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 개정보급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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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 중 이런 저런 학살로 죽임을 당한 유럽의 유대인 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600만 정도로 추산된다. 지금 유대인이 모여 건국한 이스라엘 인구가 900만 정도란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다. 책 '죽음의 수용소'는 한 유대인이 수용소에 직접 수용되어 겪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좀 더 수용소의 이야기를 상세히 기술하여, 실상을 잘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저자는 이미 그런 책은 충분히 많아 자신은 다른 관점에서 책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은 1부는 수용소에서 겪은 단상이고 2부는 로고 테라피라는 저자가 심리치료를 위해 적용한 방법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2부는 그저 그랬고, 1부의 내용이 좀 더 다가왔다.

 저자는 수용소로 향하며, 기차에 다른 유대인들과 수용된다. 너무나도 좁은 곳에 수용되어 기차로 며칠을 가며 그들 모두는 제발 아우슈비치만큼은 피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들은 아우슈비츠에 수용된다. 처음 며칠은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좁은 공간에서 말도 안되게 적은 음식으로 연명한다. 아마 그들 대다수를 바로 죽일 예정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수용된 이들은 차례로 양 줄로 선별된다. 선별 당시 저자는 아무 것도 몰랐지만 한 쪽은 죽음의 줄, 다른 한 쪽은 연명의 줄이었다. 노역을 견딜만큼 건장하고 건강해 보이는게 생존의 조건이었다. 실제 건강해보이는 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한 수용소 동료는 저자에게 유리 조각으로 할 지언정 매일 면도를 하고, 얼굴을 자주 문질러 붉게 보이게 하라고 했다. 그래야 건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수용소엔 카포란 이들이 있었다. 나치와 수용자의 중간자인데 같은 유대인 수용자이면서도 나치에 협력해 중간 관리자 같은 역할을 했다. 다만 이들은 어쩔 땐 나치보다도 더욱 악랄했다는 점이다. 물론 간혹 착한이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나치가 원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기에 악랄한 자로 바로 교체되었다. 그래서 카포는 더욱 악랄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조금 더 나은 연명가능성과 식량, 물자, 노역의 면제 등을 얻었고 이를 위해 동포를 괴롭힌다.

 저자는 직업이 그래도 의사였기에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게 아닌가 한다. 아무래도 의사이니 여러 가지 할일이 있었고 나치 군인과도 약간은 교류할 수 있었다. 물론 그래도 언제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좀 더 죽은 사람들보다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수용소에서 늘 아내를 그리워하며 애틋한 마음을 키워나갔는데 그의 아내는 책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수용소에 수감되며 거의 바로 처분된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알 수 없었기에 저자는 죽을 위기에서 동료에게 아내에게 남기는 마음을 담은 유언을 외우게 하기도 한다. 수용소에는 전기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어 바깥을 볼 수 있다. 이건 좋으면서도 좋지 않다. 차라리 높은 담장이면 바깥은 보이지 않아 희망도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담장이 없었기에 아름다운 바깥을 볼 수 있기도 했다. 나는 갇혀서 언제 나갈지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봄이면 만발한 꽃과 자연은 묘한 감정을 낳게 했다.

 사람들은 전기 철망에만 기대면 고압전류로 언제든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툭하면 가해지는 강한 고통속에 묘하게도 자살 시도 따윈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이런 고통 속에서도 언젠간 나갈 수 있다라는 강한 희망을 품기도 한다. 특히나 크리스마스 즈음이나 연말이면 묘하게도 그런 막연한 분위기가 강했다. 그래서인지 그 시기가 끝나면 유독 사망자가 많이 나왔다. 마음대로 최후의 희망을 품고 버티던 이들이 그것이 오지 않자 희망이 사라져 숨도 같이 끊어진 것이다.  

 책을 읽으며 군대 생각이 많이 났다. 아무래도 내가 가진 경험과 저자의 경험 중 가장 유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자는 비교가 되진 않는다. 한국 군대는 정해진 기한이 있고, 자주는 아니지만 휴가란 것도 있으며, 어느 정도의 위생과 식량도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점도 많다. 이곳에 온 것에 대한 비자발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유의 강한 박탈, 비인간적 취급, 상급자 등에 의한 괴롭힘이다. 군생활을 하며 부대 내에서 쇼생크 탈출을 본 적이 있다. 그걸 보면서 다들 죄수와 비슷한 처지에 상당한 공감을 하며 봤는데 한 병사가 우리랑 진짜 비슷하다고 신세 한탄을 했다. 그걸 들을 한 간부(아마 부사관이었던 것 같다)가 강하게 화를 냈다. 니네가 죄수냐고. 근데 죄수 같았다. 그게 사실이었다. 그러니 전역이란 걸 해서도 그리 오래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꿈을 꾸는게 아닐까. 아직 집에 못갔다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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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과학 - 우리가 세상을 읽을 때 필요한 21가지
마커스 초운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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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가지 과학적 주제를 책에 담았다. 책을 얇기에 간단히 다루지만 내용은 깊고 생각보다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전혀 모르는 부분도 있었고, 모르는 부분에 대한 보충도 가능했다. 

