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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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건축학 개론은 로맨스를 다룬 영화로는 의례적으로 남성관객의 반응을 이끌어 낸 작품이다. 아름답고 순수하고, 성실함을 보이는 연애물은 주로 여성의 심리를 자극하는데(남성은 이런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영화 건축학 개론은 연애 과정에서 남자 존재의 어리석음과 순수함, 젊음이 보이는 실수를 마음껏 드러내며 남성의 공감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남녀를 통틀어 어린 날의 연애는 큰 생각(미래에 대한 현실적 고민) 없음과 무수한 실수, 잘못된 생각,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후회가 많이 남는 것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어린 날의 연애물은 대개 재밌고 공감을 많이 이끌어낸다. 

 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사놓고 무려 10년을 보지 않은 책이다. 보지 않은 건 제목이 주는 부담감(지극히 개인적이다), 심리의 자세한 묘사, 두께 때문이 아닐었을지. 최근 좀 시간이 나서 큰 마음을 먹고 펼쳤는데 이 책을 왜 그동안 보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들었다. 책은 생각만큼 무겁지도 공감이 어렵지도 않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책이 갖는 공감과 충분한 재미, 감동을 주었다. 다른 분야의 책은 10년 정도 묵으면 세월로 인해 뒤떨어짐이 발생하지만 이 책은 문학인 만큼 그런 것이 없었다.

 이 책의 주제는 20살의 사랑으로 지극히 큰 어둠을 갖고 있는 사람들 간의 이야기다. 어쩌면 둘 다 그렇기에 끌렸을지 모른다. 사실 둘은 사랑에 빠질만한 이렇다 할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특이하게도 비교적 잘생긴 남자와 상당히 못생긴 여자와의 사랑을 다룬다. 연애물에서 남성은 좀 그렇다쳐도 여성의 외모가 못생긴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몇몇 순정만화에서도 여주인공을 못생긴 사람으로 설정하면서도 사실 준수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으며, 그런 경우에도 주인공은 몇몇 계기로 제대로 꾸미거나 상당한 매력을 갖는다. 정말 외적인 매력이 전혀 없는 주인공은 사실상 본적이 없는데 이 책은 여주인공을 정말로 그렇게 설정한다. 어쩌면 영화 만화와는 다르게 직접 보지 않고 상상만 해도 되는 소설이라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남녀 주인공 둘은 1985년에 만나 1986년에 헤어진다. 85년에 백화점에서 일하며 만나게 되는데 둘 다 큰 어두움을 갖고 있다. 남자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존재였다. 그의 아버지는 탈렌트로 평생을 무명으로 살았지만 뒤늦게 성공하며 아내와 아들을 버리고 새장가를 든 인물이다. 여주인공은 못생긴 외모로 태어나 이로 인해 평생 고통을 받는다. 어릴 적엔 주변의 남자들 커서는 외모로 인해 능력이 있어도 취직과 직장생활에서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백화점엔 요한이 있다. 이 인물 역시 그림자가 짙다. 자기가 일하는 백화점의 아마도 창업주였을 늙은이가 요한의 아버지다. 요한의 어머니는 그의 수 많은 여자중 하나였는데 버림받고 자살해버린다. 요한은 그래도 백화점 사주 일가의 챙김을 받아 강남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아파트를 갖고 살아가며, 백화점에 꽂아준 것도 그들이다. 처음에 그들은 요한을 그럴듯한 사무직에 배치했지만 요한은 견디기 어려워 지하 주차장에서 일한다.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을 보고 묘하게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그녀를 돕다 갑작스레 친구를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남주의 마음을 꿰뚫은 요한이 둘을 연결시켜주고 그렇게 둘은 연애를 하게 된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은 잘생기고 인기 많은 남자주인공에게 자신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을 잘 지내는 듯 했지만 남자는 대학을 가고, 여자는 백화점을 그만두고 사라져버리며 헤어지게 된다. 훗날 남자주인공은 여자의 주소를 알아내 편지를 보내 겨울날 버스를 타고 찾아가며, 그것이 이 소설의 첫 장면이다. 

 이후 둘은 헤어지게 되는데 그러면서 첫 장면 이후, 나이가 들어 작가가 된 남자주인공의 장면이 등장한다. 86년의 헤어짐-현재-85년의 연애-이후의 과정이 소설의 순서다.

 소설엔 특이하게 남주와 여주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중심인물이면서 그 둘을 연결한 요한의 이름만이 나올 뿐이다. 이 또한 특이한 점다. 소설은 재밌고, 80년대의 정서와 사회분위기 향취를 느낄수 있다. 앞부분엔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정서가 좀 독특해 몰입을 방해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부분은 적고 서사가 길어지며 읽기가 편했다. 괜찮은 소설로 누구나의 과거를 상기하며 재미나게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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