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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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은 고전이기에 읽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왠지 그래야만 교양인이 될 것만 같고, 그리해야 문화 시민이 되는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은 워낙 오래전에 쓴 것이라 현대의 소설들에 비해 재미와 공감대가 부족하다. 그래서 책을 항상 들기 힘든 편이다. 이 책 그리스인 조르바도 아마 약간의 강제성이 부과된 지금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책을 대여하기도 쉽지 않아 전자도서관을 이용했는데 다 읽고 나니 후회가 전혀 없다.

 우선 책이 무척 재밌다. 책은 시간 상 대충 100년 정도 전으로 보이며 공간은 그리스 에게해 문명의 발상지인 크레타 섬이다. 아마 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은 주인공이 있고 그와 항상 함께하는 65세의 세상의 풍파를 모두 겪은 그리스인 알렉시스 조르바가 있다. 그리스는 오랜 기간 터키인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막 독립한 상태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하기 시작했고, 민족의 개념이 강하게 대두되던 혼란기였다.

 주인공은 막 독립한 자국 그리스의 지식인이자 자본가다. 그는 새로운 국민국가로 선 나라에 대한 고민, 이념에 대한 고민을 않고 있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론 부처를 흠모할 만큼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화를 찾고 싶은 이중적 모습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혼란스러움을 피하고자 크레타로 향한다. 그리고 배에서 조르바를 만난다. 둘은 이상하게 끌리고 조르바는 주인공에게 자신을 직접 고용하라고 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 사내가 묘하게 맘에 든다.

 그렇게 고용된 조르바와 보스가 된 주인공은 크레타에 도착한다. 그리고 크레타의 광산에서 갈탄을 파기 시작한다. 그들은 마을에 정착하고 머문다. 마을엔 오래된 과부이자 여인숙을 운영하는 프랑스 여인이 있었고, 조르바는 그녀의 애인이 된다. 마을엔 여러 과부가 있었지만 보스가 된 주인공은 한 젊은 검은 머리의 과부에 끌린다. 그녀는 마을 여러 남자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갈탄 광산의 수익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애초에 사업에 생각이 별로 없기도 하고 머리를 식히러 온 주인공은 조르바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다. 조르바는 일꾼들을 다그치기도 하고, 조련하며 일을 진두지휘한다. 그러다 갈탄 광산이 무너지고 이들은 돌파구로 산으로 케이블을 연결해 자원을 채취할 생각을 한다.

 조르바는 케이블 카를 건설한 자재를 사러 이동한다. 케이블 카 건설이 시작되고 이들은 건설을 위해 인근 숲을 구입하러 수도원으로 향한다. 세상과 동떨어져 깨끗해 보이던 수도원엔 의외로 세상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수도사들이 가득했고 거기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빌미로 이들은 헐값에 숲을 구매한다. 공사가 진행되던 중 조르바와 막 결혼한 프랑스 과부가 열감기로 숨진다. 그리고 주인공은 젊은 과부와 맺어지나 과부를 선망하던 한 마을 젊은이의 죽음을 계기로 마녀 취급을 받던 과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케이블 카는 공사를 마치고 기공식을 하던 날 기둥채 모조리 무너져 내리며 일부 마을 사람들과 수도사들이 다치게 된다. 주인공은 오히려 이런 대 실패에 더욱 홀가분해진다. 조르바와 이별하고 조르바는 즉자적인 성격처럼 루마니아로, 러시아로, 독일로 향한다. 그리고 독일에서 동광을 발견하고 사업에 성공한 후 숨을 거두게 된다. 책은 조르바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와 그의 마지막 장면을 묘사하며 끝난다.

 저자는 인간이 생물로 태어나며 갖는 수많은 욕망과 지능을 갖고 문명과 사회를 건설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욕망과 얽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주인공은 당대의 지식인으로 무엇보다 시대정신아니 국민국가니 이념같은 상위적 욕망에 엃혀 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것을 중시하면서도 무엇보다 싫어해 그것과 가장 거리가 있는 부처를 흠모한다. 반면 조르바는 일자무식의 인물로 그런 것들 보다는 일차적인 욕망에 충실한다. 그저 배불리 먹고 열심히 일하며, 하루를 살기 위해 돈을 벌고, 여자가 있으면 접근하고 취하며 하는 식이다. 저자는 이런 조르바 같은 삶이 생물로서 여러 곳에 얽매인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인간은 유전자를 전달해야 하는 생존기계로 생존과 번식을 목표로 하며 그것을 위한 여러 욕망과 또한 그것을 잘 하기 위한 지능을 갖고 태어난다. 그리고 그 지능과 협력성을 토대로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 냈고, 그리고 그 사회와 문화가 유전자와 마찬가지인 밈을 만들어내 인간이 그것을 따르도록 또 다른 구속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이런 것들이 모두 의미 없는 것이며 진정한 자유를 위해선 이런 것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부처는 일차적 욕망까지 모두 버리는 그야말로 해탈을 주장하지만 저자는 조르바를 통해 그런 것까지 버리려는 마음도 일종의 얽매임으로 보고, 조르바 같은 모습을 보이는게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자유인의 상태라 바라보는 것 같다.

 주인공은 조르바를 만나고 사업에 실패하며 이전보단 훨씬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 하지만 통찰력 있는 조르바는 보스는 아직 자유로워 진 것이 아니라 얽매인 줄이 다소 길어져서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것 뿐이라고 일갈하고 무엇보다 주인공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기본적 욕망외에도 수많은 관계로 얽히며 그것이 마치 진정한 자기처럼 여기며 스스로를 얽매인다. 자신이 얼마나 얽매였는지 한 번 바라보게 되는 것. 그게 그리스인 조르바가 주는 점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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