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비롯한 생물의 삶의 본질적 목적은 유전자 운반이라는 매우 기능적인 것이다. 유전자 운반을 위해서는 생존과 번식을 잘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환경에 잘 적응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생물은 감정을 느낀다.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것에는 쾌감 좋은 감정을 그리고 불리한 것에는 무서워하거나 혐오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을 갖는다. 감정은 본능적인 것으로 사전 프로그램 된 것이지만 어떤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서는 후천적으로 학습하기도 한다. 

 생물은 자신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환경에 둘러 싸이게 되면 당연히 좋은 감정이 넘쳐 흐르게 되며 이로 인해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들이나 심리학자, 진화 생물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주장하는 것처럼 행복을 느끼는 것은 나의 생존과 번식에 성공적인 상태이므로 생물체의 목적이 되며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누구나 왜 사냐고 물으면 다소 간의 차이는 있어도 대답은 본질적으로 행복으로 귀결된다.

 인간에게 행복은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매우 사회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지구 상의 그 어떤 생물보다도 협력하는 종이기 때문이다. 협력은 당연히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보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기에 선택되었고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과 잘 협력하고 관계가 좋을 때 행복을 느낀다. 그러한 환경이 유전자 운반에 매우 좋기 때문이다. 책 '행복의 기원'은 여러 가지 행복 요건을 고찰하고 인간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을 때 가장 강한 행복을 느낀다고 결론 짓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전체적으로 행복할까? 사회 학자 오찬호는 한국 사회의 불안정성을 여러 책을 통해서 드러냈는데 책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서는 한국 만큼 결혼과 육아, 교육으로 이어지는 구조에 각자 도생의 원리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한국은 개인에게 매우 비협력적인 사회인 것이다. 한국은 이처럼 사회적인 협력이 부족해 생존과 번식이 개인에게 달린 매우 불리한 환경이기에 한국인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상태이며 출산율 역시 0.8정도로 압도적 꼴찌다. 

 이처럼 행복과 관련한 주요 문제는 사회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대부분의 설파는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소확행이나 가심비, 워라밸 등의 용어들은 이래서 모두 힘을 잃는다. 근본적인 원인인 사회 문제는 뒤로 하고 개인적 차원에서의 해결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쟁터의 군인에게 전쟁이란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술을 마시든, 잠시 휴가를 떠나든, 동료들과 진한 전우애를 나눠도 그 모든 것들이 일시적 해결책이 불과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책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는 이런 문제에 대해 심리학과 자본주의의 영합을 지적한다. 행복에 대한 생각은 크게 쾌락주의와 금욕주의로 나뉜다. 금욕주의는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것으로 과거 서양의 중세시대에는 현세의 모든 욕망을 금지하고 내세에서의 구원을 통한 즐거움을 강조했다. 그러던 것이 계몽주의 시대에 행복을 인간의 손으로 내려다 놓았고, 자본주의가 되면서부터는 돈이 곧 행복이 되었다. 

 초기 자본주의에서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자들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렸다. 이는 생산성에 상당한 손실을 가져왔고 노동력의 재생산에도 문제를 초래했다. 특히 시장측면에서 수요창출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사회복지의 확충과 임금상승을 허용한다. 그리고 여기엔 사회주의의 대두라는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구소련권의 붕괴로 신자유주의가 유일의 이데올로기가 되자 이런 측면이 약화되었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부익부 빈익빈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매우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제조업 일자리의 이동과 서비스 직종으로 내몰리며 불안정성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서비스 직종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기에 제조업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더 커졌다. 이처럼 불행이 매우 커져 생산성이 더욱 떨어지자 행복이나, 웰빙. 힐링 같은 말이 마구잡이로 등장하게 되었다. 사회구조는 그대로 두다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 해결책을 자본주의가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며 이렇게 자본주의와 심리학이 영합하게 된다.

 이처럼 주류 심리학은 행복을 사회적인 것이 아닌 개인주의 적인 것으로 은폐하는데 이는 세 가지 문제점을 야기하게 된다. 우선 행복 개념을 왜곡하여 사람들을 진정한 행복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한다. 다음은 불행한 이들의 일을 그들 개인의 문제로 귀결시켜 불행을 그들 개인의 탓으로 만들게 한다. 마지막은 행복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행복 개념이 개인으로 귀결되어 사람들은 사회적, 국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개인의 물질적 혹은 정신적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게 되며, 불행한 사람은 이런 개인적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 되고, 서로 간에 더욱 행복해지기 위해 물질적으로 과시하며 실제로는 불행한데도 경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실제로는 매우 사회적인 것이다. 미국 갤럽은 150개국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행복은 다섯 가지 영역으로 분류되었다. 직업에서의 행복, 인간관계에 의한 사회적 행복, 경제적 행복, 육체적 행복, 공동체 행복이다. 그리고 이들 중 세 가지는 사회와 매우 직접적으로 관련되며 사실상 다섯 가지 모두 사회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저자는 사회와 국가의 구조 변화가 행복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생존을 책임지고 사회가 평등할수록 행복함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는 이런 부분을 책임지는 북유럽 사회의 행복함이 잘 드러난다. 

 저자는 책을 정리하며 행복은 개개인이 삶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과 매우 관련이 깊으며 인간은 이를 실현해야 만족감을 느껴 진정한 행복을 달성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삶의 목적인 개인이 공동체 속에 소속되며 이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존중받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각 개인에게 인간의 주요 본성 중 하나로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 이 자유는 세계 혹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통제력을 의미한다. 때문에 최소한의 물질이 필요한데 이는 자신의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고 사회생활의 자유를 위한 정도이다. 또한 사회적 자유도 필요하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 의해 착취되고 압박당하면 자유를 잃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정권과 생산수단이 그런 상황을 만드는데 따라서 모든 사람이 정권과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상, 문화적 자유도 중요하다. 극단주의, 혐오주의, 차별주의, 인종주의, 개인이기주의에 빠지거나 천착하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여 자기 자신의 행복과 자유를 저해한다.

 이런 자유가 국가와 사회로부터 주어질 때 사람은 다른 사람과 연대하고 창조활동을 할 수 있다. 창조활동은 개인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무형, 유형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이것의 달성을 통해 개인은 강력한 보람을 갖게 되며 이를 통해 만족감과 진정한 행복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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