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힘 - 무엇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고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가
폴 몰랜드 지음, 서정아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영토와 더불어 인구는 오랫동안 한 국가의 힘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였다. 유럽에서 시작한 산업화와 더불어 과학기술 문명이 발달하며 인구의 중요성은 잠시 잊혀지는듯 했지만 그건 착각이다. 산업화로 인해 유럽 지역은 오랜 인구정체를 탈출해 맬더스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실제로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그 작은 유럽의 인구는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쓴 책이다. 물론 나라의 힘이 단순히 인구만 많다고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 인구가 매우 많지만 미국만큼 전혀 강하지 못하며, 인도는 말할 것도 없다. 반면 캐나다나 호주는 인구가 적지만 그에 비해 충분히 강하다. 

 인구와 관련한 용어로 출생률과 사망률이 있다. 이는 모두 인구 1000명이 기준으로 출생률이 36명이면 해마다 인구 1000명당 36명이 출생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망률이 54명이면 해마다 인구 1000명당 54명이 사망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출산률은 여성 1명당 실제로 기대되는 출산수를 의미한다. 출산률이 0.7대인 한국은 여성 한 명이 평생 1명도 채 낳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통 대체출산률을 2로 잡는데 부부 둘이서 두 명을 낳아야 인구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이를 볼 때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의 인구는 급감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중위연령이란 개념이 있다. 중위연령은 그 나라 인구의 평균 연령으로 선진국일수록 중위연령이 높으며 인구가 성장하는 개도국일수록 중위연령이 낮다. 2021년 한국의 중위연령은 대충 40세정도이며 베트남은 20대 후반이다. 

 18세기까지 전 세계의 인구는 정체였다. 인구성장율은 매우 낮았고, 과거보다 인구가 적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멜더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적으로 늘어 인구가 늘어날수 없음을 말했는데 그 맬더스의 덫에 딱 갇혀있는 형국이었다. 그런 인구동향에 처음 변화가 일어난게 19세기 영국이다. 19세기 들어 영국의 인구성장률은 무려 1.3%이상이었다. 별것 아니지만 복리로 인구도 늘어나므로 이 수치면 불과 반세기 만에 인구가 두배로 늘어나는 수치다. 이는 영국에 일어난 여러 변화때문이었다. 새로운 파종법과 윤작법이 도입되었고 농업이 기계화 되어 수확량이 50%이상 늘어났다. 거기에 북미지역의 넓은 토지가 경작됙고 유럽의 농경기법이 도입되며 그 농산물의 수입도 가능해졌다. 

 나아진건 식량 사정만이 아니다. 하수도가 건설되고, 철도가 생겼으며 목화도 수입되어 위생과 의류, 보건등 수명과 관련한 사안들이 크게 개선되었다. 때문에 영국의 영아 사망률이 낮아지기 시작했고, 덩달아 생존율이 증가해 인구가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영국의 인구 변화를 책은 인구전환이라 명명한다. 

 이 시기 영국의 인구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프랑스와의 비교로 쉽게 파악된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프랑스는 영국보다 몇배 넓은 국토를 자랑한다. 실제 1800년까지 프랑스의 인구는 영국의 4배였다. 하지만 영국의 인구전환이 시작되고 1900년에 이르면 프랑스의 인구는 영국보다 고작 25%많은 수준에 그치게 된다. 이는 양국의 운명에 큰 차이를 불러왔는데 영국은 많은 인구로 거대한 내수시장을 갖게 되었고 식민지를 자국의 인구로 채울수 있게 되었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업화 초기인 19세기는 지금처럼 세계 무역이 활성화 되지 않아 물건을 팔 시장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었다. 때문에 자국내의 인구 증가로 인한 내수시장의 활성화와 식민지의 확보는 경제성장을 위한 매우 중요한 요건이었다. 그리고 영국은 인구의 급성장과 산업화로 1914년에는 경제규모가 프랑스의 3배에 달하게 된다. 

 인구변화는 프랑스와 영국의 운명만을 가른 것이 아니라 영국과 스페인의 운명도 갈랐다. 유럽에서 영국이전에 미대륙과 아시아 등지에 넓은 식민지를 개척한 것은 스페인이었다. 하지만 스페인은 인구전환이 일어나지 않은 16-17세기에 식민지를 경영했고, 자국내 인구조차 충분하지 않았기에 식민지를 지배만 할 뿐 인구를 충분히 파견할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영국은 17-18세기에 북미와 호주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19세기 인구가 자국내 인구를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로 늘어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식민지로 이민시킬 수 있었다. 때문에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국가는 현재 스페인어를 쓰고 그들의 후예가 일부 남아있음에도 현대 스페인과 무관한 국가로 독립하게 되었지만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는 그들의 후예가 다스리는 국가로 현재까지 영국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는 국가가 되었다. 이런 영국의 후예가 건국한 나라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이중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영국과 같은 나라라는 동질성이 있었고(그들의 국기만 봐도 알 수 있다) 평화로울 때는 풍부한 식량을 제공하고, 전쟁때는 모국의 부릅에 인적자원을 동원해주기까지 하였다. 