 중력은 근본적으로 힘 중에 가장 약하다. 이는 물리학은 수수께끼 중 하나다. 하지만 무척 강력하나 대개 상쇄되는 전자기력과는 다르게 중력은 인력으로 항상 있으며 상쇄되지 않는다. 다만 무척 작을 뿐이다. 중력은 전자기력보다 무려 10의 40승배 약하다. 즉, 물체게 10의 40승배 이상의 원자가 있어야 양자가 비슷해진다는 이야기다. 중력이 지배적이 되면 해당 물체는 가장 조밀하게 되어 구의 모양을 띠게 된다. 그래서 10의 40승배 정도 원자가 있는 돌의 지름은 대략 600km정도이며 우주에서 이정도 크기가 되어야 소행성이 구의 형태를 띤다. 그 이하는 제각각의 형태다. 

 케플러의 행성운동 제2법칙은 행성이 태양에 가까우면 더 빠르게 움직이고 멀어지면 더 느리게 우움직인다. 이런 행성-태양간 가상의 선을 그리면 그 선이 일정 기간 지나가는 면적이 일정하다. 가상의 선이 지나간 면적은 행성의 속도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를 곱한 양에 비례하는데 이 면적이 각운동량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태양을 도는 각 행성의 궤도는 타원이 된다. 물체의 궤도는 원뿔의 3가지 단면에 해당한다. 원뿔의 단면은 자라는 방법에 따라 포물선, 타원, 쌍곡선의 형태다. 이 중 포물선은 묶임과 자유의 중간상태, 타원은 궤도에 행성이 갇힌 상태, 쌍곡선은 탈출 상태다. 

 달도 지구를 타원 궤도로 공전하다보니 조석현상이 발생한다. 달이 지구의 한 면과 가까워지면 달의 인력으로 인해 물이 위로 올라간다. 그래서 그 부분은 밀물이 된다. 바로 반대쪽도 밀물이다. 달의 인력으로 땅이 아래로 내려가며 밀물이 된다. 다른 두 부분은 해당시간 썰물이 되며, 그래서 하루 두번 조석이 발생한다. 우물은 반대로 움직인다. 밀물 때 땅이 위로 올라가니 흙이 우물을 빨아들여 수위가 내려간다. 하지만 썰물 때는 땅이 아래로 내려가며 흙이 물을 짜내기에 우물의 수위가 올라간다.  

 번개가 치는 것은 전하 불균형 때문이다. 그리고 발전소에서는 전하 불균형을 만들어 전하의 흐름인 전류를 만들어낸다. 자기 현상은 물질 내부에서 흐르는 전류 때문에 생겨난다. 발전소는 도체를 통과하는 자기장을 변화시켜 전기를 생산하는데 전자기 유도라고 한다. 

 직류는 전기장의 전자를 아래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약해지는 결함이 있다. 그래서 직류로 전기를 공급하게 되면 전기가 가정으로 멀리 이동하는 과정에서 약해지기에 가정 인근마다 발전소가 있어야만 한다. 이를 개선한 것이 교류다. 교류는 발전소에서 강력한 전압의 전기를 보낸다. 그러면 가정까지 멀리 떨어 이동해도 충분한 강도의 전류가 유지된다. 다만 이 경우 가정에서 쓰기엔 전기가 너무 강한게 문제가 되는데 그래서 변전소가 필요하다. 변전소에서는 전선을 많이 감은 코일과 적게 감은 코일 사이에서 전기장의 변화를 수십차례 변화하는 방법으로 전압을 내린다. 

 태양의 중심부 온도는 1500만도나 된다. 무척 높지만 사실 이는 핵반응이 일어나기엔 1000배나 부족한 온도다. 하지만 태양에선 엄연히 핵반응이 일어나는데 이는 양자터널링 효과로 인해 양성자들이 서로 가까이 붙은 상태에서 급격히 이동해 융합하기 때문이다. 태양에는 10의 27승 톤의 수소와 헬륨이 있다. 수소는 1개의 양성자만 있지만 헬륨은 2개의 양성자와 2개의 중성자가 원자핵에 있다. 두 개의 수소 양성자가 달라붙으면 핵은 불안하다. 그래서 둘 중 하나가 중성자가 되어야만 하는데 이는 100억번의 한 번 정도만 발생하는 정도다. 이처럼 태양의 핵반응은 간신히 일어나는 것이고 무척 효율이 떨어지는 과정이다.

