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이 24주년 기념으로 당신의 독서기록 행사를 했다. 매년 하는 행사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좀 더 보기 좋고 감각적인 느낌이 든다. 잊을만 하면 나타나서 기분을 좋게 해주지만 그렇게 내가 한 살을 더 먹어 좀 더 죽음에 가까워졌고, 얼마 안되는 인생에서 생각보다 많은 지분을 책에 쓰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돈도 물론이다. 

 작가 유시민의 책을 비교적 꼬박꼬박 보는 편인데 의외로 알라딘 기록에 의하면 내가 구입한 유시민 책은 고작 4권 뿐이었다. 그의 책을 직접 사기도 샀지만 내 계정이 아닌 다른 경로로 샀거나 아주 일부는 도서관, 그리고 역시 극히 일부는 알라딘을 이용하기 이전에 직접 서점에서 샀던 것 같다. 이런 불일치는 대충 그렇게 설명이 된다. 

 이번에 나온 그의 '문과남자의 과학공부'를 보면서 유작가가 나보다 훨씬 대단한 분이지만 나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되어 무척 좋았다. 나 역시 전형적인 문과생이지만 과학책을 꾸준히 보고 이젠 인문학 책보다 과학교양서가 인간 이해에 대해 더 대단하고 얻을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나는 인간이라는 학문이 있다면 그것의 뼈대와 주요 근간을 이루는 총론은 과학이 설명하고 있으며 다양하게 나타나는 문명을 비롯한 인간이 만들어낸 학문과 각종 현상의 구체적 설명은 다른 학문영역들이 각론으로 채워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자는 물론 동등하지만 총론을 벗어난 각론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며, 때론 각론도 총론에 유의미한 방향성이나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유시민과 내가 과학책을 보게 된 계기도 비슷하다. 어디까지나 우연과 약간의 필요성 때문이었는데 막상 읽고 나니 사회과학과 철학에서 채워주지 못한 인간 근본에 대한 이해욕망을 채워주어 향후 독서 비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도 그렇다. 이렇게 생각보다 많이 본 유시민의 책을 이번에 정리해보았다.


1. 부자의 경제학과 빈민의 경제학

 유시민은 지금은 작가이자, 주요 시사 프로그램의 논객이지만 원래는 정치인이었으며 그보다 전에는 학생운동가였고 원래는 대학의 경제학도였다. 그런 유시민이니 당연히 경제학 책이 한 권쯤 있을 만하다. 젊어서 빈부격차와 독재정권의 폐해에 대해 고민했던 그였기에 부자를 위한 경제학과 빈자를 위한 경제학을 구분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했다. 이 책은 그런 성향을 가지 경제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경제학을 정리한 것이다. 대학 초년때 읽은 책으로 무척 오래되었다. 개정판으론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2.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의 책 중 초창기에 가장 성공한 책이란 생각이다. 지금이야 잘 드러나있지만 20-30년전 만해도 숨겨진 역사는 대중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숨겨진 역사란 국가권력이나 서구열강국가들에 희생된 그 국가의 사람들이나 피해국가의 상황들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 드레퓌스 사건을 알게 되었고 젊은 날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베트남전 역시 충격이었다. 베트남은 공산국가로 그들의 승리는 한국 주류 정치와 역사에 부정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며 한국은 그들의 통일전쟁에 대항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상당히 오랜기간 많은 병력을 파병했기 때문이다. 


3. 청춘의 독서

 나온지 오래된 책이지만 난 최근에 읽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눈에 띄었던 듯 하다. 유시민이 인상 깊게 본 책과 저자들의 소개가 쭉 나오는 책이다. 뛰어난 독서가 분들은 굳이 볼 필요는 없고 대학초년생들이나 독서에 관심이 많은 고교생 정도가 보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막 대학에 들어가서 교양을 쌓고 싶은 새내기에게 선물로 딱이란 생각이다. 난 나이가 들어 봤지만 역시 유작가의 책이라 빠르면서도 즐겁게 보았다. 당연히 그가 추천해준 작품과 작가 중 처음 접하는 사람도 많았다.


