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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고려사 1~5 세트 - 전5권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24년 3월
평점 :
한국을 칭하는 단어는 세계다, 조선과 삼한, 고려다. 조선은 고조선과 조선이, 삼한은 고조선 아래의 진이 마한, 변한, 진한으로 분화하며 생겼고, 고려는 고구려와 고려가 쓴 국호다. 그래서 북에 위치한 북한은 조선을 국호, 남에 위치한 한국은 한을 국호로 쓰고 있다. 나는 나중에 통일이 된다면 영문명이기도 하고 현대 둘 다 쓰고 있지 않은 고려가 새 국가의 국호로 적합하다 생각한다. 더불어 그 수도였던 개성도 꽤 괜찮은 후보지로 여긴다.
박시백 작가는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일제강점도 그렸고, 마지막으로 그린 것이 고려다. 나중에 삼국시대나, 남북국시대도 언젠가는 그려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고려사는 조선왕조실록만큼의 기록이 없기에 국가의 유지시기는 조선과 비슷하나 짧게 그려진다. 딱 5권이다.
책을 읽으며 전체적으로 든 고려사에 대한 느낌을 주제별로 정리해본다.
1. 지배계층
신라 말 각지의 유력자인 호족이 득세했고, 이를 바탕으로 후삼국이 성립한다. 왕건도 그 중 하나였고, 왕건은 정복한 지역도 많았지만 신라와 견훤을 비롯하여 각지의 귀부 및 항복해온 호족이 많았다. 그래서 고려 초기의 지배 세력은 당연히 호족이 된다.
하지만 광종이후 과거가 시행되며 소위 능력을 가진 자들도 등용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음서를 통한 가문의 지배력이 보존되었기에 호족은 곧 중앙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 귀족으로 성격이 바뀐다.
고려는 무관이 3품인 상장군까지만 도달할 수 있었기에 당연히 문신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었다. 3성의 최고 자리를 모두 문관이 꿰차니 당연하다. 그러면서 무신들의 불만이 커졌고 이는 고려 의종때의 무신 정변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거의 100년간 무신 정권이 이어진다. 사실상 고려는 이 시기 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신 정권은 원과의 전쟁 중 계속 유지되다 원 간섭이 끝나고 최충헌-최우-최항으로 이어지다 최의 시절 허무하게 무너진다.
이후는 원 간섭기다. 원에 붙어 먹는 세력들이 득세했다. 공민왕 시절 성균관이 다시 부활하고 신진사대부가 등장한다. 이들이 조선의 개국 세력이 된다.
2. 왕권
고려의 왕권은 개국초부터 취약했다. 왕건이 호족 연합 세력으로 통일을 하다보니 과다하게 결혼을 많이 하였고 그 아들들이 각자의 외가 세력에 따라 강성함을 유지했다. 고려의 승계원칙은 장자 우선이니 여의치 않다면 형제 상속도 공식이었다. 이런 원칙이니 고려는 조선과 다르게 부자승계에 못지 않게 형제승계도 상당하다.
2대 왕 혜종은 장자이고 왕건 죽음 당시 장성한 자라 즉위했으나 외가가 미약하여 힘이 없었다. 사실상 쿠데타로 제거된 것으로 보이며 동생인 정종과 광종이 차례로 즉위한다. 광종은 피의 숙청과 정치적 개혁, 중국계의 적극적 등용, 노비안검법, 과거로 호족을 크게 약화시키고 강한 왕권을 잠시 확립한다. 성종은 이를 더욱 안정화하였고 왕국은 안정을 찾는듯 했으나 요의 침공으로 휘둘린다.
요의 침공을 막아내자 비로소 왕권은 안정되고 고려의 태평성대가 열린다. 문제는 의종이었다. 이 놀고 먹기 좋아하는 임금은 즉위 24년간 나라를 말아먹는다. 무신 관리를 하지 못해 무신 정변으로 이어졌고 이후의 고려 왕들은 사실상 모두 허수아비다.
