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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기원 - 세계 질서와 부의 운명을 뒤바꾼 방향의 역사
제리 브로턴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7월
평점 :
지구는 우주공간에 머무른다. 태양의 중력에 이끌려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스스로 자전하면서 태양과 같이 우리 은하계를 회전한다. 그냥 우주공간에 머물기에 여기에는 사실 방향이란게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구에 사는 인간은 몇 가지 물리적 지표로 방위를 정했다. 우선 인간은 네 방위를 사용한다. 그것은 인간의 신체가 앞과 뒤, 좌와 우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만약 8면이거나 6면이었다면 반드시 그런 수의 방위를 어떻게든 채택했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손가락이 10개이기에 우리가 십진수를 채택한 것과 같은 이유다.
그리고 이 네 방위는 물리적 근거가 있다. 우선 동과 서는 태양의 자전으로 인해 생겨난다. 이는 시간에 따른 변화축으로 동서 방위의 기준이다. 남과 북은 지구의 극점인 진북과 나침반 발견 이후에는 자북이 근거가 된다. 또한 북쪽의 북극성과 남쪽의 남극성, 정오에 북반구에서는 태양이 남중하고 남반구에서는 북중하는 모습이 물리적 근거가 되었다.
인간은 자신들이 설정한 네 방위에 종교적, 과학적, 문화적 원인으로 나름의 해석과 가치를 부여했다. 책 지리의 기원은 동서남북 네 방위의 역사적 변천을 살펴본다.
1. 동쪽
동쪽은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기본방위로 사용한 방향이다. 인간은 네 방위 중 하나를 기본으로 삼는다. 지금의 현대의 거의 모든 지도는 북쪽이 위에 있는데 이는 지금의 지도의 기본 방위가 북쪽이란 의미다. 그래서 동쪽이 기본 방위인 과거엔 동쪽이 위 방향인 경우가 많다.
동쪽이 기본 방위인 이유는 지구의 자전방향으로 인해 인간 입장에서 해가 뜨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쪽은 하루의 시작, 삶의 시작, 생명의 시작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대부분의 문명이 동쪽을 신성시했다.
문명이 좀 더 정교화하며 동쪽에 대한 숭배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개념과 연결될면서 사회적, 도덕적 의미로까지 확장한다. 동쪽은 고대 중국에서 한자로 태양이 나무에 걸려있는 것을 형상화한 모양이다. 중국은 계절의 흐름을 시계방향으로 따라가는 순환적 기본 방위체계를 고안했다. 그래서 이들은 방위를 동-남-서-북의 순으로 지정한다.
중국의 우주적 세계관에서 쯔웨이는 북극성을 뜻하며, 이는 북극성의 대제인 천상의 쯔웨이 황제가 기거하는 곳이다. 중국의 황제는 천자로 북극성의 천상의 황제가 땅위에 현현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 황제는 북에서 남쪽으로 신하를 굽어본다. 그리고 황제가 왼편으로 보는 것이 오른편보다 우월하다. 이 방향은 신하와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오른쪽이자 동쪽이 된다. 그래서 동쪽은 반대인 서쪽보다 우월한 위치다. 그래서 중국 문화권에서 오른편은 왼편에 비해 우월하고 귀족이나 고위 가문을 의미한다.
유대교, 기독교 같은 유일신 종교들은 동쪽에 대해 애매하다. 이들 문화권 역시 고대에는 동쪽은 신성시하고 우선했다. 하지만 유일신을 발명하며서 태양과 관련된 동쪽에 대한 숭배는 우상은 모시는 행위와 비슷해진다. 그래서 이들은 동쪽에 대한 지나친 신성시는 거리를 두면서도 고대부터 이어져온 동쪽에 대한 우선성도 같이 가져간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자들에게 동쪽은 시간의 시작과 끝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시간의 개념과 네 기본 방위 개념을 동시에 받아들이는게 쉽지 않았다. 이는 삶과 생명이 동에서 시작되어 서에서 끝남과 동시에 하늘이 위이고 지옥이 아래라는 것을 융합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정통 교리의 행동방식은 기독교에서 동쪽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신자들은 동쪽을 에덴 동산이 있는 방향이자 재림의 날에 예수가 예루 살렘을 향해 오게될 방향이라 믿는다. 기독교인들은 동쪽을 향해 기도한다. 그리고 교회들은 제단과 더불어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와 신자들이 모두 낙원이 있는 동쪽을 보도록 설계된다.