4.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이 정치인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고 본격적으로 작가로 전업하면서 쓴 책이다. 유시민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그것들과 부딪히며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것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 가는게 행복이지 고민도 많았다. 그런 생각을 집대성 한게 이 책이라 볼 수 있다. 유시민 책 중 수필 느낌이 나는 책으로 좀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며 미워하는 사람도 많고, 옳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많았던 그 시기에 뭔가를 놓은 것 같은 관조의 느낌이 나는 책이다. 이건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즈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서 진보와 보수의 특징을 구분하는데 이 성향을 상당히 선천적으로 보고 있어 이미 이즈음에도 과학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의 책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을 꼽으로면 난 이 책을 꼽는다.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불과 2-300년전에 형성된 국민국가에 소속되어 살기에 이를 당연시 하지만 실제 그 역사는 오래지 않았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독재정권에 의한 국가의 폭압이 가득한데 한편으로 사회계약론 같은 것을 살펴보면 국가는 국민을 위한 일종의 합의적 계약체이고 헙법도 그런 면을 많이 보인다. 이런 이중적인 국가의 면을 바라보며 유시민은 국가를 책에서 4종류로 구분한다. 국가주의적 국가, 자유주의적 국가, 마르크스적 국가, 목적론적 국가다. 국가가 존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유시민의 공동체의 선으로서의 목적을 중시하는 목적론적 국가를 가장 중시하며 이를 지향점으로 제시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에 대한 깊은 고민을 준 책이었다.


6. 나의 한국 현대사

 이 책은 유작가의 책 중 두 번째로 인상 깊은 책이다. 그는 독재탄압과 노무현의 상실이라는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다소 놀랍게도 한국의 보수주의를 인정한다. 그들이 옳지 않다고는 생각하지만 하나의 입장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의 입장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게 이 책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산업화로 상징되는데 그래서 그는 한국의 양 세력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으로 나눈다. 그리고 한국사에서 그들이 한 일을 잔잔히 짚어내고 보여준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다.


7.후불제 민주주의

 한국은 서구열강을 제외한다면 거의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다. 이런 한국의 길은 다른 나라들도 쉽게 밣을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다른 후속 주자는 전무하며 4차산업혁명이 도래하는 미래엔 아예 어려울지도 모른다. 한국의 불타는 기질과 남에게 쉽게 굴종하지 않으면서도 권력에 잘 순응하는 복잡한 면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강력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형식적 민주화를 이뤄냈음에도 아직 그것을 내실있게 뒷받침할만한 서구 사회 수준의 지역적, 풀뿌리적 시민성을 갖추질 못했다. 그렇게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부침을 거듭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론 잘못된 선택으로 그 대가를 치루곤 하는데 그게 바로 후불제 민주주의다. 웬지 지금도 그런 것 같다.\\


8.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작가의 책 중 가장 의외다 라면 읽은 책이다. 그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기에 글을 쓰는 법에 대한 책을 냈는데 그것이 이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서 오염된 일본식 표현, 미국식 표현등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됐다. 그는 우리 말을 잘 쓰게 의식을 심어준 분으로 이오덕 선생을 꼽는다. 글쓰기 뿐만 아니라 교육계에서 유명한 분으로 따지고 보면 지금의 혁신교육의 뿌리라고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하여튼 이 책을 보고 더 짧고 단순하게 한국식으로 쓰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하게 된게 큰 소득이다. 짧게나마 유시민이 쓴 소설도 볼 수 있다. 단락 수준이지만.


9.역사란 무엇인가

유시민의 책을 사면 거의 바로 보는 편이지만 이 책만큼은 일 이년을 서재에 묶혀두었다 읽었다. 그만큼 좀 어려운 느낌의 책이었다. 역사 서술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의 방식과 사람들을 망라했다. 헤로도토스의 투키디데스, 사마천, 이븐할둔, 맑스, 토인비, 에드워드카 등이 언급된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역사서술방식으로 인류사가 거론되는데 그 유명한 사피엔스나 총균쇠등이 그것이다. 인간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서술하며 변천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보기 좋은 책으로 정리가 잘 되어있다. 물론 읽기 쉽진 않았다.


10.문과 남자의 과학공부

 가장 최근 나온 책으로 인문학도인 그가 과학의 영향을 받고 생각을 바꾸고 지평을 넓히게 된 계기를 밝힌 책이다. 그가 읽은 과학책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이를 인문학적 생각들과 연결시키고 그만의 생각을 제시하는 부분이 좋다. 교양서라고 하지만 상당히 수준 높은 어려운 과학책을 많이 보았고 과학 내용도 독자가 알기 쉽게 정리했다. 책 말미에 유시민이 읽은 과학책 목록을 정리했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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