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 - 우리 고대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정형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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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역사, 특히 상고사에는 이상한 부분이 있다. 바로 기원전 2333년 건국한 고조선과 그 이후 삼국시대까지의 연결고리다. 고조선은 2천년 정도로 그 역사가 매우 긴데, 하나의 정치 단일체가 이렇게 긴 기간 이어지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건국 후 1500년간 이렇다 할 역사적 서술 없이 이어지다 중국 춘추시대 연나라와의 충돌, 그리고 기자조선, 한씨조선, 위만조선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언급되다 통일 왕조인 중국 한나라와의 갈등으로 멸망한다. 그리고 고조선 아래쪽, 한반도 한강 이남 지역에는 진이라는 연맹체에 가까운 나라가 있었다. 이들도 고조선의 멸망과 비슷한 시기에 사라진다.

 이후 고조선에 있던 지역엔 고구려, 부여, 숙신, 옥저, 동예 등이 들어서고, 아래 쪽엔 삼한이 있다가 이후 백제, 신라, 가야가 들어서며 삼국시대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역사 학계의 일부학자들은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고조선의 건국 시기는 실제로는 기원전10세기 정도로 비정하는 경우도 많다. 그때서야 객관적 증거라 볼 수 있는 중국의 역사기록에 조선이 확실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중국의 사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 고려 중기에야 만들어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구려는 유기, 백제는 서기, 신라는 국사를 편찬했다. 또한 멸망한 조선도 역사서를 남겼을 가능성이 높다. 삼국은 자신들의 뿌리이자, 전 시대인 상고사를 자세히 서술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남아있지 않다. 때문에 우리는 어쩔수 없이 불완전하게도 남이 우리를 서술한 것으로 우리의 상고사 퍼즐을 맞춰야만 한다. 

 그런데 이는 문제가 많다. 다른 나라인 중국은 우리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기록을 했으며, 자신들의 입장에서 왜곡해서 기록하기도 하고, 같은 지역, 같은 민족, 같은 국가더라도 시기에 따라 명칭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중국은 다른 나라의 말을 자신들의 한자로 음차해서 기술해버려 더 혼란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중국은 영어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예수 그리스도로 음차해 버리고, 네덜란드를 뜻하는 홀란드도 화란으로 음차해 버린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지만 만약 세계가 멸망하고 지금의 기록이 전무한 상황에서 먼 훗날의 후손들이 이것을 보고 둘을 등치시킬 수 있을지 심히 의문이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감안해서 상고사의 퍼즐을 맞춰야 하기에 여기에는 반드시 실증적인 자세로 임하기는 어렵다. 다소의 합리적인 상상과 개연성으로 퍼즐을 맞춰나가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록만으로 역사를 보면 서로 상반되는 기록도 많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우리만 갖는 것도 아니다. 역사적 기록은 상실되거나 아예 기록이 없는 경우도 많기에 다른 나라들도 이런 상상과 퍼즐 맞추기식 역사연구를 진행한다. 

 책은 한반도를 진인의 땅이라고 주장한다. 즉, 진인이 우리의 민족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직계 조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상한 대목이다. 한국을 뜻하는 즉, 우리 역사상 조상들이 칭한 국가나 민족의 호칭은 고조선과 조선이 사용한 '조선', 고구려와 고려가 사용한 '고려', 그리고 삼국이 자신들을 뜻한다고 여기기도 했고, 삼국시대 이전에 한강 이남에 있었던 '한'이 대표적이다. 어디에도 진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진'이란 국호나 호칭은 역사상 여러번 있었다. 우선 언급한 고조선 시대 한강 이남을 차지했던 '진', 그리고 고조선이 있었을 시기 주변에 있었던 '진번', 삼한 시대의 '진한' , 마지막으로 대조영이 발해를 세우고 사용한 첫 국호인 '진'이다. 때문에 '진'이란 명칭도 우리 역사와 무관치 않고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중국의 기록과 최근의 고고학 연구, 다양한 문헌,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총망라하여 자신의 합리적 개연성과 상상력을 동원해 한국의 상고사를 복원해나간다.