이런 기독교의 동쪽에 대한 관념과 원칙을 아드 오리엔템이라 한다. 이는 지금도 전통적 카톨릭 신앙을 구분하는 중요 기준으로 남아있다. 2009년 보수적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아드 오리엔템 원칙에 따라 바티칸에서 공개 미사를 집전했다.
중세의 지도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네 방위를 어떻게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이라는 수직적 서사를 기반으로 하는 신학에 접목시킬지 고민이었다. 위고는 지구를 노아의 방주에 비유했다. 방주의 전면은 동쪽, 후면은 서쪽이다. 서쪽은 최후의 심판이 이뤄지는 곳으로 지옥은 북쪽의 먼 꼭대기다. 남쪽은 다양한 세속적 의미다.
동쪽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이고 생명과 관련하지만 다른 방위들처럼 모순되는 의미도 함축한다. 동은 기본적으로 성스럽고 경의의 대상이지만, 다른 맥락에서는 황무지와 파괴적인 바람, 험난한 바다가 있는 방향으로 두려움과 의심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동쪽은 형벌과 추방의 방향이기도 하다. 아담과 이브, 아브라함의 첩의 자식들이 동쪽으로 추방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쪽은 전반적으로 창조의 방향이다. 기독교는 서쪽은 부활의 방향 동쪽은 생명창조의 방향으로 설득력 있게 동과 서를 구성한다. 이슬람교 역시 동쪽을 신성시하는 기독교의 전통을 계승하지만 강력한 유일신교인 만틈 태양숭배의식을 배척한다. 그래서 코란은 별이나 행성에 대한 숭배를 명시적으로 금지한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태양숭배 인상을 피하기 위해 기도 시간이 일출이나 일몰, 정오를 의도적으로 피해 실시한다.
근세에 항해도구가 발달하면서 방위 개념이 변화한다. 실제적 항해가 중요해지며 성스런 의미로의 동쪽은 의미를 점차 상실하고 안전한 항해가 중요해진다. 15세기 유럽에서는 동쪽에 담긴 종교적 의미에 상업적 의미가 추가된다. 이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과의 상업 육로를 개척하고, 대서양 항해가 성공했기 때문이다. 해양탐사는 네 방위 모두로 확장되며 동쪽을 낙원의 방향으로 보는 기독교적 전통은 희미해진다.
1494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이들은 지구의 반을 동쪽과 서쪽으로 나눠갖는다. 그리고 마젤란의 항해로 유럽인들이 지리적 상상 속에서 동반구와 서반구가 서서히 구분되기 시작한다. 유럽인들의 항해는 동쪽 방향이었는데 동서 방향은 명확한 천문학적 기준이 없기에 항로 설정에 문제가 있었다. 다만 적도와 평행한 위도를 이용이 가능했는데 이를 위하 남극과 북극을 연결하는 가상의 자오선이 생겨났다. 1884년 기준 자오선을 국제 자오선 회의에서 그리니치로 결정하게 된다.
동서 항해는 거리 측정 문제도 있었다. 동서 거리를 정확히 측정하려면 지구의 순행과 정확한 시간을 측정해야 한다. 문제는 선상위에서 온도, 습도, 기압, 해상의 출렁임으로 이게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1730년대 영국의 시계 제작자인 존 해리슨인 부유식 매커니즘을 채택한 해양용 크로노미터를 개발하며 이것이 해결된다. 이느 해상의 시간과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하게 했다.
이 거리와 경도 문제의 해결로 영국은 해상무역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나침반과 크로노미터의 사용으로 서와 북을 유럽과 동일시하며 문명, 창의, 번영의 장소로 보는 새로운 지정학이 생겨난다.
