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정말 수작이다. 처음 봤을 때도 좋았지만 가끔 TV로 재방을 봐도 눈을 떼기 힘들다. 영국의 한 탄광 마을 소년이 마초적 분위기 속에서도 하라는 권투는 안하고 춤에 눈을 떠 마침내 런던으로 진출해 프로 발레리노가 되는 자전적 이야기다. 명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는 영국 현대사의 갈등 국면도 놓치지 않는데 바로 빌리가 사는 마을이 탄광촌 더럼이라는 사실이다. 아버지와 형은 광부고 빌리가 사는 마을 집들은 하나같이 비슷하게 생겼다. 막 집권한 대처 정권은 탄광을 정리하고 있었고 경찰력을 동원해 파업을 무력 진압했다. 강성하게 파업하던 빌리의 아버지는 빌리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정권에 굴복하여 일을 하러 나서고 그걸 본 큰 형은 오열한다. 

 이 모든 사단의 배후엔 신자유주의의 대두와 그것을 영국에서 실행한 마거릿 대처가 있었다. 그래서 2013년 대처가 죽었을 때 영국의 노동자나 평민들은 '마녀가 드디어 죽었다'라는 표현을 알 정도였다. 대처는 영국의 제조업과 노동조합을 파괴했으며 가장 강성했던 것이 광부였기에 이들 집단을 확실히 무너뜨렸다. 

 책 차브는 이런 무너진 영국의 노동 계층에 관한 책이다. 차브는 생소한 용어인데 아이를 의미하는 집시 언어인 차비(chavi)에서 유래한 용어다. 안 그래도 유럽에서 무시하는 집시의 언어 인데다 아이를 의미하는 용어이기에 차브는 오늘날 본래의 뜻을 넘어서 영국내의 급증하는 무식쟁이 하급쟁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확대되었고 급기야 2005년 처음 사전에 등재까지 되었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서구 사회와 산업화를 이룬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는 처음으로 상당히 균질한 집단인 소위 중산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는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데 우선 정치적으로 마침내 성별 빈부 신부를 넘어선 대중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게 되어 사회 지도층이 하층민의 눈치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는 지금과 달리 서구 사회도 상당수 노동자들이 서비스 업이 아닌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제조업은 고용이 숙련공을 요구하기에 고용이 안정적이고 대우가 좋았다. 또한 균질한 노동조건을 갖추고 있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상대적으로 연대하기도 좋았다. 세 번째는 당시 경제가 케인즈 주의였다는 것이다. 세계대전마저 일으킨 대공황 이후 각국 정부와 경영층들은 노동자의 고용과 적정한 소득의 중요성이 가져오는 수요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고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간 임금이 상승하고 정부정책은 사회복지에 힘을 실었다. 게다가 당시는 공산주의와 냉전기간이었기에 체제의 우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사회복지는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이 모든 것이 무너진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불러온 스태그 플레이션으로 케인즈식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을 힘을 잃게 된다. 그 자리를 차지한 신 자유주의는 기업을 위한 자유를 중시하는 정책이었다. 임금이 높았던 서구의 제조업은 동아시아와 개도국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 덕분에 서구 사회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여기에 냉전도 사실상 끝나게 되어 마땅한 정치적 브레이크도 없었다. 그래도 사회민주주의 정부를 갖고 있던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이런 충격이 조금 덜했지만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영국과 미국은 그 변화가 컸다. 빈부격차는 크게 확대되었고 생산성 향상에 따라 같이 상승하던 노동계층의 임금 상승은 멈춰버렸다. 