1.공공족과 단군 숙신

  먼저 진인의 조상을 다루는데 그들은 지금 중국 황하문명에 자리한 '공공족'이다. 물론 공공족도 이주민이다. 세계 4대 문명 중 황하 문명은 시기상 다른 문명보다 그 발원이 늦은 편이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펴져나가 지금의 서남아시아와 유럽을 채우고 아시아로 향했다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공공족이 서남아시아 지역쪽인 메소포타미아의 수시아나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천산산맥을 너머 중원으로 들어왔다고 비정한다. 이들을 기원전 5천-3천년 경 중국의 앙소문화의 주인공인데 앙소문화의 채색토기와 수시아나의 채색토기의 유사성, 농사의 신이나, 물의 정령등이 채색토기에 같이 등장하는 것을 그 증거로 본다.

 공공족은 상징문양이 있는데 가운데 工있는 공자는 하늘과 땅을 막대기로 연결한 것으로 신단수다. 그리고 좌측에는 태양이 있고 오른쪽에는 뱀이 있다. 공공족은 태양을 숭배한 것으로 보이는데 뱀은 태양의 햇살이 대지로 침투하는 것으로 여겨 생명의 근원이자 상징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지금의 랴오하 강, 즉 요하에는 동북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명이 공공족 이전부터 존재했다. 오랫동안 중국은 중국 문명의 시작은 황하유역으로 여겼지만 요하에서 더 수천년 더 오래된 문명이 발생함에 따라 자신들의 문명의 기원을 이미 이쪽으로 태세전환한 상태다.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농경이 아닌 유목이 더 적합한 이 지역에 고도의 신석기 농경 문화가 있었던 것은 당시 기온이 지금보다 무려 1.5-2도 정도 높아 이 지역이 오히려 중원보다 농경에 더 적합했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문화를 홍산문화라고 부른다. 신석기 후기 요하 상류와 대릉하 상륭의 문화로 기원전 4500-3천년 경이며 제5의 문명발상지로 여겨진다. 홍산은 적봉시 동북방의 붉은 산을 의미한다. 여기서 거대한 제단, 여신묘, 돌무지 무덤 등 초기 국가단계 수준으로 여겨질만한 문물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여신묘를 보면 다양한 동물 석상이 있는데 가운데 곰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곰을 숭배하는 부족이 이 지역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후기 홍산문화는 중원의 앙소문화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차차 융합한다. 홍산문화 지역의 이주민 중 일부가 내려와 중원인근에 자리한다.저자는 그것을 염제와 황제의 무리로 파악한다. 이들은 처음엔 공공과 공존하지만 차차 세력을 키우고 황제가 치우와의 탁록대전에서 승리하게 되자 황제계가 중원을 차지하게 되고 공공족은 동북방으로 밀려나게 된다. 공공족은 중국의 오랜 사서인 사기, 서경, 순자, 열자, 회남자, 산해경 등에 언급되는데 모두 적대적 세력으로 기술된다. 

 저자는 이 선진적 농경기술을 가진 공공족을 단군 신화의 환웅 집단으로 파악한다. 이들이 앞선 농경 기술을 바탕으로 홍산문화권의 곰부족과 연합하게 되고 그래서 생겨난 정치체제가 고조선이 되는 것이다. 

 중국은 황제계가 더 앞섰던 홍산문화권에서 발원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황제를 곰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황제계는 여신묘에 새의 석상도 있었는데 곰보다는 이쪽과 더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만약 황제계 역시 곰과 관련이 있는 집단이었다면 중국과 한국은 상고사의 먼 같은 조상에서 기원한 셈이 된다. 

 기록에서 고조선의 건국 시기는 중국의 요임금 즉위 시절로 비정한다. 송나라의 자치통감은 이 시기를 무진년으로 비정하고, 제왕세기에서는 갑진설로 비정하는데, 조선초 서거정이 동국통감에서 갑진설을 따랐다. 그래서 조선왕조는 단군 원년을 요임금의 원년을 요25년인 무진년으로 잡아서 단군 조선의 원년을 기원전 2333년으로 정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중국의 기록에는 주변에서 이렇게 강력한 정치체였을 조선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 하지만 중국의 사서에는 요순 시기에 숙신과의 교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저자는 조선을 숙신으로 파악한다. 숙신과 조선 모두 주신을 한자로 음차하여 표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다른 표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청의 흠정만주원류고는 숙신의 본음을 주신이라고 기록한다. 그래서 저자는 지금의 고조선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서의 홍산문화 지역에 숙신이 있었던 것으로 기술한다. 


