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다운 공간에서 살고 싶다
오승욱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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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평생 함께 하는 곳은 집, 가족, 직장이나 학교등 내가 속한 집단 일 것이다. 사람은 이 3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특히, 집은 가족과 함께 하는 곳일 수도 있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더욱 특별하다. 그리고 한국인의 집의 형태는 대부분 다세대 주택이고, 그 중에서 단연 아파트다. 아파트는 상당한 편리함, 그리고 산업화에서 한국적 부의 상징, 땅이 좁은 수도권에 밀집하며 가격이 크게 올라 투기의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한국인은 아파트를 선호한다.

 그런데 아파트는 천편일률적이다. 개개인의 다름을 충족시켜주기 어렵다.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아파트를 층마다 또는 호마다 조금씩 다르게 지으면 어떨까? 그런데 이 쉬워보이는게 어렵다. 이걸 모두 다양하게 하면 구조, 설비, 소방계획이 모두 틀어져 건축비 상승이라는 현실적 요인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재밌는 점은 한국인이 아파트에 머무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나마 나를 살릴 수 있는 답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한때 한국에는 단독주태과 전원 주택의 붐이 다소 일긴 했지만 결론은 다시 아파트였다는 점에서 이런 생각은 주목할 만하다.

 90년대 지은 구축아파트는 현관이 매우 작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즘 그런 집을 가보면 문을 열자마자 바로 온집안이 한 눈에 들어와 어색하다. 특히, 배달문화가 보편화한 요즘이라면 이는 사생활 노출 문제로도 이어진다. 이런 경우, 현관을 따라 가벽을 세우거나, 그게 아니라면 현관과 인접한 방의 벽을 허물어 방의 크기를 조금 좁히고, 현관을 가리는 형태의 구성이 가능하다.

 요즘 아파트는 4베이 구조다. 방의 개수를 늘리고, 가능한 많은 공간을 남향배치하는데 이러면 필연적으로 죽은 공간인 방을 따라 이어지는 좁은 복도가 생겨난다. 이 구조에서는 방이 많아져 알파룸이나 남는 공간이 생겨 요즘 세태에 맞다. 2000년대는 3베이가 보편적이었는데 이 구조는 거실과 안방이 남향이고, 주방과 드레스룸을 북으로 배치하는데 채광과 통풍에 유리하다. 

 한국은 집단문화가 강하다. 그래서 한국의 자동차들은 거의 무채색 계열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집 내부도 그러하다. 보여지지 않음에도 대부분의 건물 외부와 내부가 화이트와 우드톤이 표준이다. 색은 사실 다름을 드러내는 언어다. 공간의 온도를 바꾸고 우리의 생각과 행동도 바꾼다. 베이지나 브라운 계열은 공간을 포근하게 한다. 그리고 네이비나 차콜은 짙은 색으로 공간과 생각을 깊게 한다. 선명한 노랑이나 코럴 컬러는 에너지를 올려준다. 

 집은 백반 같아야 하는 존재다. 백반은 대단히 맛있지는 않아도 영양가가 있고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으며 속을 편안하게 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대단하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만족을 주고, 무엇보다 편리해야 한다. 그래서 집은 예쁘기만 해서도, 편리하기만 해서도 안된다. 

 층고가 매우 높은 집은 개방감이 매우 좋다. 요즘 아이들의 창의성에도 높은 층고가 좋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경우 한국의 날씨에 부적합하다. 겨울엔 매우 춥고, 여름엔 매우 덥다. 풀하우스 같은 복층 통창도 그러하다. 여름엔 너무 강한 일사가 집안 전체를 향하고, 겨울엔 춥다. 그래서 이런 예쁜 디자인은 편리함을 크게 해친다. 

 사람이 집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방을 보는게 좋다. 거기에 나를 말하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방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적는다. 정리, 환기, 청결, 정리 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다. 그리고 방의 물리적 조건을 본다. 창의 크기, 조명, 채광, 벽지. 바닥색, 천장 높이 등이다. 마지막은 방의 구성물건이다. 침대, 책상, 의자, 책장, 옷장, 침구 등이다. 이 모든 것을 적은 후, 종이를 반으로 접어 현재 마음에 드는 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나눈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집이 대충 그려진다. 

 사람은 공간에 다음의 요소로 끌린다. 우선, 장소 그 자체다. 휴양지, 아름다운 건물 등이다. 다음은 공간의 형태다. 천장의 높이, 폭과 길이, 시선구조, 바닥 형태 등이다. 세번 째는 공간의 구성요소로 마감재의 재질과 색, 빛의 방향, 조도, 가구와 소품 등이다. 마지막은 개인의 경험이다. 내가 어려서 붉은 벽돌집과 정원이 있는 집에서 가족과 추억을 쌓으며 자랐다면 그 경험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한다.

 집에서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조명이다. 집에 들어오면 가장 처음 맞는 것은 현관 조명이다. 이 조명을 전구색이나 주백색으로 바꾸면 한층 따뜻해진다. 간접 조명처럼 아래서 나오게 하거나 여러 방향에서 조명이 나오는 것도 분위기를 바꾼다. 

 현관의 신발잘은 그냥 신발만 신는 곳이지만 공간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문구나 작은 엽서 한장만 놓아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간편한 의자를 비치하면 좋다. 신발을 신을 때 편리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다르게 외국은 주택이 현관을 지나면 개인 공간이 먼저 나오고 복도를 따라 들어가야 거실이나 주방 등의 공용 공간이 등장한다. 한국은 들어가자마자 공용공간이 먼저 나온다. 이는 전통가구의 마당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의 전통 집은 문을 들어서면 외부 공간인 마당이 가장 먼저 나왔고 여기서 서로 떠들고 즐기고, 일을 하며 같이 머물렀기 때문이다. 