동에 대한 관념은 심지어 오리엔탈리즘으로 치닫는다 이는 1747년 영국의 역사가 조지프 스펜서가 창안한 개념이다. 그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낭맍거이고 숭고한 오리엔탈리즘을 언급했다. 그래서 이 개념은 처음에 호메로스 당시의 동쪽인 터키, 팔레스타인, 시리아, 아라비아를 다루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도, 일본, 중국, 한국 등 극동을 아우른다.
유럽의 내재적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자 동양국가의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가 자리한다. 그 뿌리는 헤로도토스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는 동과 서의 문화적 차이로 갈등하는 모형을 바탕으로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아테네 전쟁을 설명한다. 그는 자유를 사랑하는 아테네와 전제적 노예사회로 페르시아를 대비시킨다. 헤겔은 오리엔탈 문화를 19세기 제국주의 기독교 역사철학의 열등한 발현으로 이해했다. 그는 동양의 특징을 전제주의, 비합리성, 잔임함, 야만성으로 꼽았고 그러면서도 정신의 여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역사의 방향이 동에서 시작해 서에서 끝났다고 믿었고, 이런 시작은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화와 노예화를 정당화했다.
최근 동아시아가 경제적으로 다시 부상하며 동쪽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은 많이 희석되고 있다. 동은 더 이상 유럽 식민주의자들의 기회의 땅이 아니며 어쩌면 세계의 미래가 나아갈 곳으로 재해석될 수 도 있다.
2. 남쪽
동서축과 달리 남쪽은 북쪽 대비 매혹적인 공간이자 가난한 공간이다. 남쪽은 수세기의 역사가 사라진 공간이며 북반구 사람들의 이상과 환상이 머무는 이미지다. 그리고 남쪽에 대해서만 영어로 딥사우스, 다운 사우스 같은 표현이 사용된다. 이는 남쪽만이 깊이가 부여된다는 의미다.
고대 이집트에서 나일강은 남북으로 흘러 상이집트에서 하이집트로 흐른다. 그래서 여기서는 남쪽이 주요 방위로 자리한다. 고대 중국에서도 남쪽은 정치적, 제국주의적으로 중요했다. 중 황제는 용좌에 앉고 이는 남향이었다. 황제는 신하를 남으로 내려봤고, 그곳은 성장과 풍요의 방향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방위 체계는 2가지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를 5대 기후대로 설정했고, 민족지학적 차원의 방위 개념이었다. 중세유럽은 그리스, 로마 전통에 성경의 창조관과 조화를 이뤘다. 처음엔 남쪽을 순수성의 이미지로 다루다가 다양한 부정적 의미가 등장한다. 남쪽은 문명화 되지 않은 유목생활을 하는 호전적 사람들과 뱀과 같이 기이한 동물이 산다는 이미지다.
중세에는 이런 흐름의 변화가 생긴다. 중세지도에서는 남족에 기이한 동물과 사람 그림은 사라진다. 대신 지도제작자들은 남쪽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를 가미하여 바람의 머리를 창안한다. 이는 전형적인 곱슬머리 흑인의 얼굴이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쪽에 대해서 거대한 나라가 존재한다는 희망적 믿음이 생겨난다. 유토피아나 아틀란티스에 대한 관념이 그러하다. 그래서 남쪽은 무한한 가능성과 재생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고 이는 남쪽에 대한 탐사로 이어진다. 1640년 네덜란드인들은 호주 서해안과 테즈메니아에 도착한다. 1711년 영국은 남해회사를 설립까지한다. 이는 위의 생각에 지구가 균형을 이루려면 북반구 만큼의 땅이 남반구에도 마땅히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에 기댄 것이다. 하지만 남쪽엔 북반구 만큼의 땅이 없었고 남해회사는 파산으로 이어진다. 제임스 쿡은 3차례 남쪽을 항해했고 이로써 그는 남반구에 커다란 땅이 없음을 입증했다. 그럼에도 남에 대한 신화는 소멸하지 않았고, 일부 유럽 작가와 예술가들은 이 지역을 경이로움으로 생각했다.
남반구의 식민국가들이 독립 및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남쪽으로 규정되고 북쪽이 기준인 생각에 불만이 생긴다. 19세기 말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독립투쟁이 이어지는데 이들은 제국주의에 맞서 콜럼버스 이전에 중앙아메리카 우주관에서 가져온 개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창안한다.
