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권력 유지에 불과했을 것이다. 

 책 수용소 군도는 혼란기 소련에서 이뤄졌던 마구잡이식 수용소 행에 대한 고발이다. 책에는 NKVD라는 용어가 자주 나오는데 이들은 내무인민위원회로 비밀경찰을 갖고 있었고,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숙청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이 잡혀가는 이유는 너무나도 어이없고 다양하다. 그 시기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부터 시작해서, 1차대전과 2차대전, 여러 소수민족 국가가 소련에 흡수되며 정치적 혼란이 극심한 시기 였다.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하나만 연루되면 바로 체포의 대상이었다. 

 일단 체포되면 모든 게 끝이었다. 체포된 후 신문을 받게 되는데 당연히 온갖 고문이 자행되었다. 신문관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었고, 피해자는 신문에 정해진 답을 해야했다. 답을 하다가 관련된 사람을 말하기라도 하면 그들도 바로 체포대상이 되었다. 증거는 당연히 필요 없었다. 고발과 의심, 그리고 과거의 약간의 경력이면 체포에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혼란기에 지금의 당과 다른 발언, 다른 편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혹은 소수 민족이란 이유로, 혹은 아주 약간이라도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혹은 내가 사는 지역에 체포인원이 할당되었다는 이유로, 혹은 내무위원회 사람에게 밑보였다는 이유로 혹은 일부 시기에 빠진 동료가 고발하기만 해도 체포되었다.

 가장 어이 없었던 것은 전쟁 포로에 대한 대우다. 소련에 전쟁 포로는 없었다. 포로가 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은 무조건 스파이 취급을 받았으며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 심지어 적군에 포위되었다 그것을 죽을힘을 다해 뚫도 돌아온 용사도 제때 퇴각하지 못했고 ,혹은 퇴각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았다. 소련이 이처럼 포로를 취급하지 않아 소련 사람들은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을 때 다른 나라 포로들에 비해 최악의 취급을 받는다.

 수용소에 대한 형기는 대개 10년, 15년, 20년 정도로 정해졌다. 웬만하면 10년형인데, 그것이 가장 추운 시베리아의 수용소에서 온갖 굶주림과 폭행, 노역에 시달리며 보내는 10년이다. 사람들은 형편없는 식사에 굶주렸고, 추위와 폭행에 시달렸다. 그래서 10년형은 어떤 의미에서는 거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지만 독재자 스탈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당시 인구 1억 5천을 자랑하던 인구 대국 소련에서 이 정도의 정치적 숙청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책은 체포의 어이없음과 각종 말도 안되는 법조항, 수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체포되고 이후에 당하는 신문과정과 형편없는 수용소 처우에 대해 말한다. 총 5권인데 아마 2권부터 수용소의 실상이 자세히 나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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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수레바퀴 (한글판 출간 10주년 기념 리커버 에디션) -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강대은 옮김 / 황금부엉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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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로스 퀴블러라는 사람이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호스피스와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의학자였고, 영성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저자는 뇌졸중으로 60대 후반부터 고생을 하였는데 그 와중에 남긴 책이 이것이다. 책의 장은 총 4개로 4마리 동물의 이름으로 그것을 정했다. 생쥐, 곰, 들소, 독수리다. 보통 모든 것의 시작으로 얼음이 녹고 새싹이 자라나며 꽃이 피는 봄과 성숙한 여름, 수확이 있고 슬슬 노년이 보이는 가을, 모든 것이 다시 얼어붙고 사그라지느니 겨울을 인생에 많이 비유한다. 

 하지만 그는 바삐 정신없이 움직이는 청소년기를 생쥐, 태평하고 젊은 시절을 돌아볼 여유를 가진 성년기를 곰, 여유롭게 삶은 바라볼 수 있으나 아직은 힘든 짐을 짊어진 장년기를 들소, 마침내 세상위에 올라 모든 것을 관조할 수 있는 독수리를 노년기로 정했다. 

 엘리자베스는 스위스 사람으로 1928년 생이다. 당시엔 놀랍게도 세 쌍둥이로 태어났고 겨우 900g의 미숙아였다.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금 태어나도 생존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 이 세쌍둥이 자매는 모두 살아남아 장성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부모님은 세 자매에게 항상 같은 옷과 같은 것을 먹이곤 했다. 엘리자베스는 이런 여파로 어릴 때부터 남과 다른 자신의 보이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빠가 하나 있었다. 

