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부족주의 - 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에이미 추아 지음, 김승진 옮김 / 부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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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어느새 협력과 그에 필요한 이타심, 그리고 이에 기반한 고도의 윤리체계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여기엔 적용범위가 있다. 어디까지나 이들이 나의 내집단에 속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와 같은 언어와 비슷한 복장과 생김새, 주거지역, 먹는 음식등이 비슷해야 비로서 나의 내집단으로 여기고 협력과 윤리성이 적용된다. 이에 벗어나면 금방 적개심을 갖거나 적이되는데 최근 미국을 뒤엎고 있는 플로이드 사건만 해도 그렇다. 백인과 흑인은 서로 모든게 매우 다르다.

 이런 인간의 미개해보이는 특성은 상당한 장점이 있다. 내집단의 협력성은 나의 적합도를 현저히 높인다. 짝짓기 기회도 높이고 먹이도 나눌 수 있으며 외부 침입에서 나를 보호한다. 또한 외부에서 온 녀석은 알수 없는 전염병 같은 것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여러모로 이런 특성은 과거 분명 유효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 지나며 이런 작은 규모의 내집단은 다른 내집단에 잡아 먹히거나 합세하기도 하여 점점 그 크기를 키웠나갔다. 그래서 이룩된게 현대 국가다. 한국처럼 과거 여러 다민족이 서로 한민족이라는 신화에 하나로 융합되어 스스로가 단일민족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면 그 융화가 상당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경우는 분명 아니며 한 국가에 억지로 상당한 정체성과 반목을 가진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경우도 잦다. 이는 역사적 우연에 의해서이기도 하고 일부 힘있는 나라들의 장난질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서로가 매우 이질적으로 생기고 문화와 종교가 다른 외집단들이 서로 같이 살고 있음에도 서로를 어느 정도 강한 내집단으로 여겨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 스스로를 여기고 그 나라에 충성하는 국가가 하나 있으니 바로 미국이다. 저자는 그래서 미국이 세계 주요 강대국중 유일하게 수퍼집단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수퍼집단을 이룬 강대국은 많지 않다. 영국은 국호는 영국이나  사실상 그 좁은 나라안에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가 따로 논다. 캐나다 역시 프랑스계와 영국계가 아등바등하고 살며, 프랑스내에서도 기존 프랑스 인외에 이민자 집단과의 갈등이 심하며 프랑스는 강제 통합정책을 실시한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내 다양한 민족과 그들의 정체성을 허락한다. 그래도 미국이라는 하나의 수퍼집단으로의 통합을 자신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미국의 개척자 정신으로 하나가 되어온 오랜 역사적 전통에서 비롯된 자신감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게 미국에 항상 긍정적으로만 작용한 건 아니다. 우선 외교에서 그랬다. 우리한테 한 것만 봐도 미국은 전통적 지지를 얻던 민족주의 진영을 무시하고 친일파와 미국에 협력하는 우파 세력에만 손을 뻗었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 무지한 결과였다. 미국은 한국에만 그런게 아니다. 베트남에서도 헛발질을 했는데 그들은 베트남이 중국에 오랜 저항을 해온 역사를 갖고 있고, 소규모 집단임에도 오랜 지배로 기득권을 얻어온 중국의 후예인 화교집단에 대한 적대감도 몰랐다. 단지 한국에 그랬던 것처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안경만 끼고 바라 봤을 뿐이며 결과는 참당함 실패였다. 물론 미국이 이러는데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들의 성공적 통합 경험이 있다. 서로 작은 별볼일 없는 집단이 아둥바둥해도 강한 힘과 민주주의라는 정의 앞에 결국 하나로 통합되어 국가를 이룰거라는 순진한 믿음 말이다. 또 거기에 미국은 다른 오래된 강대국들에 비해 식민지 운영 경험이 일천하다. 구 열강들은 원거리에 위치한 강대한 식민지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그들의 역사와 민족을 철저히 연구했고, 반목집단을 서로 이용함으로써 지배를 유지해왔다. 미국은 이런 경험이 없다.

 하여튼 이런 정치적 부족주의에 대한 몰이해로 베트남에서의 실패, 아프간에서의 실패, 이라크에서의 실패를 쪽 살펴본게 이 책이다. 다만 베네수엘라의 예는 미국과는 조금 덜 상관있고 더욱 재밌는 예이기에 자세히 살펴본다.