 태양은 온도를 적절히 유지한다. 너무 많은 열을 생성하면 태양을 구성하는 기체가 팽창하며 온도가 내려가고 핵반응 속도가 떨어진다. 그리고 열이 너무 적게 생성되면 기체가 수축해 온도가 올라가고 핵반응의 속도가 빨리지는 매커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태양의 외부와 내부의 회전속도가 다르다. 그리고 위도에 따라서도 회전속도가 다르다. 그래서 자기장이 연속적으로 비틀리고 튀틀려 에너지가 저장된다. 이런 태양자기장의 고리가 끊어지면 흑점이 나타난다. 태양의 한점에서 나온 자기장의 꼬리는 다른 곳을 통해서 들어 가기에 흑점은 언제나 쌍으로 발생한다. 엄청난 양의 태양 플라스마와 자기장이 우주 공간으로 방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코로나 질량 분출이라고 한다. 지구가 직격되면 완전히 익어버릴 정도이며 빗나가도 강한 자기장을 발생시켜 지구상의 모든 전자장비가 파괴된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6000도에 해당하는 광자를 받는다. 하지만 지구는 300도의 광자를 방출한다.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의 양은 같아야 한다. 때문에 이 경우 지구는 20배가 더 많은 광자를 방출해야 한다. 이는 광자 1개가 20개로 늘어나는 경우이므로 무질서가 크게 증가하는 경우다. 즉, 고품질의 태양광선을 저품질의 다량의 적외선으로 방출한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에는 생명과 질서라는 엔트로피를 크게 줄이는 것이 존재함에도 우주 전체적으로는 엔트로피를 크게 늘리기에 열역 2법칙을 어기지 않는다. 

 언급한 각운동량의 법칙은 고립된 계에서 각 운동량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운동량은 회전속도는 아니며 회전축에서의 평균거리다. 그래서 스케이터가 회전할 때 팔을 회전축인 몸으로 오므리면 속도가 자연히 증가한다. 중첩된 전자 두 개는 스핀이라는 양자적 성질을 갖는다. 전자를 그래서 시계방향이나 반시계방향이다. 중첩되면 두 전자는 서로 반대의 스핀을 갖는데 그래서 각운동량이 0이 되어 법칙을 만족시킨다. 놀라게도 중첩된 두 전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졌어도 각 운동량의 법칙으로 인해 하나의 스핀이 결정되면 반대쪽도 결정된다. 이는 정보가 빛의 속도를 넘어서서 전해질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반하게 된다. 

 인간의 뇌는 1000억개의 뉴런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하나의 뉴런은 1만개의 수상돌기로 1만개의 다른 뉴런과 상호작용하기에 총 연결 갯수는 무려 1조개가 된다. 하나의 축삭돌기는 수상돌기와 직접 연결하지 않는다. 시냅스라는 연결이 존재한다. 시냅스에서 축삭돌기의 전기신호가 화학적 전달자로 변화한다. 화학적 전달자를 이용한 전기 신호의 중개로 뉴런으로부터 거의 무한한 반응을 이끌어내는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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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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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1994년 일본이다. 일본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은 대개 시점이 과거다. 이 점은 좀 독특하다. 하여튼 일본에서도 기차가 지상으로 다니다 보면 사람과의 접점인 건널목이 있게 된다. 이런 곳에선 불의의 사고가 가끔 발생할 수 있고, 이런 점은 영화에서도 자주 소재로 사용된다. 그중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에서 최근 1년 기관사가 사람을 발견하고 급정거 하는 사태가 자주 벌어진다. 하지만 이미 정지가 늦어 사람을 쳤다고 생각한 기관사와는 다르게 희생자가 발견된 사례는 없었다. 그리고 한 여성 월간지에 바로 이 건널목에서 유령을 보았다는 목격담과 더불어 심지어 사진촬영까지 된 증거물이 제보로 등장한다.

 마쓰다는 30년 사회부 일간 신문의 베테랑 기자다. 하지만 아내와 사별한 후 실의에 빠져 신문사도 그만두고 지인의 도움으로 현재 여성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여성지와 좀처럼 맞지 않았는데 객관적 어투의 신문과 여성을 끌어당겨야 하는 여성지의 문체는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편집장 이자와는 마쓰다를 여성지로 끌어온 인물로 그에게 이 시모키타자와 3호 건널목 유령사건을 맡긴다.