그리고 미개발된 남반구 지역을 통칭하는 글로벌 사우스란 개념이 20세기 등장한다. 이는 장소보다는 관계에 가까운 개념이다. 왜냐하면 남반구는 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를 통칭하는 매우 넓은 지역을 모두 아우르기 때문이다. 남쪽은 그 드넓음에도 그냥 통칭된다. 동쪽과 달리 중남이나 극남 같은 표현은 그래서 없다. 동쪽과 달리 남쪽은 방향이라기보다는 사고의 틀이기 때문이다.
3. 북쪽
북쪽은 황량하고, 춥고, 어두운 이미지다. 그리고 북은 개인 정체성을 정의하는 강력한 지표다. 이탈리아 미국에서 북쪽 출신은 번영과 부유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가난하고 억센 지역이다. 북쪽은 당연히 초기 문명에서 동서 축보다 늦게 주목받는다. 하지만 기후나 나침반에서 지리적 극점과 개인의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현대사회에서 주요 방위로의 위치를 차지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여러 고대사회는 마니교 같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그들은 빛과 어둠, 선과 악처럼 대립하는 힘과 같은 영적 존재가 세상을 움직인다 생각했다. 그리고 빛과 영적 계시가 북쪽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마니교에서 생명의 나무는 위인 북쪽에 위치하고 죽음의 나무는 남쪽에 위치한다. 조로아스터교는 반대로 창조신 아후라마즈다가 기거하는 방향이 남쪽이다. 그래서 반대쪽인 북쪽은 지옥이 있는 곳이다.
고대 중국에서 북쪽은 복합적이다. 제국의 조화로움과 죽음을 같이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는 기하학을 근거로 북쪽을 방위로 삼았다. 하지만 유대기독교에서는 그리스에서 형성한 북에대 한 자연주의적 과학적 개념을 수용하지 않았다. 유대교는 오랜 기간 동쪽이 기본 방위였다. 구약에서도 북쪽은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이런 북쪽에 대한 유대교의 부정적 인식은 기독교의 종교의식과 건축에 영향을 미친다. 중세시대 일부 교회는 북쪽을 악마의 문을 내었고 세례식 같은 경건한 의식에서 악이 빠져나가도록 문을 열어두었다. 또한 살인이나 자살, 추방된 이들의 시신을 교회의 북쪽에 매장했다. 중세지도에서도 북쪽은 얼어붙고 괴물과 악령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북쪽은 창조의 중심이면서 구원의 중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위상이 동쪽의 전통성에 비하면 중세까지 크게 미진했다. 이 관계를 역전시킨게 나침잔이다. 북쪽은 나침반 시대이후 지도의 상단, 즉 기준을 차지한다. 그것을 고대 그리스 기히학과 중세 지중해 항해에서 나침반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성향은 매우 강해져서 16세가 열강이 세계를 집어 삼킬 무렵 다른 방위를 기준으로 하는 전통적 지도들은 거의 모두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북과 남의 관계도 북이 남을 정복하는 구도가 형성된다.
북쪽은 뜻하는 north는 고대 그리스어로 아래나 저승을 의미하는 네테토스, 산스크리트어로 지옥을 뜻하는 나라카, 고대 움트리어로 동을 볼 때 태양의 왼편을 뜻하는 네르투르와 연결된다. 그만큼 어원은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이게 나침반 시대에 방위의 기준이 된 것이다. 그 시작은 프톨레마이오서의 지리학이다. 그는 북쪽을 기본 방위로 삼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플랑드르의 지리학자 메르카도로가 자신의 이름을 딴 투영법 지도를 고안하면서 북을 방위 기준으로 삼은 것이 상당했다. 당시 항해사들은 자기 편각과 지구곡률로 인해 지도상 직선을 따라가면 실제 항로와 점차 괴리가 생기는 문제를 갖고 있었다. 메르카도로는 이를 적도를 기준으로 평행선이 점점 길어지는 비율에 따라 극점으로 갈수록 위도 간격이 넓어지는 지도를 만들어 해결했다. 이 지도상의 직선항해는 실제 직선 항해와 상당히 일치했다. 다만 이 지도는 극 지방을 무한히 확대하는 문제가 있어 메르카도로는 지도에 극부분을 다른 축척으로 따로 그려넣었다. 이 지도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무려 400년간 세계를 지배한다. 놀랍게도 메르카도르가 북을 기준으로 삼은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하지만열강의 패권 지배와 이 지도의 활용한 전통적으로 죽음을 의미하는 북쪽을 기준 방위로 만들게 된다.