2. 후조선과 진국

 조선은 천년 이상을 존속하다가 중국의 상나라 무임금 시기에 멸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이유를 두 가지로 파악한다. 첫번째는 정치적 원인이다. 중국은 중원에 강력한 통일왕조가 전성기를 맞이하면 거의 반드시 주변 민족을 정복하거나 복속한다. 상나라 무임금 시기 나라가 강성했는데 이 시기 주변 민족에 대한 대대적 정벌을 단행했고 이들은 상에 밀려 근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흉노의 공격이 게르만을 밀어내고 그것이 로마 멸망의 원인이 된 것처럼 이들 역시 조선의 근거지로 밀려들게 되었다. 이것에 멸망의 대외적 원인이다.

 다른 하나는 환경적 요인으로 급격한 기온의 저하다. 농업지역이었던 이 지역의 기온이 유목에 적합한 지역이 되었고 이는 조선의 쇠퇴로 이어졌다.

 단군 숙신의 기존 주민들은 새로운 유목민들에게 밀려나서 요동과 한반도 서북부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들을 진인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이들은 이 지역에서 고인돌 문화를 창안한다. 이 지역에 고인돌이 무척이나 많고 고조선의 대표적 표지인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 집중 지역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다. 기존 단군숙신이 있던 요서는 유목민의 터전으로 무려 164년 간 공백지로 남는다.

 그리고 기원전 1046년 상이 망하고 주가 등장하자 상의 주민 일부가 동북으로 이주하고 기존의 요서 진인 집단과 같이 조선을 계승한다. 이것을 저자는 기자 조선으로 파악한다. 초기 기자조선은 과거 단군 숙신과 비교할 때 매우 미약한 세력에 불과했다. 하지만 주변의 연나라와 관계를 맺으며 독자적 세력으로 성장해나갔고 대릉하 중류까지 세력을 확장한다.

 그리고 춘추시대 중국 북경 남쪽지역에 '한'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 한은 진나라에 의해 멸망하는데 그 지도자들이 기자조선으로 들어와 정권을 장악한 조선이 한씨 조선이 된다. 저자는 이 한씨는 중국의 화하족이 아니며 독자적 족속으로 파악한다. 또한 한씨의 조상을 공공족으로 파악한다. 과거 공공족이 동북으로 밀려나며 대개의 세력은 단군숙신의 일원이 되지만 그 이남에 남아있던 세력이 있었고 이들이 한의 중심세력이 된 것이다. 

 한씨 조선은 매우 강성해져 중국 춘추 시대의 연과 대등한 세를 자랑할 정도로 강성해진다. 하지만 기원전 3세기 연의 장수 진개는 대대적으로 요서의 한씨 조선을 공략한다. 기록에 의하면 2천리 정도의 땅을 빼앗긴 것으로 나오는데 저자는 요서의 조선에게서 천리, 그리고 그 동쪽에 있었던 요동의 진번에게서 천리를 빼앗은 것으로 파악한다. 세력이 약화한 한씨 조선은 요서를 상실하고 대동강 유역의 한반도 서북부쪽으로 중심을 이전한다. 또한 많은 유민이 한강 이남으로 이주한다. 한씨 조선은 훗날 중국에 통일 황조 한나라가 성립하고 한이 건국초기 북방의  흉노에 고전하며 세력이 약화하자 요동 일대까지 영토를 수복한다.

 마지막으로 조선을 차지한 것은 위만이다. 한씨 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은 위만에게 왕위를 찬탈당하자 한반도 이남으로 대거 이주한다. 한반도 한강 이남 지역엔 원래 단군 숙신 멸망 이후 들어진 유민인 단군숙신 진인과 한씨 조선이 진개의 공격으로 영토를 크게 상실하자 이남한 한씨 조선 진인이 있었다. 이들은 소국의 연합체인 진국을 성립시킨다. 

