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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역사 - 당신이 몰랐던 동유럽의 대국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와타나베 가츠요시 지음, 서민교.정애영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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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에 대해 떠오르는 것은 독특한 흰색과 적색 두 줄무늬 국기와, 바르샤바, 게토, 유대인, 바웬사, 2002 월드컵 한국의 역사적 첫 승 상대, 최근 한국의 주요 무기 수출국이라는 점이다.
폴란드는 이미 유럽연합과 나토의 가맹국이며 유럽연합에 많은 노동력을 수출하고 있다. 면적은 31만km2이고 인구는 3784만으로 면적에 비해서는 다소 적은 편이다. 다만 이 인구의 절반 이상이 35세 이하여서 경제 잠재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발등이 불이 떨어진 상태로 가성비 좋은 한국산 무기를 마구 사들이는 등 국방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그럴만도 한 것이 폴란드의 역사는 곧 외국의 침략과 그것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동부유럽의 드넓은 평원에 위치한다. 이렇다할 자연 장애물이 전혀 없기에 외세로 진출하기도 좋지만 의지할만한 방어수단도 전무하다. 여기에 서쪽에는 독일, 동쪽에는 러시아가 자리한다. 양강에 끼인 셈이며 실제 폴란드는 역사상 이들이 흥기하면 바로 어려운 형국에 처했다.
폴란드의 역사는 대충 10세기 정도에 시작한다. 카지미에시 3세가 왕국의 중흥기를 이끌었으며 리투아니아와 연합하여 한 때 대 제국을 이루었다. 러시아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빌뉴스, 우크라이나 키예프도 그들의 영토였다. 하지만 프로이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가 대제국으로 일어서면서 사정이 바뀐다. 이전 스웨덴 과의 경쟁도 국력을 소진시켰다.
결국 폴란드는 1772년 러시아에 항복한다. 그리고 1차 폴란드 분할이 이뤄지는데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가 이 땅을 나눠가졌고 가장 큰 지분은 러시아 몫이었다. 폴란드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에 영향을 받아 1788-1792년 4년 국회를 개최한다. 중세귀족인 아우구스트와 슐라흐타의 권한을 제한하고, 시민의 토지소유와 고위 관직 진출을 가능하게 했지만 농민에 대한 권한을 보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폴란드 내의 기득권층이 당연히 이 법안에 반대하고 러시아의 군사개입을 요구하여 4년 국회는 좌절된다. 그리고 이는 어이없게도 1793년 2차 분할로 이어진다. 이번엔 오스트리아가 빠지고 러시아와 프로이센이 폴란드를 분할한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승리하자 1809년 바르샤바 공국이 탄생한다. 바르샤바 공국은 나폴레옹에 충성하여 그의 러시아 원정에 무려 10만의 병력을 파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나폴레옹이 패배하여 공국은 소멸한다. 그리고 폴란드의 일부영토에서 러시아 황제를 통치자로 하는 폴란드 왕국이 들어선다.
폴란드는 프랑스 7월 혁명을 틈타 독립을 다시 선언하고 11월에 봉기하나 결국 러시아에 패퇴한다. 러시아는 살벌한 보복정책을 벌여 주모자를 처형, 유배시키고 영지와 재산을 몰수하고, 대학을 폐쇠한다. 이 때의 탄압으로 무려 1만명의 폴란드인이 해외로 망명한다. 1861년 다시 이 11월 봉기를 기념하는 데모가 바르샤바에서 열렸으나 러시아의 봉기로 5명이 사망한다. 이 사망에 대한 추모집회가 열렸으나 러시아는 당시 크림전쟁의 패배와 농노 해방으로 정신이 없는지라 이를 묵인한다. 하지만 결국 사태가 심각해지자 강경진압하고 계엄령을 선포한다.
폴란드는 1863년 붉은 색당 지도부가 임시국민 정부를 선언한다. 하지만 흰색당은 이를 경계하여 합류하지 않다 나중에 동참하게 된다. 양당은 결국 임시정부의 주도권을 두고 다투다 분열하고 이로 인해 임시정부는 실패한다. 이것의 실패 후 폴란드인들은 독립을 조기시도와 무장독립투쟁보다는 자신들의 경제,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는 추세로 돌아선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와 퀴리부인이 등장한 시기도 이 때다.
1860-1880년대 폴란드는 기본적으로 농업국이었지만 공업화가 진전한다. 그래서 노동운동도 활발해졌는데 1892년 우치에서 왕국 최초의 총파업이 이뤄졌다. 1893년 사회민주당이 결성되었고 당시의 중심활동가가 유명한 로자 룩셈부르크이다.
폴란드의 독립 기회는 1차대전으로 찾아왔다. 러시아와 독일 모두 폴란드의 도움을 원했으나 폴란드는 양자 모두 신뢰하지 않았다. 결국 독일이 패배하자 1918년 임시정부가 들어서고 123년 만의 독립이 이뤄진다. 서부는 포즈난, 실롱스크 접경지대가 국경이 되었고 동부는 그단스크와 발트해로 이어지는 폴란드 회랑이 설치되어 동프로이센이 독일 본국과 분리되었다.
