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온다 - 일본의 부상, 한국 경제의 위기
김현철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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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대외 팽창은 3번 있었다. 첫 번째는 1592년 임진왜란, 두 번째는 대륙침략과 태평양 전쟁, 세 번째는 2012년의 팽창으로 인도 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을 봉쇄하려는 시도다. 이 세 번째는 현재 진행형이며 미국의 중국 견제와 합류하여 세계적 흐름을 타고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이 시들한 일본엠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온다'라는 책 제목이 걸린 것은 바로 이 흐름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 한국이 보기에 소위 넘사벽 강국이었다. 일본은 1968년 서독을 추월해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이 타이틀을 2010년 중국에 넘겨주기 전까지 무려 40여년을 갖고 있었다. 일본은 오일쇼크 이후 미국 경제가 주춤한 사이 에너지 절약형 제품과 가볍고 작고 얇고 짧은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1980년이 되자 심지어 1인당 국민소득에서도 미국을 추월했다. 1989년 세계 20대 기업에서 일본 기업은 무려 14개일 정도였으며 이 증대된 부로 미국의 핵심자산을 대거 구입하기도 했다. 

 이랬던 일본은 이후 30년간 장기침체에 빠져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된다. 4번의 충격이 있었다. 우선 1985년 플라자 합의다. 달러당 240엔이던 환율은 120엔으로 초강세전환하게 된 합의다. 대미수출이 큰 타격을 입자 일본 정부는 기준금리를 내리고 내수를 진작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런데 기업들이 이런 고환율에도 호조를 보이자 국내에 엄청난 통화가 돌게 되었다. 이에 부동산과 주가가 폭등했는데 버블이 일어나 붕괴하게 된다. 이때 자산들은 1/3에서 1/4까지 떨어졌는데 투자한 개인과 기업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다음은 1997 동아시아 외환위기다. 버블 붕괴 후 근근히 버티던 일본 경제는 이로 인해 완전불황에 빠지게 된다. 한계 기업이 도산하고,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도 부실화했다. 경제와 금융이 엮인 복합 불황으로 실업률이 5%에 달했다. 이를 제 1취업 빙하기라 한다. 15-64세의 생산인구도 처음으로 줄기시작했고 본격적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지게 된다. 수요가 약해지니 기업은 가격을 내렸고, 가격이 내려가니 소비자는 더 내려갈 기대감으로 구매를 미룬다. 고이즈미 총리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공공부문 민영화로 고용을 유연화하여 위기를 탈출하려 하였고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일본사회에 처음으로 양극화란 멍애를 낳게 된다.

 세 번째는 2008금융위기다. 일본은 크게 충격을 받아 2009년 -5.4%성장하고 실업률도 무려 5.5%달한다. 제2취업 빙하기였다. 엔화강세도 겹쳐 수출도 부진했다. 이 충격으로 2009년 처음으로 정권이 야권으로 교체되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기하고 환경, 의료, 복지를 중시했다. 내수는 회복되었지만 수출기업이 부진해 비판받았고, 결정적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붕괴한다. 2012년 다시 집권한 아베는 3개의 화살 정책을 제시하며 등장했다. 이는 과감한 금융완화, 적는 재정, 감세와 규제 완화다. 이를 통해 주식과 부동산이 상승했고, 기업실적이 좋아지고 실업률이 내려갔다. 

 네 번째는 코로나 팬데믹이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일본 재흥의 상징으로 여겨 여기에 너무 집착한다. 그러다보니 코로나 대비가 너무 소홀했고 이전 아시아를 덮친 감염병의 여파도 적었었기에 대응 메뉴얼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다. 병이 퍼지자 외국인의 방일을 전면 금지하고 가게 영업을 제한했으나 2020년 무려 -7.8%역성장을 하게 된다. 

 일본의 이 네 쇼크는 결국 30년간 겨우 0.8%성장이라는 제자리 걸음으로 귀결되었다. 세계 주요선진국들은 성장한계에 도달하면 대개 연간 2% 정도의 성장을 이론상 하게되고 실제로 그러했는데 일본은 상당히 예외적 저성장 국면에 빠지게 되었다. 

 일본이 이렇게 대처를 못한데 대해선 우선 대미굴종의 자세가 꼽힌다. 사실 플라자 합의는 일본 입장에서 상당한 주권침해였지만 일본 지도층은 의외로 이를 쉽게 받아들였다. 2차대전 이후 형성된 일본 지도층의 대미굴종 자세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들은 전쟁당시 미축귀영이란 용어로 미국에 대한 증오감을 국민에 심었지만 패전과 동시에 친미주의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 우산하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켰기에 이런 태도가 만성화하였다. 또한 이들은 지역구를 자식에게 물려주기 기득권이 영원히 유지된다.

