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지기 전에 - 1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
김정섭 지음 / Mid(엠아이디)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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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제1차대전은 이름만큼 굉장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그 동생뻘인 2차대전에 비한다면 잊혀진 전쟁이나 다름없다. 둘의 발생 시기차가 고작 20년정도 차이에 불과하고 1차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새로운 세계질서가 사실상 2차세계대전을 잉태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전쟁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의 정도는 다소 놀랍다. 2차대전하면 정말 많은 것이 생각난다. 히틀러, 무솔리니, 도죠히데키등의 전범자들은 물론이고 2차대전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 책 등의 저작물도 정말 많다. 하지만 1차대전의 그것들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워호스 정도의 영화가 간신히 생각이 나는 수준이다.

 책, '낙엽이 지기전에'는 이런 1차대전을 다룬다. 1차대전이 발발하던 당시의 국제적 상황과 주요정책결정자들과 그들의 성향, 그리고 사라예보사건 이후, 각 나라들의 복잡하고 급박했으며 어리석었던 의사결정들, 그리고 그것들이 연결되어 전쟁이 이루어지고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장면들을 딱딱하지 않고 생생히 보여준다. 저자도 의도했다고 말하지만 주로 묘사로 서술되어 약간은 소설같은 기분도 느낄수 있었다.

 우선 18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은 유럽의 떠오르는 신생 강대국으로 통일 이후 비스마르크의 주도하에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알자스 로렌지역을 차지한 상태였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를 격퇴했음에도 더 이상의 팽창은 주저하였으며, 언제든 위협이 될 수 있는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정책을 구사했다. 그래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등 가급적 모든 유럽국가들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구축해나갔다. 식민지정책에도 부정적이어서 식민지정책이 가져올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과 다른 유럽국가들과의 관계악화를 우려했다. 즉, 비스마르크의 정책은 신생제국 독일의 무리한 확장보다는 그것을 유지하고 유럽내에서 지위를 인정받으며 안정화하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지금의 독일 정책과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황제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를 실각시키면서 상황은 급반전한다. 독일의 공업수준이 최대치에 이르며 국내시장이 포화에 이르자, 새로운 시장으로서 식민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고 여기에 황제의 야심도 더해졌다. 이에 독일은 새로운 식민지 개척을 위해 적극나서지만 그를 위해서는 제해권을 잡고 있으며 전세계에 식민지를 경영하고 있는 영국을 제압해야 했다. 이 때부터 제해권을 둘러싼 독일과 영국의 건함경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무리한 건함경쟁에도 모로코를 둘러싼 힘의 외교전에서 사실상 영국과 프랑스에 패배하고, 러시아 오랜 경쟁관계인 영국과 합작하기 시작하자  독일은 사실상 건함정책을 포기하고 유럽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만다.

 이는 자신들의 팽창이 초래한 바이지만 이로 인해 독일은 지상군위주로 전환하며 1차대전 전략의 근간이되는 슐리펜 계획을 세운다. 슐리펜 계획은 프랑스 부분의 서부지역을 공세할때 벨기에 부분으로 우익기동하고 방어가 강한 프랑스 부분의 좌익 부분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편성한 후, 전력을 집중시켜 단기간 내에 프랑스를 제압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후, 러시아 부분의 동부전선에 서부전선에서 생긴 여유분의 병력을 증가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간다는 것이 핵심전략이었다. 이 슐리펜 계획은 1차세계대전에서의 전략적 패배와 외교적 여지를 크게 줄여 사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듯 1910년대 유럽은 독일-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이탈리아의 삼국동맹과 영국-프랑스-러시아의 삼국협상이 팽팽이 맞서는 상태였다. 이런 와중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가 세르비아 사라예보를 순방중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간섭하는 슬라브계인이 저지란 사건이었다. 사실 첫번째 암살시도는 폭탄에 의한 것이었는데 실패하였다. 그럼에도 황태자와 경호책임자는 무리한 순방을 계속해 황태자부부는 결국 실패한 테러를 포기하고 돌아가던 또다른 암살자 눈앞에 나타나 사살되고 만다.

