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펭귄클래식 4
조지 오웰 지음, 최희섭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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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농장은 조지오웰의 오래된 고전이다. 현대사회는 미디어와 과학기술발달로 감시망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어 개인의 자유를 위협한다. 이런 현대의 분위기에선  오웰의 '1984'가 '동물농장'보다 시대정신에 적합하고 이로 인해 더 오웰의 대표작이란 느낌이 있다. 공산주의를 비판한 동물농장은 확실히 이에 비하면 덜 시대적인 느낌이다. 그러나 지구상 어느정도 진정성 있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나라가 40여개국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동물농장은 여전히 상당히 유효하다.(민주주의란 걸개를 걸고 있는 나라는 생각보다 무척 많다. 심지어 북한도 민주주의가 국호에 들어간다. 그리고 87년이전까지의 한국도 여전히 법제상은 민주국가였다) 거기에 경제난과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민중의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여러 선진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오히려 퇴행하고 있다. 오웰은 2차대전과 소련공산주의가 발흥하던 시대에 이 책을 썼다. 대표적 독재자들인 스탈린이나 김일성, 마오가 이 책을 봤다면 자서전인줄 알았을 것이다.

 배경은 영국이다. 영국인 존스가 주인인 존스농장이 있었다. 이 농장은 장원농장으로 불린다. 돼지들과 닭, 양, 말, 젖소, 고양이, 당나귀, 개 등이 이 농장에 산다아니 사육된다. 농장은 무려 12살이나 먹은 늙은 돼지가 있었는데 이름이 메이져다. 다른 동물의 존경을 받는 메이져는 어느날 이상한 꿈을 꾼다. 동물들이 인간을 물리치고 자유를 되찾아 농장을 차지하는 꿈이었다. 메이져 영감은 동물들을 모두 불러모아 상당히 불경한 자신의 꿈 이야기를 설파하고 혁명을 부르짓다  얼마 후  무책임하게 죽는다. 혁명은 후자의 몫인 것이다.

 메이져의 유지는 젊은 세마리 수퇘지인 스노볼, 나폴레옹, 스퀼러가 떠맡는다. 농장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동물인 돼지들은 영감의 이론을 정리하여 동물주의라는 이론을 창안한다. 혁명은 실제로도 그렇듯 갑자기 찾아온다. 경영난을 겪던 주인 존스는 이로 인해 동물들의 먹이를 잘 챙겨주지 못하기 시작했다. 굶주린 동물들은 그래도 주인을 믿고 참다고 곧 임계점이 찾아왔다. 암소한마리의 공격을 시작으로 동물들은 존스 일가를 공격했고, 그들은 사태를 정리하지 못하고 공격으로 대응하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갑작스런 기습에 존스는 쫓겨나가 하루 아침에 농장의 주인은 바뀌게 된다.

 동물들은 세마리 돼지의 지휘하에 장원농장을 동물농장으로 바꾸고 동물간의 평등과 생명을 중시하고 인간을 적대시하는 7계명을 만든다. 모두 인간의 도구를 활용하긴 어려웠지만 힘과 머리가 합쳐져 농장은 동물들의 힘으로 경영되었고 이전보다 살림살이도 나아졌다. 무엇보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나의 생산물을 경작한다는 점이 동물들에겐 가장 큰 매력이었다.

 하지만 좋은 시간은 오래지 않았다. 세마리 돼지 중 스노볼과 나폴레옹의 다툼이 문제였다. 둘은 매우 간단하고 자명한 주제에서조차 싸웠다. 주로 시비를 거는 것은 나폴레옹쪽이었다. 둘중 보다 브레인은 스노볼로 주요 정책과 미래지향적 계획이 그에게서 나왔다. 나폴레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서 숨을 고르는듯했다. 이윽고 위기가 찾아온다. 존스가 농장을 탈환하고자 공격을 해온 것이다. 동물들은 이를 이미 예상한 바, 농장의 전략책을 공부한 스노볼의 지휘하에 거짓 퇴각 및 포위 반격전으로 존스를 물리친다. 이 과정에서 양한마리가 죽었고, 지휘하던 스노볼은 등에 총알이 스쳤다.