독립한지 얼마니지나 않아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전쟁이 일어난다. 피우수트스키는 주변국과 연방을 구성해 러시아에 대응하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연합국은 폴란드-러시아 국경을 커즌선으로 정하려 하였으나 피우수트스키가 이에 승복하지 않았다. 결국 1920년 리가 조약으로 전쟁이 끝나고 폴란드는 39만km2의 영토와 인구 2700만을 가진 나라로 완전 독립하게 된다. 피우수트스키는 독재자였으나 파시스트가 아닌 민족주의자였다. 오늘날에는 폴란드 건국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폴란드는 농업국이었지만 대공황 시절 실업률이 40%에 달할 정도로 경제가 흔들린다. 폴란드의 외교는 기본적으로 친 프랑스였지만 독일과 소련에 대해서는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 즉, 거리를 두고 양쪽 어디에도 힘을 실지 않았다. 1932년 피우수트스키가 사망하자 폴란드 외교상 유제프는 친독일 외교를 전개하고 독일,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한다. 독일의 유럽 침략을 염두해둔 무리한 요구를 모두 거절한다. 결국 1939년 9월 1일 그단스크를 친선방문한 독일 순양함 홀슈타인 호가 기습공격을 감행해 2차 대전이 발발한다. 독일은 폴란드의 전력의 2배이상으로 손쉽게 폴란드를 점령한다.
소련은 사전에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비밀의정서를 통해 독일과 폴란드 분할을 결정한다. 그래서 독일의 폴란드 점령후 폴란드는 리투아니아 지역을 소련에 빼앗기고 결국 독립 20년만에 다시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비운을 겪는다. 나치 독일은 폴란드는 단순 노동담당국으로 전락시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지식 계급이 박해의 대상이었고, 중등교육 이상의 기관은 폐쇠되었다. 점령 당시 폴란드의 유태인 인구는 전체의 9.7%인 350만에 달했다. 독일에 의해 폴란드에만 400개의 게토가 설치되고 하루 184kcal의 비인간적 배급을 실시해 그들을 영양실조로 사망하게 하였다. 무려 50만 이상이 게토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련은 점령 후 무려 1백만 이상의 폴란드 인을 시베리아 등지로 강제 이송하였다.
1944년 8월 1일 독일에 대한 바르샤바 봉기가 일어난다. 이는 바르샤바를 소련이 들어오기 이전에 해방해 소련으로부터 독자적인 입장에서 그들을 맞이하고자 하는 계획이었다. 2달간의 봉기로 20만이 사상하였고 결국 독일이 승리한다. 여기엔 사전에 소련과의 협의가 부족하였고 애초에 반소련입장이었기에 소련이 비협조적이었으며 영미도 방관한 측면이 있었다. 전투의 장기화로 국내군에 대한 시민의 비판이 거셌고, 망명정부에 대한 여론도 악화한다.
1945년 얄타회담에서 폴란드 문제는 연합국의 가장 큰 이슈였다. 동부국경은 과거의 커즌선을 따른다는데 이견이 없었지만 서쪽국경이 문제였다. 얄타회담 이후 소련은 자신을 적대하는 폴란드 내의 모든 세력과 조직을 탄압한다. 1946년 국민투표가 소련의 주도하에 이뤄졌는데 상원의 폐지와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농지개혁, 오데르-나이세르 강을 서부국경으로 할지에 대한 투표였다. 모두 대찬성으로 나와서 조치가 취해졌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당시 투표결과 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폴란드의 영토는 러시아의 입김에 의해 동부는 러시아 쪽에 상당히 상실하고 서쪽으로 독일을 잠식하는 형태로 구성된다. 즉, 나라전체가 역사상 처음으로 서부로 크게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이후 1978년 폴란드의 요한 바오로 2세가 무려 455년만의 이탈리아 지역 이외의 추기경이 교황이 되었다. 폴란드는 이렇다 동구권의 일원으로 바르샤바 조약 기구에 코메콘에 기압힌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동구권이 경제적으로 흔들리며 변화가 일어난다. 1980년대에 당국은 갑작스럽게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식육의 가격을 인상하였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이런 전반적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파업과 쟁의가 증가하였고 1989년 노동운동가 바웬사가 대통령이 된다.
폴란드는 이렇게 반세기만에 권위주의적 사회주의 정부에서 벗어났지만 현재 자유와 역행하고 있다. 현재의 폴란드는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약화하고, 언론의 독립성이 약하며, 이민과 난민의 수용에 소극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국와 아일랜드를 포함한 유럽 연합의 선진국가에 많은 노동력을 파견하고 있어 그들의 송금액이 나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자국의 이주 노동자가 많은 만큼 자국의 노동자가 그 지역에서 피해를 입고 차별받는 것에 대해서는 난리를 치면서 폴란드 자국에 들어온 우크라이나 및 다른 동구권과 중동지역의 노동자에 대한 차별에서는 눈을 감는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