 이 사건에 피해자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자국의 발칸반도에서의 영향력 강화와 제국의 황태자암살이라는 손상받은 위신을 만회하고자 세르비아에 강력한 경고장을 날리려고 한다. 하지만 거기엔 러시아란 문제가 있었다. 발칸반도에 많은 슬라브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세르비아에 대한 강력한 조치는 러시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독일제국에 협조를 요청한다. 놀랍게도 빌헬름2세와 독일 정책자들은 이런 오스트리아의 물음에 무한한 협조를 약속하는 유명한 백지수표에 가까운 협조를 약속한다. 그리고 빌헬름2세는 어처구니 없게도 이긴박한 순간에 그같은 결정을 내리고서도 무책임하게 3주간의 북유럽요트여행을 떠난다. 이 같은 독일의 강경한 협조요청에 놀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상당히 호전적으로 돌변하여 세르비아의 주권과 자존심을 건드는 최후통첩을 날린다.

 세르비아는 당연히 거부할수 밖에 없었으며 이 사태를 주시한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의 이런 태도의 배후에 독일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독일의 침공의지를 과대하게 위협적으로 평가한 러시아는 선제공격에 대한 군부의 압박, 그리고 독일에 대한 공포로 인해 총동원령을 내리고 만다. 러시아 황제와 관료들은 사실 부분동원령을 내리려고 했으나 당시 러시아의 후진적 상황과 독일에 대한 공포는 이를 허락치 않았다.

 어처구니 없게도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이런 러시아의 행동에 매우 놀란다. 휴가를 다녀온 빌헬름 2세는 이와 같은 러시아의 대처에 사촌지간인 니콜라스 러시아 황제에 서신으로 상호자제를 호소한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니콜라스의 손과 빌헬름의 손을 떠난 상황. 러시아의 총동원령에 오스트리아도 총동원령으로 대응하였으며 위기를 느낀 프랑스는 영국에 도움을 요청한다. 당시 조용하면서도 영광스러운 고립적 외교로 유럽대륙의 문제에 비간섭으로 일관하던 영국 역시 상황이 급박해진다. 프랑스와의 동맹으로 프랑스 함대는 지중해 연안에 집중해있엇고 이에 북해 부근의 프랑스 영해는 영국이 보호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신생중립국의 벨기에의 중립역시 영국의 이루어놓은 것이라 전쟁발발후 사실상 이루어질 독일의 벨기에 진격은 영국의 위신을 깎는 일일것이기 때문. 거기에 프랑스를 잃은 후, 영국이 과연 무사할 것인가라는 실제적 질문도 함께자리했다.

 프랑스가 이미 총동원령을 내리고, 독일 역시 이에 대응해 총동원령을 내리고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한 후 룩셈부르크를 침공함으로써 전쟁은 사실상 시작되고 만다. 사라예보사건 이후 정확히 한달 후의 일이었다.

 초기 전황은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압도적 군사력으로 서부전선에서 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를 제압하였고, 이로 인해 프랑스를 빠른 시간안에 침공할 수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육군 역시 초기전투에 실패하여 퇴각하는 상황이었다. 동부역시 마찬가지여서 삼소노프가 이끌던 러시아군을 탄넨베르크에서 격멸하는 성과를 올린다. 러시아 군의 전사자는 무려 40만에 달했고, 독일은 겨우 1만에 그칠만큼 대승이었으며 이후 러시아는 동부전선에서 이렇다할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독일에 계속밀리게 된다. 당시 러시아군은 병참능력이 떨어지고 심지어 통신역시 암호화하지 못하는등 후진적인 군대였으므로 패배는 자명했다. 그리고 대패이후 삼소노프는 자살한다.

