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서양미술사 - 다빈치부터 피카소까지, 시대별 대표 명화로 한눈에 보는 미술의 역사
김찬용 지음 / 땡스B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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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미술 책은 볼 때마다 눈이 즐겁고 시대에 따른 흐름을 느끼는 것이 즐겁다. 예술도 인간의 산물인 만큼 그 정신의 변화를 따라가고 시대의 변화는 그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책 한 번쯤은 서양 미술사는 르네상스부터 입체주의까지를 다룬다. 과거 고전과 현대가 없는 부분이 아쉽긴 한데 아마 속편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책은 각 시기의 사조를 소개하며 대표적 예술가와 그의 작품을 보여준다. 시기를 좀 세세히 쪼갰기에 시기별 작가 수가 좀 적고, 대표작은 한개만 보여준게 아쉽긴 한데 그래도 책의 즐거움은 충분하다. 

 르네상스는 미술을 숙련공의 기술이 아닌 그 시대의 지식, 철학, 예술가 개인의 창작물로 보기 시작한 시기다. 그래서 과거와 다르게 작품에 예술가의 이름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 등장한 예술가가 보티첼리다. 그는 종교화 중심이던 르네 상스 초기 비너스 누드를 그렸다. 이는 신성모독이었으나 이를 과감히 시도했다. 조각의 중시한 미켈란 젤로는 시스티나 천장화의 의뢰를 받아 그렸다. 흔히 아담의 창조 부분이 강조되지만 이 천장화는 빛과 어둠의 분리, 별의 창조, 땅과 바다의 분리, 아담의 창조, 하와의 창조, 원죄, 노아의 방주1,2,3의 9개 장면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직사각형의 작은 프레임을 이용해 그린 구역과 전체화면을 채운 구역을 교차하고 꺾이는 곡면에 7명의 예언자와 5 사제를 배치해 재미를 살렸다. 르네상스 시기는 3명의 천재가 빛냈다. 조각의 미켈란젤로 회화의 라파엘로 모나라지의 다빈치다. 

 르네상스 시기는 비례, 균형, 조화, 이상미가 추구되었다. 이에 반해 왜곡과 과장의 비대칭과 강렬한 색감을 강조한 사조가 매너리즘이다. 틴토레토의 낙원은 당시의 작품으로 매우 규모가 크면서 수많은 천사와 부활한 성인, 그를 따르는 추종자 50인 이상을 그려냈다. 대규모 군상이 뒤 섞인 모습으로 역동성을 준다.

 바로크는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으로 17-18세기 중엽의 사조다. 종교와 역사화 등 주제 표현에 강렬하고 극적인 연출을 한다. 자연스러운 묘사와 정확한 비례속에 강한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키아토스쿠로 기법이 사용되었다. 당시 종교개혁으로 로마카톨릭은 이에 대응하고자 예술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래서 이 시기엔 종교적 감화를 일으키는 강렬하고 극적인 작품들이 등장한다.

 로코코는 작은 조개 장식을 의미한다. 조개껍데기 처럼 우아한 바로크라는 뜻이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유럽귀족 사회로 확산한다. 귀족 사회와 연애, 자연을 주제로 한 부드럽고 우아함이 특징이다. 바로크는 다소 진지하고 무거웠기에 귀족 사회의 사적 취향을 충족시킬 방안이 탄생의 원인이다. 앙투안 와트의 키데라 섬으로의 출항은 당시의 작품이다. 키데라 섬은 비너스의 고향으로 연인과의 이상향을 의미한다. 

 신고전주의는 18세기 중후반과 19세기 초에 유행한 것으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적 가치의 부활을 시도했다. 고고학적 정확성을 바탕으로 절제, 질서, 도덕, 공공정신을 강조한다. 합리주의 미학으로 균형과 구조, 명확한 윤곽, 입체적 형태의 완성을 중시한다. 바로크와 로코코에 반발해 계몽주의적 성격도 띈다. 나폴레옹은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자신을 국가의 영웅과 구원자로 만들려고 했으며 그래서 개선문 건설, 전쟁 약탈 예술품으로 루브루를 확장했다.

 낭만주의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등장한 것으로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창작자 자신의 감정을 적극 드러낸다. 낭만주의 풍경화는 낭만주의 사조의 하위로 인물보다는 자연에 초점을 둔다. 자연을 감정과 상상의 투사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사실주의는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시작했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표현단다. 신고전주의의 이상적 미를 거부하고, 낭만주의의 문학적이고 과장됨도 경계한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 여겼으며 이는 근대 회화의 시작이기도 하다. 쿠르베는 '오르낭의 매장'을 그렸다. 이는 대형작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외조부의 평범한 장례를 그렸다. 쿠르베의 작품은 당대 아카데미의 성격에 반하는 것으로 살롱에 출품이 거부되자 40점의 자기 작품만을 갖고 전시회를 기획했다. 이는 최초의 것으로 예술가의 주체적 활동 가능성을 드러낸 혁신적 일이었다.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 중심의 사조다. 실질적으로 현대 미술의 시초라 볼 수 있으며 자연의 빛과 색채, 순간적 인상을 포착한다. 사물의 본질보다는 순간적 인상이 관심사였다. 드가는 무희를 많이 그렸다. 그 자신이 부유층으로 어려서부터 오페라 하우스를 드나들며 자주 관찰한 까닭이다. 그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몰래 사진을 찍은 듯한 관찰자의 시선인데 이는 드가가 당시 등장한 카메라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신인상주의는 인상주의에 과학적 이론과 질서를 적용하고자 했다. 광학이론 기반의 점묘법과 채도 높고 밝은 빛을 구현하는 화풍이 특징이다. 조르주 쇠라는 색의 혼합 없이고 원색점을 일정한 비율로 찍으면 관찰자가 이를 혼합색으로 인지함을 그랑자르 섬의 일요일 오후로 증명했다. 샤를 앙리는 미학이 개인의 감성이나 주관이 아닌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 법칙 체계라 인식했다. 그는 감정이 수학적이고 물리적으로 예측 가능하다 보았다. 상승곡선은 고양감과 희망, 생명력, 하강 곡선은 침체, 우울, 피로를 수평선은 안정감과 평온, 수직선은 장엄함과 긴장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후기 인상주의는 1880년부터 20세기 초로 인상주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다. 인상주의 색채, 표현기법, 시대정신은 계승했으나 더 깊은 감정, 상징, 구조, 형태 등을 강조했다. 고갱은 종합주의를 표현했는데 이는 인상주의 처럼 가시적 경험 포착 외에도 눈에 보이는 형태와 색채에 화가가 느끼는 감정과 기억을 종합하여 표현하는 방식이다. 세잔은 매번 달라지는 순가보다는 진정은 지금 이순간을 포착하고자 하였고 이런 시도는 관찰자와 물체의 움직임이 적은 정물화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세잔의 사과가 넘쳐나는 이유다.

 표현주의와 상징주의는 19-20세기 초에 등장했다. 개인의 내면 세계와 감정, 상징적 의미를 중시했다. 표현주의는 객관적 현실묘사보다는 주관적 감정과 내면의 고통, 감동 같은 심리를 강렬히 묘사한다. 상징주의는 현실의 직접 묘사보다 상징과 은유를 통해 꿈과 정신, 죽음, 종교, 신화등 보이지 않는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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