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의 배신 - 길들이기, 정착생활, 국가의 기원에 관한 대항서사
제임스 C. 스콧 지음, 전경훈 옮김 / 책과함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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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스도 그렇게 했지만 단선적인 역사관이 지배적이다. 사용하는 도구라면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의 형태, 그리고 경제체제라면 수렵채집-농경-산업형태다. 실제로 이런 라인을 따르지 못하거나 늦었던 민족, 사회, 국가의 운명이 지난 백여년간 어떠했는가를 잘 알고 체험했기에 이 같은 단선적 역사관은 쉽게 옹호되고 받아들여지는 편이다.

 책은 이런 단선적 역사관 중 특히, 농경에 대해 시비를 건다. 사람들이 수렵채집 형태의 생활을 영위하다 가축과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정착하고 국가를 이루어 발전했다는 이야기에 대한 시비다. 물론 농경이 현대 문명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국가의 시초이긴 하지만 그 국가 소속 개별 인간에게 생각보다 많은 악영향을 준 것은 최근 잘 알려져있는 편이다.(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으로 영양실조와 굶주림, 작아진 체격, 농경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구조로 여러가지 농경후유증, 충치와 전염병, 신분사회와 가혹한 착취 등).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렵채집의 더 나은 다음 단계가 농경이고, 발전과 생존을 위해 이렇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사고가 지배적인데 책은 이를 하나하나 따져본다.

 

1. 착각들 

 우선 지적하는 점은 농경 및 가축의 시작과 도시국가의 탄생에는 생각보다 커다란 시간차가 난다는 것이다. 보통 농경 및 가축의 시작과 정착사회의 탄생을 거의 같은 시점으로 생각하지만 최초의 농경과 초기도시국가와는 무려 4천년의 시간차가 난다. 더 웃긴 것은 농경과 가축  이전에도 도시국가정도의 수준은 아니자민 유의미한 규모의 정착생활은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가축과 농경의 시작이 반드시 대규모 도시국가 형성으로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며, 가축과 농경전에도 정착사회가 있었던 만큼 둘은 항상 병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두번째 편견은 초기국가문명이 매우 풍요로운 지역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초기 국가에는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수만명의 사람이 몰렸고, 좁은 지역에 갇혀사는 이들을 부양하기 위해선 당연히 지역이 어느 정도 풍요로워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초기국가와 풍요로운 지역은 반비례관계라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초기 국가가 형성된 지역은 대개 지금은 건조지역인데 초기 정착이 시작되었을 무렵 이 지역은 지금보다 해수면이 높았고 대개 습지지역이었다. 해수면의 상승으로 유속이 느려져 강하구에 삼각주나 거대습지가 많이 형성되었고 사람들은 대개 이지역에 일부 정착했다. 습지지역은 동물과 식물식량이 풍부했고, 생태적 다양성으로 꾸준히 먹을거리가 교체되어 매우 안정적이었다. 문제는 국가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한군데 잡아놓고, 세금을 징수해야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먹이사슬이 매우 단순하고 영양적으로 빈곤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다양한 먹을 거리는 무엇을 징수해야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되며, 영양적 풍부함은 굳이 국가사회에 개인이 속박되는데 상당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세번째는 농경을 하는 도시국가와 여러 제국 및 강력한 나라들이 등장했음에도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인류의 또 하나의 생활방식(사실 원래 생활방식이 맞다)으로 수렵채집이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농경사회는 스스로를 문명사회로 칭하고 이들을 야만인으로 대접했다. 실제로 수많은 농경국가들은 이들 수렵채집, 유목사회와 오랜 갈등을 겪기도 했는데 우리로 생각하면 북방민족들이 그렇다고 할수 있다. 이들은 인구수는 적었지만 무력이 강했고, 하나로 세력이 통합될 경우 농경국가를 무너뜨릴만큼 충분히 강력했다. 흉노나 몽골 및 만주족, 게르만족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만 봐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는 면이다. 농경국가가 이들을 완전히 제압하고 세력권하에 두게 된 것은 1600년 경으로 화약제국의 완성으로 기마병을 제압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부터이다.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지금의 영토국가들이 세계의 나머지 부분들을 세력권하에 두기 시작한 시점과 대개 일치한다. 하지만 이들 수렵채집, 유목사회가 농경국가들과 항상 대치했던 것만은 아니다. 농경국가들은 강유역의 농경에 유리하며 부양력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곳에 대개 위치했으므로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목재나, 모피, 귀금속 등의 산물이 항상 부족했다. 농경국가들에 이런 천연자원들을 교역한 것이 수렵, 유목민족들이다. 이들은  식량 및 가축, 문화재 등의 물품을 받아가고 이런 천연자원들을 농경국가에 전달했다. 전쟁보다는 이런 교역의 역사가 훨씬 컸을 것이다. 실제로 수렵채집, 유목민족들도 한번에 모든 것을 털어가는 약탈과 파괴보다는 장기적으로 꾸준한 이득을 주는 교역을 선호했을 것이다.