 스위스의 대자연을 벗 삼아 자라났으며, 집에는 가축과 식량 작물들이 있었다. 토끼를 기른 기억이 있는데 토끼의 번식력이 엄청나다보니 가족들은 자란 토끼를 도살자에게 보내 고기로 먹곤 했다. 그러다 엘리자베스가 무척이나 마음을 준 블래키라는 토끼를 잡게 된 날을 엘리자베스는 평생 잊지 못한다. 아마 그 때 그가 평생을 고민한 죽음이라는 주제를 심각하게 접하게 된 게 아닐까 한다. 신해철의 노래 날아리 병아리가 떠오른 대목이었다. 어린 엘리자베스는 병약하기도 했는데 한 번은 아버지와 구경을 나갔다가 심취하여 하루 종일 축축한 바닥에 앉아있다 고열에 시달려 학교도 나가지 못할 정도로 몇 달을 고생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는 토끼 블래키 일도 그렇고 완고한 아버지로 인해 어린 시절 그리고 청년기에 고생을 한다. 아버지는 옛날 분들이 그렇듯 세 자매의 직업을 결정했다. 엘리자베스는 죽음에 대한 강렬한 경험으로 의사를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그녀가 자신의 회사에 나와 경리일을 보길 원했다. 장성한 엘리자베스는 화가나 그대로 집을 나가버려 가정부로 일한다. 주인여자는 매우 악독해 엘리자베스를 노예처럼 부려먹고 인간적인 대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을 나와버린 처지였기에 어쩔수 없었고 일 년을 더 버티다 집으로 돌아간다. 

 이 경험으로 아버지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허용해주기 시작한다. 엘리자베스는 간호사나 연구원으로 일하며 의대 입학을 준비한다. 그러다 2차 대전이 터졌다. 스위스는 그 전화를 피한 몇 안되는 나라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그녀는 폴란드를 비롯한 전쟁이 심한 나라에 국제자원봉사단으로 참여하며 참상을 경험한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게 부족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그는 의대 입학을 준비하면서도 틈만 나면 자원봉사에 참여한다. 처음엔 동구권에 가는 것이 자유로워졌으나 철의 장막이 쳐지며 그것이 쉽지 않아졌다. 감시와 간섭이 심해져 자원봉사의 의미도 없었다. 그를 걱정한 아버지가 철의 장막에 가면 넌 내 딸이 아니다란 엄포를 놓치만 다시 한 번 폴란드에 방문했다 아버지와 갈등을 겪는다.

 세월이 지나 엘리자베스는 의대에 입학한다. 거기서 남편이 될 미국 출신 베니를 만난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의외로 완고한 아버지도 베니만큼은 좋아했다. 둘은 졸업 전에 결혼하지만 먼저 결혼한 자매의 남편이 어린 나이에 위암으르 죽는다. 그는 약혼식까진 참석할수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먼저 의대를 졸업하고, 베니가 다음 해 졸업한다. 둘은 미국으로 향한다. 전후는 경제사정이 어려워 부부는 매일 장시간 일하고도 급여가 충분하지 못했다.

 부부는 아이를 원했지만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았고, 유산도 많았다. 4번의 유산을 겪었으나 그래도 부부는 케네스와 바버라 남매를 얻는다. 차차 의사의 처우가 과도하게 좋아지면서 둘은 부유해지고 유명건축가가 지은 집도 사게 된다. 베니는 신경병리학 쪽에 전문가가 되어갔고, 어릴 적부터 죽음에 민감했던 엘리자베스는 의사와 병원이 죽음을 앞둔 환자를 과도하게 비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처사에 분노하여 그 부분에 천착한다. 

 그 와중에 스위스의 아버지가 죽는다. 아버지가 위중하단 소식에 고작 3살인 케네스를 데리고 스위스로 간다. 아버진 팔꿈치 수술이 잘못된 합병증으로 죽음에 이른다. 아버진 온몸에 생긴 고름으로 인해 이런 저런 장치를 하고 병원에 있었는데 계속 집에 가길 원했다. 엘리자베스는 병원을 설득해 무리를 해서 아버지를 집으로 모신다. 엘리자베스는 어릴적 이상적인 죽음을 본 적이 있는데 바로 이웃 과수원의 아저씨의 죽음이었다. 사람이 집에서 죽음을 맞던 시절 그는 집에서 자신과 유대관계를 맺은 이웃 및 친지, 가족들의 품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평생 자신이 일궈온 과수원의 곁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것은 무척 존엄하고 평온하고 고통이 덜한 죽음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도 그렇게 보내고 싶었고 그렇게 된다.

