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문화란 이름으로 만들어낸 여러 유흥거리가 있다. 음악, 영화, 예술, 문학 등등. 그런데 한가지가 더 있다. 이들보다 고상함은 웬지 떨어져보이고 문화임은 분명한데 그렇게 분류하기도 좀 애매한 것, 바로 스포츠다. 하지만 스포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인기와 영향력 측면에서 나머지들을 압도한다. 지상 최고의 축제가 스포츠 제전인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란 것만 봐도 그렇다. 나머지 유흥거리 문화 중 이정도 인기와 압도적 규모, 상업성을 자랑하는 것은 없다. 오히려 나머진 유흥거린 이 스포츠행사를 빛내기 위한 양념으로 주제가나 개회 또는 폐회 행사에 사용되기 마련이다.(그 대단한 비틀즈의 노래도 런던올림픽 기념행사곡으로 쓰였으며 흥행에 민감한 방송사들은 스포츠행사 때면 아무리 인기있어도 음악프로와 드라마를 중지한다) 

 스포츠가 이처럼 인기가 좋은 것은 바로 다른 유흥거리들에 비해 인간 본성에 가장 근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겐 사냥, 혹은 서로 다른 집단들 끼리의 전쟁, 또는 짝짓기나 자원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공격성이 본능적으로 내재한다.(공격성은 스스로 에너지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다른 것을 포식하거나 얻어야 하는 동물에겐 필연적이다) 이런 폭력성은 전시상황이나 대결구도에선 사회적으로 매우 필요한 것이지만 평시엔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매우 불필요한 것이 된다. 특히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 협력의 필요성과 이로 인한 도덕의 발전으로 인해 더욱 그렇게 되었는데 스포츠는 바로 이런 인간의 공격성을 다른 방향으로 분출시켜 해소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스포츠가 처음부터 이런 의도로 시작되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냥 자연스럽게 서로 갈등적 상황이 없는 상황에서 친한 인간들끼리 장난삼아 서로 돌던지기를 하고 놀거나, 막 잡아먹은 동물의 잘 굴러가는 머리뼈를 차고 놀거나, 아니면 보다 원초적으로 서로의 속도나 힘을 경쟁하는 식의 형태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전쟁 연습이나 집단 사냥연습을 하면서 게임비슷하게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인간의 뇌는 시뮬레이션을 하게끔 진화했으니.

 그리고 세계 각 지역은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를 가졌음에도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스포츠를 즐겼음이 분명해 보인다. 돌을 상대편에 던지거나 무언가를 맞추는 것, 혹은 집단적으로 전쟁연습을 하거나 사냥연습을 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어디서든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거의 공통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로 여러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발생한 스포츠종목에도 쉽게 적응하고 배우며 즐길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물론 모두 그렇진 않다. 열대내륙국가의 사람이 동계스포츠나 수영을 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즐기는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은 인간의 공격성을 드러내는 서로간의 육체적 직접적 경쟁, 집단 혹은 개인간의 일대일 전쟁, 집단 사냥의 요소를 변형된 형태로 거의 그래도 반영하고 있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형태인 육체적 대결이다. 강함을 나타내는 가장 직접적이고 원시적인 형태인 서로간의 힘과 속도, 지구력 등을 경쟁한다. 이런 종목으론 모든 육상종목, 수영종목, 태권도, 유도, 레슬링, 복싱, 펜싱 등의 투기종목이 들어간다. 

 집단간의 전쟁이나 사냥 형태를 반영하는 종목은 거의 모든 구기 종목이다. 농구, 축구, 핸드볼, 하키등의 구기 종목은 서로 협력하여 상대편의 본진인 골대에 공을 넣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상대편의 본진을 점령해야 승리하는 전쟁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이를 위해 많은 육체적 힘과 협력, 전략 싸움이 필요하다. 전쟁과 무엇이 다를까. 그리고 네트종목이 있다. 네트 종목은 상대진영의 틈을 노려 공을 때려 넣으면 이기는 것이다. 테니스나 탁구, 배구, 배드민턴 등이 그러하다. 역시 상대의 본진이나 약점을 공격하는 전쟁형태와 매우 유사하다. 돌팔매로 상대편을 맞추는 직접적인 형태에서 출발해 모두 변형된 것이라고 본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스포츠이니 상대편을 보호하기 위해 네트란게 생겼을 것이고 돌대신 다른 대용품이 쓰였으며, 공격할 목표가 필요했기에 라인이 있는 코트가 생겼을 것이다.

 우리는 협력성을 갖고 집단의 힘을 통해 서로의 생존력을 높이며 진화했기에 이런 종목에서 전쟁이나 사냥에서의 강함을 드러낸 영웅에게 본능적으로 환호한다. 나의 생존에 직접,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스포츠스타나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에 환호하며 한국인이면 특히 손흥민과 류현진에 환호한다. 최고의 무대에선 최고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포츠엔 이보다 더욱 사회적인 측면도 자리한다. 바로 내집단과 외집단의 구분이며, 외집간과의 경쟁 및 갈등을 통한 내집단의 강화효과다. 인간은 같은 종목에 비슷한 수준의 스포츠 경기일지라도 내집단과 외집단간의 경기일 때 무척 흥분하고 환호하며 절망한다. 특히, 내집단과 외집단이 갈등상황이라면 그 효과는 더욱 극적이다. 때문에 한국이 축구경기를 하며 우호국인 미국과 경기하는 것과 역사적으로 적대국인 일본과 경기하는 것은 매우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이처럼 우린 스포츠를 통해 내가 속한 내집단에 더욱 소속감을 갖게 된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협력을 통해 생존력을 높이며 진화한 만큼 내가 속한 내집단이 사냥이나 전쟁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나의 생존에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린 스포츠를 통해서도 항상 내집단의 승리를 기원하며 외집단의 패배를 바란다. 특히, 자원경쟁이나 전쟁을 하는 인접한 혹은 외집단이라면 더욱 그럴수 밖에 없다.

