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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삼국지 - 글로벌 반도체 산업 재편과 한국의 활로
권석준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2년 10월
평점 :
반도체는 한국 수출액의 20% 정도에 주식 시가총액에서도 역시 20%를 차지한다. 한국은 자동차, 스마트폰, 첨단 가전, 조선, 석유화학 등 제조업 부분에서 고루 강하지만 무역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세계 시장에서도 반도체 산업의 규모는 매우 크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규모는 연간 2000억 달러에 달하며 향후 인공지능, 자율 주행차, 사물 인터넷, 통신 분야에서 반도체의 요구도는 날로 커질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 80년대부터 반도체를 시작했는데 불과 20여 년 만에 세계적 선두 주자에 위치에 올라섰다. 이 시기부터 세계 반도체 산업은 냉전의 붕괴로 세계화가 추진되며 비용을 가장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분화되었다. 설계와 공정 생산, 그리고 여기 필요한 소재, 부품,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가 나라 별로 비교 우위에 따라 다분화 된 것이다. 이런 체제에서 한국은 오랜 수혜를 받으며 선진국의 위치로 올라섰으나 이제 그 게임이 끝나버렸다. 미국은 자신들의 위치를 위협하는 강국 중국을 제대로 견제하기 시작했으며 반도체는 차세대 산업의 주력으로 그 제재의 주요 대상이다. 문제는 대중 수출 규모에서 한국의 반도체는 연간 800억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전처럼 눈치를 보며 애매한 위치를 고수하기 매우 어려워졌다. 이 책은 이러한 형국에 대한 분석과 해답을 제시한다. 책은 우선 한중일 삼국의 반도체 발전의 역사와 현 시점 향후의 과제를 제시한다.
1. 일본
반도체의 역사는 서진한다고 한다. 최초 개발은 영국, 다음은 미국, 일본, 한국과 대만, 중국 순으로다. 중국으로의 걸음은 미국의 제재로 미지수가 되었지만 하여튼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 반도체를 제패했던 국가다. 일본은 한 때 세계 최초의 NAND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기술개발, 세계 최초의 KB급 DRAM 양산 공정 개발, 세계 최초 CMOS이미지 센서 양산, 세계 최초의 수퍼컴퓨터 개발이 일본의 작품이다.
1970년대 만해도 지금과는 매우 다르게 동아시아 국가는 반도체 시장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국가 주도로 준비하여 1980년대부터 시장을 장악한다. 통신산업성 주도로 초 LSI 기술 연구조합을 설립하여 기업 간의 중복투자 방지, 기술 노하우 공유 등으로 일본 만의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한다. 그 결과 NEC가 1985-1991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반도체 상위 10개 기업 중 6개가 일본 기업이었으며 전체적인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무려 80%에 달했다.
이런 일본 반도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1985년 미국 통상법 301조(언론에 자주 나오는 수퍼 301조다.)를 걸고 넘어진다. 무역 제재와 보복 관세를 시작하였는데 그래서 일본 반도체 기업은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50%이하를 유지하고 일본 국내 시장의 20%를 미국 기업에 내줘야 했다. 이 기간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수율을 높이고 극단적 품질 강화로 대응한다. 하지만 이는 차세대 기술의 미비로 한국과 대만에 밀리게 되는 패착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반도체 생산에 세계적 변화가 일어난다. 기존에 반도체는 설계와 제조의 공정을 모두 한 회사에서 담당했었다. 하지만 세계화의 바람과 더불어 미국의 일부 반도체 회사들이 이 관습을 포기하고 설계와 생산을 분리하기 시작한다. 설계와는 다르게 생산공정과 수율관리는 막대한 자금과 인력 및 시행착오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부터 세계 반도체는 설계만 하는 팹리스, 팹리스의 설계를 의뢰 받아 제작해주는 파운드리, 그리고 이 공정에 필요한 소재, 부품, 장비를 공급하는 회사들로 분업하여 최적화되기 시작한다. 반면 일본 업체는 이 흐름을 타지 않았다. 이들은 자체 생태계를 믿고 설계, 소재, 부품, 공정, 후공정에 이르는 수직계열화 방식을 고수하여 경쟁력을 잃게 된다.
결국 일본 반도체는 90년대 이후 급격히 몰락하여 지금은 흔적만 남게 되고 소부장에 집착하는 신세가 되었다. 일본의 패착은 3가지가 요인이었다. 우선 자신들이 구축한 기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과 그로 인해 세계 시장에 대응력이 떨어진 점, 자신들의 기술을 믿고 과도하게 혁신을 하여 효율과 수익률을 떨어뜨린 점, 그리고 과거엔 성공적이었지만 시대착오적인 정부의 과도한 간섭이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반도체를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대만 TSMC와도 협력하는 등 자신들만의 생태계 구축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는다. 일본은 미국의 중국 제재에 편승해 칩4동맹에 편승하여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려 한다.