 병원에서 호스피스에 관심을 보이고 노력하던 그는 우연히 영성을 접하게 된다. 한 부부를 만나고 그들이 채널링이란걸 통해 과거의 영을 불러내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엘리자베스는 죽음이 끝이 아니란 생각에 이 부분에 매료된다. 그리고 이 시점에 병원도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과학자이자 의학자이던 매니는 이런 엘리자베스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경력을 쌓던 부부는 바빠서 이미 애정을 잃은지 오래였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매니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매니의 입장이 워낙 단호해 이혼하게 된다.

 그 후의 인생에서 그녀는 영성에 관한 경험, 사후 체험에 대한 경험,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일과 강의에 전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채널링을 벌였던 부부의 행위 중 일부가 사기극이란걸 알게 되었고, 에이즈에 대한 오해가 심하던 시절 에이지에 걸린 어린 환자를 센터를 지어 돌보려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간다. 한 지역에 만든 시설이 반발하는 외부인에 불타 모든 기록과 자료들을 상실하고 재산상 손실도 컸던 일은 그녀에게 큰 타격이었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도 죽는다. 해외 일정에 지쳤던 엘리자베스가 두 자녀와 더불어 어머니와 스위스 여행을 하였는데 건강했던 어머니는 무슨일인지 엘리자베스에게 자신이 건강이 나빠지면 인생을 마감해줄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후 며칠되지 않아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그녀의 어머니는 괜찮은 요양원으로 가게 되지만 4년을 앓다가 죽게된다.

 그리고 60대에 접어든 그녀도 건강이 악화된다. 아무래도 중년 이후, 이혼과 부모님의 죽음, 영성과 관련한 사건들, 돌봄 센터에 대한 지역의 반발, 그리고 자신의 이론을 알리기 위한 강의와 해외 일정 등이 건강에 많은 무리를 끼쳤던 거 같다. 그녀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상태가 안좋아졌다 좋아지기를 반복하고 이 책을 마무리 하고 74세의 나이에 죽는다.

 엘리자베스 로스 퀴블러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어릴 적 경험한 대자연과 죽음, 그리고 가족이 아닐까 한다. 그녀의 인생은 죽음을 막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다가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그것이 결국 끝이 아니고 다른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영성이나 내세를 전혀 믿지 않는 독자의 입장에서 영성에 매몰되는 책의 후반부 부분은 좀 어이없기도 했지만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냥 그럴수 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 하지만 그 외에 그가 보여주는 인생에 대한 생각과 정서, 서사는 그냥 그 자체로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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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여정 - 부와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미래
오데드 갤로어 지음, 장경덕 옮김 / 시공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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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아프리카를 벗어나 수렵채집 경제의 영역을 넓혀왔다. 이 시기는 풍족한 시기로 인간은 위험하긴 했지만 적게 노동하고, 영양상태가 좋았고, 서로 평등했으며, 감염병으로부터도 안전했다. 그러다 정착을 먼저 하게 되었고, 농경이 시작되었다. 농경은 처음 효과가 매우 좋았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첫 농경이 시작된 비옥한 초승달지대는 농경을 하는 경우 같은 넓이의 토양에서의 수렵채집보다 100배의 인구부양효과를 나타냈다. 

 잉여식량은 초과 인구를 만든다. 하지만 초과 인구는 잉여식량을 빠르게 소모하고 곧 기근과 약해진 몸에 의해 질병에 쇠약해져 사망률이 올라간다. 그렇게 인구는 다시 감소한다. 이것을 멜서스 효과라고 하며 이는 농업 이후 산업화 이전까지 인류의 역사를 규정하는 공식이었다. 

