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데아 - 수능에서 IB 교육으로 대한민국 시험의 패러다임을 바꿔라
김신완 지음, 이혜정 감수 / 을유문화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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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객관식 시험을 최고로 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공정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대입을 결정하는 수능 시험인데 몇 달 전부터 보안을 위해 출제진이 숙소에 감금되고, 시험지는 마치 은행의 현금처럼 철저한 보안 속에 전국 각지로 시험일이 임박하여 수송 된다. 또한 몇몇 학생이 시험 당일에 배가 아프거나 차를 잘못 타서, 혹은 엉뚱한 고사장으로 가서 시험을 놓칠 뻔하다 경찰차를 타고 간신히 시험장에 도착하기도 한다. 그리고 고교 후배들은 시험을 보는 선배들을 위해 새벽부터 응원전을 펼치는 등 이 시험과 관련한 온갖 이야기들이 나라 전체에 가득하다. 

 그런데 이 시험은 세계에서 가장 싸구려 시험이다. 문제 개발을 하는데 좀 공을 들이긴 하지만 시험 기간이 매우 짧고, 무엇보다 채점이 아주 손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객관식 시험을 당연시 하나 대입 시험은 객관식으로 보는 나라는 OECD 38개국 중 한국과 일본, 중국, 칠레, 멕시코, 미국 뿐이다. 한국은 이 객관식 수능이 대입에 절대적인 기준인 반면 사실 다른 나라들은 보조 수단이거나 대입에 반영되는 하나의 요소 정도란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사실 한국이 객관식 시험을 전통적으로 신봉한 것도 아니다. 조선의 과거 시험은 구술, 논술형 시험이었다. 경전에 관한 문제도 있었지만 철저히 현실 정책에 대한 질문이 따랐다. 응시자는 이를 자신만의 논리로 풀어내야 했다. 한국에 객관식 시험이 자라잡은 것은 일제시대 부터다. 일제는 피재배민으로 조선인이 생각하기보다는 체제에 순응하고 시키는 것을 이해하고 따르기를 바랬다. 그런 사람을 양성하는데는 객관식 시험이 제격이다. 답은 애초에 출제자로부터 주어져있고 이를 잘 수용해야 높은 성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광복 후에도 이어졌다. 

 입시는 여러 번 우여곡절을 거쳤다. 그러다 전두환 신군부가 교육정상화와 과외 과열을 문제로 예비고사와 대학 본고서를 없애고 객관식 시험인 학력고사를 전면 실시하면서 객관식이 대입 최종시험으로 확고히 자리잡는다. 이후 수능이 학력고사를 대체하긴 했지만 이미 도입 후 30년이 지났고, 여러 개선이 있었으나 결국 서열화를 위한 객관식 시험이라는 틀에 갇혀있다.

 문제는 이런 객관식 서열화 평가가 많은 문제점을 갖는다는 점이다. 우선 제대로 된 능력을 평가하지 못한다. 개인의 진정한 능력은 실생활의 문제해결에서 나온다. 이는 매우 능동적인 표현능력과 여러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전이하여 적용하는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수능 같은 객관식 시험은 이런 타당도를 보장하지 않는다. 공정성과 신뢰도에 묻혀있으며 서열화를 위한 난이도 조정과 공정성에만 힘을 쓰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생의 교과 선택권은 그의 진로와 흥미, 적성의 발현을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수능은 상대평가이기에 교과 선택권이 사실상 무력화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필요나 흥미보다는 등급을 보장하는 교과를 선택한다. 또한 선택 교과 간의 표준점수 차이는 또 다른 공정성 시비를 낳는다. 가장 큰 문제는 학생을 비인간화한다는 점이다. 2018년 한중일미 4국의 학생 1천명을 대상으로 고교 생활이 함께하는 과정인지 거래하는 시장인지 사활을 건 전장인지를 물었다. 학생들은 3가지를 모두 선택하였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3번의 경우 일본은 14%, 미국은 40%, 중국은 41%를 선택한데 비해 한국은 무려 81%였다. 학생에서 협력을 통해 함께 성공하는 연대하고 화합하는 시민으로 자라나기 보다는 경쟁하며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패배한 자는 낙인을 갖고 평생을 살아가는 환경을 고교에서 경험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한국의 교육개혁 과제는 대학 입시를 전면 논서술형으로 전환하거나 아니면 객관식 시험을 보조의 수단으로 병존시키고, 내신을 논서술형, 구술, 장기 보고서 및 다양한 활동을 보장하는 형태로 변화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입시와 내신에서 학생의 선택권 보장을 위해 선택과목을 보장해야 하며, 절대평가로 전환하되 일부 고교들이 과거에 취했던 것처럼 성적을 부풀리는 편법을 막는 방법이 실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논서술형은 주관식 시험이기에 이에 대한 객관성과 신뢰의 확보를 위해 채점의 전문성을 크게 강화하고, 그 기준의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