2. 중국
중국은 2020년 기준 전역에 50개가 넘는 반도체 투자 사업을 진행중이다. 총 투자비가 무려 2430억 달러로 한국 돈으로 280조다. 돈은 엄청나게 투자하지만 현재 반도체 자급률은 15%에 불과할 정도로 성과가 미비하다. 중국 반도체는 사실 정부 주도로 지난 20년 간 급성장해오긴 했다. 이들의 발전 비법은 강력한 정부의 정책과, 연구 개발 분야의 투자, 그리고 해킹을 이용한 무분별한 해외 기업들의 기술 탈취와 해외인력 스카우트를 통한 기술 획득이다.
중국은 공산당 중앙정부가 시책을 펼치면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지방 정부들이 무리하게 이 시책을 적극 추진하는데 반도체 분야도 그렇다. 하여튼 여러 시책에 무리하게 참여한 대가로 2020년 기준 중국 지방 정부의 부채는 무려 4600조다. 중국 국가 전체의 부채는 무려 6경원에 달한다. 중국 31개 성 중 8곳이 GDP대비 부채가 100%가 넘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거의 절반 이상의 성이 이런 처지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더 이상 투자를 위한 여력이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여기에 중국은 고령화 문제와 엄청난 부채, 미국과의 제재로 인한 저성장 국면에 고착화되면서 반도체 부문의 기술 획득이 쉽지 않게 되었다.
현재 중국이 기술적 한계에 부딪힌 부분은 10나노 공정이다. 10나노 까지는 비교적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그 이하로 내려가면 기술에 차원이 달라진다. 반도체는 패터닝을 통해 생산하는데 패터닝을 글자 그대로 반도체 표면 위에 2차원이나 3차원의 구조로 아주 미세한 작동 패턴을 새겨넣는 공정이다. 그리고 이것이 섬세해질수록 작은 크기에도 집적도가 높아져 고성능의 반도체가 생겨난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크기엔 큰 변화가 없음에도 무어의 법칙을 따라 성능이 꾸준히 개선되는 것은 이런 패터닝 기술이 극도로 발달해왔기 때문이다.
이 반도체 패터닝에는 품질이 매우 우수하고 신뢰도가 높은 광원이 필요하다. 이 광원에 감과원을 노출시켜 패턴을 얻기 때문이다. 넓은 파장의 저렴한 광원을 쓰면 물질이 전자기파를 흡수하는 정도가 달라져 균질한 제품을 얻을 수 없으므로 아주 좁은 범위의 파장이 필요하다. 레이저나 플라스마 발광이다.
10나노 이하의 공정에서 사용하는 광원이 EUV다. 이 광원은 신뢰도가 매우 높으나 여러 물질이 잘 흡수되는 문제가 있다. 때문에 EUV공정에서는 나노두께로 수십겹을 겹쳐 극도로 반사율을 높인 거울을 여러 개 연결하여 광원을 집결시켜 패터닝을 한다. 때문에 처음 광원 세기의 7.5%수준에 불과해지고 전력 역시 크게 소모한다. 이렇게 낭비가 심한데도 이 기술이 아니면 10나노 이하 공정이 불가능하기에 이 기술이 사용된다.
이 고성능의 EUV장치를 양산단가에 맞춰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네덜란드의 ASML이다. 문제는 미국의 제재로 중국은 ASML의 EUV장비를 수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장비는 대당 1800억원의 고가이지만 돈이 많고 안달이 난 중국에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ASML은 네덜란드 기업이지만 EUV장비 생산에 필요한 부품 20%정도가 미국에서 생산되다. 때문에 중국은 EUV를 구매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중국의 반도체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한다. 중국 자체만의 힘으로 오랜 역사와 협력을 자랑하는 반도체 기술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자체의 물량과 돈, 그리고 해외 기술 빼돌리기와 스카우트로 해결하려 하겠지만 이 또한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쉽지 않은 형국이 되었다. 또한 기술 개발에 성공하더라고 세계 표준과 멀어지는 갈라파고스화가 진행되어 완전히 독자적인 길로 가게 된다면 그 또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중국의 넘쳐나는 인재와 반도체 분야의 논문 수준의 우수성과 기초과학 분야에서의 뛰어난 능력을 보면 위협적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3. 한국
한국은 1980년대부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다. 당시 일본 업체가 세계를 제패하고 있었으므로 한국의 도전은 무모해보였다. 한국은 1980-90년대까진 선두 업체와의 기술 격차를 줄여나가며 동시에 선행 기술을 개발하는 전략을 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는 선행기술을 적어도 두 세대 이상 먼저 개발하는 초격차 전략을 펼쳐 성공한다. 그 결과 삼성은 1996년 세계 최최로 1GB급 DRAM개발에 성공한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미국은 한국 반도체를 견제한다. 정부의 기술개발 보조금, 세제지원 축소, 대기업의 자금조달 투명화, 대출자금 정보 공개등이 요구되었다. 당시만 해도 반도체는 삼성외에도 현대와 LG에서도 사업을 진행했는데 현대반도체가 LG반도체를 흡수 합병한다. 21세기 초반은 반도체 업계가 불황이었기에 현대 반도체는 15조에 달하는 부채가 있었고 자본금이 부족해 신기술에 대한 투자도 미비했다. 결국 2001년 말 채권단에 매각되어 워크 아웃에 돌입했고 매각 후 하이닉스로 이름을 바꾼다. 2005년 업계가 호황으로 전환되어 흑자기조로 정상궤도에 올랐고 이동통신으로 자본을 쌓은 sk가 인수해 지금의 SK하이닉스가 된다.
