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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물들은 지구에서 협력하며 살아왔다. DNA의 운반기계로서 생명체 하나하나는 그 본연의 목적 때문에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때문에 경쟁 만이 방법 같지만 협력은 DNA를 다음 세대로의 전이를 더욱 수월하게 하기에 생겨났고 경쟁 이상으로 성공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협력하는 개체 수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그 개체들의 생활양식과 지능이 우수하고 복잡할수록 당연히 협력 방식과 규칙 역시 같이 복잡해지게 된다.
때문에 인간의 윤리는 복잡하며 절대적이고도 상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협력이 주는 막강한 진화상의 이점, 그리고 이를 통해 강력한 문명을 갖춘 인간에게 있어 윤리는 앞으로도 없어질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윤리의 목적이 협력을 통해 인간 개체 하나하나의 적응도를 높이는 것이에 이런 본연의 기능은 절대적인 것으로 사라지기 어렵다. 즉, 목적이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사회문화적으로도 진화하기에 상당히 가변적인 면을 갖고 있으며 그래서 윤리 또한 상대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인간이 환경이 매우 다른 지구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고 여기에 맞추어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하게 적응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간은 커다른 뇌의 발달로 또 다른 생존 도구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 과학 기술은 인간 사회를 상당히 크게 변화시키는데 이 역시 인간의 윤리를 상대적으로 만든다.
책 '무엇이 옳은가'는 이런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의 윤리적 기준에 대한 논의다. 책은 이런 점을 불편해한다. 우선 우리가 과거 우리 조상들이 갖고 있던 윤리적 기준과 행위에 대해 과도하게 비판적이라는 점이다. 미국에서 200-300년전 노예 제도는 합법적이었고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노예제도가 사라지고 모든 이가 평등해진 지금 과거 노예 제도를 옹호하고 이를 이용한 사람들에 대해 우린 매우 비판적인데 그들의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그것을 볼 필요도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근세의 노예 제도가 주로 비판 받지만 인간은 농경 이후로 상당히 오랜 기간 노예 제도를 유지해왔다. 다음은 우리의 윤리적 자세다.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의 우리의 과학기술적 한계와 사회문화적 상황에 걸맞는 윤리를 갖고 있으며 그에 걸맞게 생각하고 행위한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이것이 미래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그리고 나만의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과 다른 생물에 큰 고통을 초래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일회용품 및 탄소친화적 행위를 하거나 육식을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우리는 자각할 수 있는데 적어도 이런 행위는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는 점이다. 과거 노예제가 당연시 되던 사회에서도 한계는 분명하지만 적어도 노예를 인간으로 여기고 대우하려 노력한 소수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책에서 다루는 구체적인 쟁점들을 살펴보면 우선 인간의 탄생과 종의 개선 문제다. 지금은 믿기 어렵지만 100년정도 전까지만 해도 피임은 불가능했고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로 여겨졌다. 그 흔적은 아직도 남아 일부 종교색이 강한 지역에서는 피임을 여전히 허용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시험관 아기도 등장했다. 최초의 시험관 아기를 시도했을 때만해도 가장 선진적인 서구권에서도 반대 여론이 더 높았다. 하지만 막상 이것이 성공하고 그 아기의 지극히 평범하고 귀여운 얼굴이 신문에 실리자 바로 며칠만에 찬성여론이 60%가 넘어갔다.
향후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탄생과 개선은 시간문제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에 걸맞게 우리의 윤리적 기준도 위의 예시처럼 극적으로 변할 것이다. 인공자궁이 탄생하면 처음에 사람들은 이를 거부할 것이다. 뭐라 하긴 힘들지만 최초의 시험관 아기처럼 꺼림직 할 것이다. 하지만 최초의 아기가 아무런 문제 없이 태어난 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시험관 아기처럼 다른 아이와 전혀 다르지 않게 성장한다면, 사실 인공자궁은 장점이 많다. 모체가 각종 약물이나 흡연, 음주를 해도 영향을 받지 않으며 생체 자궁보다 훨씬 안전하기까지 하다. 각종 사고나 모체의 운동, 사회활동으로부터도 안전하며 이로 인해 유산 가능성도 훨씬 낮을 것이며, 변덕이 심한 모체와 달리 필요한 영양분과 물질을 안정적으로 받기까지 할 것이다. 여기에 여성을 장기간의 임신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고 출산으로 인한 고통과 체형의 변형도 막을 것이다. 아마 이로 인해 출산율이 조금은 올라갈지도 모르겠다. 이상적인 태교는 물론이다. 이런 인공자궁을 두고도 본인과 아이의 위험 및 온갖 단점에도을 무릎쓰고 자연출산을 감행하는 사람들을 미래 세대는 매우 야만적이라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개선도 마찬가지다. 인공자궁이 생겨나면 인간에 대한 조직이 심적으로 기술적으로 더욱 편해진다. 아이의 유전자를 개선해 지능이 우수하고 각종 질병으로부터 안전하며 위험한 취약 유전자를 제거할 수 있다면 그것을 거부하는게 윤리적인 행위일까? 지금은 치명적 손상을 안고 태어나는 장애아동이나 질병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게 되는 것을 누구의 잘못도 아닌 숙명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부모가 과거의 윤리적 기준이나 종교에 집착에 그런 행위를 한다면, 그리고 장애나 질병을 갖고 태어난 자녀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부모를 고소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세기의 말 혹은 적어도 다음 세기엔 인간은 강력한 인공지능과 로봇, 그리고 우주 식민화 세대를 맞게 될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인간 개조의 필요성을 매우 강력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윤리적 기준도 이에 맞게 변화할 것이다.