이 시기 중국 명나라는 셸던 지도를 사용한다. 이는 중국 본토와 동남아시아를 표기하는데 나침반 로제와 축척을 표시하는 막대가 있다. 나침반 로제는 72방위를 표시하고 중앙에는 나침반을 의마하는 뤠징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는 남을 지칭한다. 나침반은 남쪽을 가르키지만 지도 자체는 북쪽을 위로 한다. 중국에게 북쪽은 복잡하고 상호모순적 개념이다. 자금성은 자색의 금지하는 요새다. 자색은 북극성과 신화에 등장하는 옥황상제의 거처이기도 하다.
북극권은 지구 육지 면적의 15%나 된다. 하지만 인구는 극히 적다. 이들은 식민지 시절 땅의 척박함으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가 19세기 고래와 모피 무역이 성행하며 백인과의 접촉이 잦아져 감염병과 자원 경쟁으로 원주민의 50-85%가 절멸한다. 이누이트에게 북쪽 개념은 없다. 자신을 북방으로 인식하지도 않고 북위 68도 이상에서는 북극성이 상공에 너무 높게 뜨기에 항해를 위한 기준점도 되지 못한다.
유럽에서는 바이킹등 노르만으로 대표되는 오래된 북쪽과 백색의 민족적 순수성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생각이 결합되어 백인의 의무라는 생각이 제국주의적 이념과 결합한다. 백인의 의무는 유럽, 미국이 유색인종의 땅을 탐험, 정복, 문명화하는 것이다.
19세기 말 북쪽 극단을 발견하려는 경쟁이 붙는다. 1870년대 미국의 탐험가 피어리는 무려 8차례나 북극 원정을 떠난다. 그에게 북극이란 극단이자 세상의 정점, 문명화된 백인 남성의 정복을 기다리는 마지막 지점이었다. 피어리와 쿡은 북극점에 대한 도착 여부로 서로 다투었지만 사실 진정한 북극인 지구 자기와 자전축이 꾸준히 흔들리기에 역시 같이 꾸준히 조금씩 변화한다.
20세기 들어 유럽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탐험이 쇠퇴하고 탈식민화 흐름이 나타나면서 북을 보다 심오한 태도로 바라보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이는 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 북방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민족적 환상주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은 동부에서 시작하여 국토를 서부로 개척했기에 서부를 중심으로 삼는 국가다. 하지만 캐나다는 국토를 바라보는 관점이 남북축이다. 캐나다의 노스웨스트 준주, 누나부터, 유콘은 캐나다 국토의 40%나 되지만 인구는 1%에 불과하다. 1960년 캐나다 지리학자 루이 에드몽 아믈랭은 민족, 지리학적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글로벌 북방지수 개념을 창안한다. 이는 위도에서 기후, 식생, 그리고 경제활동 및 생활 환경에 이르는 열 가지의 정량 요소를 0-100점으로 평가하고 북쪽 다움의 수준이나 상태를 평가한다. 이 지수 기준으로 캐나다 영토의 70%가 북방지역으로 분리된다.
북극은 현재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정치 싸움터가 되고 있다. 캐나라, 미국, 러시아, 노르웨어. 아이슬란드 6개 나라가 북극을 두고 영해, 경제수역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흐름으로 인해 북극은 가까운 장래 새로운 지평이 될 가능성이 높다.
4. 서쪽
서는 동과 같이 해의 움직임에 따른 시간축을 따른다. 전근대 사회에서 서는 해가 지는 방향이기에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작, 부화, 축복과 안락, 사후세계, 낙원이 있는 곳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아틀란티스를 비롯한 환상의 영토를 모두 서쪽에 존재한다. 반지의 제왕에서도 여정을 마친 프로도가 떠나는 땅도 서쪽이다.
