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과 제왕 - 문화인류학 3부작 넥스트 3
마빈 해리스 / 한길사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마빈해리스의 문화인류학 3부작은 꽤 유명하다. 몇년 전 돌아가신 지인이 추천해준 책인데, 그 당시 사놓고 쟁여만 놓고 있었다. 책도 좀 오래돼 보이고 문화인류학이라는 것이 그닥. 한물간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휴가철을 맞아 일주간 매일 반나절 정도 나만의 시간이 생기는 행운덕에 그동안 구매만 했던 책들을 본격 소비하고 있다. 모처럼 소비가 구매를 초월하고 있다. 그러다가 서재 제일 아랫칸에 묻힌 이녀석을 발견했다. 이녀석을 본건 사실 우연이 아니다. 지인이 죽고나서도 꽤 오랜기간 가상공간에 여러 흔적이 있었는데 며칠전 우연히 지워진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보였을 것이다. 

 책은 놀라웠다. 책의 출간 시점이 94년인만큼 97년 정도인 총균쇠를 앞선다. 그게 아니었음 총균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책으로 오인했겠지만 사실은 당연히 반대다. 어찌보면 총균쇠는 이 책을 다양한 사례와 균 정도를 보충하고 좀더 전시대를 자세히 보며 자신만의 의견을 강하게 보충한 책에 불과할지도 모를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지리학계의 도킨스인 셈이다. 

 문화인류학이라고는 하지만 기실 이 책은 지리책에 가깝다. 상당히 지리적 결정론적 관점에서 쓴 책이다. 그 문화라는 것이 철저히 지리로 인한 생산력과 기후, 동물 및 생태계군에 절대적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도 문화보다는 그를 파생한 지리 이야기가 대다수다. 해리스는 공식을 보이는데 처음 정착지에서 생식압력(인구증가압력)이 생겨나고 이를 위해 생산력을 증가하기 위한 노력이 일어나며 이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된다. 그러면 이를 극복할 새로운 생산양식이 출현하여 문명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다. 해리스는 이를 문화유물로적 결정론이라고 했으며(지리적 환원로이나 지리적 결정론이 더 잘어울리는데......) 이래 놓고서도 애써 자신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창의력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쨌든 책은 수렵시대부터 농경의 시작, 원시국가, 전쟁, 식인, 자본주의의 탄생과 그 한계를 다룬다. 인류역사 전체를 다룬 셈이고 시기순으로 다루었음에도 좀 시기마다 도약하는 듯한 모습과 주제별로 다룬 면이 있어 통사적인 느낌은 의외로 별로 없다.

 수렵시대에는 인류는 평방마일당 2-3인의 인구밀도를 유지했다. 그 이상이면 생산력 저하가 급격히 오기 때문인데 마땅한 인구조절 방법이 없던 시기 해결책은 노인 살해 및 영아 살해였다. 당시 평균수명이 30세정도였고, 여성의 가임기시작부터 그 나이까지 생존하면 8회 정도의 임신이 가능하다. 절반정도의 아이가 여러 이유로 초기에 자연사해도 위의 인구밀도를 유지하려면 출산율이 2정도여야 한다. 그러면 2-3명정도를 살해할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영아 살해는 수렵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 이르기직전까지 암묵적으로 꾸준히 유지되며 주로 여아에 집중된다. 해리스는 그 증거로 각 시대마다 인구밀도 과잉으로 인한 생산력 위기시에 등장하는 비 정상적 성비를 보여준다. 남아선호가 한창이던 20세기 말의 한국의 저리가라 할정도이며 1자녀 정책으로 남아를 선호하는 중국역시 명암을 못내밀 정도다. 이런 수렵인들에게도 나름의 인구조절 피임법이 있었는데 자로 수유기간을 길게 갖는것과 단백질 위주의 식습관이다. 이는 출산후 생리를 현저히 늦춘다

 재밌는건 수렵시기라고 해서 인간에게 농경시대의 특징은 가축화와 재배기술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이미 사람은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었고, 정식 농경까지는 아니지만 농경기술을 적지 않게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발현하지 않은 것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직 충분히 많은 수의 잡아먹을 동물과 식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결핍이 기술의 발전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빙하기의 끝으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

