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중 추리 소설과 과학 소설을 조금 보는 편이다. 그 중 재밌고 읽기도 상대적으로 쉬우며 과학이 관심이 좀 있어서 SF 소설은 상대적으로 더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얼마 전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새로 나와 보게 되었다. 테드 창은 유명한 작가인데 그 전에 읽었던 '숨'은 생각만 큼 인상적이진 않았다.
읽은 과학소설 중 최고봉은 단연 '삼체'다. 중국 작가 류츠신의 책으로 제목이 삼체라 그런지 총 3권인데다가 1에서 3권으로 갈수록 더욱 두꺼워진다. 각 권은 이어지는 내용이지만 중심인물이 마치 세대교체하듯 모두 다르며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펼쳐진다. 지구에서 비교적 가까운 삼체행성이 지구 문명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지구를 차지하기 위해 오는 이야기로 그들이 오게된 경위와 오는 과정에서 자신들보다 잠재력이 높은 지구 문명의 발전을 저해하기 위한 공작 등이 매우 재밌게 펼쳐진다. 결국 지구는 이들에게 당하게 되는데 그 가정도 자못 흥미롭다.
'멀리가는 이야기'는 한국 작가의 책으로 과학소설을 읽기 시작한 무렵 막 읽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광속으로 여행하며 어떤 문명엔 유전자 단계부터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기제를 넣어놓기도 하며 몸에 나노머신이 있어 웬만한 치명상엔 죽지도 않는 사람의 이야기, 인간의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 인간의 육신을 초월해 인공지능과 결합해 영생을 누릴 단계에서 자녀는 그러한 삶은 선택하고 부모는 인간으로써 죽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자녀는 받아드리지 못하는 이야기 등이 기억에 남는다.
역시 한국 작품으로 김초월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과 '지구 끝의 온실'도 좋았다. 사실 장편인 지구온실 보단 빛의 속도가 더 좋았는데 단편집이어서 그런지 기발한 이야기들의 엮임과 과학소설이지만 그걸 소재로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부분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쿼런틴'은 최근 읽은 것으로 나온지 오래되었지만 역시 소재는 매우 창의적이다. 양자역학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인간이 관측하기 시작하면 확률이 무너지고 대상이 고정되는 매우 당연하면서도 이상한 사실이 오직 인간에게만 가능한 것이란 생각에서 소설은 출발한다. 때문에 인간의 과학기술이 발전해 우주의 관측 범위가 넓어질 수록 우주는 다양하고 혼재된 세계에서 하나의 고정된 대상만 남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한 외계문명이 태양계를 둘러싼 거대한 막을 쳐서 제목처럼 인간을 '격리'시켜 버린다.
'멸망' 3부작 시리즈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불에 타고 모든 것이 크리스털로 결정화되고, 모든 것이 물에 잠겨 세계가 각각 멸망으로 향하는 3가지 책이다. 제목은 시리즈 느낌이 드나 사실 전혀 연결되지 않고 각각의 책이 모두 독립적이다. 이 중 가장 재미난 것은 물 시리즈로 오래전 나온 책임에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가 상당 부문 수몰되고 기온이 크게 올라 극지방에서 밖에는 살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낮이 너무 뜨거워 기온이 겨우 30도 정도인 새벽이나 아침에만 일하는데 한 낮엔 온도가 거의 50-60도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그 지역이 런던이란게 기막힌 설정이다.
사람들은 뭔가가 현격히 다른 수준을 보이면 흔히 차원이 다르단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을 가장 잘 보여주는게 소설 '플랫 랜드'다. 제목처럼 이차원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3차원이 얼마나 대단한 존쟁임을 보여준다. 이차원 세계가 있는데 한 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면 모든 것들이 그 쪽으로 쏠리는 힘을 받게 된다. 이들은 이걸 중력처럼 받아들인다. 이차원엔 오각형도 삼각형도 원도, 사각형도 있다. 사람들은 정면만을 볼 수 있기에 이들을 모두 비슷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이차원에서도 이들의 다른 모습을 어렴풋이 여긴다. 3차원에선 이차원 도화지의 어느 곳이나 순식간에 갈 수 있다. 또한 이차원을 구부려 서로 만나게 할 수도 있다. 이들에게 이것은 마치 웜홀 같은 일이다. 하여튼 오래되었음에도 정말 재미난 설정의 책이었다. 4차원 세계의 외계인이 있다면 우리 인간은 플랫랜드 사람들 같은 것이다.
