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 인지 과학이 밝힌 진보-보수 프레임의 실체
조지 레이코프 & 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음, 나익주 옮김 / 생각정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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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정치, 사회, 문화, 인권, 교육 여러 면에서 보수와 진보의 양극단 사이의 어느 스펙트럼에 위치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평소 성향, 그리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들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또는 다른 사람을 보수적 혹은 진보적이라고 칭한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진보와 보수적 성향이 왜 생겨나는 것일까? 

 인지과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자신의 제자인 엘리자베스 웨흘링과 대담하는 구조의 이 책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제시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초기5년간 신체경험에서 비롯되는 경험을 통해 생성된 초기개념을 활용한 은유를 통해 다른 개념을 이해하며, 인간의 진보적, 보수적 성향은 어릴적 양육환경에서 얻은 개념을 이용한 은유에 기대어 형성된다는 것이다. 

 조지레이코프는 인간은 자신의 사고에 대해서 4가지 잘못된 가정을 범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자신의 사고가 의식적이라 가정하는 것이고, 둘째로 인간의 합리성은 신체와 독립적이라는 것이며 셋째는 추론은 보편적이라는 것이고 마지막은 인간은 사물을 존재하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인식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대부분의 사고(98%)를 무의식적으로 행하며, 합리성은 물리적 실체인 뇌와 자신의 신체에 기반하며, 추론은 개인의 성향 그리고 문화적,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사물은 은유에 기반하여 이해한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세계를 개념적 은유를 통해 이해한다. 은유에는 두 가지 영역이 필요한데 하나는 사유하고 이해하기 위한 인지영역이며 다른 하나는 그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이미 경험을 통해 쉽게 이해하고 있는 영역이다. 전자를 목표영역이라고 하며 후자를 근원영역이라고 한다. 근원 영역은 대부분 어려서의 신체경험을 통해 형성되며 매우 구체적이다. 목표영억은 근원영역을 통한 은유를 통해 이해되며 보다 추상적인 영역이다. 

 예를 들어 양과 수직성을 은유한다. 인간은 어려서 물이 차오르거등 무언가 많아지는 것을 높이로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세계공통적으로 양과 수직성이 은유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거나 내린다는 표현, 주식이 오르거나 내리는 표현, 성적이 오르거나 내리는 표현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실제 양과 수직성은 뇌의 다른 영역에서 다루며 논리적으로도 상관이 없다. 많음은 반드시 수직성과 연결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를 온도와 은유것도 그렇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이 식었다던가 관계가 차가워졌다 등의 은유를 사용하며 반대로 사랑이 불타오른다던가 등의 식으로 관계와 온도를 은유한다. 이는 어려서 부모나 보호자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과정에서 밀접한 신체접촉이 이루어지고 자연히 따스함을 느끼면서 생겨나는 은유이다. 

 이처럼 은유는 사람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은유의 기반은 근원영역이 의지하여 목표영역을 이해하므로 근원영역은 사실상 목표영역에 어떤 윤곽을 부여할 수 있으며 목표영역에 내재하는 것을 감추거나 부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어떤 은유적 사상이 더 자주 사용되고 공적일수록 이러한 은유는 강화되어 사람을 특정한 성향이나 이해로 몰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이 과정은 무의식적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적인 토의와 정책결정의 기반이 되는 이런 은유적 구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은 근원영역을 형성하는 경험을 대부분 어린 시절 가정에서 하게 된다. 때문에 유년기 가정에서의 경험은 향후 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이해틀이 되는 은유구조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개인은 국가를 이해하고 바라보는데 있어 국가-가정 은유를 사용한다. 모국이나 조국이라는 표현, 국가의 아들딸, 건국의 아버지 같은 은유는 이러한 반증이다. 진보적 보수적 성향에 대한 레이코프의 생각도 여기에 착안했다.

 레이코프가 보기에 보수 혹은 진보의 주장은 도무지 논리적 일관성이 없다. 보수는 미국에서 낙태를 반대하고, 자유경제를 옹호하며, 세금감면에 찬성하고, 총기사용에 찬성하며, 인종차별적이며, 성적소수자를 비정상으로 보고, 복지에 전체적으로 반대하고 범죄에 대해 징벌적이다. 반면 진보는 낙태에 찬성하고, 수정 및 관리되는 경제를 옹호하며, 부자에 대한 세금증세에 찬성하고, 총기사용에 반대하며, 인종평등적이고, 성적 소수자를 인정옹호하며, 복지에 찬성하고, 범죄에 대해 교화적이다. 이런 입장을 우린 평소 당연히 일관되게 접해서 논리적 일관성이 있다고 착각하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낙태의 반대와 자유경제는 무슨 상관이며, 복지에 대한 반대와 범죄에 대한 징벌은 대체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접점을 찾기 어렵다.

 이에 대해 레이코파가 알아낸 해법은 이러한 보수, 진보적 성향이 이럴적 가정양육환경에서 형성된 근원영역에 대한 은유라는 것이다. 레이코프의 의하면 인간의 가정양육환경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엄격한 아버지 모형과 자애로운 부모유형이다. 