 BC 1만3천년경 온난화로 동물의 터전인 목초지가 대규모로 사라지고 숲이 등장하게 된다. 게다가 인간이 수렵기간동안 상당수의 대형동물을 절멸시킨 상황이어서 상황은 설상가상이었다. 자연히 인간의 식생활은 토끼나 사슴따위의 전에는 눈여겨 보지도 않던 작은 동물로 향하게 되었으면 조개류나 물고기도 주요 식량원이 되었다. 거기에 식물재배에도 노력을 기울여 농경이 시작되었고 육식위주의 오랜 식습관에서 채식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게 되었다. 아마 온난화로 식물을 매우 잘 자랐을 것이다. 

 동물이 귀해짐에 따라 농경과 더불어 가축화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염소나 소등의 가축들이 다행스럽게도 인간이 먹지 않는 식물의 다른 부위를 먹기에 무리없이 가능했다. 불행히도 아메리카는 구대륙보다 더 빠르게 대형동물이 절멸하여 딱히 가축화할 동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에 구대륙만큼 농경에 적합한 식물도 많지 않았다. 총균쇠에 나온 것처럼 이 커다란 차이는 향후 더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다. 왜냐하면 가축은 생산력증강과 단백질 공급은 물론이요 힘쓰는 동물로 사용한 경우, 바퀴나 축, 도르레등 기술발전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에서도 발견된 바퀴가 고작 애들 장난감으로만 쓰인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해리스는 이런 가축화를 전무후무한 동물 보호운동이라 했는데 정말 기가막힌 표현이었다. 

 농경이 시작됨에 따라 수렵채집인들에게 가능했던 피임법은 사용이 불가해졌고, 인구증가와 이를 위한 생산증강활동으로의 농경과 가축화는 삼림을 파괴하고 토양을 산성화 시키며 가축을 통한 질병까지 불러왔다. 농경시대의 전쟁은 이 해결책중 하나라고 저자는 말한다.

 전쟁의 기원은 조금 다르다. 원리는 비슷하지만. 과거 국가 시스템이 전무하고 영토개념이 없던 시기 전쟁은 인근 부족을 쫓아내어 인근 배후 지역에 무인지대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무인지대는 생태계의 보고로 향후 생산활동에 필요한 농물과 식물보호 역할을 하였다. 전쟁의 다른 이유는 인구조절기능이다. 전쟁에서는 주로 남자가 죽지만 사실 남자의 살해를 통한 인구조절효과는 매우 일시적이다. 실제로 한국전쟁이나 세계2차대전후 세계 각국은 베이비붐을 통해 빠른 속도로 인구를 수년안에 회복한다. 하지만 몇세대 걸리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여성의 살해다. 남성은 수가 적더라도 여러 여성을 상대함으로 인해 인구조절에 기능이 없지만 여성의 경우는 다르다. 인구의 수는 여성의 수만큼 늘수가 있다. 때문에 초기 인류의 전쟁에서 인구조절은 여아살해에 초점이 이루어졌고, 전쟁을 통해 남성을 중시하게 되는 남성위주의 문화를 통해 남아선호를 통한 일상적 여아살해기능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리스는 원시국가의 기원을 태평양지역 부족의 빅맨에서 찾고 있다. 빅맨은 부족 전체를 돌보고시혜적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이는 재산상 빅맨에게 상당한 마이너스인데 이들 빅맨과 그 추종자들은 그럼에도 그 존경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행한다. 하지만 집약적 농업과 곡물이 대량수확되면서 이들 초기 지도자들은 상설 군대의 유지와 생산수단으로의 접근권을 제한할 권력을 갖게되며 본격적인 지배자로 올라선다. 이들 초기국가는 인구밀도가 과해지면서 분리되는 다른 촌락에 대해 재분배 기능을 제공하는 조건 혹은 패한 다른 촌락에 대해 추방대신 복종을 요구하며 성장해나간다. 초기 중심국가 주변에는 제2기 국가들이 들어서는데 이들은 초기국가에 대한 군사적 방어의 필요성과 초기 국가의 부로 인핸 무역 및 그 약탈을 위해 발생한다. 