 그리고 스포츠에서 내집단은 바로 나의 팀이다. 작게는 우리 동네에서 내가 직접 소속되거나 응원하는 팀, 더 크게는 우리 지역의 프로팀, 더 나아가서는 우리 국가의 대표팀이다. 그렇기에 모든 프로스포츠가 흥행하기 위해서는 지역에 밀착한 풀뿌리 형태의 리그운영이 중요하다. 그래야 지역의 팬들이 자신의 팀을 내집단으로 받아들이고 내면화하여 적극 참여하고 응원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축구가 국가차원에서는 매우 인기가 높으면서도 프로차원에서 흥행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역화가 미흡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흥행에 상대적으로 성공한 한국프로야구는 지역색이 매우 뚜렷한 반면 프로축구는 아직 지역화가 약하다. 성공적인 영국의 축구 프로리그를 보면 같은 런던만 해도 지역과 계층을 대표하는 네개의 팀이 있는데 반해 인구면에서 훨씬더 거대한 한국의 수도 서울은 그 지역적 다양성이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고작 한 개의 팀이 서울 전체를 대표한다. 이래서야 사람들이 서울팀을 자신의 내집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재밌는 것은 현대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자신의 내집단, 즉 응원팀이 여러 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프로축구팀을 응원하는 한 팬이있다. 이 팀에는 매우 기량이 뛰어난 최고의 공격수가 있는데 한국국가대표 선수이기도하다. 평소엔 이 녀석이 우리팀이니 내집단으로 받아들이고 응원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한국과 일본의 축구국가대항전이 일어나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 경우 이 팬은 자신의 일본팀을 괴롭히는 상대편의 공격수를 보면서 좋아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곤란해 질것이다. 이 공격수는 이 지금은 적이지만 이 경기만 끝나면 더욱 밀접한 자신의 지역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공격수가 일본의 골문을 향해 골을 몰아넣거나 혹은 우리 일본 팀 선수에 의해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대체 어떤 심경에 빠질까.

 하여튼 이게 서두인데 너무길었다. 이번에 읽은 책이 스포츠, 바로 아이스 하키를 소재로 한 책이어서 그렇다. 읽은 책은 바로 소설 '우리와 당신들'이다. 낭만적 제목 같지만 스포츠가 소재인 만큼 우리는 바로 우리팀을 응원하는 내집단, 그리고 당신들은 그 팀을 응원하지 않는 나머지 외집단들이다. 작가가 스웨덴 사람인 만큼 배경이 스웨덴이다.

 베어타운이라는 시골마을이 있다. 스웨덴은 추운데 여기서도 더 추운지역인지 짧은 2-3개월의 여름만 지나면 지역은 추워지고 바로 하키의 계절이 돌아오는 그런 지역이다. 외집단 역할을 맡은 인근 마을은 헤드다. 베어타운과 헤드는 서로 지역 라이벌 팀인데, 시골이고 인접하다보니 일자리와 학교등 많은 것을 공유한다. 본디 라이벌은 희소자원을 두고 경쟁해야 하기에 인접지역이어야 하고 그러면을 충족하는 양팀의 사람들은 서로를 늘 죽일 듯이 대한다. 이웃사촌이란 말은 그저 말일 뿐이다.

 어쨌든 시골 지역임에도 헤드에 비해 승승장구하는 하키팀을 가진 베이타운에 위기가 찾아온다. 하키팀의 소년 에이스 케빈이 하키팀 단장의 딸 마야를 성폭행 한 것이다. 이 사건은 바로 지역사회에 알려졌지만 하키팀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은 이를 부정한다. 케빈은 우리 내집단. 즉, 팀의 영웅이고 마야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내집단, 즉 프로팀에 상당한 위기를 불러오기 올것이니 사람들의 반응은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결국 진실을 옹호하는 사람들에 의해 진상은 밝혀지고 피해자의 아버지이자 팀의 책임자인 단장 페테르 안데르손은 가장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케빈을 팀에서 제외한다. 케빈이 떠나고 그를 옹호하는 선수들이 라이벌 헤드로 떠났다. 베어타운은 팀 해체위기에 빠지면 베어타운 지역의 공장도 위기에 빠진다. 한 때 문제는 많았지만 용맹했던 선수들은 문제생활에 빠진다. 그리고 이런 베이타운의 위기를 자신의 정치적 기회로 노리는 고향출신 정치인이 다가온다.

 이야기는 그렇게 굴러간다. 소설은 여러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하키다. 아이스하키를 좋아하는 스웨덴에서 하키란 스웨덴 사람들과 지역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지를 작가는 많이 고민한듯 하다. 그래서 책은 하키는 그저 하키일뿐이라지만 하키로 인해 지정치적 술수에 휘말리고, 인생을 고민하고, 가족간에 갈등하는 그런 내용이 많이 나온다. 그러다보니 나도 스포츠에 대해 고민하게 되 긴 서두를 썼지만 말이다.

 책은 생각할 문제과 고민거리를 많이 던져주어 소설임에도 긴 시간을 읽었다. 무려 일주일을 소모했다. 사실 작년의 마지막 책이 될줄 알았는데 이런 이유로 새해 첫 책이 되고 말았다. 주옥 같은 글귀도 많다. 작가가 사람과 인생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다. 재미도 충분하고 생각거리도 충분하며 글도 아름답다. 읽어볼 만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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