 엄격한 아버지 모형은 보수로 은유되는 가정양육환경이다. 이 모형에서 아버지는 가정의 수장으로 합법적 권위를 가지며 권위에 대한 도전을 허락치 않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권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존재에 불과하다. 아버지에게 이런 도덕적 권위가 허락되는건 이 세계가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정을 제외한 다른 세계를 악으로 가득찬 세계이며 아버지는 악에 대항해 가정을 보호한다. 세계는 경쟁적이며 선악 이분법적으로 구분된다. 아버지와 가정의 역할을 이런 위험한 세계에 대응하여 자녀가 세상과 경쟁할수 있는 역량을 배양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녀는 절제를 해야하며 부모는 자녀의 행동을 통제하고 역량과 자제력을 배양하기 위해 상벌제도를 강요한다. 자녀 자체도 악하게 태어나기에 상벌로 옳고 그럼을 가르쳐야 하며 상보다 벌을 더 강조한다. 이를 통해 자녀는 자신만의 힘을 길러 세계와 싸워 이기는 힘인 절제를 갖게 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보수는 절제로 누구나 세상에서 승리하고 성공할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러므로 성공은 개인의 노력에 달린 것이고 실패하는 사람의 책임은 개인의 절제력 부족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보수에게 빈곤은 악이며 빈곤에 처한 자는 게으른 사람이 된다. 보수가 복지에 반대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절제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오히려 절제력을 발휘해 마땅한 성공을 거둔 사람의 부를 빼앗게 되는 것이고 퍼주기로 인해 빈곤한 사람이 더욱 절제력이 없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범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역시 절제력이 없는 사람이므로 징벌이 마땅해진다. 시장에 대해서도 여기에 함부러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절제력을 발휘해 성공을 이룬 기업가를 방해하는 행위가 된다. 법인세를 그토록 싫어하는 이유다. 총기 역시 세계는 위험한 곳이기에 우리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필요한 것이 된다.

 자애로운 부모 유형은 진보로 은유되는 가정양육환경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감정이입하고 자애롭게 베풀며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모두 강조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모범을 보이며 자애로운 태도를 보이고 이를 통해 자녀를 자애로운 사람으로 양육한다. 부모는 특정 성공을 강조하기 보다는 자녀게 스스로의 꿈을 쫓도록 권한을 위임한다. 성공보다는 개인적 탁월함에 대한 강조다. 타인과의 관계도 경쟁보다 협동을 중시하며 타인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타인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역량을 갖게 한다. 위계적 의사소통이 없으며 자녀의 눈높이에 맞춘 열린 의사소통을 한다. 이를 통해 자녀는 부모에 대해 사랑과 존경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진보는 세계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시각을 갖게 된다. 세계는 경쟁해서 성공해야하는 곳이기 보다는 서로 협력해야하는 세계이며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곳이다. 때문에 복지가 필요하다. 사람의 실패는 그사람의 귀책이라기보다는 개인의 환경, 사회적 상황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인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이는 다양한 사람과 사회에 의존한 것이므로 오로지 그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부자증세와 법인세등으로 빈곤층을 부양하는 사회복지에 찬성하게 된다. 성소수자나 다른 인종 및 종교에 대해서도 관용적이게 되며 범죄자에게도 징벌보다는 교화에 초점을 두게 된다. 총기는 나와 우리, 그리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규제되어야 한다. 

 이처럼 엄격한 부모유형과 자애로운 부모유형을 근원 영역으로 보고 사람들의 보수적 성향과 진보적 성향을 은유하면 완벽에 가깝게 들어맞는다. 책은 중도는 없다고 말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엄격한 부모유형과 자애로운 부모유형을 갖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둘 중 하나를 이용하여 정치사회문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책은 미국에서 보수가 강한 이유로 보수가 도덕성이나 자유 등의 여러 주요 가치를 선점하고 이를 자신들의 가치를 설파하는데 이용하기 때문으로 본다. 예를 들어 자유시장경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데 보수는 자유시장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진보의 시장정책은 규제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씌움으로써 싸움에서 불리하게 만든다. 때문에 진보와 보수라는 두 이해의 템플릿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이중개념자들에게 보수가 더 설득력있게 다가오게 된다고 주장한다. 진보는 보수가 짜놓은 프레임이 흔들리기보다는 자신들만의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보수성과 진보성에 대해 설명한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었고, 설득력이 있었다. 레이코프는 인지과학자로 탁월한 통찰로 은유개념을 통해 인간의 진보성과 보수성의 근원영역으로 가정양육환경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더 근원적으로 인간의 가정양육환경이 어째서 엄격한 아버지 모형과 자애로운 부모유형으로 크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고찰이 아쉽다. 이는 필경 진화심리학에 의지해야하는 부분인데 이에 대한 접근은 책에 없었다. 있었다면 더 깊이 있지 않았을까. 두 유형이 나타난건 생각해보면 매우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생명체 본연의 목적인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세계는 개인에게 맞서 싸워 버텨내야하는 곳이다. 이런 위험한 곳을 악으로 생각하는 관념과 이겨내기 위한 노력과 절제력 획득을 위한 엄격함은 반드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반면 생존과 번식을 위해 개인적 경쟁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물은 같은 종 심지어 다른 종과도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협력을 한다. 협력이 생존가능성을 크게 높여주기 때문이다. 협력을 위해선 다른 개체를 이해하고, 감정이입해야하며 서로 믿고 도와야 한다. 때문에 이런 감정이입과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협력을 역시 반드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사실 때문에 개인을 키우는 부모의 가정양육형태는 양방향으로 다소의 치우침과 적절한 섞임속에 나타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이 진보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으로 은유되는 것도 나타날수 밖에 없는 현상이다. 이것에 대한 부작용을 줄이자면 책에서 레이코프가 언급한 것처럼 자신이 이런 은유에 의지해 세상을 인식함을 인지하고, 자신도 모르게 남이 짜놓은 프레임에 휘둘리기 보다는 사실에 집중하여 사안을 이해하고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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