 하지만 산업화에 도달하며 이 공식은 깨진다. 인간의 기대수명은 크게 상승했으며 소득도 수십배 높아졌다. 감염병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기술수준은 엄청나게 올라갔다. 저자는 여기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게 인쇄술의 발달과 교육으로 파악하는 것 같다. 여기까지가 1장인데 비교적 평범한 내용서술인 편이며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2장이다. 그리고 2장의 내용은 왜 인류가 같은 종임에도 지역마다 국가마다 산업화에 다다른 속도가 다르게 현재 불평등한가이다.

 

1. 국제무역 때문

 우선 국제무역을 이유로 꼽는다. 19세기부터 본격화한 국제무역은 1800년 겨우 세계 GDP의 2%수준이었다가 1870년 10%, 1900년 17%, 1913년 21%로 올라간다. 서유럽의 성장은 사실상 그들이 식민지의 자원, 원주민, 노예를 부리고 무역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국민소득 가운데 국제무역에서 얻은 것이 178년대 10%에서 20세기 초반엔 51%로 상승할 정도였다. 

 먼저 산업화한 서유럽은 국제무역에서 주로 공산품을 판매했다. 그렇기에 이런 국제무역의 확대는 서유럽에서 숙련노동의 필요를 더욱 부채질 했고 교육이 강화되어 생산에 대한 전문화를 촉진하고 생산성과 기술은 더욱 향상되었다. 반면 식민지 국가들은 주로 원료와 식량을 판매했으며 이는 저숙련 노동을 요구한다. 따라서 교육이 미 발전하게 되고 저숙련 노동이 많이 필요하니 수입이 인구증가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선진국과 후진국의 기술과 교육격차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1인당 산업생산지수는 서유럽의 경우 19세기 내내 상승한 반면 후진국은 19세기에 오히려 내려가다가 20세기 후반이나 되어서야 상승하기 시작한다. 


2. 제도 때문

 지배층이 권력을 독점하고 불평등을 영속화하려 하면 착취적 제도 이며 정치권력을 분산하고 재산권을 보호하여 민간기업과 사회적 이동성을 장려하면 포용적 제도다. 영국은 1689년 명예혁명으로 입헌군주국이 된다. 의회는 부상하는 상인계급과 광범위한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사유재산권을 보호하고 민간기업을 장려하며 기회의 평등과 경제성장을 촉진한다. 독점폐지에도 주력하여 대서양무역의 광범위한 이득이 상인계급에 고루 나뉘어져 산업자본이 성장하였다. 그리고 주식거래, 중앙은행 등 네덜란드의 선진 금융기법도 도입한다.  

 이는 기업가의 신용을 올렸고, 정부 역시 절제 있는 행동으로 조세와 지출의 균형을 이룬다. 의회가 강력한 국채발행 감독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한 행동으로 보이나 다른 절대왕정국가의 왕들의 전비나, 사치스러운 예산 사용과는 상당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 결과 영국은 국제 신용시장에서 신용도가 높아 낮음 금리로 차입을 할 수 있었다. 

 흑사병 이후 영국은 인구가 격감하여 봉건제에 치명타를 입는다. 그래서 포용성을 늘리고 착취를 줄이고 임금을 늘리는 등 정치체제를 바꾼다. 하지만 동유럽은 흑사병 이후 오히려 착취가 강화된다. 이는 도시화율이 낮아 농노가 선택권이 없었고, 봉건질서가 더욱 강했고, 서유럽으로 농산물을 수출하는 경제때문이었다. 

 그리고 영국은 유럽 대륙 국가에 비해 길드가 강하지 않았다. 이는 과거 단점이었지만 신기술 도입에 유리했다. 실제 유럽의 한 길드는 인쇄기의 도입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100년 가까이 막아내었다. 영국은 이런 저항이 적었기에 산업가가 새로운 기술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채택할 수 있었다.

 식민지였던 국가들은 대개 지배국의 법 체계를 상속한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은 영국식 보통법 체계를 따랐다. 반면 스페인,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 아릇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등은 다양한 형태의 시민법을 따랐다. 그리고 보통법이 투자자와 재산권을 더 강력히 보호한다. 


3. 농경과 토지소유 때문

 지금이야 북미가 황금지대이고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지만 17-18세기만 해도 농업생산성이 크게 떨어진 그냥 얼어붙은 땅에 불과했다. 각광받던 지역은 중미의 플랜테이션 지대였다. 중미와 열대는 플랜테이션 농업에 적합했다. 그 결과 중미와 열대 지역은 토지가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이는 커다란 부의 불평등을 낳았고 노예제가 고착화했고 성장을 방해했다. 사람들이 농토에 붙잡혀 도시화가 낮았고, 교육 수준도 높아질 이유가 없었다.