 

2. 도무스의 탄생과 도시국가의 탄생

 도무스는 가구를 뜻하는 라틴어로 경작지, 씨앗과 곡식저장고, 사람들과 사육되는 동물들이 전례없이 좁은 한 곳에 집중된 득특한 장소다. 말이 어렵지 농사짓고, 가축치는 농가하나를 생각하면 된다. 인간은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변 경관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인위적으로 불을 질러 다른 잡목을 제거한 후, 식량이 될만한 식물자원의 씨앗을 심어 수확하는 등의 행위다.

도무스는 이처럼 주로 불등을 이용하여 주변 경관을 정리하여 생존에 적합한 동물과 식물을 자신의 주변 근거지에 배치하기를 원하는 인간의 오랜작업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후기 신석기 사회에 등장한 도무스는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생태실험장이된다. 자연상태에서 동식물종은 도무스처럼 좁고 인위적으로 조성된 경관하에 집중된 적이 없다. 농경과 가축을 위해 땅을 정리한 결과 토양은 해가 더 많이 비치고 외부에 많이 노출되게 된다. 이로 인해 토양안에 새로운 생태질서가 자리잡게 되며 기존의 동식물과, 기생충, 곤충등은 일종의 교란상태에 빠지게 된다. 생물종이 집중하면서 좁은 자리에 오물이 집중적으로 쌓이게 되며 이는 기생생물의 대량발생으로 이어진다. 질병의 주 매개체인 모기와 절지동물이 이 오물을 번식과 섭식에 용이한 장소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이 가축과 장시간 밀접접촉하게 되면서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이 창궐하게 된다. 인간은 가금류와는 26가지, 쥐 및 생쥐와는 32가지, 말과는 35가지, 돼지와는 42가지, 염소 및 양과는 46가지, 소와는 50가지, 개와는 무려 60가지의 전염병을 공유한다. 유명한 홍역은 양과 염소의 우역바이러스에서 천연두는 낙타와 소의 설치류 조상에게서, 인플루엔자는 조류에게서 유래했다.

 이 같은 도무스는 동일작물재배의 취약성과 가축 및 인간에 대한 기생생물과 곤충, 전염병의 공격으로 취약하고 생산성이 높지 않았다. 때문에 인간은 앞서 말한 것처럼 도무스를 생성했음에도 오랜 기간 도무스의 자급능력부족으로 수렵채집사회를 유지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대규모 정주생활인 도시국가가 형성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마땅한 설명은 없지만 현재까지의 가장 그럴듯한 대답은 광역혁명이다. 말이 혁명이지, 쉽게 말해 영양의 하향평준화라 할 수 있다. 기후 변화와 아마도 남획으로 고영양의 동물식품이 줄어들었다. 이에 인간은 대안으로 하위 영양수준(그러니까 더 작고 영양가가 적은 동물)에서  더욱 다양한 생계자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된것이다. 이로 인해 수렵채집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고, 도무스에 보다 의존하게 되었으며 정착생활은 자연스레 더 높은 출산률로 이어지게 되었다. 즉, 정착과 도무스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광역혁명결과 인간은 땅을 일구어 농사짓고, 가축을 가르는 부단하고 반복되는 고역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영양은 취약해졌고,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률은 높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정착으로 인해 국가에 속박되기 시작한다.

 

3. 국가의 시작과 통제도구들

 국가는 보통 노동의 분업이 이루어진 상당히 복잡하고 계층화된 위계적 사회에서 행정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행정력이 미치는 범위가 중요한데 보통 그것이 국가의 영토다. 과거 초기 도시국가는 행정력이 미약했기에 그 범위가 그리 넓지 않았다. 최초의 도시 국가가 형성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기원전 3500-2500년 정도에 해수면이 빠르게 내려가면서 유프라테스 강의 유량이 줄어들었다. 기후가 건조해졌고 강물이 줄어 들면서 다양하고 풍부한 영양을 제공하던 습지가 사라지고 강의 본류만이 남게 된다. 줄어든 강물 탓에 토양이 염류호하여 경작 가능한 땅이 줄었고, 사람들을 부양할 만한 땅 역시 줄어들게 되었다. 이렇게 맞이 한 광역혁명의 결과로 사람들은 더욱 좁은 땅에 노동집약적으로 일하게 되었고, 건조함으로 인해 관개사업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이렇게 곡물과 인력이 소수의 경작가능한 땅으로 집중하자 전유, 계층화 불평등이 발생한다. 국가의 본격 시작인 것이다.