 저자가 보기에 이 모든 것을 충족하는 것은 국제 바깔로레아, 바로 IB다. IB는 여러 모로 한국 교육에 적합하다. IB는 일단 특정 국가 맞춤형이 아니기에 한국 교육과정에 적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표준화된 평가시스템을 갖춰 타당성은 고려도 않고 공정성과 신뢰도에만 매몰된 한국에 적합하다. 또한 학습 능력이 높은 학습자와 낮은 학습자를 모두 성장시키며, 사교육이 거의 실행되기 어려워 사회적 부작용을 줄이며, 무엇보다도 일선 교육현장에서 바로 적용이 가능하다. 

 IB는 실용적인 관점에 기반하며 학생을 평생 학습자로 키우는데 중점을 둔다. IB는 토론과 상호협력이 중요해 모든 학생이 경청이 습관화 되어 있으며 정답이 없는 교육을 실시하고, 무조건적 주장이나 입장 보다는 그 근거를 중시한다. 

 IB는 중등과정이 5년이고 고등과정이 2년이지만 각 나라의 학제에 맞게 변경이 가능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중등 과정이 3년으로 실행되고 고2-3때 고등과정을 하고 고1 때는 준비과정을 거친다. IB의 초중등학교 프로그램은 내용을 제공하지 않는다.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는 방안이 있을 뿐이며 그렇기에 각 나라는 자신들의 교육과정을 포함시킬 수 있고 그 학습 방법과 평가를 IB가이드에 맞춰 실행한다.

 IB의 고등학교 과정은 다음과 같다. 

1영역- 언어A: 모국어 문학, 모국어 언어와 문학

2영역- 언어B: 외국어, 외국어기초, 고전어

3영역- 개인과 사회: 역사, 경영, 경제, 지리, 철학, 심리학, 국제정치, 인류학 등

4영역- 과학: 화학, 생물, 물리, 컴퓨터 과학, 환경, 스포츠와 건강

5영역- 수학: 분석과 접근, 응용과 해석

6영역- 예술: 연극, 영화, 미술, 음악, 무용


 학생은 위 3영역 중 3개를 심화과정으로 3개를 표준과정으로 이수한다. 심화과정의 경우 240시간은 이수해야 하고, 표준 과정이면 11시간을 이수한다. 그리고 이 외에 지식이론, 소논문, 창의체험봉사가 필수다. IB는 6개 영역이 각 7점 만점이며 3개의 별도 영역이 각 1점 씩이다. 총 45점 만점으로 24점을 획득해야 디플로마가 수여된다. 물론 지식이론과 소논문이 합산 점수가 D이사이어야 하고 세 과목 이상에서 3점 이하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2023년 상반기 18만 명의 학생이 외부평가에 응시했고 80%가 디플로마를 획득했다. 평균 점수는 30.24점으로 과목당 6점, 핵심 과목에서 2점이면 총점 38점으로 이 정도면 해외 명문대학 지원이 가능하다. 6점은 A에 해당하고 7점이면 A+등급이다. 2023년 기준으로 40점 이상은 8.87%로 만점자는 179명에 불과하다. 

 IB는 외부 출제 평가와 내부 출제 평가로 구분한다. 내부 출제 평가는 해당학교 교사가 하는 것이며 외부 출제 평가는 IB 본부에서 실행한다. IB 본부에는 무려 4만의 채점관이 등록되어 있다. 채점관은 일반 채점관, 선임 채점관, 책임 채점관, 수석 채점관으로 나뉜다. 채점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선임 채점관들이 먼저 평가 문항에 대한 채점 기준을 개발한다. 이것이 시드 페이퍼인데 3개로 구성하여 1개는 일반 채점관의 교육에 1개는 일반 채점관의 시험 채점 테스트용으로 다른 하나는 학생들의 답안지에 숨겨 일반 채점관이 올바로 채점하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일반 채점관의 채점이 시드 페이퍼와 멀어지거나 일반 채점관 2인의 불일치가 심하면 이들을 재교육하거나 채점관 자격을 박탈한다. IB본부는 교차채점을 하는 것이다. 채점에서 다른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채점관이 이를 해결하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수석채점관이 학생의 최종 등급을 결정한다. 매우 엄정한 구조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학생은 이런 구조에도 점수에 불만이 있거나 대입에 필요한 요건에 미약하게 미도달할시 비용을 부담하여 재채점을 요구할 수 있다. IB 본부는 이 경우 재채점을 실시하여 문제가 발견되면 학생에게 비용을 돌려준다. 그리고 학생은 재시험을 볼 수 도 있다. 