무신정권 시절엔 최씨들의 눈치를 봐야했으며 최씨가 제거되자 이제는 원의 눈치를 봐야했다. 원이 들어서자 우리나라는 역사상 처음으로 직접 원황실에 입조하였는데 원의 강성함으로 인해 고려왕은 마시 원의 신하처럼 언제든지 인을 빼앗기고 파직되었다. 그러다보니 전왕과 현재 왕이 서로 교차되는 일도 허다했다. 중국의 책봉을 받았지만 사실상 내부적으로 사용하던 황제에 준하던 칭호들도 보다 왕수준으로 격하된다.
원이 끝나고 공민왕이 왕권을 바로 잡고자 했으나 내부 개혁을 하기엔 외침이 너무 잦았다. 그렇게 나라를 결단난다.
3. 전쟁
고려는 이름 처럼 개국초기 고구려의 영토 회복이 목적이었다. 버려져있던 평양, 즉 서경을 다시 준공했고 제2의 도시 수준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개국초만 해도 발해가 망하고 중국도 5대가 화북에 준동하며 많은 세력들이 귀부해왔다. 그 짧은 시기를 노려야 했지만 내부가 혼란스러워 그러지 못했고 곧 강성한 요가 등장한다.
고려는 고구려 계승의지와 태조의 유훈때문인지 강성한 거란을 무시하고 잘 대처하지 못한다. 강경일변의 정책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3차까지의 침입이 이어졌으나 아직은 강성하여 이를 모두 막아낸다. 이후 요에 친조하고 그들의 연호를 쓰면서 외교는 잘 이뤄진다.
여진와 요사이의 공백지에 거주하며 고려에 귀부하기도 하고 약탈을 일삼기도 했다. 요와의 관계가 정리되자 이들을 대거 토벌한다. 먼저 여진 추진 300여명을 불러 잔치를 벌여 방심시킨후 척살하고 본격 대군으로 공략한다. 점령지마다 9성을 쌓았는데 그러다보니 대군이 흩어지고 아직 영토가 완전하지 않아 여진의 공격에 시달린다. 결국 힘들게 확보한 영토를 여진이 충성을 맹세해오자 넘겨버린다. 이후 여진은 요를 정벌하고 금을 세우고 화북을 차지해 송을 남송으로 만들어버린다. 다행히 고려는 여진과는 화친을 잘 맺으려 하였고 여진도 고구려, 발해와의 인연, 지배자가 고려계라는 특성으로 인해 고려를 침공하지 않았다.
무신정변이 나고 몽골이 쳐들어온다. 처음엔 양국이 힘을 합쳐 거란과 여진의 잔존 세력을 토벌하며 우호를 다졌지만 원이 곧 본색을 드러내 고려를 침공한다. 고려는 무신들의 준동으로 국력이 쇠진했고, 원은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거란과의 전쟁때와는 다르게 크게 고전한다. 무신정권은 무책임하게도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고자 강화로 천도한다. 백성들은 원의 결사하전 했으나 원의 살육에 노출되었다. 원은 저항하면 모두 죽인다. 수십년의 항쟁으로 백성들은 지치고 나중엔 원에 적극 항복하는 경우도 많아진다. 조정을 믿어봐야 소용이 없었다. 조정의 구원을 기다리고 오래 항쟁해도 지원이 없어 결국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학습했다.
공민왕 시절 고려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원의 잔존세력과 명의 건국 세력인 홍건적이 수십만 규모로 침투했고, 왜구도 수만 단위로 쳐들어왔다. 여기에 각지엔 반란도 많았다.
4. 불교
고려하면 불교다. 고려는 불교를 중시하고 호국불교 성격을 갖고 있었으며 수많은 사찰을 건설했다. 당시 승려와 불교는 정치집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왕자가 승려가 되는 경우도 많았고 유력자의 아들이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찰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이들이 전투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불교 사찰은 현실에서 백성들을 대상으로 많은 재산을 획득하고 빼앗는 경우도 있었으며 여러모로 권력과 결탁해 현실 정치에 개입하였다. 이런 불교의 폐단을 조선 사대부가 지목하고 싹을 잘라버리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