 이에 고무된 독일의 몰트케는 서부전선의 2개군단을 동부전선으로 수송하는 치명적 판단 착오를 범하게 되고 연합군은 그 빈틈을 파고들어 마른전투에서 승리한다. 이로 인해 서부전선을 고착되고 만다. 당시 유럽 각국의 지휘관들은 신속한 공격전을 선호했는데, 이는 빠른 공격이 적의 영토로 신속하게 진격을 가능하게 하고, 이는 상대편지휘관으로 하여금 역시 신속한 공격전을 선호하게 만들었다. 1차대전의 발발위기에서 서로 빠르게 총동원령을 내려 서로의 동원령을 부추겨 전쟁을 발발하게 만든 것도 이와 같은 신속한 공격전에 대한 상호간의 공포때문이었다. 또한 신속한 공격전에 대한 선호는 전쟁을 빨리 끝날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낙엽이 지기전에 이다. 전쟁을 선포한 장군과 관료, 황제들은 모두 전쟁이 조기 종료될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유럽의 하천지형과 자잘한 산맥들은 진격을 어렵게 만들었고, 기관총과 장거리 사정포의 등장으로 속도감있는 진격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물론 병사들은 무거운 장비로 속도를 내는 것 자체도 불가능했다. 따라서 전장이 교착되자 서로 점령하기 어려운 긴참호가 형성되었다. 1차대전이 참호전이라 불리는 이유다. 당시엔 이런 참호를 돌파할만한 전차도 공중지원도 없었다. 그러한 무기는 2차대전에 등장한다. 어쨌든 참호는 포탄이 떨어지지 않게 끔 폭은 넓지 않으면서 쉽게 조준되지 않게 구불구불 미로처럼 깊숙이 파졌다. 참호안 환경은 매우 열악하여 쥐와 민달팽이, 이, 사람의 오물, 시체 등으로 고약한 냄새가 났다. 냄새가 참호 수 km까지 퍼져 적들은 참호가 있음을 정찰없이 파악할 지경이었다. 안에서의 위생환경도 열악해 병사들은 발목이 세균성 감염으로 썩어나가는 참호족염에 시달리고 오한과 고열에 죽어나갔다. 포탄으로 인한 공포도 상당하여 신경쇠약증에  걸리기 일쑤였고, 이로 인한 정신병으로 전후에도 고통받게 된다.

 전황은 점차 독일에 불리하게 흘러갔다. 제해권이 없으므로 해외로부터 원료 및 식량확보가 어려웠다. 동등한 해군력으로 영국에 대항할 수 없던 독일은 유명한 유보트 작전을 시행한다. 잠수함으로 적의 상선을 타격한 것인데, 그러던 중 아일랜드 인근에서 미국인 128명을 죽게한 초호화 여객선의 침몰로 작전은 소극적으로 변화한다. 미국의 참전이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전장이 더욱 장기화되작 주전론자들의 무차별 유보트 공격이 다시 힘을 얻고 만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미국의 참전이었다.

 초기 미국은 겨우 1-2만 정도의 병력만 수송이 가능했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엄청난 병참능력을 보이며 1년만에 무려 100만에 달하는 병력과 물자들을 지원한다. 오랜 참호전에 지친 독일에겐 치명타였다. 거기에 초기 동맹을 약속했던 이탈리아 역시 배신하여 오히려 연합군에 가담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도왔다. 초기 패전하고 정신을 못차리던 러시아는 혁명이 일어났다. 독일은 러시아의 혁명을 부채질하기 위해 레닌을 특별열차까지 동원하여 러사이로 수송하였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혁명으로 더이상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웠던 러시아는 독일과 강화협정을 맺는다. 이는 영토와 큰 상실과 발칸반도에서 영향력을 상당히 잃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러시아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거기에 러시아는 전세계가 곧 혁명화될거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동부전선에서 큰 여유가 생긴 독일은 여세를 몰아 프랑스 베르됭을 공격한다. 전략적 요충지는 아니었으나 프랑스의 자존심이 걸린 역사문화도시였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 곳을 집중타격하면 프랑스가 결사항전하여 프랑스의 나머지 힘을 모조리 짜낼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는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도 실패하면서 독일을 몰락의 길을 걷는다.

 먼저 불가리아가 항복하고 이어서 오스만 제국도 항복한다. 여기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항복을 하여 여러개의 나라로 쪼개진다. 이런 전황에 전쟁에 지친 독일내의 폭동과 항거 그리고 항복을 원하는 군부의 압박으로 빌헬름2세는 퇴위하고 항복한다. 전쟁의 결과는 비참했다. 1천만의 전사자가 나왔고, 1천만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다. 거기에 1천만의 군인이 부상을 입게 되었다.

 전후 독일은 연합국에 알자스 로렌과 라인란트를 빼았겼으며 폴란드의 독립을 허용하게 된다. 거기에 막대한 배상금까지 안게 된다. 이에 대해 영국수상 조지 로이드는 너무 가혹한 응징으로 실지에 대한 독일의 복수로 25년뒤 다시 한번 세계대전을 치룰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프랑스 수상 조르주 클레망스는 강화조약이 너무 약하여 독일을 예전처럼 쪼개어 놓지 못한 것을 한탄했고, 이것이 전쟁으로 이어질것이라 내다봤다. 입장이 서로 다른 둘은 정확히 미래를 예측했다. 둘의 의견은 모두 옳았다.

