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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 전쟁의 기원에서 미래의 전쟁까지, 한 권으로 읽는 전쟁의 세계사
제러미 블랙 지음, 유나영 옮김 / 서해문집 / 2022년 5월
평점 :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는 동물로 태어난 이상 인간은 생존을 위해 다른 생물을 죽여야 한다. 다른 종의 개체는 주로 먹이로 이용하기 위해 죽이지만 같은 동족 끼리는 자원을 놓고 경쟁하며 죽인다. 인간은 협력하여 집단 사냥을 오랫동안 해왔기에 사냥과 전쟁은 인류사 초기엔 잘 구분되지 않았고 크게 분화되지도 않았다. 전쟁보단 아무래도 사냥을 더 많이 했을테니 사냥했을때의 집단 행동과 양식 전술이 그대로 다툼에 이용되었을 개연성도 크다.
그러다 사회가 크게 분화하고 커지면서 서로 경계를 맞닿게 되었고 그러면서 전쟁이 사냥에서 본격 분화하며 전문화하였을 것이다. 인간은 전쟁을 위해 진화하기도 하였는데 전투집단 내에서 인간은 강력한 동료애와 흥분 및 고양감을 느낀다. 이는 광범위한 문화권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진화한 심리이므로 인간이 전쟁을 위한 심리적 적응을 했음을 입증한다.
무기로는 초기에 석재가 쓰였지만 광석에서 금속을 분리할 수 있게 되면서 청동같은 금속 무기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말은 기원전 4천년경 흑해 부근에서 가축화하여 기원전 1700년경 전차에 활용되었다. 전차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재갈과 바퀴살이 필요했다. 초기 제국들이 커지면서 전쟁은 점차 대규모화하기 시작한다. 전쟁의 대규모화는 식량과 식수, 숙소, 장비의 보급을 요구했으며 이는 고대엔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에 필연적으로 주변 지역 및 피정복민에 대한 착취가 이뤄졌으며 전쟁과는 다른 갈등을 낳기도 했다.
중동지역은 비옥한 충적토 덕에 인구부양 효과가 컸고 그로 인해 초기부터 대규모 전쟁이 이뤄졌다. 이 지역에서 철기를 최초로 사용한 것은 히타이트 였지만 그 사용이 제한적이었다. 철기를 제대로 사용하여 중동을 제패한 것은 아시리아였다. 그들은 단호한 리더십과 군사주의 문화, 아슈르 신의 가호로 무장했으며 공성추와 공성탑 등 이전에 비해 매우 뛰어난 공성 능력을 갖고 있었다. 바빌론과 페르시아가 차례로 무너졌고 말 4마리의 중전차로 화력을 강화했다.
중국은 북부지역에 대규모 농경이 시작되며 무력 충돌과 국가가 생겨난다. 기원전 3천년경 이 지역에 성벽을 두른 거주지와 금속 무기가 등장했고 2500년 경에 청쯔야에 성벽도시가 생기고 1800년경 상왕조가 등장했다. 중국에서 전차와 합성궁, 청동으로 창끝을 댄 극과 창이 발달한 것이 기원전 2000년 경이다. 한편 서부 변경의 주나라는 유목민과의 교류로 얻은 저차를 활용하여 상을 무너뜨린다. 주나라까지 중국에서는 귀족들에 의한 소규모 전차전투가 주류였다. 하지만 전국시대부터는 석궁과 같은 무기와 대규모 보병 진형에 의한 전투가 시작된다. 무력충돌이 대규모화했고 이로 인해 전차보다는 보병이 더욱 중요해졌다.