 영국 다음 인구전환을 겪은 나라는 미국과 독일, 러시아이다. 미국은 19세기부터 신규이민과 높은 출생률로 인구가 폭발하였다. 1820년에 이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섰으며 당시 미국여성은 평균 7명의 자녀를 출산했다. 1850년엔 인구가 2300만, 그리고 1900년엔 7600만에 이르렀다. 이런 인구증가로 인해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를 멕시코는 캘리포니아를 속절없이 미국에 내줄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은 이런 광대한 인구증가로 서부 개척에 나설수 있었고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달하는 국토를 메울수 있었다. 이민자의 수도 엄청났는데 1920년까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800만 이상, 독일에서 5-600만,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 각 400만, 러시아에서 300만, 스칸디나비아에서 200만이 유입되었다. 결국 영국이외의 지역에서 온 인구가 더 많은 셈이지만 영국인의 후예가 초기 자리를 잡고 나라의 정체성과 사회규범 성장을 주도하였기에 나머지 문화권의 인구들은 결국 영국문화에 융합되어야 했다. 

 독일은 19세기 초만해도 분열된 유럽의 소국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영국보다 인구가 항상 많았는데 1800년엔 영국의 두배였지만 1900년엔 프랑스처럼 영국이 독일인구의 2/3까지 따라잡았다. 하지만 독일은 통일 후 농업국에서 강력한 산업국으로 탈바꿈한다.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높은 출생률이 나타났다. 독일인구는 1800년 2500만에서 1870년 4000만 1913년엔 6700만이었다. 제조업 규모두 1880년 영국의 1/3에 불과하던게 1913년엔 영국을 추월하게 된다. 인구전환은 선발주자보다 후발주자가 더 급격하게 나타난다. 이는 세계적 추세인데 영국의 입장에선 독일이 그러했다. 독일도 영국처럼 북미지역의 개간으로 값싼 식량수입의 혜택을 보았고, 농업의 기계화와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식량이 증가했다. 하지만 독일은 영국과 달리 식민지가 적어 자국의 농업 보호를 위해 식량 수입을 제한해 자급적 식량 기술의 혜택과 도시생활의 개선이 자국 인구 증가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는 19세기 동안 광대한 영토에서 인구가 무려 4배나 증가했다. 1차대전쯤엔 연 1.5%의 인구성장률을 보였고, 1914년엔 인구가 무려 1억3천200만으로 전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다. 경제도 1885년부터 1913년까지 연 3.4%성장했고, 못지 않은 인구증가로 러시아도 미국처럼 오지인 시베리아에 개척이 가능해졌다. 이 기간 러시아는 매년 75만의 인구를 시베리아로 보낼 수 있었다. 

 이런 인구 팽창은 각국에 공포를 불어넣었다. 초반 주자인 영국은 독일의 경제와 인구성장이 매우 불안했고, 독일은 러시아의 인구성장이 매우 두려웠다. 인구가 정체인 프랑스의 공포는 말할것도 없었다. 또한 전례없는 인구전환으로 당시 이들 나라의 인구는 수가 많아지기도 했지만 매우 젋었다. 때문에 사회적 분위기가 호전적이었다. 젊은 인구는 혁신과 역동성, 창의력을 사회에 불어넣지만 높은 범죄률과 호전적 분위기를 낳기도 한다. 어찌보면 1차대전은 이런 각국의 인구증가로 젊은이의 증가가 불러온건지도 모른다. 

 1차대전은 결국 양쪽의 과학기술의 수준이 비슷한 덕에 인구차이로 결판이 난 싸움이라 볼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은 무려 4600만의 병력을 동원했지만, 독일쪽의 동맹군은 겨우 2700만의 동원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 전쟁기간 그 나라의 인구비율과 동원한 병력 비율은 연합과 동맹쪽이 1.75:1과 1.73:1로 거의 인구규모에 대비한 병력동원이 이루어졌음을 알수 있다. 총력전이었기 때문이다.