 적지 않은 희생에도 동물들은 희망찼다. 인간을 물리친 것이다. 인간에게서 농장의이 자주권을 더욱 공고히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스노볼은 오랜 연구끝에 풍차를 건립할 것을 제안한다. 다른 동물들은 어안히 벙벙했지만 스노볼은 전기를 생산할 경우 생산량의 증대와 복지의 증가 주3일 근무가능성을 내세웠다. 나폴레옹이 반대한 것을 극명했다.

 그리고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 정책을 설명하던 스노볼을 나폴레옹이 무시무시한 개 9마리로 공격한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경악한다. 이미 포섭된 스퀼러는 스노볼은 사실 존스와 결탁해 농장을 공격한 것이며 풍차 역시 허무맹랑한 것이라며 비판한다. 몇몇 지각 있는 동물들은 스노볼의 좋은 정책과 전쟁에서의 용맹성과 부상을 들며 그를 옹호했지만 무시무시한 개들과 역시 포섭된 양들의 무조건적인 나폴레옹은 항상 옳다라는 외침에 침묵했다.

 이제 세상은 바뀌었다. 스노볼이 있던 시절부터 돼지들은 정책을 이끈다는 이유로 슬슬 노동에서 제외되고 특식을 먹는등 특권을 받고 있었는데 이것이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풍차건설을 제안한다. 나폴레옹은 농장경영이 어려워지자 주변 농장의 인간들과 거래하기 시작했고 절대 금지였던 존스의 집에 어슬렁거리며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인간들과의 거래에서 다른 동물들의 알과 젖이 사용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던 중 동물들은 하나로 결속해주던 풍차가 태풍에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모든 동물이 경악한 순간 나폴레옹은 이를 놀랍게도 스노볼의 음모로 돌린다. 스노볼의 짓이라는 것이다. 동물들은 이에 다시 풍차건립에 돌입하고 스노볼의 음모를 막기 위해 무려 2배의 두께로 풍차를 짓기 시작한다. 힘든 노동과 배급이 열악해지자 몇몇 동물들은 나폴레옹에 반기를 든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개들에 의해 제압당했고 오로지 강한 말 존스만이 무사했다. 나폴레옹은 존스를 어쩌지 못하면서도 반란을 일으킨 동물들을 스노볼의 첩자로 만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세월이 더 흘러 존스는 늙고 병든다. 앞장선 노동으로 동물들의 존경을 받던 존스를 나폴레옹은 치료를 명목으로 인간에게 팔아버린다. 글을 읽던 소수의 동물들이 이를 알아차리고 반발하지만 스퀼러는 동물의사가 오래전 말도살자에게 마차를 산것을 그대로 사용해 일어난 오해라고 불식시킨다. 세월이 더 지나며 동물 7계명은 돼지에게 유리하게 평등과 생명권을 경시하고 인간 증오를 사라지는 방향으로 사라진다.

 돼지들은 인간처럼 생활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술도 먹기 시작한다. 술을 먹기 위해 궁핍에 시달리던 동물들이 있으에도 상당수의 땅을 보리로 경작하기 까지 한다. 돼지만을 위한 학교 건립에 동물들은 시달린다. 그리고 돼지들은 인간처럼 두발로 걷기 시작한다. 한 돼지가 그러더니 다른 돼지들도 모두 두발로 걷기 시작했다. 평등은 완전히 깨어진 것이다. 그리고 나라이름도 바뀐다. 다시 장원농장으로.

