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애니멀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뭐라고 해야 할까. 풀어나가는 형식을 보면 이야기 책 같기도 하고, 중간 중간 나오는 인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나 사회심리학적 설명을 보면 과학책이나, 진화론 책 혹은 사회과학 책이나 심리학 책인 것 같기도하다. 아마 이 모두가 맞을 것이다. 책 소셜 애니멀은 인간은 사회속에서 그리고 주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해가며, 완성되어가며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생각으로 쓴 책이다. 그래서 제목이 소셜 애니멀인 것인데, 저자는 각기 매우 다른 가정에서 자라난 헤럴드와 에리카라는 두 남녀를 설정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그림자 아래 서로를 만나고 부부의 연을 맺고 성공적인 사회적 삶을 영위하고 위기를 맞다가 은퇴하고 인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는 인간을 설명하기 위한 것인데, 그래서 책은 매우 재밌는 이야기책 같으면서도 과학도서 같은 느낌을 풍긴다.

 남주 헤럴드는 백인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인싸로 살아왔으며 부모의 안정적 사랑아래 자라 정상적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애착관계는 인생의 전부를 결정하진 않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애착양상은 지능지수보다  학교 성적과 높은 상관성이 보이며 수학성적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또한 42개월 아기의 부모의 양육태도로 예측한 결과 애착을 제대로 형성해 주지 못한 부모의 아이들은 무려 77%가 학업중단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안정적 애착관계를 형성한 헤럴드는 공부는 잘하지 못했어도 번뜩이는 기질과 뛰어난 상상력, 창의적인 면이 있었는데 이것이 고교때 발휘된다. 공부쪽으론 지극히 평범하던 헤럴드는 역사교사가 던진 그리스 로마시대의 영웅책을 탐독한다. 의외로 이 고리타분한 책에 헤럴드는 강한 흥미를 느끼고 교사는 관련된 다른 책도 추천한다. 이미 책을 탐독한 헤럴드에게 선생님은 의외로 다시 읽기를 권유하는데 책들을 연구하며 질적으로 변한 헤럴드에게 다시 읽기는 자신의 변화는 물론이고 책의 요점을 다시 파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마지막 단계는 소논문 쓰기로 교사는 헤럴드에게 고대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공통점을 뽑아내고 이를 고교생들의 모습에 적용하는 매우 창의적인 작업을 완수한다. 헤럴드가 이를 계기로 역사학자가 되는 것은 무리가 아닌 결론이었다.

 반면 에리카는 멕시코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무책임했으며 어머니는 좋은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조울증상이 있어 훌륭한 돌봄과 방임을 왔다갔다 한다. 이런 환경에서 에리카의 애착은 안정적으로 형성되지 못한다. 그래서 에리카는 강한 승부욕을 가지면서도 통제력이 부족하며 반면에 멕시코와 중국계 가족들의 영향으로 대가족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자라난다. 경쟁적이면서도 좋지 못한 문화적 환경에 있던 에리카는 빈민층 지역에 생긴 아카데미란 학교에 들어가 상위문화를 습득한다. 물론 갈등도 많았다. 언어와 행동, 마인드까지 모든 것으 바꿔야 했으니 말이다. 아카데미 초기에 테니스경기에서 통제력을 보이지 못하던 에리카는 통제력도 얻는며 변해간다. 하지만 어릴적 실존적 위기감이 불러온 야망에 대한 갈망은 평생의 추동력으로 남는다. 소속되지 못했음이 주는 결핍이 소속되기 위해 더욱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하는 마음으로 변화한 것이다.

 하여튼 둘은 에리카가 설립한 회사에서 갑과 을로 만난다. 조직의 문화와 계급간 차이에 주목해 회사나 조직의 갈등을 해결해주는 회사였는데 헤럴드는 에리카의 부족한 점을 완벽히 채워주고 둘은 이성적으로 가까워져 결혼한다. 하지만 회사는 불경기를 맞아 가라앉고 헤럴드는 역사학회에 에리카는 기업에 취직한다. 조직에서 성공한 에리카는 최고경영직에 오르고 급기야는 소수인종이면서도 성공한 모델이 자신의 측근에 있기를 원한 유력 대통령 후보의 눈에 띄어 백악관에서 상무장관까지 하게 된다. 헤럴드는 여기에도 참여했고, 간간히 글을 썼다.

 둘은 아이를 낳지 않았다. 헤럴드는 원했지만 에리카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데 아이는 걸림돌이었다. 중년엔 위기도 찾아왔다. 커리어 정점을 달리던 에리카에겐 평범한 헤럴드는 눈에 차지 않았다. 잠시의 바람도 있었지만 어릴적 대가족을 중시하던 에리카의 문화적 자양이 둘의 파경을 막는다. 둘은 은퇴하고 헤럴드의 장점을 이용해 깊이 있는 문화해설을 강조하는 여행사를 만들기도 한다. 서로 의지하고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가며 평온을 찾을 무렵 헤럴드가 아프기 시작하고 에리카의 간병속에 생을 버티다 눈을 감는다. 책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중간엔 인간에 대한 많은 통찰과 견해, 연구결과가 제시된다. 저자가 헤럴드와 에리카의 생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인듯 하다. 우선 무의식과 의식이다.  인간은 대개 자신이 내리는 결정과 그 판단을 의식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는 대부분의 판단과 결정은 사실상 무의식에 의해 이루어짐을 밣히고 있다. 의식의 수준이란 내가 한 판단에 대한 합리화정도와 추후의 반성, 그리고 내가 의식적으로 결정했다고 착각하는 것 정도다.