 1차대전후 유럽 각국의 인구는 전환을 마치고 정체되기 시작한다. 높은 출산률과 높은 사망율, 적은 인구에서 사망률 하락으로 인구가 급성장하는 시기를 지나 출산률이 낮아져 사망률과 균형을 맞추어 인구가 더이상 늘지 않는 시기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의 인구성장은 없는 것 같았지만 2차대전후 다시 인구 성장이 시작된다. 베이비붐이 일어난 것이다. 

 베이비 붐은 막상 전쟁으로 인한 인구 손실과 전후, 젊은 남성들이 돌아오며 미뤘던 출산이 한꺼번이 이뤄지며 인구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논리라면 1차대전 후에도 베이비붐이 이뤄졌어야한다. 2차대전 후의 베이비붐은 1차대전 후와 다른 요소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바로 경제성장이다. 전쟁 후 서유럽과 미국의 경제는 급성장했다. 인구증가와 경제성장은 서로 자기 강화적 성격을 띄며 선순환했다. 결혼이 늘고 자녀수가 늘었으며 인구가 늘자 주택수요와 제품수요도 늘며 경제도 더욱 성장했다. 낙관적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었고 자수성가도 쉬워져, 이전 같으면 늦은 나이에 결혼하던 사람들도 이른 나이에 결혼하기 시작했으며 아이도 그만큼 많이 낳게 되었다. 

 때문에 1930년대 인구전환을 마쳐 출산률이 2명미만이던 영국도 1960년대엔 3명대의 출산률을 보이게 되었다. 1960년대는 베이비붐이 절정에 이른 시기로 1차대전 무렵처럼 각국의 인구는 많아졌고 다시 젋어졌다. 때문에 이 시기의 문화는 반항적이고 소비 지향적이었다. 68혁명이 이 시기란 것도 젊은 인구구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되던 인구성장은 1968년 먹는 피임약 필이 처음 등장한 시기와 거의 일치하며 하락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은 인구를 계속 성장시킬 수 없었으며 여성의 교육수준과 고용률이 높아지며 더 이상 여성이 많은 출산을 하던 시대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폭풍이 지금 인구전환을 마친 여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령화다. 이미 서유럽과 동아시아 북미의 국가들은 고령화를 겪고 있다. 고령화는 인류가 처음 겪는 일이어서 그렇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고령화가 일어나면 노인 관련 산업이 생겨나고 그 분야의 고용 창출과 경제성장이 일어난다. 또한 많은 연구에서 입증했던 고령화는 그 나라를 평화롭게 하고 준법적일 가능성을 높인다. 그리고 소수가 되어버린 젊은 이의 가치가 높아져 어린 학생에 대한 높은 수준의 집중 투자가 일어난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사회의 혁신성과 역동성이 떨어지고, 경제규모가 작아지며 의료와 연금등 공공부분의 지출 부담이 막대해진다. 

 세계 많은 지역이 인구전환을 끝냈지만 아직 남아있는 지역이 있으니 중동지역과 사하라 이남 지역이다. 중동지역은 인구전환의 물결이 잦아들며 마무리로 가는 지역이고 사하라이남은 인구전환이 막 시작되고 있는 지역이다. 중동지역은 사망률의 감소로 인구가 증가했으며 출산률 역시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 사회 특유의 다산을 유도하는 문화로 인해 아직은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률을 보이고 있다. 중동지역의 인구가 증가하는데는 이민도 큰 역할을 했다. 카타르의 경우 2차대전 직후 겨우 인구 2만5천의 소국이 현재 인구 250만으로 불어났다. 이중 토착민은 20%정도이며 나머지는 이민자들이다. 

 중동은 젊은 층의 인구비율이 매우 높은데 석유와 가스라는 우연적 산물에 의한 부로 인구가 늘어난 터라 인구대비 취업율이 46%에 불과하다. 석유와 가스를 팔아서 이룬 경제체제로는 충분한 고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과학기술 수준도 낮아 건조지역임을 감안해도 1인당 물소비량이 세계평균의 20%수준에 불과하고 곡물의존도도 무려 50%나 된다. 거기에 석유로 인한 기업가 정신의 부재로 지대만을 추구해 위로부터의 부패가 사회에 만연해있다. 그래서인지 아랍의 6-15세 어린이중 무려 1000만명이 학교를 다니고 있지 않다. 교육이 부재하고, 일자리도 찾기 어려운 청년층의 폭발적 증가는 폭력으로 이어지기 쉽상이다. 저자는 이 지역의 이슬람 근본주의 역시 이런 젊은 층의 불만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아랍의 젊은 층의 좌절은 서유럽으로의 이민 물결로 나타나고 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