 내부평가는 사전에 문항을 같이 연구 개발하며 채점기준도 그렇게 만든다. 특히 자신이 채점한 것에 대한 근거를 다른 교사에게 증명해야 하기에 고도의 객관화가 강제된다. 그리고 IB 본부는 내부 평가 전체를 모두 샘플링하여 이를 검토하다. 그래서 이것을 조정하고 만약 채점이 과도하게 부실하면 해당학교의 인증을 취소하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IB학교들은 국가나 지역, 학교 간의 특성과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적 표준화가 가능하다. 과거 한국의 고교 내신 절대평가가 실패한 것은 학업이 낮은 학교 일수록 서로 시험을 쉽게 내기 경쟁을 해 성적을 부풀렸기 때문인데 IB본부처럼 중앙에서 관리하면 이런 것이 불가능하며 실제 학교간에 타당도가 높은 학업 성취도 비교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높은 신뢰도로 인해 한국에서 성행하는 평가 결과에 대한 민원도 거의 발생하지 않게 된다. 

 구체적인 수업을 살펴보면 IB수학은 문제 풀이 시간은 적고 대신 수업 시간을 조사하고 추론하는 탐구활동에 할애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각자 정리한 이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자신의 관심 이슈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지수로그함수를 배우고 그것을 망각 곡선에 적용해 직접 공식을 도출하는 식이다. IB수학은 감점이 아닌 가점의 관점으로 채점한다. 그래서 학생이 정답의 계산을 틀렸어도 그 과정이 옳다면 만점을 가깝게 점수를 부여한다. 

 역사 수업의 경우 일반 학교는 연대사나 통사를 고수한다. IB 역사는 시대, 사건, 인물에 대해 역사적 사료를 분석하고 관련 사건의 맥락을 이해하고 어떻게 판단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IB화학은 실험중심이다. 반응열을 계산하는 실험을 수행한 후 구한 데이터로 그린 그래프를 해석하는 것이 과제다. 중요한 것은 실험을 실패해도 괜찮다는 점이다. 왜 실패했는지 점검할 가이드가 제공되며 교사가 피드백 한다. 실험에서 겉도는 학생도 없다. 모둠 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IB는 내부 보고서의 마감이 학기 후반부로서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시간이 충분하며 상대평가가 아니기에 앞서가는 학생이나 모둠을 보며 불안감을 갖지도 않는다. 

 IB를 실시한 학교는 큰 변화를 가져온다. 우선 학생의 일정 관리 능력 향상이다. IB는 지식 위주보다는 그것을 획득하거나 적용하는 보고서나 과제 중심이다. 이것들이 모든 과목에서 행해지기에 학생은 개인, 모둠과 협동하며 계획을 촘촘히 짜야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것을 대학이나 직장생활을 하며 실시하는데 확실히 빠르다. 그리고 서로 돕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기에 경청하고 협력하는 문화가 생기고, 경쟁이 없기에 학교 폭력이 크게 감소한다. 또한 교권이 신장한다. 상대평가와 서열화에서 공교육의 교사는 메이져 학원 교사에 밀린다. 하지만 IB같은 식의 수업과 평가를 실시하면 학생은 교사와 같이 성장하며, 꾸준히 피드백을 얻으며 친말한 관계, 즉 진정한 사제지간을 형성한다. 당연히 교권이 보장된다. 마지막은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 완화다. IB수업은 학원이 성적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 없는 구조다. IB라고 해서 학원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철저히 보조수단으로 전락하여 학부모는 아이를 학원에 보낼 필요가 크게 줄어든다. 

 당연히 IB에서는 교사도 변화한다. 일반 학교에서 교사의 스트레스 요인은 교내질서 확립문제와 학부모의 민원 처리, 행정업무다. 하지만 IB학교에서 교사의 스트레스 요인은 학업성취도 제고, 수업설계고민, 저학력 학생의 학업 성취도 향상 방안이다. 교사 본연의 업무에서 기인하는 스트레스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처럼 IB는 교육을 정상화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이다. 일본은 IB로 교육을 전면 전환하고 있다. IB가 반드시 답안은 아니겠으나 한국이 비교적 손쉽게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란 생각이다. 혁신 교육은 많은 학교 민주화와 교육 혁신을 이뤘지만 이렇다할 중앙 센터가 없어서 일선 학교의 질적 변화를 지원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입시를 변화시키지 못했으며 일부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교사들을 제외하면 변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IB는 많은 학교 개선 경험과 믿음직한 증앙 기관, 높은 채점 기구를 확보하고 있다. 전면적으로 시도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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