 이런 국가의 성장을 이야기하던 해리스는 갑작스레 아즈텍의 식인문화로 향한다. 구세계의 주요 종교와 문화 및 관습들은 대개 식인을 금기시한다. 물론 다른 문화권에서도 일부 허용되던 적도 있다. 하지만 아즈텍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권장된 곳은 없다. 해리스는 정말 놀랍게도 이를 가축화할만한 동물이 부족하여 만성적 단백질 부족에 시달리던 아즈텍의 자연환경에서 찾는다. 아즈텍의 신들은 인간의 피와 심장에 굶주려 있는데 피라미드위에서 산체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낸후, 신관들은 이 시신을 피라미드 아래로 굴린다. 문제는 이 시신이 아래쪽의 사람들에게 고기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물론 해리스는 아즈텍에서 포로로 잡아 인신공양에 사용된 사람의 숫자가 전체 사람들에게 충분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만한 수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람고기는 비싼법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수는 하위관리와 일부백성에게 지급되 단백질 부족으로 인한 반란을 막는 정도로는 충분하다고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아즈텍에도 칠면조와 개라는 고기가 있긴 했지만 칠면조는 사람이 먹는 곡물의 낟알을 먹으며 개는 고기를 먹는다. 때문에 단백질 공급원으로 매우 부적격이었기에 왕이나 일부 신관만이 사치스럽게 즐겼다. 또한 적절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만한 리마나 기니피그를 가진 잉카문명에 식인습관이 없었던 것도 이를 어느정도 뒷받침한다. 

 그 다음엔 정확히 반대로 고기를 안먹는 쪽으로 간다. 바로 중동지역의 돼지금기와 인도의 소금기다. 농경이 심화되며 전세계 문화권은 늘 먹던 고기를 금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는 인구밀도가 증가함에 따라 재배지가 넓어지고 이에따라 가죽을 위한 유휴지가 부족해졌기때문이다. 게다가 가축은 노동력제공, 비료 공급, 섬유질 공급등 쓰임새가 많았다. 때문에 고기는 모두의 음식에서 사치품이 되어갔으며 종교차원에서 육식을 금지하는 교리가 생겨나게 된다. 

 돼지는 고기공급원으로서의 가치는 매우 높지만 젖을 제공하지도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힘든 동물이다. 따라서 사치품이 되어갔다. 특히나 돼지는 스스로 열을 발산하지 못해 습기가 많은 지역을 선호하는데 사막지역인 중동에서는 정말 쥐약인 셈이다. 거기에 돼지는 자연상태에서 돼지감자, 과일, 견과류등 비싼것만을 먹어치우니 자연스레 중동지역에서는 돼지에 대한 혐오감을 발달시키고 금기시하게 되었다. 

 소는 정확히 반대다 소의 금기는 신성화로 나타났다. 돼지는 필요없음에 소는 너무나 필요했음에 나타난 현상이다. 인도 갠지스 강 유역의 인구밀도는 매우 조밀했다. 거기에 여건상 관개수로가 매우 약하다보니 변덕이 심한 몬순의 강우량에 지역전체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때문에 농경이 매우 중요해졌는데 소의 노동력이 더욱 절실해질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재밌는건 암소의 신성화다. 수소는 노동력의 제공으로 가정에서 사육되지만 암소는 방목한다. 하지만 일상에선 크게 필요치 않은 암소도 기근이 심하여 노동력이 더욱 절실해지거나 수소의 재생산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보호받는 수소에 비해 일상에서는 보호하지 않은 암소를 신성으로 보호했다는 것이 해리스의 견해다. 