 마쓰다는 기가 찼다. 심령이란걸 누가 믿겠는가. 그리고 그는 한 때나마 사회부 기자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지라 취재에 임하게 된 그에게 강한 사건의 냄새가 풍긴다. 건널목은 유령이라는 원혼이 서릴 만큼의 사건이 최근에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일년 전 그 건널목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었다. 여성인 신원불상이었지만 범인이 워낙 확실했다. 범인은 야쿠자였는데 거의 반쯤 미친 상태가 되어 수감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쓰다에겐 밤 1시 3분이면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말이 없었고 귀신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는 전화였다. 마쓰다는 신원불상의 희생자를 뒷 조사 한다. 그녀는 유흥업계의 여자였고 상당히 어두운 분위기였는지 동료들이 모두 싫어했다. 그리고 일한 업소마다 이름이 달랐다. 에리라는 유흥업계의 종사자가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녀를 구슬려 취재하는 과정에서 마쓰다는 이 살인 사건이 한 정치인과 관련이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그는 오랜 다선의원이었고 최근 건설업계로부터의 청탁을 받은 비리로 인해 매우 간단한 수군의 벌금만 받은 상태였다. 마쓰다는 그 건설업계가 사실은 폭력단의 소유이며, 이 폭력단은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의원인 노구치 스스무에게 뇌물을 바쳤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뇌물은 돈이 아닌 바로 여자였고, 그 여성이 바로 희생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탈이 나자 폭력단의 노구치는 여성을 살해한다. 그래서 여성을 살해한게 야쿠자말단 조직원이었고, 경찰이나 검찰이 뒤를 밟지 못하도록 안 그래도 정보가 없는 그녀의 일말의 정보마저도 모두 지워버린 것이었다. 

 소설의 결말은 다소 권선징악이지만 다소 의외의 방향으로 끌려간다. 소설 도입부에선 유령이 단순한 속임수이거나 희생자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한 누군가의 주목을 이끌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유령이란 장치를 진짜로 등장시켰고, 끝까지 결말에서 진짜로 작용한다. 이 점이 독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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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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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사형제도가 존재하지만 김대중 정권 이후로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UN은 한국을 사형제도가 사실상 폐지된 국가로 분류한다. 20년 이상을 실행하고 있지 있다면 형법 상 사형제도를 없애도 될 것 같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국민감정이 엄연히 사형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형수와 무기수는 엄연히 다르다. 무기수는 장기간 수형생활을 하고 나면 가석방의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사형수는 잘해봐야 무기수 정도의 지위로 내려오기에 평생 감옥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범죄자를 감옥 즉, 교도소에 보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가 한 행위에 대한 응보적 조치이고, 다른 하나는 그 대부분이 결국 사회로 돌아올 것이기에 다시는 일탈 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교화를 하는 것이다. 모든 국가의 교도소는 이 두 가지 기능을 실행하지만 무게 중심을 어디냐 두느냐는 국가마다 천차만별이다. 미국은 철처히 응보적 조치에 초점을 둔다. 그 증거는 재범률과 교도소에서 수형자의 생활로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재범률은 매우 높고, 교도소 안에서의 범죄도 많다. 거기에 그들은 상당한 노역을 한다.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웬만한 국가들이 보기엔 이해가 안될 정도로 교도소 내에서 수형자들의 자유도가 높으며 시설도 훌륭하다. 그리고 재범률도 낮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응보적 조치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재범률은 매년 변하지만 25%정도다. 즉, 범죄자 4명 중 1명은 다시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교도소 시설도 매우 좋지 않다. 매우 비좁은 공간에 거의 군내 내무반 수준으로 죄수를 수용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각자의 사생활은 거의 없다. 여기에 냉방도 해주지 않는다. 가끔 교도소에 에어컨을 설치해야한다는 사회적 의견이 나오나 강력한 비토여론에 묻히기 일쑤다. 오죽하면 고 신영복 교수가 독재정권에 의해 억울한 옥살이를 할 때, 겨울이 좋다고 하셨을까. 그는 비좁고 냉난방이 잘 안되는 교도소에서 겨울은 서로의 온기로 버틸 수 있어서 좋았고, 여름은 그 반대로 싫었다고 한다. 사형제도가 엄연히 남아 있는 것도 응보적 조치에 초점을 두는 한 증거다.

 사형은 가장 강력한 응보적 조치이나 문제점이 많다. 일단 사람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이기에 반인권적 조치가 된다. 사람 죽이는 놈을 죽이는게 뭐가 문제냐 싶지만 이미 문명 국가의 형법은 함무라비 식으로 같은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형은 그것을 행하는 교도관에게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 누군가는 실행하는 버튼이라는 것을 눌러야 하고, 그것을 한 사람은 여러 보호장치로 자기가 한 것이 분명치 않더라도 사람을 죽였다는 외상에 시달리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사형은 정치사회적 문제도 많다. 한국근현대사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사형은 독재자가 정적을 제거하기 매우 좋은 수단으로 쉽게 악용된다. 조봉암은 실제로 사형당했고, 김대중도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그리고 사형은 돌이킬 수 없다. 사람이 구축한 사법시스템은 당연히 허점과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사람을 사형시켜버리면 이후 반전의 기회란게 아예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기수로 살려 두었다면 억울한 이를 구제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이런 경우는 적지 않게 발생한다. 

