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전 참패 이후 나는 자조 섞인 느낌으로 아직 1패가 남았다는 글을 썼었다. 내가 섣불렀다. 1승이면 12개조 3위 중 8위 안에 드는 것은 충분히 월드컵 역사를 볼 때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1승을 가지고 12개 3위 중 8등 안에 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이번 대회가 48개국 체제로 치뤄졌기 때문이다. 32개국 체제에서는 각 대륙마다 참가국 티켓이 적었다. 특히, 아시아, 북중미, 아프리카 같은 상대적으로 약한 지역아 티켓이 적었는데 이 지역들에 대해 티켓 배분이 더 이뤄졌다. 그러다보니 각 조의 4위가 매우 취약했다. 조4위 중 3패 팀이 무려 6개다. 절반이다. 그러다보니 3위 팀들이 1승을 챙기는 일이 무척 많아졌다. 이번 대회 3위 팀 중 무려 7개 팀이 1승1무1패를 거뒀다. 즉, 48개 체제의 월드컵에서 조2위든 3위든, 향후 1승 1무 1패 이상을 거둬야만 토너먼트를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대표팀은 이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감독 홍명보의 인터뷰는 놀라움 그 자체다. 남아공 전 이후 그는 모든 것은 감독의 책임이라는 매우 의외의 말을 했다. 사실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한국은 브라질, 코트디부아르 등에 대패했다. 그 때마다 그는 자신의 전술 책임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리더답지 못하게 선수 개개인의 탓이나 경기 외적인 시간 부족이나 완성도의 부족 정도를 탓했다. 그런 그가 자기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하루를 가지 못했다 감독 홍명보는 바로, 자신의 전술, 전략, 지도능력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고 왜 선수들이 뛰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등등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또 다시 남탓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같은 것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그는 2002 월드컵 이후 사상 최악의 참패였던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자신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홍명보의 임기는 2027 아시안 컵까지다. 대한축구협회는 국민들의 분노에도 아직 그를 경질하지 않았다. 32강 진출 가능성이 그나마 남아있었을 때는 모르겠으나 실패한 지금도 경질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고 홍명보 본인이 사퇴하지 않는 것도 놀랍다. 고국에 와서 인터뷰라도 하면서 사임할 작정일까나.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혹시나 고집스러운 그가 이번엔 시간이 부족했다며 아시안컵까지 대표팀을 맡아가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명예회복을 위해 물러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점이다. 이번 월드컵 대표팀이 그가 선임된 데에도 홍 감독 자신의 명예회복에 대한 의지가 상당히 작용했었다라는 후문이 돌았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충분히 입증된 만큼,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도무지 기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는 선수단에게 완전히 신뢰를 상실했다. 한국적 문화로 인해 선수들이 말하지 않을 뿐이지, 그의 전술과 선수기용, 상황 대처 능력에 대한 선수들의 불신은 이미 상당해보인다. 위기 상황 또는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마다 가만히 앉은 그의 모습은 그가 순간적인 대처 능력이 매우 부족하고, 경기를 움직일 만한 전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함을 입증한다.
제대로 된 감독들은 선수들을 순간 순간 지속적으로 지도하며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같은 상황이 있다면 전면적으로 움직임이나 세부 전술을 지도한다. 그런데 홍감독은 경기 내내 가만히만 있는다. 제대로 된 감독은 경기 중 선수가 잠깐 물이라도 벤치 근처에서 마시면 디테일하게 움직임과 전술을 지도하고 다른 선수들에 전달까지 시키는데 홍감독이 그러는건 단 한차례도 보지 못했다.
때문에 홍감독은 자진 사퇴하는게 맞다. 정 안한다면 위약금이라는게 적지 않게 들 수 도 있겠지만 협회가 그를 반드시 경질해야 한다. 그리고 빠르게 제대로 된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으면 한다. 그래야 1년 후에 있을 아시안컵을 간신히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투도 매우 괜찮은 선택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한국문화와 한국 대표팀 개개인에 대해 가장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안 컵은 중요하다. 한국이 아시아 최강을 오랜 기간 자임하면서, 역설적이게도 아시아 최고 팀임을 입증하는 대회인 아시안 컵에서 우승한게 반세기도 더 전이다. 이는 한국이 오랜 기간 아시안 컵을 경시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오랜 기간 월드컵에만 올인했다. 그리고 아시안 컵은 월드컵이 끝나고 열린다. 한국은 대개 월드컵에 실패하고 늘 일관성 없는 시각으로 매번 새로운 스타일의 감독을 임명한다.
그렇기에 한국 대표팀은 늘 아시안 컵에 제대로 된 대비, 즉 팀이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로 임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월드컵을 치룬 감독이 연임되지 않아 팀을 새롭게 리빌딩하는 초입에 아시안컵을 치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드컵에서의 전력을 어느 정도 유지한 채로 아시안컵에 임한 것은 내 기억으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치뤄진 2011 아시안 컵 정도가 유일했다.
그리고 한국은 아시안컵 자체를 홀대한다. 지금은 좀 나아진 것 같지만 내 느낌엔 아직도 한국 축구는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 게임, 아시안 컵 정도의 우선 순위를 가진 듯 하다. 세계 축구계는 모두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을 홀대 하지만 한국은 병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두 대회를 매우 중시한다. 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 게임 우승이면 병역이 면제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게 아시안컵이 2순위 이상의 의미를 가진 대회였다면 우승 횟수는 분명 더 많았을 것이고 경험도 보다 최근이였을 것이다.
지금의 협회는 갈아 엎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이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집단이라면 유종의 미를 거두는 입장에서 홍감독을 정리하고, 제대로 된 감독을 제대로 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절차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임했으면 한다. 축구협회장은 사임을 천명했지만 언제 사임할지 모르며, 선임과정에도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아시안 컵은 불과 내년 초반에 치뤄진다. 시간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정치권에선 책임을 확실히 물었으면 한다. 한국 축구판을 축구인들에게만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은 이번에도 다시 입증됐다. 문체부 중심으로 책임을 묻고 축구협회장 선거에 민간도 적극참여하는 형태로 문호를 열어야 한다. 정치권에도 이는 중요하다. 축구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다. 협회의 독단으로 인해 이번 월드컵은 초반 열기가 매우 차가웠지만 첫 경기를 이기자 바로 분위기가 달아올랐고 남아공 전의 졸전에도 상당수의 국민들이 32강에 오르기를 염원했다. 한국인들은 축구 자체를 좋아하기 보다는 나라를 사랑하고, 그것이 간접적으로 발현되는게 월드컵에서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치가 관여해야 한다. 지금의 여당은 청년층으로부터 특히, 젊은 남성으로부터 상당히 인기가 없는데 이는 공정이라는 부분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때문에 공정하지도 못하고 투명성도 없었던 축구 협회를 공정하고 투명한 집단으로 변모시킨다면 젊은 층의 마음도 어느 정도 살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