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지음 / 지식플러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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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과학의 성과는 눈부시다. 생물의 변화와 종의 탄생 및 분화에 대한 거의 완벽한 설명인 진화론, 시공간에 대한 설명인 상대성이론과 미시세계에 대한 양자역학, 우주의 5가지 힘을 통합하고자 노력중인 통일이론(힉스입자의 발견으로 가속화되고 있는듯.) 등등 나열하고자 하면 끝이 없다. 이렇듯 과학은 세상에 숨겨진 진리를 하나하나 발견해나가며 어쩌면 인간 궁극적 진리를 향해 나아가며 아직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한 면도 있다. 빅뱅이론에 대한 합의는 어느정도 있지만 빅뱅 이전에 대한 논의는 거의 소설수준이며, 거시세계의 이론인 상대성이론과 미시세계의 이론인 양자역학은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책은 이러한 과학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우선 과학의 한계를 명확히 짚는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외부실재에 대한 관측을 기본으로 하여 지식을 쌓아나가고 그 작동원리를 밝히는 것인데 여기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관측을 위한 측정의 기준을 만들기가 사실상 블가능하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은 개념을 수량화하고 있는데 이를 이해서는 측정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뭔가를 측정하기 위해선 당연히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 명확한 기준을 확립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온도의 기준으로 끓는 점인 100도와 어는 점인 0도가 있지만 이 수치는 물질의 외적 조건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길이인 1미터는 광속의 초속인 299,792,458미터/s를 299,792,458로 나눈 것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엔 대체 1초를 또 어떻게 정확히 측정할 것인지에 대한 순환논법에 빠진다.

결국 이론은 상당히 엄정한데 비해  그 기반이자 단위들은 측정의 엄정성이 부실한 것이다.

 다음은 관측의 이론적재성이다. 관측은 그 기준과 관련하여 위와같은 문제점들이 있는데 이를 차치하더라도 관측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이는 관측자가 인간이기에 발생하는 문제로 사람이 관측을 함에 있어 이론의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관측시, 선입관이 영향을 주거나 똑같이 감지한 것을 서로 다른 입장에서 이론적으로 다르게 해석하고(천동설과 지동설이 그렇다. 관측은 같았다.) 관측을 행하는 실험기구 자체에 이미 이론적 해석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론에 맞지 않으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잘못된 것으로 거부하는 부작용들이 나타난다.

 마지막은 귀납의 문제이다. 기준의 문제와 관측의 이론적재성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쳐도 문제는 남는다. 과학자는 관측된 결과를 가지고 귀납적인 추론을 한다. 관측된 결과가 쌓여나갈수록 이는 강력한 증거가 되며 이론은 그렇게 더욱 강화된다. 하지만 귀납이라는 것이 결국 모든 자료를 통해 이루이지는 것이 아닌 만큼 귀납으로 성립된 이론은 언제든지 다른 결과로 인해 뒤집힐 수 있는 반증가능성을 같고 있다. 또한 귀납자체가 적당한 관측자료로 이론을 세운만큼 잘못된 이론을 세울수도 있다. 가령 2,4,6,8,10으로 이루어지는 관측 결과를 얻었을때 6번째 결과는 12라는 법칙을 도출할 수 있겠지만 다음 다섯가지의 결과는 의외로 14, 18, 22, 26, 30일수도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엔 부족한 자료로 인해 법칙결과를 잘못세운 격이 된다.

 이처럼 과학에는 관측을 위한 기준의 문제, 관측의 이론적재성문제, 귀납의 문제가 있다. 이런 결과는 과학이 마치 더이상 아무것도 할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 우선 과학이 진리가 아닌 진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한다. 진리는 영원불변의 법칙이지만 과학에는 한계가 명확한 만큼 외부 실재에 대한 사실 만을 다루는 진상을 추구목표로 삼는 것이 적당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실재주의로서의 과학이다. 실재론은 과학의 목표를 진리 추구로 보고 있으며 반실재론은 과학의 임무를 경험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지식민 추구하는 것으로 본다. 실재주의는 이 둘을 벗어나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실재에 대해 최대한을 배워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과학적 한계와 인간의 한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실재에 대한 진상을 계속 추구하고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각각의 한계를 교묘히 벗어난 셈이다.

 또한 토대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당부한다. 토대주의는 연구를 행함에 있어 앞의 이론들을 계속 기반으로 삼아나가는 것인데, 필연적으로 가장 앞선 명제가 다른 명제들에 의해 서로 증명하는 순환논법에 빠지거나 최초 명제를 그냥 자명한 것으로 해버리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과학 역시 이러한데 저자는 이런 토대를 지구에 비유하여 해결하고자 한다. 지구는 당연히 절대적 기초가 되지 못하지만 인간에게 충분히 넓고 딱딱하며 방향성도 있는 적당한 토대이다. 즉, 절대적 기초란 없으니 지구정도로 적당한 토대에서 연구를 진행할 수 밖에 없고, 그러해도 어느정도는 무방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주장하는 것은 과학에 대한 다원주의다. 과학은 토마스쿤의 주장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서 승리하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를 대체하고 기존의 패러다임은 해체되고 사멸된다. 저자는 책에서 과거의 과학적 이론에 대해서 꽤 많은 분량을 다루고 있는데, 과거에 대체된 구 패러다임이 모조리 쓸모 없는 것들은 아니었다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저자가 보기에 과거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비해 설득력을 약할지언정 만약 남아 있었다면 과학의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상보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때문에 과학에는 일방적 일원주의보다는 그 발전에나 창의성의 발현을 위해서 다원주의가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나의 예상밖이 었다. 과학이 철학의 발전과 논의에 줄 수 있는 시사점 같은 것을 생각했었지만 의외로 과학의 약점과 토대의 형편없음을 보여주고, 그럼에도 과학을 해나가는 방법과 철학을 제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사실상 처음 접했다는 점에서 인상깊었다. 일독할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 이름이 장하석으로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싶었는데 경제학자 장하준과 형제사이였다. 닮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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