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 메이지 이후의 일본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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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작가는 47년 생으로 재일 교포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가 한국인이다. 대학의 교수로서 일본사회의 주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출신이 철저히 변경인 재일 교포인 것이다. 재일한국인이나 조선인은 아직도 일본에서 외국인 등록증명서를 받는다. 거기엔 다양한 정보와 동시에 상륙허가와 재류기간이 써있는데 당연히 자이니치들은 국적만 한국이나 북한일뿐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이니 굳이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마치 일본에 잠시 들르는 외국인처럼 상륙기간과 재류기간을 표기한 외국인 등록증명서를 준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인 셈이다. 본인들도 억지인걸 아는지 물론 재류기간과 상륙기간에 별표시가 되어있기는 하다.

 자신들의 식민지 만행으로 생겨난 자이니치에게도 이런 대접을 하는 일본에 저자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과연 약자인 국민과 변경인들에게 어떤 대우를 했을지 살펴볼 필요가 들었던 것 같다. 2차대전의 패전, 미나마타병, 미카와탄광폭발사건, 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 폭발등 이런 끔찍한 사건은 대체 왜 일본에서만 반복되는지도 저자의 주요의문이었다.

  역사가 보여주듯 메이지이후 150년간 일본의 역사는 떠오르는 역사였다. 아시아 최초로 산업화에 들어섰고, 그 힘으로 아시아의 많은 지역을 지배했다. 패전 후 몰락할 것만 같았지만 한국 특수로 다시 기사회생하여 60년대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서 거의 50년간 그 자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쇠퇴의 기미가 역력하지만 여전히 3위의 경제대국이다. 그렇게 국운이 욱일승천하는 동안 그 나라를 위해 일하고 전쟁에 참여한 국민들, 그리고 특히 약자들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국운을 올리는 것만이 제일 목적인 나라에서 뒤틀린 부분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선 일본은 교육부터 뒤틀려 있다. 패전 이후 68혁명을 통해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자 현대사의 아픈 부분을 집중 교육하는 독일에 비해 일본은 전쟁이전의 메이지유신까지의 역사만 집중적으로 다룬다. 일본의 교육은 상당히 국가주의적이고 다양성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데 외세의 강한 힘과 영향으로 인해 교육의 주체성이 가장 담보되지 못했던 메이지 유신 초기와 패전 직후의 시대가 일본 교육이 가장 다양하고 교육적 자유가 보장되던 시기였다는게 아이러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나라의 운영권을 되찾은 52년부터 일본의 권력층은 바로 교육 검토에 들어갔고, 1970년대부터는 일본의 교육이 권리만 강조하고 의무는 방기한다.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등 과거로 급격히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점차 검정교과서의 기준과 절차가 엄격해지고 교사의 지도방침에 대한 점검도 강화되어등 일본의 교육은 우경화와 더불어 급속히 뒤틀린다.

 일본은 지진이나 해일, 화산등 자연재해가 그 어느나라보다도 많으면서도 이를 무시한 개발을 진행해왔다. 저자는 자연에 반한 이런 인간의 세공, 잔꾀 등이 지진의 운동에너지가 될 위치에너지를 키워다고 말한다. 즉, 지진으로 더 큰 피해가 될만한 인재로서의 잠재적 에너지를 더 키워단 셈이다. 지진해일이 많은 나라가 원전을 하는게 그런게 아니겠는가. 하여튼 저자는 재난이 날때 그 지역, 사회, 국가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본다. 25년전 고베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이 일어나는 순간은 무척 짧지만 그 여파는 수십년을 간다. 일본정부는 붕괴한 해당지역에 집단 이전이나 토지정리, 부흥재개발 등으로 복구를 추진했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지역민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런 복구방식에서 지역 커뮤니티의 재생이 방해되었고, 서로 연결되어 버티며 재기해야할 사람들이 유리화되었다. 때문에 해당지역의 가설주택과 공영주택에서는 한해 이재민 고독사가 천명 넘게 발생한다고 한다. 이런걸 복구라 말할 수 있을까.