 아파트 중심의 한국 거실은 천편일률적으로 큰 TV와 그것을 마주보는 소파가 있다. 하지만 최근 TV가 없어지는 추세다. 이동식으로 사용하거나, 있어도 거실 정면에 위치하지 않는다. 거실이 나와 가족이 어떻게 머무르는지에 대해 개념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주방은 동서양 모두 노동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향상되고, 가족이 평등해지며 노동공간이 아닌 같이 하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그래서 주방은 과거 집 바깥에 있거나 외진 곳에서 음식을 만들어 바치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같이 즐기고, 요리하고, 먹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아일랜드 식탁을 두고 조리하며 정면으로 거실을 보거나 옆으로 거실을 보는 구조다. 

 그리고 요리도 조리로 변화중이다. 과거처럼 모든 것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 조리된 것을 꺼내서 플레이팅 하기 편한 구조로 변화중이다. 그래서 수납이 중요하다. 펜트리가 생긴 이유다. 냉장고도 하나로는 모자라서 두 개가 보편화하고 있다. 주방은 이제 요리 공간이라기 보다는 간편식, 조리로 바뀌며 가전도 많아졌다. 에어프라이어, 커피머신 등이다. 

 한국의 욕실도 최근 집안에 들어왔다. 한국 최초로 내부에 화장실이 들어온게 1958년의 종암아파트다. 이 아파트부터 부엌과 화장실이 실내로 들어왔다. 욕실이 실내로 들어온 것은 가족 안에서도 사적 영역이 존중되고 경제적 수준도 향상되었음을 의미한다. 최근 화장실은 2개가 보편적 추세지만 그것도 모자란 경향이 있다. 이 경우 세면대를 바깥에 추가로 설치하는 것만으로 많은 것이 해결된다. 

 한국의 화장실은 변기, 세면대, 샤워공간, 욕조가 같은 공간에 있는 습식구조다. 그래서 벽과 바닥이 타일로 마감처리되고 방수를 한다. 서양은 화장실, 샤워실이 분리되고, 바깥에 세면대가 있는 경우가 많으며 건식이다. 한국의 화장실은 마당에서 하는 일과 그 인근의 화장실이 결합되어 아파트의 경우 일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물을 많이 사용하고, 물청소가 일반 상식이다. 하지만 잦을 물청소는 건조를 필요로 한다. 최근엔 건식 욕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한국의 욕실은 물을 많이 쓰기에 대개 집의 안쪽에 위치한다. 겨울 동파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화장실처럼 모든 것을 모으면 배관이 짧고 단순해지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한국의 욕실은 춥다. 난방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화장실은 방수층과 배수 경사로 바닥이 얇을 수 밖에 없어 한국 특유의 온돌 난방이 들어가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화장실의 경우 보온과 건조는 구조상 해결이 어려우므로 전자기기의 활용을 추천하며 요즘 그런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안방은 과거 가장 컸고 대개 남향이었지만 최근은 수면 기능으로만 활용되며 크기가 줄어들었고, 오래 수면을 하기 위해 북향인 경우도 많다. 줄어든 안방엔 드레스룸과 파우더 룸이 따로 들어서고 있다. 이둘은 기능적 용도도 있지만 나를 드러내는 공간으로 최근 점점 기능이 확대중이다. 

 최근 아이방을 많이 꾸미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아이는 어릴 수록 부모와 함께하는 경향이 많아 애써 방을 구며도 아이가 머물지 않아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이가 부모와 떨어지는 나이가 되면 이미 꾸민 공간이 아이에 어울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아이의 공간은 아이가 독립할 무렵아이의 성향과 학습을 고려해 꾸며주는게 좋다. 

 한국의 고령화가 심해 노인을 위한 주거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노인의 집은 예쁘기보다는 안전해야 한다. 현관의 시팅존, 작은 스풀, 화장실은 미끄럽지 않아야 하고, 손간의 온도 변화로 현기증이 일어날 때 잡은 핸드레일이 있어야 한다. 핸드레일은 변기 옆, 샤워공간, 욕조 측면에 설치한다. 거실벽과 침실주변, 복도, 주방도 있으면 좋다. 공간도 단차가 가급적 없어야 한다.

 노인이 되면 수정체가 변하며 색 인지가 달라진다. 파랑 같은 차갑고 깊은 색이 예전보다 어둡게 인식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색감이 전체적으로 잘 안 읽힌다. 그래서 따뜻한 색이 오히려 편안하고 좋다. 조명은 더 섬세해야 한다. 너무 강하거나 갑작스러우면 좋지 않다. 은은한 간접 조명, 수면 등이 적합하다. 환기와 채광도 건강과 직결되지 중요요소다. 

 노인의 자립성과 존엄을 지키는 것은 한 끼 식사를 스스로 준비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외출이다. 노년의 삶은 집바깥으로 스스로 나갔다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어야한다. 그래서 동네의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중간에 쉴만한 곳이 있는 장소가 좋다. 나가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우울해지며, 신체활동이 줄어 건강이 나빠진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아파트는 오히려 장점이 된다. 구조가 단순하고, 주변에 쉴 곳이 있으며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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