 신자유주의는 사실 이전에도 있었지만 아직은 모든 걸 집어삼키지 않았던 능력주의도 크게 강화시킨다. 능력주의는 신자유주의와 딱 걸맞는데 상류층의 타고난 지위와 사회문화적 자산과 생산수단으로 자신의 지위를 대물림하고 더욱 강화하는 것을 능력으로 정당화해주고, 이들의 이익을 위해 일자리를 잃게된 다수 노동자의 딱한 처지 역시 능력 부족으로 정당화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을 비롯해, 미국, 다른 서구사회, 한국의 노동자들은 안정적이던 제조업 자리를 잃고 불안정한 자영업이나 서비스업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서비스업은 제조업과 달리 작업장이 균질적이지 않고 모두 파편화되어 있어 연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구나 최근에 등장한 플랫폼 노동은 이를 더욱 힘들게 한다. 이들의 힘든 상황 역시 능력주의로 정당화 된다. 세계화로 인해 서구선진사회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으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기 된다. 이들은 해당국가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상대적으로 저임금으로 자국인은 기피하는 어렵고 힘든 노동을 한다. 하지만 일자리가 흔들리는 저소득 노동계층에게 이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위험요소로 받아들여지며 또한 그런 측면도 실제 있다. 때문에 개도국 출신 외국인 노동자와 서구선진사회의 하층노동계급은 서로 갈등관계가 된다. 

 그리고 노동은 이분화한다. 소수의 상대적으로 능력이 뛰어난, 그리고 운이 좋았던 이들은 정규직으로 자리하며 여전히 상대적 고소득과 안정성을 유지하지만 다른 이들은 매우 불안정하고 급여도 적은 비정규직이 된다. 그리고 이런 정규직들은 비정규직과 연대하기 보다는 능력주의의 관점에서 이들을 오히려 폄훼한다. 또한 이런 관리직 위주의 정규직들은 자신들을 비정규직과 같은 노동자로 보기보다는 한층 더 위의 계층은 중간계층으로 인식한다. 

 때문에 책 차브에 등장하는 것처럼 이런 중간계층들은 노동계층을 차브라 부르며 멸시하고 이들과 같이 어울리지 않으려한다. 또한 이들의 실패를 거시 정책의 따른 흐름으로 보기보다는 능력의 부족함 혹은 성실함의 부족 혹은 자기 관리의 부족으로 치부하게 된다. 때문에 혐오가 생겨나며 이들에게 자리하는 복지정책에 대한 강한 의구심도 갖게 된다. 하지만 책 차브에 등장하는 것처럼 이들의 어려움의 상당수는 영국의 정책에서 기인한 것이다. 잘못된 복지로 인한 세수 손실도 크지만 부유층의 탈세로 인한 재정적 피해는 무려 5배나 더 크나 언론은 이를 주목하지 않는다.

 또한 정치인과 언론인도 달라졌다. 과거엔 주요 선진국에서 노동자 출신의 정치인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학력과 신분은 무척 상향되어 최근엔 언론인, 법조인, 기업인, 교수 정도 출신들이 정치인의 상당수를 차지하게 된다. 과거 노동조합이 강할 땐 지역과 그 지역의 노동자를 대변하는 지역지가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지역의 경제기반이 무너지고 언론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지금은 거의 중앙지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중앙지의 기자와 언론인들은 대부분 상류층 출신이다. 이런 사람들이 소위 차브로 불리는 노동계층에 대한 이해가 있을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해결책은 무척 요원하다. 4차 산업 혁명의 흐름은 제조업 노동자에게 유리하지 않다. 많은 것들이 자동화되고 인공지능과 기계에 의해 대체될 것이며 그나마 남아 있는 정규직 관리직들도 그런 시대엔 자리를 보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기업과 자본가 사회 상류층의 힘은 쏠림 현상으로 인해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연대나 중산층의 형성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혹여 수요를 보존하기 위해 정치권과 기업계가 다시 기본 소득같은 것을 실행하여 많은 여가를 누리고 정치에 관심이 많으며 서로 연대를 하는 새로운 중산층 시민계층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매우 긍정적인 시나리오다. 과연 기본 소득을 할지 의문이며, 기본 소득을 한다해도 그들이 건강한 시민계층으로 자리 잡을지도 의문이고 모든 것이 개인화하며 매우 파편화한 지금의 시대에 동질적 문화란게 생겨날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계는 미중 패권 갈등에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티인 전쟁, 그리고 이로 촉발된 고물가로 인해 경제가 무척 어려워진 상황이다. 십수년간 이뤄진 양적완화로 인한 돈파티로 부풀려진 자산가격과 많은 빚을 지고 있어 이것을 이자부담과 상환부담에 시달리는 얼마 남지 않은 중산층들이 이 파국을 어찌 헤쳐나갈지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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