 훗날 진국이 멸망하고 나서 이들을 계승한 삼한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사용하는 한이라는 명칭이 바로 한씨 조선에서 비롯한 것이다. 


3. 진번과 변한

 한민족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진인은 저자에 의하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사나에서 온 것이다. 한민족에는 진인과 더불어 또 다른 원형의 축인 부여인이 있다. 부여는 만주 북부의 국가로 위만 조선 멸망 후 성립한다. 그리고 부여 아래에 건국한 강력한 고구려도 부여계이며, 한강 지역의 차지하며 강력하게 성장한 백제 역시 왕족의 성씨가 부여이고, 성왕 시절 남부여로 국호를 개칭할 만큼 확신한 부여계다.

 저자는 이 부여계의 조상을 프리기아인으로 파악한다. 프리기아인은 역시 공공족처럼 천산산맥을 넘어온 족속이지만 시기는 공공족보다 수천년 뒤이다. 이들은 난하 하류에 정착한다. 중국의 기록에는 이들이 정착한 지역을 그래서 이지나 영지, 불령지로 기록한다. 불령지가 프리기아인은 음차 표기한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이 지역을 발해로 부르고 현재도 발해만으로 부르는데 프리기아인의 프리를 부리나 발로 음차한 것으로 생각된다. 즉, 발해만은 프리기아인이 사는 바다 지역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여인 역시 프리기아인이 된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공격으로 프리기아인은 북과 동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북으로 이주한 이들은 요서 지역에 고리국을 세우고 고리국의 동명이 남하하여 부여를 건국한다. 그리고 동쪽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지금의 요동반도에 자리잡고 기존의 단군숙신의 진인들과 같이 국가를 건설하는데 그것이 진번이다. 저자는 진번을 진인과 부여인의 연합으로 생각한다. 

 언급한 것처럼 요서 지역에 강성한 한씨 조선이 있을 때, 요동엔 진번이 있었는데, 연나라 진개의 공격으로 양국이 천리 씩 땅을 빼앗기자 조선은 한반도 서북부로 이동하고, 더 동쪽에 있던 진번은 연해주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래서 진번의 위치가 기록상 오락가락 한 것이다. 또한 이 경천동지할 공격으로 한씨 조선이 그러했던 것처럼 진번의 주민들도 상당수가 한반도로 남하하게 되는데 이 지역이 나중에 가야가 성립하는 변한 지역이다. 

 즉, 한반도에는 상고사에서 3차례의 이주 물결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단군 숙신이 멸망한 후, 요동과 한반도 서북부로 이주한 진인이다. 두 번째는 한씨 조선과 진번이 연나라 진개의 공격으로 그 중심지를 잃고 대거 동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발생한 대규모 유민들이 내려 온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부여계 변한이다. 프리기아인이 북으로 이주하면서 부여를 세웠는데 이들의 집단이 차례로 남하하며 기존의 진인을 중심으로 고구려, 백제를 세우며 남하한 것이다. 


4. 삼국의 성립과 삼한 일통

 삼국은 진인이 바탕이 되었음에도 그 지배 및 건국세력이 변한, 즉, 프리기아인에서 기원했기에 고조선 계승의식이 희박하다. 그래서 신화 자체가 다르다. 단군신화는 천신 환웅이 하늘에서 신단수를 타고 강림해 신정을 펼치는 구조다. 하지만 부여의 건국 신화인 동명신화는 태양의 광명이 신성한 여인의 몸에 내려 잉태하는 형태다. 고구려 주몽도 비슷하며, 백제의 온조는 신과 다름 없는 고구려 주몽의 아들이기에 별도의 건국신화가 없다.  