 이는 오랜 진화끝에 판단과정에서의 신속성과 정확성에 무의식이 더 적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생사를 가르는 상황에서 주변 정보와 과거 경험을 통한 빠른 판단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었으며 이엔 무의식이 적합하다. 무의식은 방대한 내현적 체계를 갖고 있으며 제각기 다른 기능을 하는 무수한 모듈이 존재하지만 의식은 주어진 순간에 의식적으로 조작하는 작업기업에 의존하며 모듈도 하나에 불과하다. 실제 무의식인 1차적 인식은 의식인 2차적 인식에 비해 처리 용량이 훨씬 크다. 무려 20만배의 차이다.

 거기에 무의식은 모호하고 유연한 판단을 한다. 이는 주변을 빠르게 일반화하고 고정관념을 만들어 세상을 보는 틀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의식이 전부는 아니다. 책은 재밌는 비유가 나오는데 무의식은 자동카메라고 의식은 수동카메라다. 일상에서의 빠른 판단과 처리에는 자동카메라인 무의식이 낳지만 정작 더 중요한 판단과 조정, 오류의 수정에서는 잠시 자동모드를 멈추고 수동모드로 조작하는 의식의 작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식도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둘은 서로 조우하며 춤추고 인간을 완성해간다.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인간의 무의식은 타고나는 부분도 상당하지만 후천적으로 형성해되는데 주변 사람과 사회, 문화가 작용한다. 어릴적 애착관계가 그러하고, 인간의 주요 충동을 억제하는 문화양상이 그렇다. 진취적인 문화권에서는 사람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고 믿으며 많은 사람이 그런 삶을 살아간다. 반면 성장을 저해하는 문화권에서는 숙명론이 대세다. 진취적 문화권에서는 다른 문화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경쟁을 즐기고, 낙관적이며 교육의 강도도 강하지만 성장저해문화권은 반대다. 또한 전반적인 신뢰가 넘치는 문화권에서는 서로를 믿기에 더 많은 공동체 조직이 용이하고 사람들이 유연하면서도 응집력이 있는 반면 반대 문화권에선 정확히 반대다. 주변 개인과 사회문화는 이런 식으로 인간의 무의식을 그려낸다.

 다음으로 중시하는 것은 인간 행복을 위해 사회관계의 회복이다. 책 행복의 기원에서도 밝혔던 인간은 주변 사람과 어우려져 있을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책 도덕의 기원에서 밝힌 것처럼 주변인과의 의존과 소속이 생존에 가장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행복과 가장 밀접한 활동은 성관계나, 퇴근후 사람과 어울리기, 함께 식사하기가 되며 반대의 것은 혼자 노는 것이다. (근데, 왜 난 혼자노는게 좋은 것일까?) 그리고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직업도 사회적인 것인 기업관리자나 미용사, 건강관련 코치나 교사다. 반면 가장 행복감과 먼 직업은 사회적 관계가 필요없는 콜걸이나 기계공등이 된다.

 문제는 최근의 개인주의 혁명이 물질적 번영을 앞세운 자본주의적 양상의 침투로 인간이 행복감을 느낄 여러 공동체를 와해했다는 점이다. 문화분야의 혁명은 오래된 습관과 가족구조를 파괴했고, 경제분야의 혁명은 독립적인 가게들을 붕괴시켰으며, 정보분야의 혁명은 직접 대면하며 어울리던 공식, 비공식적 집단을 sns로 대체했다. 이런 세상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은 비교적 잘 대처하며 새롭게 얻은 자유와 권력으로 세상을 즐기고 지배한다. 하지만 그런 인적 자본이 없는 사람일수록 가족구조의 해체로 고통받고 미혼모가 되며, 범죄자가 되었다.

 개인주의 혁명은 정치도 바꾸어 버린다. 개인주의 혁명은 원자화된 사회를 만드는데 이 형식의 사회는 사회적 분열이 심각해 이를 메꾸기 위해 정부가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하며 정부 권력 자체가 비대해지는 양상을 불러오게 된다. 이 사회에서는 많은 정부 권력을 얻기 위해 정치집단이 싸움을 벌이는데 공동체의 와해로 중간지대가 없어 타협 및 합의가 매우 어렵다. 사람들은 원자화되어 공동체의 소속감이 없어 정당에서 소속감을 얻고자 한다. 정당은 이를 악용해 사람들에게 종교적 맹신을 강요하고 충성의 대가로 보상과 소속감을 준다. 비대해진 정부는 재정이 악화되고 누군가는 세수를 내야하나 모두가 싫어한다.

 때문에 저자는 개인혁명에서 벗어난 다음 세대의 인식혁명을 강조한다. 인간관계의 회복을 통해서만 우리는 행복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정치 아젠다인 자유가 정치의 궁긍적인 목적이 되어서는안되며 건강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목적이 되고 경제보다는 사회가 중심이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제법 두꺼운 책이라 일주일간 읽었는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깨달음과 이야기의 재미 두개를 동시에 느낄수 있었다. 헤럴드와 에리카가 아이를 갖지 않은 점이 아쉽다. 그랬다면 그들의 인생은 더 끔찍했으면서도 더 보람차고 의미있으며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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