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그해, 역사가 바뀌다 - 세계사에 새겨진 인류의 결정적 변곡점
주경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책 제목만 보고 쉽게 낚이곤 한다. 저자가 주경철 교수 정도로 대단하다면 더욱 그러하다.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또 낚인 것인지 아닌지 조금 애매했다. 책의 성격도 바로 그러하다. 이번에도 건명원 모음글이었다. 최진석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은게 바로 얼마전인데, 이것 역시 건명원 책인 줄을 몰랐다. 잘은 몰라도 건명원이 무척 재미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그냥 책 제목을 보고 뭔가 거대하게 꿰뚫는 사유를 주경철 교수가 보여주신게 아닌가 싶었다.  다 읽고 나니 그런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책은 1492, 1820, 1914, 1945년 네가지를 가지고 역사의 중요한 분기를 잡아낸다. 주로 서양과 동양의 갈림길이기도 하고 공통적으로 가야만 하는 길이기도 하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년도들이 매우 중요한 연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솔직히 난 1914는 잘 몰랐다. 그리고 실제로 책에서 1914에 부여하는 의미가 가장 좀 자의적이고 애매하기도 하다.

 1492년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 앞바다에 떠 있는 하나의 섬, 즉 서인도제도라고 잘못 이름 붙여진 곳에 도착한 해이다. 콜럼버스가 이탈리아 사람인 것은 지금은 정설이나 콜럼버스가 워낙 영향력이 큰 인물인지라 유럽의 이나라 저나라에서 서로 자기네 인물이라고 오랬동안 우겼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 지자체들에서 어떻게든 건져보려고 유명인물이 자기네 출신이라고 싸우는 격과 비슷해보인다. 그리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지구가 네모났고 콜럼버스 정도 되는 인물만이 구형임을 인지하고 있었다고하며, 콜럼버스와 함께한 선원들 역시 계속 가다가 떨어질까봐 겁을 냈다는 통설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책은 당시 지구 구형설은 매우 일반적이었으며 콜럼버스는 오히려 지식이 부족해 지구의 크기를 실제보다 작게 여겼다고 한다. 당시 서양의 지식인층들은 지구의 크기를 크게 생각하고 있어 콜럼버스의 계획의 현실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토록 여기저기 문전박대 당한 것이다. 당시 통일과 이슬람 세력 축출에 막 성공한 스페인이 새롭게 생성된 국력의 배출구가 필요했었다는 행운이 없었다면 세계역사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콜럼버스는 매우 종교적인 인물이었고, 이러한 종교적 열망이 항해의 주 동인이었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의 사실이었다. 꼭 합리성과 제대로된 이론을 가진 사람이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1820년은 서양과 동양의 힘의 균형이 확실히 깨지는 시점이다. 산업혁명의 완료시기로 보기도 한다. 주경철은 과거 인류 문명의 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이동수단으로 배, 수레, 카라반을 꼽는다. 이중에서 근대이전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것으로 카라반을 꼽는데, 카라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낙타이다. 낙타는 중동사막지역과 초원지대에서 운송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문명의 교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1000년 이상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에서부터 중동과 인도 북부, 중앙아시아에 세력을 가졌던 이슬람 세력이 세계의 중심으로 서양과 동양을 연결해주는 주요한 역할을 하는데 낙타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산업혁명과 더불어 배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서양못지 않게 막강한 해양력을 가진 중국이 스스로 해금에 빠지게 된것이 서양과 동양의 힘차이를 불러일으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 저자는 중국이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데는 명대에 들어 북방민족에 대한 경계심과 이로 인한 수도의 북방으로의 이전, 그리고 중국의 오랜 숙원인 티벳지역과 북방민족에 대한 정벌을 이유로 든다. 확실히 중국입장에선 오랜 숙원을 해결하고, 지금의 강대한 영토의 기반을 마련한 셈이지만 힘의 균형추를 완전히 내어주었다는 면에서 패착일수 밖에 없다. 또한 중국의 해금정책으로 과거 동남아 지역과 인도양에서 적극적으로 교류했던 중국인들이 돌아가지 못하고 지원역시 끊겨 정착민이 화교가 되었다는 설명은 재미난 부분이었다. 반면 서양은 제국들이 중국처럼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열된 상태였다. 그리고 스스로 끊임없는 전쟁속에서도 서로를 멸하지 못하였는데, 이와 같은 분열이 외부제국 구축을 위한 강한 동력이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총균쇠에 나오던 최적 분열의 법칙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1914년은 의외로 환경과 관련한다. 생태제국주의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이는 큰 대륙의 생물들이 작은 대륙의 생물을 자연경쟁에서 압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 대륙의 쥐나 토끼, 엉겅퀴같은 생물들은 호주나, 뉴질랜드, 고립되었던 섬의 자연환경을 압도적으로 지배했다. 유럽의 식민지 경영결과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찾아낸 새 지역에 자신들에게 익숙한 환경을 이식하고자 했고, 그 결과 오늘날 같은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마지막 1945년은 2차대전의 마침해이다. 가장 참혹한 전쟁중 하나였던 만큼 이 분기점의 키워드는 평화이다. 스티븐 핑거의 예를 들며 인류의 문명발달로 평화가 도래하고 점차 폭력이 감소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단순수치에 의거한 핑거의 다소 낙관적 시선을 경계하는 편이다. 저자 역시 인간의 미래를 어느정도 낙관하면서도 조심성을 버리지 않는 것이 문명의 붕괴에서 보여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태도와 비슷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편이다. 

 강의 글 모음이고 저자의 내공이 워낙 대단해 단숨에 읽힌다. 역시 좀 시간이 된다면 하루만에 일독이 가능하다. 제목의 대단함에 비해 크게 세계 역사를 관통하는 느낌은 확실히 부족하다. 약간 억지로 꿴느낌도 좀 있다. 하지만 여러가지 재미있는 개념과 숨겨진 역사적 사실을 보는 재미 역시 쏠쏠해서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