 책 '13계단'은 이런 사형제도에 대해 고민할 만한 여러 가지를 던져준다. 책은 준이치란 사형수가 출소하며 일어난다. 그는 한 사내를 술집에서 시비끝에 죽인다. 시비는 상대방이 걸었고, 준이치는 다투다 밀쳐진 상대방이 넘어지며 후두부를 물체에 강타당해 죽게된다. 상당히 억울한 상황이었지만 살인은 살인이었다. 상해치사로 그는 2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가석방으로 출소하게 된다.

 돌아오니 집은 엉망이었다. 가족은 범죄자를 배출한 가족으로 낙인찍혀 사회적 지탄을 받았고 그 결과 동생은 고교를 자퇴했다. 부모는 희생자 유족은 7억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급하느라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준이치는 망연자실했는데 그런 그에게 교도관 곤노가 다가온다. 곤노는 준이치에게 제안을 한다. 한 사형수가 있는데 그의 범죄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조사해볼 만한 사안이었다. 그리고 곤노는 거액의 수당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이 준이치에게 매우 크게 다가왔다. 총 1억 5천 정도의 보수금이었던 것이고 이는 부모님의 무거운 짐을 상당부분 덜어낼 수 있을만한 금액이었다

 곤노와 준이치는 사건을 파헤쳐 나간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고 해당사형수는 살해동기도 마땅한 증거도 없음을 알 게된다. 사건은 여러 반전이 있는데 추리 소설치곤 많이 재밌진 않았다. 이야기의 설계는매우 훌륭한데 좀 쫄깃한 맛이 조금 부족했다. 오히려 수형생활과, 교화, 사형제도에 대한 고민이 좀더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유명한 일본 작가 가즈아키의 데뷔작으로 읽어볼만 하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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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3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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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년 정도 전, 전자책을 한창 구매할 무렵,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책을 본 적 있다. 예쁜 분홍색의 표지와는 달리 르포 형식으로 작가가 직접 축산업계에 취직해 소위 고기로 태어난 한국 농장의 소, 돼지, 닭, 개들의 실태를 드러낸 책이었다. 참 좋은 책이었다고 기억한다. 무척 충격적이었고 그 일로 인해 동물의 실태와 권리, 더 얽혀 지구온난화에 대한 책을 적지 않게 보게 되었다.

 그리고 모처럼 그 작가의 후속작을 만났다. 이번 책은 '동사의 멸종'이다. 책에서 말하는 동사는 네 가지로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 이다. 우리는 4차산업혁명시대의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해 엄청난 자동화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자동화는 인간에게 많은 편의성과 생산성의 향상을 줄 것이 분명해 보이나 그만큼 인간이 하던 많은 일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자는 첨단기술은 마치 사이드미러 같다고 말한다. 즉, 생각보다 가까이 와있는데 그걸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체될 만한 대표적 일로 저자는 위의 4가지 동사에 해당하는 일을 골랐다. 선정 기준은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것, 그러면서도 우리 일상에서 누구나 자주하고 흔히 접하는 밀접한 것으로 골라냈다. 그래야 더 피부에 잘 와 닿을 것이고 아무래도 저자가 취업하기도 보다 손쉬웠을 것이다. 


1. 전화받다.

 전화받다는 콜센터 상담원을 말한다. 콜센터 상담원은 상당히 많다. 웬만한 마트, 제조업체, 기업들은 상담서비스센터를 운영한다. 저자가 경험한 콜센터 업계는 개인정보 유출에 상당히 민감했다. 그래서 상담원은 출근해서 자기 스마트폰 사용이 금지되고 업무 외에 개인적 메모는 금지되며, 심지어 동료와의 업무이야기도 안된다. 콜센터의 취직한 수습기간의 마지막은 업무 중 알게된 사실에 대해서 공개를 하지 않겠다는 여러 장의 서약서 서명으로 마무리된다. 

 콜센터엔 몇 가지 금기어가 있다. 우선 '보상'이다. 그리고 보상 다음으로 금기시 되는 말은 언제까지 뭘, 어떻게 하겠다는 확답이다. 그리고 마 고객과 절대로 절대로 싸우지 않는 것이며 마지막은 절대로 전화를 먼저 끊지 않는 것이다. 다만 과거보다는 조금 나아져서 고객이 욕설이나 폭언 등을 하는 경우에는 두 차례에 걸쳐 경고 후 상담사가 먼저 통화를 종료할 수 있고, 성희롱의 경우는 1회 경고 후 끊을 수 있다. 성희롱은 발생하면 즉시 관리자에 보고 후 겨우 30분 정도 휴식이 가능하다. 이런 경우에 회사는 상담사에게 고객에 사과할 것을 요구하지 못한다. 여러 사람이 사단이 난 후에야 간신히 생긴 프로토콜 같다.