 동물농장은 혁명이 독재국가로 이어지는 현실과 놀랍게도 닮았다. 전제자의 압제에 시달리고 착취당하는 민중을 위해 혁명이 일어난다. 초기에 혁명은 많은 좋은 것을 가져다주고 나라는 성장하고 살림살이는 나아지지만 민중은 우매하다. 혁명엘리트들은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해간다. 민중이나 혁명을 위해서란 구호로! 그리고 홍위병 같은 이들의 추종자가 생긴다. 권력에 붙어 번식하며 이들은 무력과 선전선동으로 혁명엘리트를 뒷바라지 한다. 그리고 엘리트간의 정쟁이 시작된다. 이상하리만치 이인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인자들이 정리되는 순간 이들의 공로는 모두 매장되고 반역자가 되며 일인 독재가 시작된다. 독재자와 그에 빌붙은 이들은 호의호식하며 나라의 모든 정보는 숨겨지고 불투명하며 비판하지 못한다. 이런 현실과 동물농장의 장면은 거의 일치한다.

 책을 보며 인간에게 적합한 아니 본성에 맞는 정치체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정치체제와 문화는 인간의 적응도를 올리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환경에 적응해 생존하기 위해 처음엔 개인이, 그리고 양자간의 협력이, 그리고 소규모 집단이, 그리고 소규모 도시국가와 영토국가가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이기심과 관련한 자유, 그리고 양자간의 협력과 소규모 집단에서의 협력과정에서 평등이, 도시국가와 영토국가수준에서 서열화로 인한 계급이 생겨났다고 생각된다. 즉, 인간은 이 체제를 경험하고 적응하고 진화해오며 각각의 정치제체에 맞는 본성들을 모두 일부 갖고 있다 생각된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크겠지만 압제에선 자유를 꿈꾸고, 빈부격차가 커지면 평등을 꿈꾸며, 크고 존경스러운 리더쉽에 감화되고,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에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공유한다.

 지금사회를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가장 개체와 집단의 적응도를 높일 수 있는 효율적 정치체제이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본성에 걸맞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여전히 비슷한 정도의 효율을 보이는 집단주의적 서열적 국가체제는 존재하고 있으며 다른 개체를 지배하고 이에 복종하며 집단에 충성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에 걸맞는 부분이다.

 동아시아라는 공동의 지리적 요건과 불교유교문화권이라는 공동의 문화적 요소를 갖고도 동아시아의 나라들이 각각 전혀 다른 체제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거의 유일하게 민주국가체제를 상당히 완성했지만 같이 미국의 영향을 받고도 여전히 전근대적 사회에 머물고 있는 일본,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해 더 갈길이 먼 대만은 그렇지 못하다. 또한 중국은 제법 높아진 소득에도 홍콩을 억압하고 시진핑 일인독재장기체제로 접어든 것처럼 민주주의가 요원하고 민족주의와 서열적 국가체제를 갖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같은 뿌리와 문화와 국토를 공유함에도 강고히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북한은 더욱 이상한 사례다.  

 어쩌면 민주국가의 맛을 보았음에도 민주국가를 완성하지 못한 다른 동아시아 국가가 이상한게 아니라 한국이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전무했으며 한 왕조가 웬만하면 50

0년 정도를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 보수적이고 좀체 혁명이 일어나지 않던 나라에서 민중의 혁명에 의해 민주국가가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어떤 문화적 요인이 민주주의 맛을 보았을 때 일어나는 효과일수도 있다. 그 문화적 요인이 뭐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긴 어렵지만. 그건 소위 냄비근성일수도 있고, 남보다 자신을 내세우고 기죽지 않으려는 성향때문일수도 있고, 잦은 침략을 받았기 일수도 있으며, 반도가 갖는 유연성 때문일수도 있다.

 하여튼 말하긴 어려운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강조되면서도 자본주의로 남을 지배하고 서열화하며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모두 있는 자본주의적 민주국가가 인간의 본성을 다방면으로 자극하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민주국가를 실현하지 못한 나라들은 민주주의의 맛을 볼기회가 충분히 못하거나 북한처럼 아예 시도가 어려운 형태였다고 볼수도 있으며 일본이나 중국처럼 다른 오랜 사회문화적 요소가 장애로 작용한거라고 볼 수 도 있다. 그도아니면 지금의 집단적 서열적 형태로도 충분히 국가사회가 효율적이고 물질적 안녕을 줄수 있기에 혁명에 의한 전환이 필요치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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