대만의 TSMC는 파운드리 회사다. 파운드리는 설계사가 설계하거나 특정 제조사가 주문한 반도체를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제작해주는 회사다. 때문에 파운드리 회사에는 고도의 신뢰와 기술이 요구된다. 파운드리 회사는 고객의 입맞에 맞추기 위해 반도체 설계 단계부터 고객사와 협력하며 그들의 공정에 맞게 최적화해준다. 그리고 여러 회사의 칩을 설계해나가며 다양한 기술을 익히게 되고 이를 통해 시너지 효과도 갖게 된다.
반면 삼성전자는 종합 반도체 회사다. 즉, 제작 뿐만 아니라 반도체 설계까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업체들이 고객이 되기도 한다. 삼성은 2017년부터 시스템 반도체에서 파운드리 부분의 사업을 독립시켰다. 그리고 2020년부터 파운드리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저자는 삼성이 파운드리 부분의 법인을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이는 삼성과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들인 기술 유출 문제로 삼성에 제작을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객 사의 신뢰를 얻기 위해 법인의 분리가 필요하고 파운드리 제작사로 거듭날 때 삼성이 TSMC의 경우처럼 고객 다양성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현대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의 동력이 되고 있다. 그 동안 한국은 중국과 미국의 협력 체계 하에서는 양국사이에서 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경제적 이득을 얻어왔다. 하지만 미중갈등의 고착화로 판이 변하면서 이런 입장을 위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저자는 과감히 한국이 중국을 버리고 미국이 운영하는 칩 4동맹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연간 8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 시장의 포기와 관련 산업체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미국이 반도체 뿐만 아니라 세계 과학 기술을 선도한느 강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로 제조업 각 분야에 대한 원천기술을 선점하고 확보하여 시장의 지배력을 보존해오고 있다. 특히, 각 산업의 공정마다 원천기술을 갖고 있어 자신들의 기술이 세계 시장의 표준이 되게끔 하는 노하우가 강하다. 현재 반도체 산업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는 패터닝이 극 미세화하며 원자 두께 이하의 양자영역으로 치닫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는 양자 ICT가 중요해질 텐데 이 부분에서도 미국이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은 미국이 선점해나가는 기술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이를 잘 따라가며 몇몇 기술에서는 세계를 선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상실하게 될 중국 시장 역시 생산기지와 소비지로 아세안을 주목해야 한다. 인도와 호주가 중국을 대신할 새로운 생산 및 공급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양국 모두 미국과 친밀한 경제, 정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에 대한 시각도 거두지 말아야 한다. 우선 이들이 꾸준히 시도할 기업 기술 유출을 막고 인재의 스카우트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흔히 첨단 기술 인력에 대한 스카우트가 이뤄진다고 믿지만 반도체 공정에서는 긴 시간 이 환경에서 근무하여 각종 시행 착오를 겪고 이를 해결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중국 기업은 회사 승진에서 밀리거나 정리해고 위기에 처한 즉, 기존 기업에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 인재를 거액에 스카우트 하여 단기간 고용하고 버린다. 때문에 인력에 대한 처우를 높이고 감시도 더욱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산학협력도 중요하다. 반도체에 대한 산학협력은 미흡한 수준으로 대학에서 현재 기업의 현장 수준에 필적할 만한 시설을 갖춘 학교는 서울대가 유일하다고 한다. 네덜란드 수준으로 산학협력을 강화해 시설과 보안을 강화하고 현장의 경험 많은 고수준기술의 인재가 학생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소재, 부품, 장비의 생태계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분업체제에서는 이를 글로벌 공급망에 맡겼지만 이것이 붕괴된 지금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자국내에 안정적인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본의 쓸데없고 무리한 제재로 다수의 일본 소부장 기업들이 한국으로의 진출을 희망하는데 이들에게도 적극 지원을 해 한국에 종속되는 생태계로의 편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 정세의 급변으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이제 새로운 공식을 따라 새로운 위기와 기회를 맞는듯 보인다. 중국 시장의 상실은 단기적으로 큰 손실이지만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제거되는 이점이 있기도 하다. 향후 이 부분에 대한 불투명성은 매우 높아 보이며 반도체 부분에 대한 개인의 투자도 무척 조심스러워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