 베네수엘라 하면 죽은 우고 차베스와 미인대회, 석유, 파탄난 경제가 떠오른다. 아마도 대중적으로 미인대회가 가장 친숙할텐데 베네수엘라의 미인대회의 수준은 상당하며 실제로 세계 미인대회에서의 성적도 좋은 편이다. 베네수엘라 자체내에서도 미인대회의 시청률이 80%에 이를 정도로 대국민적 관심사다. 그런데 베네수엘라 미인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남미적 특성이 좀 섞여 더욱 매력적이긴 하지만 유럽인에 가까운 미인이 생각나지 않는가. 그래서 나도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대개 그런 스타일인 많은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베네수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우고 차베스처럼 생겼다.

 이는 남미내에 깊이 뿌리 박힌 인종차별에서 비롯하는 정치적 부족주의를 강하게 상징한다. 헌데 이는 우리의 상식과 부합하지 않는다. 북미와는 다르게 중남미는 가족이민을 하지 않아 강하게 혼혈이 이루어졌고 그래서 인종차별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지역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그리고 현지인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결정적 증거는 빈부격차인데 중남미 국가는 하나 같이 혼혈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백인 지주의 후예들이 대부분의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중남미에서 혼혈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역사는 매우 길다. 메시코에서는 백인과 아메리카 토착민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땅을 소유하거나 성직자가 되는걸 오래도록 금지했다. 그리고 칠레는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했을때 이를 칠레의 백인적 특성때문으로 여겼다. 중남미에서는 백인과 아메리카토착민, 흑인노예,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의 혼혈들의 마구잡이 뒤섞임을 무려 20여종으로 분리해놓았는데 차별할 필요가 없었다면 대체 이런 짓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차별의 반증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코스모폴리탄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부유한 백인계층이다. 여유에서 나온 사치랄까.

 이런  틈새를 파고든게 우고차베스다. 그는 이미 존재하던 인종차별에서 비롯되던 정치적 부족주의를 날카로운 정치적 감각으로 파고들었고 대중에게 이를 일깨웠다. 백인이 차지하던 요직과 권력은 자신과 닮은 혼혈인과 토착민에게 부여했다. 차베스의 집권은 베네수엘라가 고유가로 호황을 누리던 시기와 함께 지속되었고 나라가 저유가로 흔들리는 낌새를 보이는 시기 그의 죽음으로 끝났다. 남미의 반목과 백인에 의해 만들어진 코스모폴리탄의 정체를 잘 파헤쳐준 사건이다.

 수퍼국가를 만든 미국도 사실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소수이면서도 정치, 경제, 사회의 권력을 잡은 시장지배적 소수가 있을때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데 오늘날 미국엔 이런 소수가 없어 위협을 모두가 느끼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미국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정치적 부족이 위협을 느낀다. 권력을 장악한 백인도, 흑인도, 무슬림미국인도, 멕시코계 미국인도, 아시아계도, 미국의 여성도 모두 위협을 느낀다. 경제적 어려움과 중산층의 붕괴가 사회의 안정성과 통합을 해쳐 모두가 위협을 느끼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확실한 주도적 세력이 없기 때문엔데 주도적 세력의 경제, 사회, 정치 권력의 상실은 어이없게도 모두에게 위협적인 상황이 된다. 확실한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은 관용을 베풀 여유를 갖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오랜 추구로 세계 여러 부유한 나라의 중산층은 붕괴하였고, 강함을 잃었다. 때문에 정치적 부족주의는 강하게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새로운 정치적 부족주의라고 할수 있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틀이었던 민주주의는 각국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인간이 이를 넘어 서기는 어려워 보인다. 위기에 몰릴수록 내집단에 더욱 기대는 것이 우리의 오랜 본성이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이 발달할 수록 내집단은 새로운 이념과 정체성, 신화를 내세우는 더큰 하나의 집단으로 통합되어 갔다. 한국만 봐도 고구려,백제, 신라의 정체성은 통일신라에 그대로 남아있었고 고려시대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을 고려인이라고 칭하기 보다는 백제, 신라인으로 자신을 칭했다.거기서 벗어난건 조선에 이르러서였다. 새로운 정치적 부족주의로 갈아타는데 오백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세계 각국도 언젠간 하나의 지구라는 신화로 통합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닐수도 있지만. 어릴적 좋아하던 일본 만화 '마크로스'를 보면 지구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외계 거대 모함이 지구의 한 섬에 불시착한다. 이 거대모함의 불시착은 전 지구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글 결과는 지구 통합전쟁이었다. 강한 외부의 적을 인식해 지구인 전체는 하나로 통합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로 인해 수년간의 전쟁이 수행되어 통합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그리고 이 통합정부는 결국 외부의 적을 맞이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진정한 코스모폴리탄 시각을 가지려면 둘중 하나겠다. 외부의 적의 등장과 인간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신화의 등장이다.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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