 하지만 이런 소의 신성화의 경우 소를 사용한 다른 몬순 아시아 지역에서는 어째서 소의 신성화가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해리스는 중국의 예를 든다. 중국에서도 역시 소는 농경을 위해 귀한 동물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지금도 그렇지만 인도와 인구는 비슷하면서도 몇배에 달하는 영토를 갖는다. 거기에 농경생산성도 인도의 두배에 달해 소에 대한 의존도가 인도에 비해 낮았다. 게다가 다른 가축을 위한 땅 및 기후조건도 좋아 굳이 소의 신성시까지 갈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부분은 자본주의외 의회민주주의다. 해리스는 왜 이 것이 세계 다른 지역이 아닌 알프스 이북의 북유럽에서만 등장할수 있었는지를 살핀다. 우선 아시아지역을 살피는데 인도및 중국 지역의 문명을 비트포겔의 개념을 빌려 수력사회로 간주한다. 수력사회는 문명이 주로 건조 및 반건조지역에 위치에 하천의 물을 끌어다쓰는 평원과 계곡에 발달한 사회를 말한다. 이 사회에서는 생식압력에 대처하고자 필연적으로 수리시설의 강화가 필요하며 이는 이를 관리하기 위한 강력한 관료제를 동반한다. 수력사회에서 왕조의 순환은 다음과 같다. 초기 왕조는 치수-관개생산양식을 회복하거나 개선한다. 이로 인해 인구가 다시 조밀해지며 생산력을 한계에 도달한다. 그리고 왕조의 지속에 따라 이를 해결해야할 관료조직 역시 부패해지며 생산력이 더욱 떨어져 일반 백성은 극빈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새로운 패권을 다툴 반란 혹은 외부 침입이 일어나고 그 결과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여 이 쳇바퀴를 다시 돌리게 된다. 

 이런 수력사회는 관개의존성으로 인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전제체제를 갖게되며 국가가 대내적 수탈 대외적 수탈, 공공기관을 통해 국내의 모든 재산을 통제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생기기 매우 어려운 여건에 놓이게 된다.

 반면 알프스 이북의 기후는 겨울의 많은 강설량과 봄비로 연간 충분한 습기가 공급된다. 게다가 이렇다할  큰 강도 존재하지 않아 강 주변에 문명이 집중하는 수력사회에 적합치 않다. 이로 인해 인구가 전역에 분산되며 문명이 지방 분권적 경향을 갖게 된다. 국가형성 이후에도 이런 경향이 이어져 로마제국이 붕괴하고 중세장원경제체제하에서도 왕과는 별도로 장원경제가 돌아갔다. 생산수단에 대한 확실한 접근제한권을 갖고 있던 수력사회와는 달리 유럽지역을 왕이 이렇다할 칼자루를 갖지 못했던 셈이다. 

 이런 장원경제는 점차 붕괴되기 시작하는데 해리스의 공식처럼 장원경제체제의 생산력이 인구밀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자연스런 여아조절로 성비가 130대 100에 달할정도로 인구조절에 들어가지만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장원의 생산성에 관심이 많은 영주와 농민들은 수입원 보충 수단으로 양모를 얻기 위한 양치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양을 위한 목초지가 재배지를 집어삼키면서 농민의 토지는 감소하였으며 땅을 잃은 농민들은 빈민화 하거나 먹고 살기 위해 발달하고 있는 도시노동자로 변모한다. 이는 도시노동자의 임금을 극적으로 저하시키는 효과를 낳아 제조업이 발달하는 최저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되었으며 자본주의 체제는 개인의 부 축적을 방해하던 여러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제약을 풀어헤침으로써 역사상 최고의 생산력 약진을 가져온 제도로 해리스는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해리스는 화석연료에 의지한 지금의 생산력이 화석연료의 고갈 및 생태계 파괴로 인해 다른 문명들처럼 곧 생산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한다. 책을 쓴 시점이 94년이니 그럴만도 한데 무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화석연료에 충분히 의존하고 아직 그 고갈에 큰 신경을 안쓰고 있으며 환경을 더욱 크게 파괴되었지만 매우 더워진 지구에서 그럭저럭 버티며 4차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인류를 보면 저자가 어떤 혜안과 반응을 보일지 자못궁금하다. 하긴 당시만 해도 지구온난화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본격화되고 심각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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