책은 기후변화 문제도 이야기한다. 인간은 지난 100년간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300ppm에서 400ppm으로 향상시켰고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물론 이는 미래 세대에 비판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과거 우리에게 재생에너지는 너무나도 비쌌고, 탄소에너지는 저렴했으며 기후 변화는 이론상으로 이해했지만 체감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의 재생에너지는 탄소에너지의 채산성을 넘어서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 역시 체감하고 있다. 때문에 아직까지는 탄소에너지의 사용이 혹독하게 비판받고 있지 않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는 향후 큰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미 그러한 변화가 서구권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다. 축산업도 문제다. 축산업은 그 자체가 큰 온실가스 배출요인이지만 동물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구상엔 돼지가 10억 마리 소가 14억 마리 닭이 200억 마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인간의 식량으로 사용되며 이들을 먹이기 위해 생산곡물의 절반을 사용한다. 80억의 인간 중 소수가 자신의 입맛을 위해 건강에도 그리 좋지 못한 고기를, 그것도 그 동물의 행복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가난한 다른 인간을 먹일 만한 곡물을 사료로 낭비하며 고기를 탐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매우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위일 것이 분명하다.
놀랍게도 전 세계 재소자의 절반이 중국과 러시아, 미국에 존재한다. 중국인 인구가 많고 국가사회주의 국가이니 그렇고 러시아도 비슷하니 그럴만 하나 민주주의의 총아인 미국은 상당히 이상하다. 더군다나 미국의 범죄건수는 1991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는데도 재소자 수가 줄지 않으니 더욱 그러하다. 이는 미국의 미국의 재소자가 하나의 경제를 이루기 때문이다.
미국은 법체계상 판사의 형량 선고에 대한 재량권이 매우 적다. 죄만을 바라 볼뿐 개인의 사정따윈 허용이 안된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사소한 범죄에도 10-20년형의 구형이 가능하다. 삼진 아웃제 같은게 있어 경범죄라도 세 번을 저지르면 중형에 처해진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주마다 법이 다른 문제도 있다. 어떤 이는 마리화나가 합법인 지역에서 그것을 팔고 불법인 지역에 건너갔다가 그로 인해 40년을 복역 중이다. 아마 삼진아웃에 걸린 듯하다. 하여튼 이처럼 죄인의 양산하고 오래 묶어두는 체계인데 이는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이다. 우선 지역 보안관은 주 정부로부터 재소자 1인당 매달 25달러를 받는다. 범죄자를 양산하기 위해 노력할만 하다. 거기에 몇몇 통신업체들은 재소자에게 30분 통화에 무려 20달러의 바가지 통화료를 부과하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정부와 재소자 자신, 그리고 그 가족이 부담하는 비용이 무려 1829억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미국은 교도소 재소자를 노동시장에 투입시킨다. 주정부가 소유한 기업에서 임대되어 일을 하는데 시급이 고작 33센트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득을 보는 집단이 많으니 이런 거대한 악이 허용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래 세대들이 이를 어떻게 평할지 안봐도 자명하다.
책에는 이것 이외에도 미국의 의료체계와 현대의 전자문신이나 마찬가지인 SNS, 휴대폰 문제, 교육문제, 환경 오염 등도 다루고 있다. 하나하나가 재밌고 다양한 사실과 논점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인간의 윤리는 과학시술의 변화에 따라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몇 가지 변곡점이 될만한 것들이 있는데 우선 인공지능의 등장이다. 인간보다 훨씬 우수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공지능의 탄생은 인간의 윤리를 크게 흔들어 놓을 만한 것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음은 외계생명체와의 만남이다. 언젠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이것을 통해 인간의 종교는 강하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또한 우리와 조우할 외계인은 역시 협력을 통한 과학기술 문명을 구축하고 역시 나름의 윤리를 갖고 있을 것인데 그것이 아무래도 인간의 윤리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마지막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패권국의 변경가능성이다. 지금의 우리 윤리 기준의 토대는 사실상 지금의 사회를 구축한 서구 중심의 것이다. 그들이 만든 개인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사회 윤리의 핵심토대로 작용한다. 이런 체제가 잘 굴러가게끔 윤리와 법체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패권국이 중국이나 러시아로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중국인 개인보다는 공동체와 사회를 훨씬 더 중요시 한다. 그들의 체계가 승리하고 다른 세계가 이를 따라야하는 운명에 처한다면 윤리 역시 그에 걸맞게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