 국가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면도 있었지만 좁은 지역에서 사람들을 가둬놓고 착취하는 가혹한 것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국가에 얽메이면서도 벗어나기를 희망하며 역으로 국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들을 강하게 통제한다. 국가가 자신을 유지하고 사람들을 통제한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성벽과 세금징수, 글이다.

 보통 사람들은 성벽을 도시국가를 같은 외부의 도시국가나 수렵유목민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 실제로 성벽의 존재는 외부로부터 보호해야 할 소중한 것들이 존재함을 의미하며 이는 주로 백성들로부터 징수한 것들이다. 즉 성벽은 영속적 경작과 식량저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역으로 성벽은 도시국가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들이 외부로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성문은 주로 낮에만 개방되고 밤에는 차단되었으며 항상 문지기가 있어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다. 또한 대개의 지역민은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이 통제되었다. 과연 성벽이 방어만을 위한 목적이었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다음은 세금이다. 국가의 유지와 존속에 가장 필요한 것이며 형태를 달리할 뿐 오늘날까지 존속하는 것이다. 세금은 지금은 화폐로 징수하지만 인류역사상 대부분 곡물의 형태로 징수했다. 곡물과 국가사이에는 생각보다 단단한 결합이 있는데 이는 과거에는 오로지 곡물만이 조세의 형태로 이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곡물은 쉽게 눈으로 볼 수 있고, 낟알이 작아 아주 작은 단위로 균일하게 나눌수 있으며 가치 산정이 가능하다. 또한 운송이 쉽고, 배급도 용이하다. 게다가 땅위에서 자라나 눈에 보이는 형태로 거의 동시에 심어 동시에 수확하니 일시에 세금징수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 이 같은 장점이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한번 고구마를 생각해보자. 고구마는 땅속에서 자라나니 정확한 수량을 알 수 없고, 주인이 기습적으로 수확하거나 수확량을 얼마든지 속이기에 용이하다. 또한 지금처럼 저울이 일반화되지 않은 과거에는 이를 정확한 수량으로 나누어 주기가 어렵고 단위부피당 무게도 무거워 운송도 쉽지 않다. 도시국가들에서 곡물만을 선호한 이유이며 이런 이유로 카사바나 얌, 고구마 등이 주식인 지여게서 도시국가가 자라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은 글이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한글을 개발했다는 이유는 매우 낭만적이지만 실제 인류문명사회에서 글의 발명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글은 국가형성기에 등장한 것으로 정주 사회의 형성 및 국가의 기원, 운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앞서 말한 세금의 징수와 인력의 관리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초기 도시 국가들은 고유의 문자를 발명하고 사용했지만 매우 소수의 집권층들만 이를 사용했기에 흔적이 얼마 남지 않았고 도시 국가의 명멸과 동시에 글도 대부분 사라졌다. 중국의 진의 경우 통일을 하고나서 지역마다 다른 독특한 측정관행을 없애고 모든 것을 통일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재산과 물산, 인력을 모두 통제하고 징수하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국가 통치유지를 위한 징수와 착취의 도구로서의 글에 대한 정체성은 피지배민들의 가슴속에도 어렴풋이 이해되었던 것으로 보이다. 농민반란이나 노예들의 반란에서 일번으로 태워졌던 것이 바로 그들의 신분과 재산을 나타내는 문서였으니 말이다.

 

4.초기 국가의 약점들

역사상 농경을 바탕으로 한 왕조들은 그 수명이 그리 길지 못한다. 한국의 왕조들은 갑작스런 백두산 분출과 말갈의 대두라는 진퇴양난으로 200년만에 망한 발해를 제외한다면 세계사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들정도로 그 수명이 길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의 농경왕조들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하다. 길어야 2-3백여년 수준이다. 이는 농경국가가 가진 내재적 취약성 때문인데 책은 3가지를 제시한다. 우선 식량으로 1년에 1번 수확하는 1-2가지의 주요 곡물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런 단일작물재배는 언급한 것처럼 세금징수와 유통, 관리, 배급에 매우 유용하나 가뭄과 홍수, 병충해에 취약하다. 다음은 도무스 형성과 인구과밀로 인한 전염병 취약성, 마지막은 잉여생산물이 운송체계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런 미묘한 균형에 약간이나마 균열이 생길 경우 농경왕조는 크게 흔들렸다.

