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수업 -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예술 강의
문광훈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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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사놓고 몇 년을 책장에 쟁여두다 보게 되었다. 이유는 그냥 지난 주 정도에 비가 와서다. 사람은 당연히 주변 날씨에 영향을 받고 그것은 가끔 책을 고르는데도 작용하곤 한다. 가볍고 그림을 보려고 책을 들췄는데 이런,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다. 책에는 작가가 평생을 살아가며 사회와 역사, 시, 그림, 음악에 대한 자신의 사유가 잔뜩 담겨있었다. 내가 약한 류의 책이었다. 책은 읽을 수록 묘한 느낌인데 활자가 술술 읽혔지만 확 내 것으로 들어오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알 것 같은데 모르는 느낌, 모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이해는 안 되는 그런 묘함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당연히 저자 만큼 사회와 예술을 관련 짓는 경험이 크게 적기 때문이겠다.

 책은 미학을 공부하는 이유부터 시작한다. 역시 이유부터 잘 다가오진 않았고 그럴듯 하단 느낌이었다. '미학은 하나의 문이자 교차로 역할을 하며 다른 것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미적인 것을 통해 감각이 쇄신되고 이것이 사고의 언어의 쇄신으로 이어진다. 현재와 일상을 넘어서는 경험을 갖게 한다. 더 넑고 깊은 지평으로 사람은 안내한다. 미적인 것의 향유를 통해 자기 삶을 살게 한다.'였다. 저자는 미학 수업은 내가 내 삶은 제대로 살아가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이고 미학 수업의 목표는 삶의 자발적 구성이라며 책의 문을 연다. 

 저자는 예술에서 사회와 연관시켜 자유와 책임을 중시한다. 예술작품에는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미래의 에너지가 경험의 잔해로 기억 속에 녹아 있다. 이 에너지를 얼마나 넓고 깊게 받아들이냐는 개인에게 달려있다. 이 때 느끼고 생각한 것은 미학의 표현 수단인 언어, 음악, 색채로 표현할 수 있다. 이 때 표현은 자유의 영역인데 여기선 자신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 자유와 책인 중 하나라도 누락된다면 그 예술은 곧 한 낯 미망에 불과하단게 저자의 말이다. 뭔가를 느끼고 자유롭게 표현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 사람에 대한 책임과 관련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사람에게 삶의 충일성을 떠올리게 해준다. 사람은 실존적 삶을 살아간다. 뭔가를 선택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기 포기하기도 해야한다. 우리의 시간과 자원, 능력은 한정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와 다른 사람은 내 마음 처럼 절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삶은 어떤 가능성의 구체화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가능성의 포기다. 예술은 불가능한 것들을 상상속에 가능하게 해주면서 이런 충일성을 가능하게 한다. 

 저자는 낭만주의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낭만주의는 예술 장르에 딸, 그리고 나라, 시기, 작가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낭만주의는 무한한 것에 대한 열망이라는 공통 분모를 갖는다. 근원적인 것들은 단조롭고 무한하며 순환하는데 그렇기에 낭만주의의 풍경화는 무한성의 경험을 표현한다.  

 그림을 감상하는 법은 어렵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림은 우선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 우린 관광을 가거나 미술관에 가면 너무 많은 작품과 시간에 쫓겨 급하게 음식을 먹듯 그림을 관람한다. 제대로 소화가 될리 없다. 그림을 보는 방법에 왕도는 없지만 저자는 그림에 나타는 사물의 배치, 빛이 어디에서 나와 어디를 비추고, 인물의 표정이나 팔다리, 그리고 몸의 자세에 대해 살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화가의 기술적 숙련성과 관심, 성격, 문제의식에 대해서도 알고 그림을 본다면 더욱 좋다고 한다. 

 초상화는 역사적으로 정치권력을 가진 자이거나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화가의 가족과 친구, 일반 서민도 대상이 된다. 그리고 초상화도 과도한 표정이나 제스처등 이상화된 형태에서 탈피한다. 과시, 자랑에서 벗어나 삶 자체, 인물의 성격과 고민, 세계관이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은 렘브란트의 자화상이다. 워낙 유명한데 그는 초상화로 유화만 50개, 에칭 판화는 30개, 소묘로는 10개를 남겼다. 20세부터 죽을 때 까지 매년 한 두개를 그린 셈이다. 그의 모습의 변화는 세월에 따른 노화,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위치의 변화, 세계관의 변화는 매우 잘 담아낸다. 

 발레는 300년 전 궁정 예술의 한 형식으로 주로 군주를 찬미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남자가 의례적으로 춤을 추다 차츰 여성에게도 허용이 되었다. 낭만주의 시대가 되면 요정이나 유령같은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인 표현이 필요해졌고 그로 인해 남자보단 여자가 오히려 더 어울리게 되었다. 발레의상이 소매없는 코르셋이나 종 모양의 넓은 스커트로 줄어든 것도 이 때다. 치마폭이 넓어야 아래 위로 뛸 때 불룩해져서 허공에 뜨는 듯 해 중력으로부터 해방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늘 날의 미가 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아름다움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의 느낌에서 시작되기 때문인데 나와 대상은 미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미는 내가 느끼는 주관적, 감각적인것이면서도 다른 사람도 같이 그것을 느낄 수 있기에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는 감각과 사고, 개인과 사회를 이을 수 있으며 그래서 바른 미는 현실을 성찰할 수 있다. 하지만 감각만이 있는 미는 반쪽짜리다. 이것이 사유와 연결되어야만 한다. 감각과 사유가 같이 있는 참된 미는 나와 타자와 현실과 이념을 잇는다. 이 이어짐 속에서 두 세계는 대립을 벗어날 수 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시도 언급한다. 사실 나는 시가 매우 어렵다. 시집은 정말 짧은데 나는 내가 경험한 생각과 느낌을 주변 사물이나 다른 것에 잘 비유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시인이 비유한 것도 잘 와닿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이걸 시간과 공을 들여 붙잡고 싶은 욕구도 딱히 없는 편이다. 그 시간에 다른 지식책과 이야기책을 보는걸 더 선호한다. 저자도 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는 사물 삼투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삼투적인것은 대상 속에 작가가 감정을 투사시켜 마치 내가 그 대상인 것처럼 느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즉, 시인은 자기만의 중얼거림이 아니라 무엇을 기대어 그것을 상상으로 관통하면서 자신을 표현한다. 시의 언어를 빗대어 말하기 또는 이미지의 비유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독일어로 교양은 bilden이고 영어로는 build가 된다. 즉, 교양은 미리 만들어졌거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다른 무엇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성과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교양있는 사람은 스스로 만들어서 된 사람이다. 문화는 인간 삶의 의미 있는 활동 전체를 말하는 것인데 그래서 교양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삶의 문제가 된다. 지금 내가 내 삶과 현실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면 스스로 만들기 위해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살아간다면 나는 이미 교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양은 이렇기에 당연히 사회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고양의 형성 이념은 타인에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상호의존성이기도 하다. 교양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타인과 사회는 연관된다. 혼자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고 우리는 관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주체는 대상과의 이런 만남을 통해서 자기의 감정과 사고 판단련과 행동력을 검토 성찰하게 되는데 그래서 교양 개념은 윤리적, 정치적 차원을 갖게 되기도 한다. 즉, 교양은 자유로운 자기 창출이면서도 더 온전한 인간으로 변모하는 해방의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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