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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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5월 9일인 어제는 날이 무척 좋았다. 어버이날 답지 않았던 8일과 7일의 날씨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마도 원인과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둘 다 강한 바람이다. 어제는 인천 송도에 가야했다. 느즈막하게 결혼하게 된 동생의 상견례 때문이다. 반드시 가야하고 늦지 않아야 하는 만남이니 걱정이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이 강원도 원주라서다. 

 원주에 살게 되면서 이곳 저곳 가보았지만 인천은 처음이었다. 운전하면 막히지 않을까? 차는 있나? 몇 주전부터 걱정만 하고 좀처럼 계획을 수립하지 않던 내게 아내가 직접 고속버스편과 시간을 알아봐주었다. 가는 표는 현장구매만 가능했지만 돌아오는 표는 예매가 가능해 예매해주었다. 보통 서울을 운전해서 차로 갔던 경험해 비출때 원주에서 인천까지는 그래도 3시간은 걸릴거란 생각이 들었다. 인천은 먼 곳 아닌가. 거기에 송도는 더욱 끝이니까. 

 그래서 소일거리가 필요했다. 보통 지식으로 꽉 찬 책들은 노트 필기하면서 보는 편이니 제외되었다. 그래서 그럴 필요가 없는 집에 몇 안되는 소설을 출발을 앞두고 부랴부랴 골랐다.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가 보였다. 사놓고 무려 10년 가까이 안보고 있는 책이다.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빨리 나가지 못하고 책이나 고르고 있는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아내의 잔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차 싶어 얼릉 고르고 집을 나섰다. 당행히 인천가는 차엔 빈 자리가 많았고, 성공적으로 한적한 자리에 착석하여 벨트까지 멘후 주변에 누가 있는지를 잠시 살핀 뒤 책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웬 걸 시작이 이상하다. 에코 책이 전반적으로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너무 이상했다. 앞부분이 너무 비어있게 이야기기 시작되었다. 이건 뭘까 싶어 불길한 마음에 책의 앞부분을 보니 '프라하의 묘지 2'라고 적혀있었다. 1권이 아닌 2권을 가져온 것이었다. 이것도 색다른 경험이려니 하고 그냥 2권부터 볼까하다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길이 열렸다. 나에겐 가상의 책장이 있다는 사실이 떠오를 것이다. 스마폰을 꺼내 전자책 서재를 열었다. 처음엔 계획대로 문학을 보려고 했는데 마구 넘기다 보니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가 보였다. 프라하의 묘지 만큼은 아니지만 이 역시 오랜기간 묵혀놓은 책이었다. 그래서 버스에서 이 책을 보기 시작했고, 오며 가며 완독하게 되었다.

 책은 2017년에 다시 나왔지만 사실 2009년에 나왔던 책이다. 2009년은 정치인 유시민이 노무현의 죽음을 목도하고, 보수정권의 등장으로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리고 유시민 개인적으로는 정치에서 물러나기 시작한 시점이며 더욱 개인적으로는 그의 딸이 대학에 입학한 시점이었다. 유시민으로선 자신이 그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행한 많은 노력이 처절한 실패처럼 보이는 시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영향을 강하게 준 방향타 같았던 책들을 다시 보며 흔들리는 마음을 재확인하고 싶은 심정과 사랑하는 딸이 대학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좋은 책들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만들어진 듯 하다.

 그래서 여기 나오는 책들은 모두 저자 유시민이 어린 나이에 읽은 책들이다. 십대에 접한 책도 있고 늦어도 이십대에 접한 책들이다. 한창 이성과 감성, 정의감이 날카로운 시점이다보니 책에 대한 저자의 반응도 그러하다. 그러다 보니 젊은 유시민을 만나는 느낌도 들었고 그 오랜 세월에도 공감할수 밖에 없는 변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문제점도 한탄스러웠고, 과거 나에게도 비슷한 영향을 주었던 책들의 느낌과 감성도 재현되는 맛이 있었다. 

 청춘의 독서에 등장하는 책은 죄와 벌,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인구론, 대위의 딸, 맹자, 광장, 사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종의 기원,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역사란 무엇인가 이다. 이렇게 목차를 종합해보니 경제학 관련 책(인구론,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이 많고, 문학도 제법 있는데 러시아 문학(대위의 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이 좀 많았고, 역사관련(사기, 역사란 무엇인가) 책도 많았다. 그리고 가장 아픈 공통점은 이중 내가 읽은 책이 단 한권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고전이 그렇듯 무슨 내용인지는 대충 알지만 막상 읽은 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유시민이 언급한 모든 책이 인상적이었지만 우선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생각난다. 이 책은 독일 책으로 당시 언론의 작태를 비판한 것이다. 카타리나 블룸은 27살의 젊은 독일 여성으로 가난하지만 어머니와 감옥에 수감된 오빠를 부양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 사랑에 실패해 외로워하던 중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문제는 그가 무기를 탈취한 탈영병이었다는 것이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두려울 그 사실은 의외로 그녀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녀는 그와 사랑을 나눈다. 죄값을 치루고 나면 본격적으로 사랑을 나눌 생각이기도 했다. 