 여기에 외부적 위기도 있다. 바로 환경파괴와 침략이다. 초기국가는 상당한 양의 목재를 소모했다. 작물경작과 가축방목을 위한 토지정리, 조리, 난방, 가마, 주거지 건축, 금속야금, 선박건조, 기념비 및 종교건축, 철제련, 벽돌제조 등. 이 모든 활동엔 열에너지가 필요하고 그것은 과거에 바로 목재를 의미했다. 때문에 초기 국가는 일단 주변의 목재를 빠르게 소모한 후, 자신들이 위치한 강 상류지역의 벌채를 시작한다. 목재는 무겁기에 운송이 간편한 강유역부터 빠르게 목재가 소모된다.

 하지만 대가는 크다. 강유역의 삼림파괴로 하천 유역의 비가 더 빨리 흘러내리고 토사가 빨리 운반되어 격렬한 홍수가 발생한다. 토사가 축적 및 퇴적하면 자연제방이 생기고 장벽이 생겨나 강의 흐름이 이전에 비해 막히고 역류하여 습지가 생기기 쉬운 여건이 된다. 그리고 이런 습지는 모기가 대량발생하기 쉬워 도시에 말라리아를 가져온다. 또한 물의 부족으로 관개농업을 지속할수록 토양엔 염류가 쌓이게 된다. 염류의 제거를 위해 계속 토양에 물을 공급하게 되면 결국 지하수면이 높아져 염분이 있는 물이 작물의 뿌리에 닿게 되어 생산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식량부족이 발생하는 것이다.

 침략 역시 위기를 가져온다. 도시 국가는 아주 풍요로운 지역엔 적합하지 않아도 인구 부양을 위해 적절히 풍요로운 지역이 필요하다. 주로 강하구인데 문제는 이지역이 교통의 요지로 방어엔 그리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때문에 방어를 위해 중심지를 풍요롭지 못한 곳에 두는 경우가 있다. 고구려 역시 초기 도읍이 졸본이었고, 발해 역시 그러했다. 양국 역시 힘을 키워 방어에 자신이 생긴후에야 풍요로운 곳으로 중심지를 이전했다. 이런 생산성의 부족은 국가의 태생부터 위기를 가져온다.

 또한 국가는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식량생산에 투입해야 할 인력의 상당부분을 항상 방어에 투입했다. 이는 생산력의 저하를 가져오며 초기 국가가 인적자원에 매달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도 인구는 매우 중요하지만 과거엔 인적자원의 확보가 국가의 성패에 매우 중요했다. 지금의 통념과는 다르게 전쟁 승리의 대가로 상대방의 영토를 취하기 보다는 그곳을 황폐화시키고 인적자원을 노예로 수탈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자신들의 인구로 편입하기 위해 아동이나 인구 생산이 가능한 여성노예를 선호했다. 남성노예는 체제 편입의 어려움과 호전성으로 주로 중심지 외곽에 노예로 생산활동에 이용했다.

 게다가 초기국가는 행정력이 미약하여 영향력이 잘 미치지 못하고 조세의 운송이 어려운 외곽지역에서 세금을 잘 징수하지 못했다.(과거 고려와 조선도 북방지역의 세금은 운송의 어려움으로 자체국방예산으로 사용하게 했다) 때문에 초기국가의 수취는 주로 중심지에 집중되었다. 이에 중심지의 사람들은 착취에 시달렸고, 항상 탈출을 염원하거나 체제에 불만을 갖게 된다. 도시 반란이 잦았던 이유다.

 

이처럼 책은 농경이 자연스레 정착과 도시문명으로 우리를 이끌었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농경과 정착간에는 전후로 생각보다 오랜 시간 간극이 있었으며 도시문명이 시작 된 이후에도 세계의 상당부분은 인류 본래적 생활방식인 수렵채집, 유목이 계속되었다. 이 생활은 농경에 비해 인구를 적정히 유지하고 풍족하고 생각보다 안정적이었기에 도무스의 발명이후에도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 도시문명은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쉽사리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며 도시문명이후에도 1600년까지는 수렵채집, 유목사회가 이들과의 교역을 담당하고 보다 강력한 무력으로 우위를 점하기도 했었다.

 도시문명은 탄생 이후에도 전염병과, 식량위기 및 부족, 외부침략, 환경파괴, 내부갈등으로 상당히 자주 명멸했으며 도시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성벽과 세금징수, 인구자원의 수탈과 확보를 해나갔다. 때문에 인류역사를 농경에서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단선적 세계관과 도시문명에 대한 낭만적이고 당위적 서사를 지적하는게 이 책의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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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xing 2020-04-08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한권을 다 읽은 느낌이네요. 깔끔한 요약 감사드립니다!

닷슈 2020-04-08 17:2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