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도시 - 기업과 공장이 사라진 도시는 어떻게 되는가
방준호 지음 / 부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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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추석엔 군산여행을 갔었다. 군산을 선택한 이유는 서해금빛열차 때문이었다. 아이들도 나도 기차를 좋아하고  좁지만 기차 방안에서 가족들이 이야기와 다과를 즐기며 풍경을 바라보고 편히 갈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그 기차의 행선지가 군산이었기에 자연히 그곳이 여행지가 되었다. 가면서 살피니 군산은 일제 강점기 주요 항구였고 그래서 일제 잔재 문화재가 남아있고, 짜장면으로 유명하며, 이성당 빵집이 유명하다는걸 알게 되었다. 은파호수공원도 있었고, 새만금에 고군산군도, 철길마을도 관광지였다. 

 4-5시간이 걸려 군산역에 도착했다. 평소라면 자가용으로 이동했겠지만 기차여행이었기에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 기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도시의 쇠퇴를 이야기하며 걱정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엔 인구가 줄어드는 모든 지방 도시 쇠퇴의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군산은 커다른 두 변화가 있었다. GM대우와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2000년대 군산에 자리 잡은 두 기업은 고작 10년 정도를 머물렀다.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는 2017년에 문을 닫았고 지엠 군산 공장은 2018년 문들 닫았다. 이 두 대공장에는 무려 군산 사람 1/4가 생계를 걸고 있었다. 

 그 이전 군산은 버림받은 도시나 다름 없었다. 인구가 26-7만으로 전라북도 제2의 도시이지만 수도권에 가져다 놓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중소도시 규모에 불과하다. 한국의 산업개발은 수도권과 영남 중심으로 이뤄졌기에 호남 지역은 산업발전이 미미했고 이렇다할 기업체도 없었다. 그러다 90년대가 되었고 중공이 중국이 되면서 서해안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게 된다. 그리고 한국 굴지의 기업 대우가 있었고 그 대우가 군산에 자동차 공장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군산에겐 불행하게도 그 대우가 외환위기에 무너지게 된다. 결국 2002년 지엠이 대우차의 승용차 부분만을 인수하였고 상용차 부분은 1년 후인 2003년 인도의 타타 자동차가 인수한다. 이후 자동차 산업이 자리 잡고 조선업이 활황을 타며 군산의 전성기가 오게 된다. 한국의 조선 산업은 2003년 일본은 제친 후 상당한 호황을 누렸고 2008년엔 급기야 최초로 반도체와 자동차를 넘어서 한국 수출 비중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조선업은 자동차와 다른 점이 있는데 자동화가 어려워 인간의 숙련도에 상당히 의존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업은 비정규직 위주로 꾸려진다. 

 반면 자동차는 숙련도에 대한 의존도가 덜하지만 정규직 위주로 산업이 꾸려진다. 그리고 많은 협력업체를 요구한다. 그리고 자동차 같은 제조업은 상당히 비슷한 생활 수준과 문화를 영위하는 표준적 연대가 가능한 노동자 집단을 형성한다. 그래서 군산 지엠의 노동자들은 매우 힘들고 어렵게 일했지만 괜찮은 급여를 받고 집 한채 정도는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살아가게 된다. 2008경제 위기가 닥치자 모기업엔 지엠은 세계 각지의 공장을 정리한다. 하지만 군산 공장은 무사했다. 당시 고유가로 마티즈, 라셰티 등의 자동차가 유럽에서 잘 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엠은 결국 유럽 시장에서 철수하고 그 파장은 군산 공장으로도 밀어닥치게 된다.  

 결국 군산에서는 조선소와 자동차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군산을 떠났다. 28만에 가깝던 인구는 26만대로 주저않았다. 지엠 공장 폐쇄로 종업원 2044명과 164개 협력업체 직원 1028명이 실직했다. 조선소 가동중단으로 종업원 760명과 협력업체 직원 4099명이 실직했다. 제조업이 일자리가 사라지자 지방 상권도 주저 않았다. 또한 조선소 인근의 원룸들도 자리를 잃었다. 조선소는 비정규직 위주로 일꾼이 꾸려지기에 원룸이 잘 되는 편이기에 군산에도 많이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군산은 정부에 의해 고용위기 지역으로 선포되었다. 위기 지역은 구직 급여 수급기간이 길어지고 훈련 연장 급여도 제공되며 생활 안정자금 대출도 크다. 하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다. 한국에서 긴 기간 길러진 노동자의 숙련도와 그에 따른 나이와 경력은 오히려 걸림돌에 가깝다. 한국은 이들의 경력과 기술을 후대로 이을만한 사회적 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이들은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퇴직금을 털어 자영업에 뛰어들게 된다. 그게 아니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비나, 사회복지 직업 등이다. 오랜 기간 제조업 직장에서 나름 높은 자리를 차지했던 이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은 한겨레 기자가 어려움에 처한 군산에 6주간 머물며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던 사라들의 이야기를 엮어 만든 책이다. 그래서 제조업 노동자로서 그들이 갖고 있던 정체성과 그것의 무너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애환등을 잘 느낄 수 있다. 한국에 제조업에 다시 살아나길 어려울 것이다. 너무 많은 제3세계의 저렴한 노동력, 그리고 4차산업혁명의 엄청난 자동화는 20세기 존재하던 두터운 제조업 노동자들의 형성을 구조적으로 막을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나 서비스업 노동자로 전락한 사람들은 경험이 다르고 연대하기 어렵다. 다시 노동의 시대가 오기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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