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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개정판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8년 10월
평점 :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는 제목이 멋지고 현대적인 만큼, 최근 책이라 생각했지만 개정을 거듭하며 오래 살아 남은 책이다. 작가는 최순우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분이다. 그런데 이분이 사망한 것이 무려 30년전인 1984년이고 책이 나온 시점은 1994년이다. 추측해보면, 작가가 돌아가시고 그 분이 평소 여기저기 써 놓은 글을 후대들이 엮어 책으로 발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술은 변화무쌍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눈에는 오래도록 공감이 가기도 하는 것 같다. 많은 글이 84년 이전의 것일텐데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으니 말이다.
책은 꽤 두껍고 한 사람이 쓴 것이지만 모음 글이기에 체계적이진 않다. 다만 도자기, 회화, 공예 등으로 묶고 시기 순으로 제시하여 의도치 않은 체계와 흐름을 맛볼 수 있다. 인상 깊었던 부분만 정리해본다.
탈놀이가 끝나면 원래 그 해에 지었던 탈들은 모두 불에 태웠다고 한다. 옛 사람들의 눈에는 신이 붙었음직한 탈이 모두 타는게 더 마음이 개운했을 것이란게 저자 생각이다. 안동하회마을은 고려 중엽까지는 허씨문중, 그 후에는 안씨, 조선초에는 유씨 문중이 살았ㄷ다. 그 중 허씨문중이 하회탈의 유래와 관련한다. 허씨문중의 허도령은 꿈속에서 하회탈을 만들라는 신탁을 받았다. 그는 목욕재계하고 금줄을 두른 후 작업에 들어간다. 하지만 오랜 작업 기간에 그를 사모하던 처자가 참지 못하고 그를 엿보고 만다. 부정이 탄 허도령은 작업 중 피를 토하며 죽는다. 그는 마지막 탈인 이매탈을 만들 고 있었는데 턱부분을 완성하지 못한지라 하회탈 중 이매탈만이 턱이 없다.
하회탈은 모두 12개다. 각씨, 중, 초랭이, 양반, 선비, 이매, 부네, 백정, 할미. 떠달이. 별채, 총각이다. 떡달이, 별채, 총각 3개탈은 일제시대 일본에 반출된 긋 하고 현재 남은 것은 양반과 각시탈이다.
한국의 전통 난방 방식은 구들이다. 이중 온돌은 아궁이에서 뗀 불이 일단 하층 구들장을 직접 가열하고 그 불기운이 세분되어서 다시 상층 구들 고래를 간접적으로 구석구석 덥혀 방바닥이 고르게 데워지는 것이다. 이것을 더 합리화한 것이 탕방이다. 탕방은 아궁이에서 뗀 불이 우선 크고 둥근 하층 구들장에 받쳐서 팔방으로 분산되어 상층고래로 올라간다. 상층고래는 중앙부를 기점으로 방사선상으로 구축된 구들 고래를 통하면서 방을 덥히고 이 열은 다시 방 네 벽 변두리를 일주해서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이러한 이중구들이나 탕방구들의 장점은 혼구들처럼 아래목만 필요이상으로 뜨거운 것이 아니라 방바닥 전체를 일정한 온도로 고르게 난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층 구들장이 오래도록 열을 갖고 있기에 좀처럼 식지 않는 다는 것이다.
보통 민가의 구들은 사오년에 한 번씩은 장판을 교체한다. 장판은 벽을 다시 하고 새장판을 한다. 새 벽을 바르고 이것이 마르면 피지나 백지로 초배를 한 다음 튼튼한 대접을 엎어놓고 방바닥을 고루 문질러 미끈하게 다듬는다. 그 위에 다시 창호지를 두어겹 발라서 바탕을 희게 한 다음 들기름을 먹인 두터운 유삼지 각장을 보기 좋게 붙이는 것이다. 이것들이 과거 한국의 집에서 볼 수 있었떤 노란 장판이다. 이 장판 위에 큰댐을 하고 다시 이것이 마른 다음 마른 걸레질을 수없이 하면 윤이나게 된다.
회화부분에서는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의 작품과 설명이 순서대로 나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정선이다. 그가 그린 진경산수화는 매우 인상적이다. 어떤 것들은 산세화 수풀이 부드럽게 나오면서도 어떤 것들은 매우 날카롭고 인상적이다. 진경산수화는 역사시간에 마치 실제 경치를 그린 것처럼 나오지만 사실은 화가가 한국의 산세를 중시하되 실제처럼 마음의 것을 그린 것이다. 서양식으로 따지면 인상주의랄까. 이 세 사람은 시대를 거듭하며 일종의 시대적 흐름을 보여준다. 그림은 점차 부드러워지는 경향을 보이고 무엇보다 소재의 차이가 있다. 정선은 그래도 조선 사대부가 그려야 할 것에 얽매여 있다면 김홍도에 이어 신윤복으로 갈 수록 그 경계는 거의 사라진다. 신윤복은 남여간의 사랑과 바람피는 장면, 그리고 여인들을 많이 그렸다.
도자기의 발전도 눈에 띈다. 삼국시대의 토우와 토기 수준이 고려시대에 이르러 찬란한 청자로 피어난다. 고려 중엽에는 청자의 색은 매우 밝았고, 초기엔 백토를 발라 그림을 그리다 독자적 상감기법이 등장한다. 고려의 청자는 후기로 갈수록 색이 탁해지다 분청사기로 탈바꿈한다. 분청사기는 글자 그대로 청자에 흰 분을 칠해 푸른스름한 흰색을 띄는 자기다. 그러던 것이 조선의 백자로 이어지며 희고희던 백자가 푸른 그림을 갖게 되는 청화백자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의 도자기는 중국과 일본의 것들과 다르게 한 가지 색을 고집하고 절제하여 화려한 그림과 색채를 갖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만의 미다.
책을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책은 초기엔 흑백이었던 것 같은데 현대인 지금은 모든 작품이 크고 컬러다. 저자는 아무래도 글을 1970년대에 주로 썼을 만큼 당시 한국이 가난하고 인지도가 낮은 나라라 가진 문화적 풍모와 수준에 비해 중일만큼 국제적 인정을 받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가진 것이 훌륭한 것을 알기에 절대 주눅들어 있지 않다. 저자가 오래도록 살아 문화적으로 융성하고 자부심이 넘치는 지금의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었다는 생각이 좀 든다. 물론 그가 근무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파괴되고 거듭나 새로지어진 모습도 놀라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