 1차대전은 가해자와 의도가 분명했던 2차대전에 비해 애매한 전쟁으로 불린다. 전쟁의 원인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1차대전의 발발 원인을 공격이 유리하다는 잘못된 믿음, 전쟁에 대한 위험을 모두 계산했다는 착각, 위기 상황에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정책결정자들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꼽는다. 그리고 안보딜레마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안보딜레마란 A의 안보 증진 노력이 B의 안보를 저해함으로서 B가 자신의 안보를 강화하고, 그로 인해 A의 안보가 저해되어 다시 안보를 강화하고자 하는 악순환을 의미한다. 실제로 1차대전 당시의 서로간의 불신과 정보부족 몰이해로 인한 총동원령이나 위협은 상대방의 총동원령과 위협을 가져왔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이러한 1차대전의 상황을 한반도에 적용한다. 북한의 핵위협과 막강한 재래전력, 그리고 더욱 막강한 남한의 전력과 세계최강 미국군대의 전력이 한반도에 존재한다. 이는 서로 선제공격에도 불구하고 적을 완전히 섬멸하지 못하여 상대방의 2차공격으로 자기 역시 격멸에 가까운 상황을 양자가 맞게되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안보딜레마 상황이지만 전략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지적 도발로 인한 뜻하지 않은 전황의 극적인 전개로 전쟁에 치달을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의 방지를 위해 군위주의 판단으로 전쟁에 치달은 1차세계대전을 거울 삼아 군의 전문성을 인정하되 결정 및 판단에서 민간의 역할이 평소에 충분히 공유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의외로 한반도에 국한된 판단이라 다소 의외의 제안이기도 하다. 사실 한반도의 전쟁은 인계철선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한국으로의 침공을 자연히 남한을 포기할수 없는 미국의 참전을 의미하며, 안보를 위협받은 일본의 참전으로 이어질수 밖에 없다. 또한 미국과 일본의 참전은 당연히 북한을 순망치한으로 여기는 중국의 참전과 더 나아가서는 러시아의 참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1차대전과 매우 유사한데, 독일에게 오스트리아는 절대 잃을 수 없는 최후의 동맹이었고, 그런 오스트리아에게 세르비아와 발칸반도에 대한 영향력은 러시아를 막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러시아에겐 그런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태도는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졌으며, 러시아에 대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침공을 방관하는 것은 프랑스에겐 다음은 내 차례로 일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유럽에서 프랑스를 잃는 다는 것은 영국에겐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으며 자신들의 헤게모니가 위협받는 형국이었다. 이처럼 1차대전 당시 유럽 각국은 인계철선으로 연결된 셈이었다.

 저자는 앞서말한 민관군의 대화 소통 시스템을 구축하면 국지도발 시스템을 잘 막을 수 있다고 하였지만 국제적인 상황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물론 한반도 외에 다른 지역에서 적대세력간에 국지도발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엔 과거에 비해 상호 경제의존도가 매우 높아진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차대전 당시 각 나라들은 비록 왕조시대이긴 해도 전쟁의 참상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애국심에 휩싸여 몇몇 어리석은 소수결정자가 수천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협조하였다. 이와 같은 일이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에서는 벌어지지 않을까, 적어도 이중에서 그런걸 막을 정도로 성숙한 시민사회는 미국정도가 유일해 보인다. 그다음으로는 우리가 가능성이 있어보이지만 북한 핵도발에 대해 다른 평화적 의견을 좌파정권도 함부로 입에 담지못할 만큼 우리의 안보환경도 상당히 우편향적으로 경직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책은 매우 쉽게 읽힌다. 어찌보면 소설과 교양역사책의 중간정도 느낌이기도 하다.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가독성이 높다는 뜻이다. 덕분에 1차대전에 대한 많은 것을 알수 있었다. 전쟁은 끔찍하다. 그리고 전쟁을 주장하는 자들은 매우 어리석으며 결국 전쟁에 대해 책임질수 있는 역량도 없음을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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