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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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디디의 우산을 재밌게 봤었다. 독특한 느낌과 서술이 있는 책이었고, 동봉된 음악도 새로웠다. 이번 연년세세는 단편집 모음이라길래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각 단편이 모두 이어지는 것이었다. 좋은 작가의 장편을 더 좋아하기에 기쁘긴 했는데 이후 이걸 단편집이라고 해야할지 그냥 장편소설이라 해야할지 애매해졌다. 하여튼 각각 단편이라 생각하고 이어지는 장편효과를 누리니 특이했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책을 다읽고 표지를 보며 사라졌다. 표지에 크진 않지만 분명 써있다. 연작소설이라고, 난 대체 어디서 단편집이란 소문을 들을 것일까?

 한국은 서사소설을 쓰기에 적합한 나라다. 영화 대부를 좋아하는데 대부는 1-2-3시리즈가 마피아 보스 가문 3대에 이르는 큰 서사를 다루기 때문이다. 단신의 이탈리아계 이민자가 뉴욕일대의 거물 조직 보스가 되고, 암살시도를 당하고, 그 아들이 그 뒤를 계승해 아버지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단순히 그려내는 것 만으로도 사람에게 큰 울림을 준다. 특히, 대부2는 아버지와 아들이 성장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크로스 오버하며 담아내는데 그래서 더욱 서사가 극적으로 다가왔다. 본론으로 돌아가면 한국이 서사를 쓰기에 적합한 이유는 간단하다. 최근 3대 정도의 삶이 극적으로 다르고 격렬하기 때문이다. 수명이 충분히 길어진 지금으로부터의 3대면 일제시대의 아픔과 한국전쟁과 분단, 독재정권과 가난, 경제성장, 민주화와 문화 및 경제가 극도로 발달한 지금의 시기를 모두 담아낼수 있다. 

 이 책 연년세세도 그렇다. 모두가 한 해를 뜻하는 네글자의 반복인 이 제목은 '여러 해를 거듭해 이어짐'이란 뜻이다. 아마도 작가는 한국에서 그것도 소외 받고 더 약자였던 여성 세대의 삶을 비추며 그 아픔의 반복이 세대를 거쳐가며 계속 짊어지게 됨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세 남매를 둔 어머니가 등장하는데 이름이 이순일이다. 46년생으로 어려선 순자라 불렸는데 사실 진짜 이름은 순일이다. 결혼하면서 혼인신고과정에서 본인의 진짜 이름을 알게되었는데 5살의 어린 나이에 등에 엎고 다니다 실수로 옷에 불을 붙게해 죽게만든 3살 여동생 이름이 은일이라는 것도 그제서야 알게된다. 순일은 어려선 아버지가 북한군이 내려왔을때 부역행위를 하다 군인에 자수해 실종되고, 어머닌 역병으로 잃었다. 외할아버지에게 거둬져 어린 동생을 돌보다 죽고, 고모란 사람이 나타나 잘 키워준다는 말에 따라 나서는데 그 고모는 무려 7명의 자식을 하꼬방에서 키우는 사람이었다.

 애초 순일을 식모로 삼으려던 생각이었던 듯하다. 순일은 갖은 고초를 겪으며 온갖 살림을 다하고 학교근처에도 가보질 못한다. 집을 떠나고 싶어 도망가 병원에도 잠시 취직해 파독을 꿈꿨지만 고모의 손에 다시 잡혀간다. 스무살이 넘어 사회적으로 혼자임을 용인하기 어려운 나이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시장 상인과 결혼한다. 그는 한중언으로 그래서 순일의 자식들을 한영진, 한세진, 한만수가 된다. 장사가 제법 잘되다 달아난 계주의 보증을 잘 못서 한중언이 파산한다. 맞이인 장녀 영진은 한국에서 많이 본 래퍼토리처럼 가계를 건사해나간다. 제법 물건 파는 재주가 좋았던 영진은 집안을 이끌어가게되고 세진, 만수는 그 돈으로 공부를 한다.

 소설의 첫 장면은 파묘로 이순일이 딸 세진과 더불어 외할아버지의 묘를 파묘해 화장하러 가는 일정이다. 이순일은 왜인지 모르게 키워주지도 보살펴주지도 않은 외할아버지의 묘를 매년 찾았다. 그것도 민간인통제구역안에 있는 오지를 말이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험한 산을 타지 못하게 되 파묘를 결심한 것이다. 

 연작 소설엔 파묘를 시작으로 첫째인 한영진의 삶의 고뇌,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순일의 삶의 모습, 마지막으로 세진이 미국을 방문해 가족의 파편인 제이미를 만나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한국전쟁과 가난, 입양 등 한국사의 어느정도 굴직한 사건들도 만져진다. 

 책은 여전히 재밌고, 상당히 몰입해 읽을 수 있었다. 뭔가 툭툭 던지면서 인물들의 심리를 드러내는 말과 행동을 던지는 부분이 재밌고, 여운이 남는다. 디디의 우산을 재밌게 본 분이라면 추천한다. 충분히 빠져들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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