 삼국 중 신라가 진인을 계승한 흔적이 가장 강하다. 신라는 진인을 가장 강력하게 뜻하는 진한에서 성립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만조선 말기 상 벼슬에 있던 역계경은 왕과 의견이 대립하자 무려 2천호를 데리고 남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한반도 이남에는 진국이 있었는데 견제로 인해 이들의 중심지에는 안착하지 못하고 역계경의 세력이 소백산맥 동쪽으로 이주하여 진한을 형성하고 신라 건국 세력인 사로 6촌의 중심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는 진국이 멸망하면서 내려온 세력으로 보인다. 따라서 신라가 진인의 계승 흔적이 가장 강한 것이다.

 신라는 특이하게도 왕족의 성씨가 세 개인데 박, 석, 김씨이다. 이는 사실상 지배층이 교체된 것으로 나라가 바뀐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석씨 왕은 몇 되지 않지만 신라는 내물왕 시절부터 김씨의 독주체제가 완성된다. 시조는 김알지인데 신라의 김씨 왕족은 천산 주변의 사카 족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신라 김씨 왕족의 무덤이 사카 양식과 매우 유사하고, 금관의 황금 양식, 황금 애호 성향 금관 입식의 사슴뿔이 모두 매우 비슷하다. 샤카인은 프리기아인의 일족인데 그래서 신라는 결국 진한 사로국에서 변한 신라로 바뀐 셈이 된다. 

 이러한 사실상의 재건국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시조를 여전히 박혁거세로 유지하고 박씨 일족의 왕족 지위를 유지하는데 이는 진인이 나라의 주축이며 김씨 자신들이 과거 박씨들의 왕비를 계속 배출했던 알영계 였기에 사실상 한 집안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의 교과서는 삼한의 위치를 한반도 이남으만 비정하며 이는 후조선과 남쪽의 진국이 있었던 남북국 시기에 남쪽의 진국에 한씨 일족이 들어서며 삼한을 만들었기에 일면 사실이기도 하다. 중국이 이 삼한이 마한은 백제, 변한은 가야, 진한은 신라로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하고 고구려를 한국사에서 배제하고 한국의 역사상 삼국 시대를 이 세개 나라의 역사로 파악한다. 고구려를 삼한에서 배제한 것이다. 또한 한국사의 착각은 진한의 신라를 계승한 고려가 자신들와 지리적 혈맥상으로도 큰 상관이 없어보이는 고려를 일방적으로 계승한다고 칭하면서 일어난 것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한의 용어가 잉태된 한씨 조선은 요서 지역과 만주, 한반도 서북부를 아우르는 강국이었고, 한반도의 삼한과 이후 고조선 지역에 태동한 국가들은 이들의 후예다. 중국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있었는데 수서 권6을 보면 수양제는 고구려 침공을 삼한 숙청이라 표현하였고 당고종대 문관사림은 고구려를 삼한 지역으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신라 최치원도 고구려를 마한, 백제를 변한, 신라를 진한으로 표현하였다. 즉, 삼한 일통과 삼한이 한반도 이남의 비좁은 지역을 비정한게 아니라 더 넓은 강역과 나라들로 파악해야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한반도와 대한민국의 한민족의 원형은 단군 숙신계인 진인을 바탕으로 같은 공공족의 후예인 한씨 조선의 진인들과 프리기아인의 후예인 변한인 계열이 세운 나라들이 합쳐진 것이다. 즉, 크게 세 갈래다. 진인은 중원의 공공족에서 시작하여 요서지역에 단군 숙신을 세우고 멸망 후 요동과 서북한 지역으로 이주했고, 한반도 이남에 진국을 세우게 된다. 또 다른 갈래는 한씨 조선의 진인으로 공공족의 일부가 북경 남쪽 지역에 머무르다 춘추시대 한을 세우게 되고 이들이 멸망하자 요서 지역의 기자조선을 대체해 한씨 조선을 세우게 된다. 이 한씨 조선이 연에게 공격받자 그 유민이 한반도 이남으로 대거 이주하여 진국의 주민이 되고, 준왕 역시 남하하여 진국의 일원이 된다. 마지막 한갈래는 부여인으로 프리기아인이 동으로 이주하여 진번을 세우고, 북으로 이주한 이들은 고리-부여-고구려-백제를 진인과 연합하여 세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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