인도 역시 중국처럼 오랜 문명을 가졌다. 기원전 2800년경 인더스 강 유역에 하라파, 칼리방간, 모헨조다로 성벽이 있었고 기원전 1000년경 펀자브에 요새화한 정착지가 나타났다. 인도는 북부와 남부가 크게 다르다. 인도 북부는 기후가 비교적 시원해 말의 번식과 사육이 가능해 기병의 운영이 가능했다. 반면 남부는 열대로 숲이 울창하고 질병이 많아 말이 건강을 유지하지 못해 기병이 없었다. 이는 침략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인도 북부는 북쪽의 좁은 회랑을 통해 침공을 자주 당한다. 아리아인, 쿠샨, 월지, 스키타이, 샤카등이 그러했다. 인도는 지리적 한계로 경작 지대가 원시림에 가로막혀 잘개 쪼개져있다. 때문에 인도는 이러한 경작지를 소유한 소국이 다양하게 많았으며 좀처럼 하나가 되지 못했다. 지금의 인도에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로마는 물리적 군사적으로 광범위한 환경에서 요새나 도로를 많이 건설해 오래가는 군사인프라를 구축한다. 로마는 행군마다 쉬는 곳에 숙영지를 건설했는데 이는 이후 방어와 연락망을 제공하고 향후엔 정착촌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로마는 강했지만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그들은 남부의 삼니움과 상당히 오래 경쟁했고 기원전 250년이 되어야 간신히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차지한다. 이후 스페인 남동부를 두고 카르타고와 경쟁하는데 로마는 해군력이 열세였음에도 빠르게 만회하여 전쟁에서 승리해 시칠리아를 차지하고 주변 두 섬도 얻는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선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로마 본토를 침공한다. 그들은 매우 강력하여 대부분의 전투에서 로마의 주력부대를 궤멸시키고 일부 동맹도 와해시킨다. 하지만 한니발의 군대를 강했으나 알프스를 넘어온 만큼 이렇다할 공성장비가 없었다. 여기에 기다리던 지원군과 해상전력은 로마에 의해 차단되었으므로 한니발은 사실상 퇴각할수 밖에 없었다.
로마는 포에니 전쟁 승리이후 기원전 36년에 아우구스투스가 시칠리아 해적을 정발함으로써 지중해를 완전히 손에 넣는다. 이덕에 매우 저렴하게 대규모 해외 무역과 식량 공급이 가능해졌다. 로마는 피정복민에게 로마인이 될 기회를 부여하여 현지인은 자기편으로 만들어 국경을 안정화하였다.
방어 구조물인 성은 과거엔 피신처였지만 점차 주거지로 변모한다. 석성은 화재에 강하다. 서구는 석재를 주로 사용하였고 동양은 흙, 벽돌, 목재로 성을 지었다. 석성은 화재에 강하지만 내부의 뼈대 구조물은 목재를 사용하였기에 아래를 파서 불을 붙이는 공격엔 붕괴되기 쉬웠다. 13세기부터 성규모와 높이, 복잡성에 증가했다. 궁수, 투척무기, 땅굴의 위험으로 성벽의 높이는 올라갔다.
유목민은 스텝의 동물을 전쟁에 이용했다. 이 동물들은 무척 강인하고 황량한 지형에 잘 적응했다. 유목문화의 생활양식은 대규모 경무장 기동전에 필수적인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그들은 이동이 생활이었기에 병참이 매우 효율적이어서 별도의 인원이나 조직이 필요하지 않았다. 유목군대는 소수이기에 인명손실에 민감했고 그래서 정복보다는 약탈과 초토화를 택했다. 농경제국의 변경을 초토화하면 양지역 사이에 완충지가 생겨났고 희생이 적어 효과적이었다.
몽골은 칭기즈칸이 나타난 후 호라즘과 사마르칸트, 금을 정복한다. 송을 멸망시킬때는 해자를 잔해로 메꾸고 중동지역에서 들여온 공성병기를 배치했다. 이는 트레뷰셋인데 인력으로 밧줄을 당겨서 쏘는 방식에서 평형추를 다는 방식으로 개선되었는데 이를 몽골이 도입했다.