 문제는 언론의 태도다. 그들은 이미 남자를 뒤쫓고 있었고, 누군가와 만나는지를 확인한후 같이 엮을 심산이었다. 카타리나의 신상은 낯낯이 공개되었고, 피의자로서 아직 남여 모두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언론은 피의사실을 검찰과 결탁하여 함부로 공표했다. 카타리나와 아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그녀에 대해 묻고 원하는 사실만 부풀려 말하는 것도 물론이었다. 마치 얼마전 조국사태를 보는 듯 했다. 유시민은 시기대로 고 노무현 대통령 사건을 떠올렸다.

 사마천의 사기도 인상적이었다. 사마천은 순서대로 역사서를 서술하는 편년체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기전체를 창안했다. 이는 제왕을 다룬 '본기'와 뛰어난 장군과 신하를 나타는 '표', 예법과 음악, 군사, 역법, 천문, 치수, 화폐등 사회경제제도와 행정, 문화를 다룬 '서', 주요 제후국의 역사를 상세히 다룬 '세가', 마지막으로 뛰어난 인물들의 전기를 다룬 '열전'이다. 유시민은 본기 부분에서 한고조와 그 주변인물에 대해서 많이 다룬다. 고조는 패업을 이룬후 왕권의 안정을 위해 개국공신들을 정리한다. 그들은 고조와 나라를 세우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에서 함께한 전우들이지만 개국이후 안정된 치세를 이루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한신이 제거되었다. 또한 고조는 후에들인 황비를 사랑했고 그 아들이 영민하여 후사로 삼고싶었지만 본처인 여후의 서슬이 시퍼랬다. 고조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했지만 사후 그들은 여후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다. 모든걸 이뤘지만 특히, 500년 이상을 전란에 시달린 중국의 민중을 평화로 이끌었지만 고조는 친구도, 자식도, 사랑도 이루지 못한다. 유시민은 기록에 의지해 고조가 치료를 거부하고 그만 살기를 원했던것이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한다. 권력의 허상과 무서움이다.

 헨지조지의 진보와 빈곤도 재밌었다. 요즘 정치권에선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토지공개념이 거론되고 있으며 그 반대급부로 반헌법적 발상이니 사회주의니 하는 언행도 나오고 있다. 헨리 조지는 리카도의 후계자로 리카도가 농업지대론에 지중한 반면 헨리 조지는 도심에서의 지대론에 집중했다. 그의 책에 따르면 한 자연인이 어디든 비슷한 한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된다. 다만 그는 모든걸 할수 있는 상태지만 뭐든 제대로 할 수 없다. 분업이 없는 상태기 때문이다. 소를 잡을 수도 있고 신발도 만들 수 있지만 잘 하기 어렵고 많은 시간이 투여되며 그로 인해 다른 일을 못하게 된다. 그러다 이웃이 찾아온다. 그의 선택은 첫번째 사람과 달리 간단하다. 바로 그의 첫번째 자연인의 이웃자리기 최상의 자리가 된다. 그렇게 하나 둘 사람이 찾아오고 마을이 되고 도시가 된다.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력이 상승한다. 첫번째 자리 잡은 사람의 터가 자연히 중심지가 되고 지대가 급상승한다. 그 또는 그의 후손은 도시의 발전과 생산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고도 그 생산력 향상과 발전의 대가를 혼자서 향유한다. 때문에 헨리 조지는 그러한 지대에 대한 세금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유재산 역시 인정했으며 자본주의에 동의하는 사람이다. 그저 그런 불합리한 이익에 대해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정치권에 도전하기도 했다. 물론 결과는 안좋았다. 정치권에서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주장을 몰라보고 가짜 이익과 불합리에 현혹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바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책은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다. 부끄럽게도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도 사놓고 김치도 아닌데 오래도록 묵혀두고 있다.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는 구 소련의 소설인 만큼 사상적 검증을 받았다. 죄와 벌은 러시아 차르의 검열을 받았는데 러시아는 쉽게 변하지 않는 듯 하다. 이 책은 소련, 특히 조금만 생각이 다르고 조금만 출신이나 사상이 의심스러우면 수용소행이었던 스탈린 시대를 비판한다. 솔제니친은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 시절 스탈린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지는 분위기에서 이 책을 발간했기에 출판될 수 있었다. 솔제니친은 책에서 수용소의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몹시도 억울한 상황임에도 강제로 주어진 노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거기서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식량도 부족하고 먹을 것도 없는 편인데 한국의 남성들은 이와 몹시 비슷한 군대를 다녀오기에 공감대를 적지 않게 느낄수 있다. 한 장면에서 작업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에 즉각 응하지 않으면 형벌이 뒤따를 거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벽돌을 쌓을 때 접착제 역할을 하는 모르타르가 아직 남아 있었고 작업하는 수용인들은 이를 만들어나간다. 내일이면 그리고 작업을 이루면 모르타르가 얼어 붙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밥도 제대로 먹어가지 못하며 저녁까지 말도 안되는 지시와 조건에서 작업하면서도 끝내 그것을 이루었을때 성취감을 맛본적이 있을 것이다. 난 그 어쩔수 없는 성취감이 너무나도 싫었는데 유시민은 그런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본다.

 하여튼 책을 다 읽고 나니 대학초년때가 많이 생각났다. 유시민의 의도처럼 그 당시에도 이런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나는 '신문 읽기의 혁명'이나 '지식의 세계1&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같은 책을 읽고 영향을 많이 받았던 생각이 난다. '청춘의 독서'는 제목처럼 지금의 청춘들에게 그리고 청춘과 좋은 책의 맛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책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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