 콜센터 상담사의 일거수일투족은 철저히 모니터링된다. 그들의 행동은 4가지다. 소프트폰이란걸 업무 중 사용하는데 이는 컴퓨터와 연결되어 버튼이 통화, 대기, 이석, 작업으로 구성된다. 통화는 고객과 통화하는 것이고, 대기는 통화대기 중, 이석은 화장실 등의 이유로 자리를 비우는 경우, 작업은 상담이력서를 쓰거나 작업 처리를 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전화상담사의 하루 업무요구량은 65콜 정도다. 초보때는 조금 봐주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올라도 이것을 소화하지 못하면 관리자의 갈굼이 시전된다. 콜센터는 기본적으로 혼자하는 일이기에 직원문화도 없고 상호간 교류도 거의 없다. 팀이 있긴 하지만 자리가 한 달에 한 번 바뀌며 고된 감정노동이기에 퇴사가 잦아 회사는 한 달에 한번은 새직원을 선발한다. 

 콜센터에는 한달의 한명 법칙이 있다. 한달에 한 번은 상담사가 진상고객을 상대하다 울면서 뛰쳐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그들은 다신 여기로 돌아오지 않는다. 또 다른 법칙은 마지막 콜의 저주다. 가장 고약한 전화는 특이하게도 퇴근 직전에 온다는 것이다. 누구나 퇴근이 임박해서 일하고 싶지 않기에 콜센터에서는 마지막 콜을 피하기 위해 작업버튼으로 적당히 버티다 대기로 넘어가 통화를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관리자에게 모니터 되고 누구나 쓸수 있는 방법이기에 수 싸움이 상당하다. 

 콜센터는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실시간으로 관리자에 의해 콜에 대응한 정도가 나타나기에 직원의 자율권의 거의 없다. 특히 한창 바쁠때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이석 버튼을 누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콜센터에서 방광염이나 치질은 흔한 질병이다. 

 고객은 콜센터에 전화하며 그들이 거의 모든 것을 알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콜센터 직원에겐 웬만한 어떠한 정보도 없다. 배송에 관련 된 것이면 그들 역시 회사가 달라 배송사에 알아봐야 하고, 재고에 관한 것이면 역사 고객처럼 따로 알아봐야 한다. 그래서 콜센터에 전화하면 그들도 다른 부서로 전화돌리기 바쁜 것이다. 거기에 홈페이지는 통한 구매는 복잡하고 어려운 점이 많아 고객에 불만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기업의 무능함과 무책임으로 인한 땜질은 모두 상담사가 맞는다.

 그래서 상담사는 이런 말을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통화 중에는 죄송합니다. 그리고 통화 후에는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이다.


2. 운반하다.

 택배상하차를 소위 까대기라 칭한다. 워낙 몸만 쓰는 일이기에 여기엔 나이, 이름, 경력 유무 정도만 바로 일하는게 가능하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서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소재의 가방에 담배, 물병, 간식거리 등이 잔뜩 들어있다면 십중팔구 택배상하차 종사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곳은 반입을 허가하는 가방이란게 집락백이나 PVC소재의 속이 비치는 투명백 정도이기 때문이다. 

 택배상하차는 기본적으로 일용직이기에 관리자를 빼면 모두 근무시작 전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이후 안면인식앱으로 출근 등록을 한 후 혈압을 측정하는데 정상치를 벗어나면 일을 하지 못한다. 

 처음 일하는 자는 노란 헬멧을 착용하는데 초짜라는 뜻이다. 하차반은 주황색, 상차반은 파랑색, 분류반은 흰색을 쓰고, 관리자는 야광띠를 두른 흰색 헬멧을 쓴다. 

 까대기는 기본 3인 1조다. 경력이 적은 둘이 짐을 내리고 경력이 높은 최고참이 크기 형태 별로 짐을 분류한다. 까대기엔 죽음의 레일이 작동한다. 레일은 항상 빠르게 움직이는데 여기에 몸이 맞춰 움직이니 쉴틈이 없고 고되다. 레일은 시작 위치에 바코드 리더기가 있어 이것을 통해 화물의 종류와 수, 지역, 트럭기사의 차량번호, 연락처까지 알 수 있다. 레일은 세 갈래로 하나는 중소형 화물, 하나는 대형, 하나는 이형이다. 