 반면 북미 지역은 농경과 축산에 적합했다. 연결된 소규모 가족 농장이 적합했고 넓은 토지를 평등하게 많은 사람이 나눠가졌다. 부의 분배가 평등했고 장기적 번영에 도움이 되는 민주주의와 법압의 평등, 재산권등이 보장되었다. 향후 도시화율도 높아져, 교육수준도 높아졌다. 

 산업화 시기 산업 자본 세력은 공장 노동이 숙련 노동자를 요구함에 따라 공교육을 국가에 요구하게 된다. 노동자의 교육수준이 높을 수록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주 세력은 산업화 시기 공교육에 반대한다. 그들의 농업노동에 교육에 굳이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많이 아는 것은 반란의 불씨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4. 지리적 요인

 이는 총균쇠와 마빈 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른다. 중국과 유럽의 지리적 비교다. 유럽은 중국과 달리 오랜 기간 하나로 통합되지 않고 분열되었다. 물론 일시적 통일은 있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반면 중국은 거의 2천년 이상 광대한 지역이 하나의 체제로 통합되었고 유지되었다. 

 우선 수력가설 때문이다. 중국은 동아시아 몬순지역으로 벼를 재배하며 여기엔 많은 집중된 노동력과 관개가 필요하다. 때문에 환경자체가 강력한 중앙집권을 요구한다. 반면 서유럽의 밀은 그런 체제가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개인의 노동으로 재배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중국은 이렇다할 지리적 장벽이 없는 반면 유럽은 피레네, 알프스 산맥, 해협, 반도 등 지리적 격리가 많아 하나로 통합되기 어려웠다. 또한 중국의 해안선은 단조로운 반면 유럽의 해안선은 복잡하고 만이 많으며 반도가 많다. 이는 방어에 유리하고 전시에도 해안이 열려 보급이 용이하다. 동아시아에 이런 해안 지형은 한반도가 유일한데 그래서 한국이 독자적 문명을 유지하는지도 모른다.

 

5. 미래지향적 사고

 미래지향적 사고는 산업발전과 성장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사고는 지역별 국가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놀랍게도 해당 지역의 농업과 관련이 깊다. 파종에 대한 잠재 산출률이 큰 경우 해당 지역에서는 농산물을 바로 소비하기 돕다는 미래를 위해 종자로 저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지역일수록 미래지향적 사고가 크다. 반대의 경우는 바로 소비하는 것이 이득이기에 미래지향적 사고가 적다. 


6. 성평등적 문화

 이것도 놀랍게도 농경과 관련한다. 농사를 짓는 도구는 크게 쟁기와 괭이다. 이는 토질과 작물에 따라 달라지는데 쟁기가 훨씬 더 많은 힘을 요구한다. 그래서 쟁기는 가축이 끌며 가축이 끄는 경우에도 이를 통제할 강한 상체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쟁기를 주로 사용하는 지역의 경우 남성이 농사일을 전념하게 되고 상체힘이 부족한 여자는 거의 철저히 가사에 종사한다. 반면 괭이를 사용하는 지역은 가사를 여성이 주로 전담하지만 농사에도 상당부분 관여를 한다. 

 이런 부분이 평등적 문화에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친다. 쟁기 지역일수록 남여 분업이 확실한 성차별적이며, 괭이 지역일수록 성평등적이다. 


7. 인구 다양성

 인구 다양성은 양면적이다. 적절하면 사회의 다양성으로 기회를 확산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며 다양한 문제에 저항력을 높인다. 반면 어느 수준은 넘어서면 사회가 쉽게 통합되지 않아 갈등을 낳고 분열하여 오히려 퇴보한다. 

 이는 과거나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과거나 근세 이전에는 동아시아 정도의 인구 다양성 수준이 사회발전에 최적이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더 많은 다양성이 요구되었고 식민지 개척 및 다양한 교류로 사회내 다양성이 확보된 유럽 지역이 다양성 부분에서 최적인 지역으로 부상하였다.

 오늘날에는 산업 선진 지역은 과거 식민지 경험과 높은 수준으로 인해 각지에서 밀려드는 인재로 상당한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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