'더 로드'는 크리스천 베일 주연으로 영화화 된적도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핵전쟁이나 소행성 충돌 혹은 거대 화산 분출 같은 거대한 불로 인해 세계는 망해버린다. 인간들은 초기 잘 모이기도 했지만 결국 야만화한다. 약탈자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이 와중에 주인공 부부는 아이를 낳는다. 엄마는 견딜 수 없는 현실에 세상을 등져 버리고 아버지 홀로 이 아이를 키워 나간다. 영화에선 벙커, 소설에선 한 주택에서 아들과 아버지가 모처럼 괜찮은 비상식량을 얻어 만찬을 즐기며 잠시만의 평안을 누리고 그 와중에 이들을 노리는 약탈자들의 모습이 긴장감이 넘친다.
'숨'은 마치 증기기관 처럼 인간의 뇌와 인지가 기압에 의해 유지되는 세계를 묘사한다. 그런데 인지능력이 저하되는 사람이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조사 결과 이는 대기압이 점차 변화하기 때문으로 밝혀진다. 인간 내외부의 기압차가 사라지면 공기의 흐름은 멈추고 인간의 뇌도 멈춰 결국 세계는 지적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이고 만 것이다.
'종이 동물원'은 여러 단편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야기들이 전체적으로 기발하고 매우 재밌으며 과학소설로의 장점도 놓치지 않으면서 인간적인 부분을 잘 후벼판다. 최근 시류와 맞물려 기억에 남는 부분은 먼 미래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해지며 인류 역사상 일어났던 잔혹한 학살이나 전쟁범죄등에 대한 확인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역사를 부정하던 가해국가들은 초기 충격을 받지만 곧 이조차도 부인하는 놀라운 정신승리를 보여준다. 일본과 한국 보수층의 만행을 보고 있으면 가끔 그들의 머리에 그들 조상이 친일했거나 조선인을 학살하고 괴롭히는 모습을 재생시켜 주고 싶다는 충동에 빠지는데 소설을 보다보니 어쩌면 이조차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sf의 힘'은 과학소설 자체는 아니지만 인공지능, 외계인등 과학기술에 대한 인간의 논의를 전개시키며 이들을 다룬 과학소설을 소개하고 등장시키며 인간의 생각을 조망한다. 한국 작가가 쓴 책인데 많은 과학소설을 추천 받을 수 있고 이런 시도 자체가 독특하고 인상깊었다.
마지막은 이번에 본 책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다. 역시 과학소설 단편 모음집으로 바벨탑을 다룬 이야기, 강화 인간 이야기 등이 있다. 인상 깊은 에피소드는 칼리란 도구에 관한 책이다. 이는 인간 뇌 신경 일부를 마비시켜 상대방의 외모에 대한 성적 반응을 사실상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리를 장착한 인간은 어떤 외모를 보아도 어떤 감흥이 없고 철저히 상대방의 내적인 면에 의해 이끌리게 된다. 그래서 외모가 출중한 영화배우, 탤런트, 모델등을 보아도 감흥이 없다. 일부는 칼리를 중단하고 이런 것을 느끼며 처음으로 자신의 외모가 어떤지에 대해 신경쓰게 된다.
과학소설을 늘 읽어도 어려지만 재밌고 술술 읽힌다. 소설에 따라 과학적인 부분에 더욱 신경을 써서 그것 자체가 주제인 경우도 있으며 과학은 그저 외피이고 인간적인 이야기에 치중하는 것들도 있다. 모두 재밌고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더 많은 양질의 과학 소설이 한국에서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