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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좌절
김경일.류한욱 지음 / 저녁달 / 2025년 5월
평점 :
온실 속에서 자라난 화초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건강하게 자라나지 못한다. 나무는 성장과정에서 자신의 거대한 몸체를 지탱할 강한 뿌리와 조직이 필요하다. 바람이 불면 부는 방향 뿌리가 들리면서 이를 견뎌내기 위해 반대쪽 조직이 경질화한다. 바람은 사방에서 불기에 세월이 지나면 모든 부위가 견고해지는데 그래서 어려서부터 풍랑 속에 자라난 나무가 강하게 성장하게 된다. 반면 온실 속에서 자라난 나무는 풍랑이 없었기에 경질화하지 못해 어느 정도 자라면 자신의 무게조차 견디질 못하게 된다.
사람도 딱 그러하다. 어려서 충분한 좌절을 경험하지 못하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 자신과 주변 사람을 파괴하게 된다. 책은 이런 부분을 지적한다. 과거에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 온실 속에서 자라나는 인간 화초는 좀처럼 없었다. 아동에 대한 사랑과 애정, 충분한 관리가 오히려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과도하다. 모든 분야에서 안전 지상주의가 과다하며 아이에게 부모가 모든 것을 해주려 한다. 그래서 자녀가 성인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상당수 부모가 대학의 교수에게, 군대의 상관에게, 직장의 상사에게 전화하는 촌극이 벌어진다.
이는 자식에게도 부모에게도 비극이다. 자녀는 몸만 큰 어린 아이인 셈이고, 자녀가 더욱 그러하기에 부모의 관여와 간섭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이뤄진다. 영원한 어린 아이 육아를 하는 셈이다. 사람이 건강하게 자라나려면 적절한 좌절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이걸 발판으로 자율성과 독립성이 생겨난다. 물론 과도한 좌절은 사람의 자존감을 아예 무너뜨릴 수 있기에 좌절은 적절해야 한다. 이는 수용가능한 실패를 의미한다.
요즘의 과잉애착부모는 정서적 비만 자녀를 양산한다. 아이는 태어나서 정상자폐-정상 공생-분화-연습-재접근-독립의 과정을 거치며 성장한다. 여기서 적절한 좌절은 분화단계에서 필요하며 재접근 단계에서는 좌절 강도의 조절이 중요하다. 그래야 온전한 독립이 이뤄져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학생들은 부모의 과잉애착에 따른 정서적 비만 상태로 대개 몸은 크게 정신은 어린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강력한 학습성취를 강요받는다. 과거엔 이런 간극이 커지면 학생은 대개 가출 등의 일탈 행동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경제력의 향상으로 사실상 집에서 충분히 일탈을 할 수 있기에 집 바깥이 아니라 집 안, 자기 방으로 가출을 한다. 그래서 이런 학생들은 부모가 잠들면 비로소 활동을 시작하고 이로 인해 밤을 세우게 되어 등교가 어려워진다. 이것이 반복되어 성인기까지 이뤄지면 그야말로 은둔형 인간이 되고 만다.
분리 독립의 최초 시작은 취학 전 잠자리 분리와 식사예절이다. 식사예절은 식사 시간 지키기, 같이 식사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식사 중 눈 맞추기, 스마트폰 사용 금지), 식사를 준비한 사람에 대한 예의다. 잠자리 분리는 늦어도 취학 전 이뤄져야 한다. 뇌는 잠들면 외부자극이 끊어지기에 DMN회로가 활성화하여 과거 기억과 자기반성, 상상, 과거 경험에 대한 재구성을 하며 과거를 상기해내 실패를 찾아내고 미래에 이를 대비한다. 즉, 자기 성찰 및 반성이 시뮬레이션 되는 것인데 이는 혼자자야 잘 작동한다. 잠자리를 분리하면 아이는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혼자 정리하게 된다.
잠자리 분리 다음 단계는 적정한 경계 설정하기다. 이 단계에서 아동은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아이가 세상과 자기를 조율하는 경험을 반드시 해야 한다. 부모는 여기서 모든 행동을 통제하지 말고 적절한 자유와 책임을 부여하고 아이는 이를 통해 점차 자신의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를 경험하고 고민하게 된다. 이것이 스스로 행동을 조정하는 힘이 된다.
이런 분리 독립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이는 친구 관계에 어려움이 생긴다. 소위 골목대장형, 다 맞춰주는 형, 편가르기 형으로 자라난다.
아이의 양육에 있어서 아이의 감정과 행동에 그들만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공간적 심리적 적정 거리를 마련한다. 아이 방에 들어가기 전 신호하기, 스킨 십에 거리 두기가 그러하다. 그리고 아이의 의사결정에 대한 관여도 중요하다. 아이의 의사결정을 존중한다고 뭐든지 아이가 원하는대로 결정하게 하면 안된다. 이는 일종의 떠넘기가에 불과하며 아이가 싫어도 반드시 해야하는 것은 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비교 중심의 칭찬도 지양해야 한다. 비교 중심의 칭찬은 자기 중심성만 강화한다. 이런 칭찬은 경쟁을 유도하므로 자신만에 대한 칭찬을 해야 한다.
이런 분리 독립에 실패한 성인은 나르시스트가 되어 사회에 암적인 존재가 된다. 조직의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남의 공을 가로채려 하며, 모든 관계안에서 끊임없이 자기가 중심이 되려 한다. 공동 목표보다는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집착하여 팀워크를 깨기도 한다. 이들은 얼핏 보기엔 자존감이 높아보이지만 대개 유약한 자아와 깊은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만을 내세워 굳이 싸울 생각도 없는 남과 싸워 이기려고만 하는 것이다. 이들은 거부 민감성이 과도하게 높은 경우가 많고, 관계적 공격성이 높고, 과잉 통제하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르시스트로 성장했다고 해서 늦은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수정은 가능하다. 이들은 분리 독립의 실패로 전전두엽이 적절히 성장하지 못해 자기 정체성 혼란, 높은 우울감, 타인의 욕구에 즉각 반응하는 듯 하나 정작 자기의 욕구 살피기에 서툴고, 자기 조절력이 높아 보이나 실제로는 낮다. 그래서 내 기분 찾아내기, 작은 것 부터 스스로 선택하기 부터 시작해 자기 조절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물론 회복은 매우 느리고 섬세한 과정이 필요하다.
분리 독립은 정서적으로 책임지는 자아의 탄생을 의미한다. 스스로의 미래를 감당하려면 철학, 깊은 사고, 정체성 그리고 좌절이 꼭 필요하다. 요즘 우리 사회에 유독 자기만을 아는 소위 진상이 넘쳐나는 것은 이런 안전 지상주의와 과도한 개입과 애정, 그리고 이를 불러일으키는 능력주의의 온상이라 생각한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 바꿔나가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