 문제가 하도 많은 아베총리의 외할아버지도 기시 노부스케도 총리였고, 한국을 무시하는 일본 외무상 고노의 아버지는 아들과 다르게 일본의 가해행위를 인정한 고노담화를 한 그 고노였다. 이처럼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정치가 세습된다. 일본은 정치를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94년 정치개혁 4법을 통과시켰는데 명분과는 다르게 그 법은 자금의 운용과 인사발탁의 기능이 정당 지도부로 집중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때문에 각 지역 의원은 일본 국민이 아닌 정당의 지도자에 충성하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법의 통과후 정치세습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는데 96년 이후 일본 총리10명중 8인이 무려 정치가 집안 출신이다. 중의원의 세습률은 25%를 넘어서가 집권당인 자민당은 경우가 더 심해 30%를 넘어선다. 2017년 11월엔 총리를 포함해 내각의원의 절반 이상이 세습의원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니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 할수 있겠다. 정당지도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의 통과후 세습의원이 많아 진것은 정당이 가족 정치인들에게 선거에 유리한 지명도와 자금, 지원조직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본 정당은 정권을 얻어 국민의 민의를 반영하기 보단 관직임명권을 얻고 권력이 당 지도부에 집중되고, 각 의원들이 지역이나 국민의 생각보다는 정당지도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형태가 된다. 제대로 튀틀린 셈이다. 

 변경민과 약자에게도 국가주의앞에 그저 도구일 뿐이다. 일본은 52년에 본토를 미국으로부터 찾았지만 오키나와를 찾는데는 그로부터 20년이 더걸렸다. 2차대전때 본토보다 먼저 공격당해 점령당한 오키나와는 당시 전인구의 1/4정도가 죽었다. 미군이 죽인 것보다 옥쇄당한 이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전후 주일미군의 대부분이 오키나와에 주둔한 것도 오키나와가 일본이면서도 일본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이니도 그렇다. 그들은 비록 이등국민이긴 했지만 일본제국의 신민이었다. 그러다 패전하니 자동으로 외국인이 되어버렸다. 어째서 일본은 동화의사가 없으면서도 한국이나 북한으로의 귀순을 희망하지 못하거나 안한 이들에게 이중국적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농민도 약자이다. 일본은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쌀값안정은 도모하면서도 수입품과의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해 농민들에게 쌀생산 제한을 강요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농민간의 이합집산이 일어났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만들었다. 후쿠시마에서 원전으로 재산과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어째서 도쿄의 불을 밝히기 위해 자신들이 그런 꼴을 당해야 했는지를 묻는다. 이는 하시마탄광의 일본, 조선, 중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사양화되던 탄광산업으로 인해 예산이 줄어 위험속에서 작업하다 희생된 미카와 탄광의 노동자들, 그리고 미나마타만의 어부들도 했던 말일 것이다. 

 이 책을 메이지 유신이후 상당히 많은 일본의 뒤틀린 역사와 현재, 희생된 사람들을 현장을 찾으며 기리고 성찰한다. 저자가 보기에 일본은 메이지 유신당시 화혼양재를 택했다. 과거 중국을 배우자는 화혼한재에서 한을 양으로 바꾼 것이다. 한국의 동도서기나 중국읜 양무운동과 괘가 같다. 이는 기존의 정신문명을 보존하면서 서구의 과학기술만을 따르자는 것인데 일본의 경우 두 나라와는 달리 성공하면서 오히려 동아시아의 전체주의적 사고에 서구문명기술만 발달한 기형아를 낳은 셈이 되고 말았다. 때문에 메이지유신의 성공부터 일본의 뒤틀림은 배태되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정신문명의 변화까지 이어지지 않았기에 민주주의도, 문화주의도, 성찰과 반성도 없다. 더구나 최근 버블경제의 붕괴와 저출산 고령화, 지방의 쇠퇴, 감각적 충동의 해방, 국권과 민권의 분열, 국가와 자본의 유착, 도쿄로의 부와 인구의 쏠림, 미국만의 추동과 다른 나라의 무시, 계급 격차의 확대라는 문제가 전방위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는 오히려 과거로 회귀에 더욱 국가주의로 경도되고 그 수단인 국민의 순수성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치닫는다는게 저자의 해석이다. 

 재밌고, 한국에게도 공통되는 부분이 있어 상당히 반면교사가 되는 책이지만 많은 주제를 다루면서 상세하고 깊이 있는 서술이 좀 부족해 이해가 어려운 면이 있었다. 지금 책의 두배 볼륨으로 두껍게 서술했다면 더욱 나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거기에 일본학자이니 당연히 일본식 한자를 많이 썼는데 이 부분이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여러모로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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