 또 다른 원인은 무책임의 구조다. 일본 정치권은 진정한 책임을 지기 보다는 여론이 악화하면 수상자리를 놓고 자신을 지지하는 다른 이를 내세워 막후 정치를 펼친다. 이런 식이다보니 일본의 불황기에 수상교체기는 무척이나 빠른 편이다. 

 한국은 전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뤄내 선진국에 진입했다. 한국은 그 과정에서 1950년의 농지개혁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초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얻어낸 일본의 자금,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트남 전 참전으로 미국에서 얻어낸 돈의 역할이 상당한 작용을 했다.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였는데 이것이 큰 작용을 했다. 한국 기업은 항상 좁은 내수 시장으로 힌해 해외시장진출과 영업, 해외 시장 인수합병을 염두에 둔다. 그리고 한국은 자국 내에서도 경쟁사를 강하게 인식하고 경쟁하며, 단기적이고 공격적인 전략을 사용한다. 한국은 매출 점유율 확대를 늘 추구하며 가격경쟁력을 위해 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력을 한다. 한국은 또한 트랜드를 중시하고 디자인과 마케팅에 공을 들인다. 이런 전략은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데 그래서 한국기업의 황제경영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 경영자가 전권을 휘두르기에 빠르고 신속한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반면 일본은 내수시장에 관심이 많고 장인정신을 중시하며, 종업원 경영체제다. 그러니 내수시장에 관심이 많고, 서로 간 협조지향적이며 안정적이고 장기적 전략을 선호한다. 그리고 인재육성을 중시하고 기술과 품질 경쟁을 한다. 이는 경제가 안정적이고 기술혁신도 크게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선 강점이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 시기를 놓친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에서 일본이 실패한 이유다. 

 일본에게 2010년은 치욕의 한 해다. 세계 2위를 중국에 내준데 이어 센카쿠 열도에서 중국과의 충돌로 인한 외교 전쟁에서 희토류 등의 압박으로 인해 중국에 사실상 굴복하게 된 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2년 한국에선 이명박이 갑작스레 독도에 방문하게 된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 당한 이 충격으로 강한 반중 반한 정서가 생겨난다. 일본정치권은 이를 적극이용했고 이로 이냏 아베가 다시 집권하게 된다. 

 중국을 강하게 의식한 일본은 아베가 쿼드와 인도 태평양전략을 구사하여 중국을 봉쇄하려 했고 미국의 트럼프가 이후 이것에 호응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여기에 바이든 정권도 힘을 싣고 있는데 한국의 보수 정권이 여기에 너무 쉽게 호응한 것이 문제다. 

 미중패권 전쟁은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는데 첫째는 디커플링 전략으로 양자가 직접 맞붙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10년간 GDP가 3% 중국은 4%가 감소하게 된다. 다른 전략은 우회적 대결로 미국과 서방자유진영이 연합해 중과 대결하는 구도다. 이 경우 미국은 1%감소하는 한편 중국은 무려 8%역성장을 하게 된다. 한국은 둘다 좋지 못하며 5%정도 역성장을 하게 된다. 유럽연합은 3% 일본은 2%역성장인데 비해 한국은 유독 타격이 크다. 이는 우리가 내수가 작은 통상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쉽게 블록화되지 않고 꾸준히 대결구도에서도 중과 교역하면 오히려 1%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호한 전략적 입지가 중요한 이유다. 

 한국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중과 미일사이에서 모호한 위치를 고수하면서도 다른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인도와 아세안 시장이다. 양자모두 연간 5-6%의 고도 성장 지역이다. 특히, 아세안은 건설업도 활발하고 한류가 활발해 한국에 대한 호감이 높다. 한국인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으로 이런 것을 추구하려 했으나 역시 보수정권이 폐기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너무나도 쉽게 얻은 것도 없이 미국, 특히 일본이 원하는 구도에 한국이 편입된 것에 대해 상당한 아쉬움을 표한다. 사실 역사상 한국은 일본의 진출에 대해 희생자의 입장이었고 한번도 동조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3번째 흐름에 얻는 것도 없이 너무나도 쉽게 동조한 것이다. 그 결과는 대규모 무역적자다. 뉴스에 의하면 30년래 최대의 무역적자가 올해 거의 확실시 된다고 한다. 외교가 경제이고 안보가 되는 지금 시점에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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