하지만 서쪽은 전반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로 종교적 추구나 존재를 위한 방위로 선택된 적이 없다. 많은 언어에서 서쪽은 분명 부정적 의미다. 하지만 윤회의 의미가 생겨나면서 새로운 시작, 새로운 세계로의 가능성이 내포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이시스와 죽음의 여신 아멘테트는 모두 서쪽에 자리한다. 이는 서쪽이 죽음의 생명의 새로운 실현 양자를 모두 내포함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인은 유럽, 아프리카 서쪽에 대륙이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대서양 어딘가에 섬이 있고, 여기에 창조주의 희망과 두려움이 있다고 상상했다. 이 섬의 이름이 엘리시움이다. 축복받은자들과 영웅들이 사후에 가는 곳이라 생각했다. 헤라클레스는 12개의 과업을 수행했는데 11번째 과제가 머나먼 서쪽의 헤스페리데스가 지키는 황금 사과를 훔치는 것이다. 그는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는 아틀라스를 속여 사과를 갖고 오게하고 다시 속여 사과를 탈취하고 하늘을 다시 받치게 한다. 12개 과업의 완성으로 헤라클레스의 기둥이 완성된다. 이는 지브롤터로 유럽의 경계를 의미한다. 대서양은 아틀라스의 이름을 딴 것으로 모로코의 산맥이 뻗어 나오며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플라톤은 대서양 어딘가에 아틀란티스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가능성보다는 아테네의 정치를 비판하고자 이상적 섬으로 그곳을 상정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진지하게 수세기간 받아들였다.
서쪽은 경외감을 주는 바우이였고, 이는 지형적, 역사적 가정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머나먼 바다만 보였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서쪽에 대해 일관되게 거리를 두고 부정적 이미지를 유지했다.
다만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하자 서쪽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변화한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원주민과 조우하면서 부와 구원, 필연적 운명의 실현이 서쪽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6세기 중반부터 스페인 사람들은 남미에서 황금도시 엘도라도를 찾아서 헤맨다. 16세기 영국에서는 성직자와 식민주의자들이 서쪽이야말로 영국 신교도와 상인을 위한 곳이라 강조한다. 그리스도 왕국의 확장과 무역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태평양 연안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그곳에 정착할 신성한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원주민 사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서부 개척에 대한 사명감은 이후 미국 전반의 회화적, 문화적 원동력이 된다.
19세기 영어권 세상에서는 서쪽 세계 일부를 지칭하는 서구라는 개념이 정립한다. 고대부터 내려온 서쪽에 대한 상호모순적 믿음들이 하나의 지배적인 근대 정치 개념으로 변형된 것이다. 서구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전환한다. 오늘날 서구는 일반적으로 유럽에서 시작해 북미에 이르는 문화와 문명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사회 및 종교와 대립 개념이다.
비서구 지역들은 19세기말-20세기 초 서구 열강에 비해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채우려 시도한다.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 터키의 지야 괴칼프가 대표적이다. 지야 괴칼프는 서구적 가치와 터키 민족주의 이슬람 사상을 융합하려 했다. 1917년 소비에트 혁명은 서구 혁명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는 오히려 서구 세계에 대해 도전하는 아시아 혁명으로 여겨졌다. 지배와 착취의 동양 개념인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아시아 아프리카의 정치인 작가들은 옥시덴탈리즘 개념을 창안한다.
이는 서구 인간과 사회를 다양한 형태로 물질주의적이고,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며 신앙을 상실하고, 폭력적인 후기 십자군 같은 이미지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란 작가 아에다마드는 서구가 이란을 병들게 하는 심각한 질병이나 감염원으로 묘사했다. 중국역시 마오시대까지 서구를 기피하고 동방을 진정한 기원이자 정치의 순수성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이후 모든 것이 실패하고 공허해지며 동방은 더 이상 추구하지 않았다.
최근 아이러니하게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가 경제적으로 감당이 힘들어지고 혼잡하고, 환경적으로 황폐하하면서 디스토피아로 자리잡고 인근 유타, 네바다, 애리조나, 텍사스등의 동부로의 이주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인 지리적으로 동쪽으로 이동함에도 이를 진정한 서부로 되돌아가기 위한 이주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