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네이버 이미지]

선행이 대개 선행을 부르고, 악행은 대개 악행을 불러오는 것처럼, 차별은 차별을 부른다. 군대에서 느끼던 미스테리가 있었다. 군을 필한 다른 남성들도 느끼는 것이지만 이등병 일병 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괴롭히던 선임병을 정작 훗날 자신이 그 위치가 되면 놀랍도록 닮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은 개인이 그 조직의 문제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히 괴로워만 하다 결국 그 조직의 문제 구조 자체를 내면화하여 오히려 지지하게 됨으로써 발생한다. 

 군에서는 윗선이 일선 병사의 노동을 착취하고 그를 위해 인격을 말살하며 수단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병사전체를 괴롭히기보다는 바로 윗선을 괴롭힌다. 그 윗선 역시 마찬가지로 아래 전체를 피곤하게 다루기보다는 바로 아랫선을 괴롭히며 이 과정은 최하단까지 전달된다. 물론 민주사회로 접어든지 한참임에도 많은 희생을 젊은 남성에 강요하는 한국의 군대를 과감히 모병제로 전환하거나 병사를 막사에 가두지 말고 출퇴근을 시키거나 최저급여조차 제대로 주자는 여론은 아직도 과반을 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개인이 군을 구조적으로 어찌하기는 힘들고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그 악순환을 적어도 나에서는 끝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막아준 나의 아랫선이 훗날 적어도 자기가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런 한국군대 같은 차별, 아니 더한 차별이 1960년대 미국에도 있었다. 사실 미국의 인종차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과거, 특히 미국 남부의 모습은 사실 매우 추악하다. 책 '헬프'를 보면서 이러한 차별의 극렬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저자가 책에서 충분히 의도한 것처럼 이런 차별은 여러 층위를 띤다. 

 책 헬프의 배경은 1960년대 초반 미국 남부 미시시피로 매우 더운 지역이고 오래전부터 농장지역으로 남북전쟁의 상흔이 아직 남아있으며 그 상징물도 남아있는 지역이다. 사람들은 대개 농업에 종사하고 흑인들도 많이 거주하며 남북전쟁때처럼 이 지역의 흑인들이 여전히 극심한 차별과 위협속에 살고 있다. 책의 배경은 구체적으로 미시시피주의 잭슨 시인데 잭슨 시장은 기가막히게도 흑인과 백인더러 '평등하되 분리한다'.라는 말도 안되는 기치를 내건다. 

 이 잭슨에서 차별은 여러 층위를 갖는다. 가장 최상위층엔 당연히 백인 남성이 있다. 이들은 바깥일을 하고 가정에 아내를 두며 아내는 무조건 아이를 많이 낳고, 대개 전업주부로 경제활동을 하거나 직업을 갖기 않는다. 여자들도 대학을 가지만 대부분 재학중에 남자를 만나 졸업과 취업을 하지 않고 결혼한다. 어찌보면 대학은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 가는 장소에 불과해보인다. 그들은 20대 초반에 결혼하며 집에서 안주인 노릇을 받지만 이렇게 집안에만 갇혀 가계를 운영하며 남편의 성공만을 뒷바라지 하는 차별을 겪는다. 

 그리고 이 안주인 백인 여성은 흑인 가정부를 차별한다. 백인 여성은 흑인 가정부 덕에 아이를 많이 낳아도 육아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집안의 청소와 요리, 심지어 장보기까지 모든 살림이 흑인 가정부의 몫이다. 아이가 아기때부터 기고, 일어서며, 기저귀를 떼고, 이유식을 먹는 모든 일을 흑인 가정부가 한다. 백인 안주인은 그저 아이를 가끔 혼내거나 교육적 지도를 하거나 옷등을 사주고 학교를 보낼 뿐이다. 그래서 많은 백인 아기들은 흑인 가정부를 먼저 엄마라고 부른다. 서로가 매우 곤란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흑인 가정부를 엄마처럼 따른던 백인 아기들은 이상스럽게도 모두 커서 자신의 부모와 똑같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된다. 