 택배 상하차 조에 요구되는 하루 작업량은 트럭 9대 정도다. 이 정도를 하면 그들은 하루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일은 처음엔 빠르게 하는데 그래야 뒷 차량을 조절하며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택해 상하차엔 빠른 속도가 요구되는데 이는 트럭기사와 관련한다. 회사에서 지불하는 요금이 시간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하차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록 회사의 비용이 증가하기에 살인적 수준의 속도가 요구된다. 

 컨테이너 안은 무척 깜깜하고 먼지로 가득하다. 대개 상자는 던져버리는데 그래봤자 파손되는 경우는 별로 없고 파손되면 기업이 책임진다. 어찌보면 그런 파손보다 속도를 중시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되는 것 같다. 레일은 일정한 속도로 흐르기에 각 작업 조마다 작업 속도가 드러난다. 레일에 촘촘히 박스가 깔려 있다면 작업을 빠르게 하는 것이고 듬성듬성하다면 느린 것이다.

 까대기에서 쉬는 시간은 수분보충의 시간이다. 땀이 물처럼 흐르기에 반드시 수분 보충이 필요하며 땀이 너무 많이 나기에 의외로 화장실을 잘 가지 않게 된다. 노동강도는 살인적인데 하루 12대 트럭을 처리하면 한 트럭엔 1000개 정도의 상자가 있다. 각 상자의 무게가 5kg이라면 상하차하는 둘이서 하루 25톤을 들고 내리는 것이다. 

 트럭은 난이도로 구분된다. 소위 꿀차는 가벼운 짐으로 가득하면서도 한 종류의 상자로만 가득한 것이다. 택배 상하차는 무게는 차치하더라도 박스 종류가 단순한게 좋다. 높낮이가 맞아야 쌓기도 내리기도 편하고 같은 자세로 계속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똥차는 무거운 짐이 가득한 차다. 가벼운 것이라도 잔바리라고 다양한 형태의 짐이 많으면 계속 자세를 바꿔 효율이 떨어지기에 똥차다. 쓰레기차는 그래서 온갖 종류의 짐으로 꽉 찬차다. 폭탄차는 책, 농산물, 액체로 가득한 차다. 특히 액체가 가장 무겁다. 

 그럼에도 밤새 상하차를 하고 퇴근하면 마음이 가볍고 뿌듯하다고 한다. 내가 직접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되는 엄청난 일을 밤새 해낸 느낌. 조금만 하다 못하겠다고 나가 떨어진 사람을 대신해 내가 해낸 것 같은 느낌을 아침햇살이 맞이해준다. 최저 시급에 가까우나 제법 묵직한 일당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몸과 수명을 깎아내 하는 일이기에 절대 지속적 직업이 될 수 없다.


3. 요리하다.

 주방에서 일하려면 요리사 자격증 보단 보건증이 필요하다. 폐결핵, 장티푸스, 감염성 피부질환 등이 없어야 한다. 특히 장티푸스 검사를 위해서는 항문에 면봉을 2-3cm 넣어야 하는데 이게 보통 고역이 아니다. 콜센터, 택배상하차와는 다르게 식당은 유난히 경력자를 선호한다.

 저자는 뷔페 식당에 취업한다. 여긴 핫파트, 콜드파트, 멀티파트로 주방을 구분한다. 핫파트는 수프, 국, 밥, 튀김, 찜등 불을 쓰는 요리를 콜드파트는 샐러드 나물, 과일, 게장등을 다룬다. 멀티파트는 고기를 썰고 양념을 재우고, 디저트와 유부초밥을 한다.

 주방은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다. 엄청난 화력의 화구가 곳곳에서 불을 뿜고, 큰 칼과 날카로운 것 투성이인데다 사방이 복잡하고 미로 같으면서도 심지어 바닥이 미끄럽다. 의의로 요리를 잘 할 필요가 없는데 요즘은 대부분 조리 법이 계량화 되어 있어 그것대로만 몇번 해보면 통상의 맛을 누구나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뷔페에선 요리에 타임이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시간 개념은 아니고 뷔페 음식이 한 번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대개 5-6인분이다. 마감시간이 가까워지면 타임개념이 좀 변해 1/2에서 1/3정도의 음식만 나가고 한창 때면 한방에 2타임 분량의 음식을 한다. 