화약은 중국에서 등장했다. 9세기엔 화약 제조공식이 정확해졌고 11세기에는 화약 생산 상설 병기창이 생겼으며 12세기에는 총신을 금속으로 제작하여 무기를 생산했고 14세기 들어 총과 포가 분리되었다. 초창기 공성용 사석포는 포미와 포신 분리형이었고 무겁고 발사후 열을 오랜기간 식혀야했다. 여기에 연철 이음색 부분을 만드는데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었다. 더 발전한 주조기술과 청동, 놋쇠등의 구리합금이나 주철을 사용하면서 대포는 가벼워지고 쓸만해진다. 1420년 서유럽에서는 알갱이 형태의 화약이 개발되는데 이는 구성성분이 잘 배합되고 파괴력을 높였다. 1400년경 질산칼륨대신 황산칼륨을 사용하면서 화약의 수분 흡수로 인해 품질저하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금속주조술의 향상으로 포신과 일체형의 포이가 도입되었다. 포이는 포신을 받치는 돌출부로 대포의 발사각을 조절하고 기동성과 발사속도를 향상시켰다.
총은 활보다 관통력이 뛰어났지만 탄알의 보급,, 연사의 어려움, 기후의 영향, 짧은 사거리, 기마에서의 사격의 어려움, 총기 폭발위험등 기존 궁병에 비해 단점이 무척 많았다. 여기에 총병은 궁병보다 명중률 향상에 많은 훈련이 필요했다. 때문에 총병은 명중률을 높이는 훈련보다는 전체를 집중시켜 전체발사량을 늘려 위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달한다. 총병은 장전에 오랜 시간이 걸려 보호를 해줄 창병이 필요해 같이 편성된다. 하지만 17세기 말에 총에 창검을 부착하게 되면서 창병이 사라진다. 18세기 들어 서양에ㅔ는 보병대열이 중앙에서 일제사격을 하고 양익을 기병이 보조하게 된다.
화약대포의 등장으로 성벽에도 변화가 생겨난다. 사각형 모양의 능보를 성벽 전체에 일정 간격으로 배치해 성벽에서도 대포사격을 하게 했다. 또한 성벽은 높이가 낮아졌다. 너무 높으면 포의 공격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낮으면 적이 오르기도 쉬워져 적정한 높이를 유지했다. 화약대포는 고지나 비탈의 성격도 변화시켰다. 고지나 비탈은 전통적으로 전투에 유리하다. 적을 내려다볼 수 있으며 위치에너지가 있으니 발사무기 및 돌격의 위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하지만 적의 입장에선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화약대포가 생겨나자 노출된 비탈이나 고지를 지키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해졌다. 때문에 현대전에서도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비탈사면뒤에 병력을 숨기고는 한다.
근대에 들어서 전쟁에서는 이동과 보급, 통신기술이 중요해진다. 증기선과 통조림, 전신이 개발되며 혁신적인 변화가 등장한다. 군수물자의 개선은 열대에서 효과가 매우 컸는데 통조림과 분유, 연유, 마가린은 냉장기술이 없던 시기에 등장해 열대에서도 식량의 선도 유지 및 보급 규모 개선이 크게 작용한다. 도로나 철도는 군사와 물자의 보급에 매우 중요했다. 이는 공격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자국은 방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신의 보급으로 전쟁에서 정보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중앙이나 사령부에 전달되게 되었다.
이 책은 인류초기부터 현대까지의 전쟁을 무기의 등장이나 전술, 주요 전쟁사를 빠짐없이 다루려고 한 책이다. 하지만 다루는 내용이 방대하고 책이 그리 두껍지 않다보니 매우 빠르고 짧게 한 소재를 다루며 넘어간다. 이 부분이 매우 아쉬운데 뭔가 이야기를 하다 마는 느낌이 들고 전쟁사 전체를 변화시키는 주요 혁신적 변화를 다루는 면이 아쉬웠다. 원거리 무기의 등장, 기병의 등장, 총기의 등장 등은 꽤나 전쟁을 혁신적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좋은 점은 모든 전쟁에서 단순히 무기나 전술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서는 현지에서의 조력과 병참 문제의 해결, 그리고 동맹을 잘 다루고 와해하는게 인류사적으로 공통됨을 보이려고 했다는 점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