 흑인 가정부는 집으로 돌아가 흑인 남편에게도 차별받는다. 흑인 남편은 자신의 아내 흑인 가정부처럼 차별받는 처지지만 집에서는 가부장적 남편으로 모든 육아와 살림을 자신처럼 일하는 또는 심지어 돈을 더 많이 벌어오기도 하는 아내에게 전가한다.  

이들은 아내를 폭행하기도 하는데 영화 컬러 퍼플에서는 자신의 친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우리 골드버그가 아이를 둘이나 낳게 된다. 그는 어리고 가난했으며 백인과 흑인 남편에 의한 폭력과 차별이 만연한 이 나라에서 도무지 아이들을 키울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백인 목사 부부에 의해 아프리카로 떠나게 된다. 우피골드버그는 마치 아버지처럼 자신의 동생을 넘보는 대니글로버와 대신 결혼한다. 그리고 동생은 피신시킨다. 그렇게 남편에게 차별받고 폭행당하며 살던 그녀는 말년이 되어서야 아프리카에서 자유롭게 자유민으로 자란 자신의 아이들 그리고 동생 네티와 재회한다. 컬러퍼플엔 백인들이 흑인을 괴롭히는 장면이 좀처럼 나오지 않지만 백인들에게 파생되어 흑인들 스스로가 서로를 차별하는 끔찍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책 헬프에서는 독특한 백인 여성 유지니아가 등장한다. 그녀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고 대학도 졸업했으며 감히 일자리를 갖고자 한다. 그런 그녀이니 흑인 가정부들과 통할 수 있었다. 어릴적 유지니아를 키워준 흑인 가정부의 역할도 컸다. 그리고 미스 셀리아가 있다. 미스 셀리아는 잭슨시의 여성중 우두머리 격인 미스 힐리의 전 남자친구와 결혼하면서 잭슨에 정착하게 되었다. 원래 타향사람인데다 힐리에게 찍힌 상태이기에 사실상 왕따상태다. 이런 사회에서 이단아 같은 미스 셀리아도 유지니아 처럼 가정부에게 스스럼 없이 다가가고 친구처럼 지낸다. 사회의 지배적 차별 구조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백인 여성들은 모든 살림과 육아를 흑인 가정부에게 맡기고 자신들을 놀면서 담배를 피우고 카드놀이를 즐기며, 이런 저런 모임을 운영한다. 재밌게도 그들은 아프리카 흑인 아이들을 돕은 자선 후원회도 운영하는데 자신들의 옆에 있는 가정부는 같은 흑인으로 보이지 않았던 듯 하다. 이런 흑인 가정부들에 관심을 갖던 유지니아는 뉴욕의 한 여성 편집장에게 그들의 삶을 책으로 내는 것을 제안한다. 

 이 제안에 편집장이 관심을 가지며 유지니아와 잭슨 시의 흑인 가정부들과의 밀회가 시작되다. 이 밀회는 매우 위험하다. 아직 잭슨시는 인종차별이 만연한 지역으로 백인 안주인에게 찍힌 흑인 가정부는 금새 소문이 나 잭슨 시내에서 다시 일자리를 갖기 어려운 지경에 놓인다. 이 불똥은 남편과 자식들에게 튀어 그들 역시 실직하게 되며 폭행의 대상이 된다. 책에 등장하는 이웃을 잘 돕던 건실한 흑인 청년은 단지 분리 표시가 되어 있지 않던 백인 화장실을 이용했다 집단 린치를 당해 실명한다. 물론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이런 위험한 곳에서 그들은 인터뷰를 통해 그리고 자신의 글을 유지니아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통해 책을 써낸다. 

 물론 그들은 책을 익명으로 써내고 진실이 알려져도 자신들이 무사할만한 장치도 책에 넣지만 곧 잭슨 시내의 백인 안주인들은 이 책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임을 알게 된다. 화가난 미스힐리는 흑인 가정부 에이블린을 공격해 친구가 그를 결국 해고하게 만든다. 

이 장면은 영화로 만들어진 책 헬프에서 에이블린이 해고되는 장면이다. 에이블린은 해고되면서도 백인 아이에게 자존감을 심어준다. 어쩌면 이런 자존감을 가진 아이가 먼 훗날 자라나 자신의 부모같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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