 주방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요리와 프렙, 청소다. 요리는 글자 그대로 요리를 하는 것이다. 말이 쉽지 정신 없다. 뷔페에선 음식이 항상 자리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손님이 생각하기에 늘 늦지 말아야 하며, 개별로 주문하는 것들도 받아내야 한다. 동시에 여러 개를 조리해야 하기에 늘 정신이 없다. 프렙은 요리를 위해 재료를 준비해놓는 것이다. 시간이 날 때 하거나 요리 중 틈틈이 한다. 파스트 프렙이 가장 힘든데 삶은 면이 굳지 않게 참기름으로 버무려 한 타임 분량을 소분해 놓는 것이다. 뷔페는 마감까지 음식이 가득해야 하기에 대량의 음식물 쓰레기가 항상 발생한다.  청소를 시작하면 싱크대부터 화구, 튀김기, 웍, 냉장고까지 철로된 모든 것을 닦아 내야 한다. 바닥청소가 가장 고통스러운데 음식찌꺼기가 낀 모든 곳을 닦아내야한다. 바닥을 청소하면 필히 개수구가 막히는데 이 경우 거의 어깨까지 하수구로 집어 넣어 막힌 곳을 손으로 빼내야 한다. 모든 쓰레기통을 비우고 새 비닐을 씌운 다음 주방 설비의 물기를 모두 닦아내야 청소가 끝난다.

 주방은 극단적은 습관의 장소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혼잡하기에 바로 손이 가는 곳에 물건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초보가 함부로 물건을 이동시켰단 사단이 난다. 주방은 일의 경계가 모호하기에 서로 다툼이 잦다.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못하면 내가 해야 하기에 항상 서로가 잘 하는지 주시한다. 거기에 서열도 무척 강하다. 


4. 청소하다.

 청소는 고령을 선호한다. 60대를 선호하고, 적어도 50대 중반은 되어야 한다. 여태까지 저자가 일한 직종에선 나이를 묻고, 좀 친해지면 여자친구가 있는가를 묻는다. 하지만 청소에서는 고령자들이 많아 양친이 살아계신지를 묻는다. 

 청소는 여태까지의 일 중 급여가 가장 적은 편이다. 연가는 연중 15일이나 3일만 허용되며 나머지 12일에 대한 보상이 이 적은 급여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은 일요일에도 출근해야 하는데 그 건물에서 결혼식이 있기 때문이다. 

 청소에선 흡연장 청소가 고달프다. 흡연장 자체가 건물 바깥에 있기에 하루 종일 바깥에서 일해야 하고, 금방 쓰레기통이 가득차기엔 툭하면 치워달라는 호출이 온다. 겨울철이면 흡연자들이 무신경하게 뱉어낸 가래와 침등이 얼어붙어 꽃삽으로 긁어내야 한다. 하역장엔 쓸만한 물건이 많다. 사물실이 하나라도 철수하면 괜찮은 물건들이 쏟아지는데 이런 것들이 청소업체 직원들의 것이 된다.

 눈이나 비라도 오면 청소는 힘들어진다. 비가 오면 비를 않고 오는 사람들이 바닥을 금방 진흙 투성이로 만든다. 이를 계속 닦아내야 한다. 눈이 오면 지상주차장, 화단, 건물 외곽의 눈을 쓸어야 하기에 힘들다. 하지만 가장 힘든 일은 외벽의 유리 닦기다. 곤돌라를 타고 유리외벽을 닿는 전문업체는 3층까지만 작업을 해주기에 2층은 청소작업자의 몫이다. 매우 긴 막대기를 이용하여 외벽을 아슬아슬하게 닦아야 하기에 힘도 많이 들고 위험하다. 

 예식으로 인해 주말에 출근하면 힘들다. 특히 음식물 짬 처리가 힘든데 이것들을 모두 비우면 온갖 음식물이 튀어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이 남은 음식들이 작업자들의 몫이 되기도 하기에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청소일은 일이 고되고 어렵고 급여도 가장 적지만 퇴근 시간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더군다나 성취감도 제법 되는데 난장판을 치워서 깨끗해지면 그것이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렇게 네 동사에 따른 네 가지 직업의 장을 생동감 있게 몸으로 정리하고 마지막은 약간 소설 느낌으로 픽션과 논픽션을 섞에 '쓰다'라는 장을 만들었다. 저자의 과거 이야기부터 이어져 인공지능으로 인해 작가라는 쓰기의 동사가 사라져가는 과정을 상상해 그려냈다. 저자가 말한 네 가지 동사의 직업은 무척 고되고 사회적으로 무시받는 직종이다. 그것들은 무척 힘들고 급여도 적으며, 사람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갉아낸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사람은 자신이 뭔가를 해내 이 사회와 타인에 도움을 준 느낌이 들면 공통적으로 기뻐한다. 콜센터 상담원은 자신의 상담이 도움이 되어서 고객이 감사를 표시할때, 상하차는 그 많은 걸 해치우고 퇴근의 아침햇살을 맞이 할때, 요리는 고객이 맛있게 먹을때, 청소는 더러운 곳이 깨끗해져 있을 때이다. 사람은 이런 것에서 삶의 만족감과 노동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찾는다. 그렇기에 이런 힘들고 말이 안되는 일도 사람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지탱한다. 그런 것마저 사라질 때를 저자는 걱정하는 것 같다. 인간에게 큰 위기의 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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