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시대에 태어난, 불안한 사람이 쓴 '불안의 책'이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었는데 읽어보니 그는 포르투갈 사람이고 20세기 초반을 살았고, 수도인 리스본에 거주했다. 도라도레스 거리가 직장과 집이 있는 곳이며 집은 4층의 방이다. 그는 책의 500개에 가까운 단상 대부분을 여기서 썼다, 직업은 지금은 아마도 거의 모든 직장에서 엑셀이 하고 있을 회계사무원이었다. 사장은 바스케스란 사람이였고, 결혼은 안했으며 당연히 아이도 없었을 그의 이름은 '페르난두 페소아'다.

 그가 태어나고 살아간 시대는 1차대전도 있었지만 불안한 시대였다. 한 철학자가 신이 죽었다고 선언했고 과학은 물질적 증거로 신의 부재를 증명하고 있었으며 시대는 빠르게 변화했다. 이런 불안한 시대에 페소아는 심지어 가정도 불안했다. 어머니가 일찍 죽었고, 아버지도 그랬다. 어린 나이에 숙부에게 맡겨져 고아처럼 자랐다. 예술도 불안했는데 그래서인지 책에서 그는 여러차례 낭만주의를 비판한다.

 이런 시대적 가정적 배경도 있었지만 사실 그의 불안은 자신의 내면에서 기인하는 걸로 보인다. 바로 남들보다 예민한 감각과 이에 반응하는 그의 지성과 감성이다. 그는 항상 자연이든 사람이든 물건이든 사상이든 무언가를 경험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에 대해 자신의 지성과 감성이 얽혀 무수한 단상을 만들어냈다. 그게 이 책으로 엮인 것인데 단상의 수는 무려 481개다.

 단상의 주제는 다 다르고 장면도 다양하지만 크게 종합해보면 '자신을 알려는 일', '다른 사람들', '예술'인듯하다. 페소아는 평생 자기 자신을 알아내려는 시도를 하는데 사실 처음부터 그는 이게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각각 변화하고 이전의 나와 최종적으로 합치하기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나라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 설계된 무의식적인 부분이 있기에 의식이 이를 파악하기 어렵고, 사회나 문화, 그리고 같이 살아가는 타인들의 다양한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변형된다. 그렇기에 진정한 나를 안다는 것은 결국 불가능하며 진리조차 없다. 신이 없고, 과학이 있지만 그것조차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 나라는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알려고하는데 무척이나 모순되면서도 맞는 방향으로의 충동이기에 부정하기 어렵다.

 나라는 존재가 이렇기에 타인을 알고 진정한 이해를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진정한 나를 아는 것이 어렵기에 이런 상황은 타인 역시 마찬가지고 결국 우리가 서로 맺는 교류나 관계라는 것들은 진정한 나를 포기한 상태에서 모두 이루어지는 것들이 된다. 특히, 페소아는 다른 사람들을 경명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알수 없다는 것도 알지 못한체 그저 동물처럼 주어진대로만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찌보면 사회구조나 정치나 민족주의 같은 여러 허상속에세 그것이 진리인마냥 살아가는데 호모데우스에서 하라리가 말한 허구와 같은 개념이다. 페소아는 이런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경멸하지만 정작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낀다는 점에서 부러워하기도 한다.

  일전에 본 책 '행복의 기원'에서는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낄수 있는 여러가지의 것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오는 행복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는 의외로 내성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 양자에게 모두 해당이 되었는데 적극성과 소극성에서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존재이며 여기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책의 골자였다.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 측면이 있다. 생존과 번식이 생물의 목표라면 사회성을 갖는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을때 이것들에 성공할 확률이 현저히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행위가 계속되어야 하기에 행복이란 감정은 유난히 휘발성이 강하기도 하다는 점이다. 즉 행복은 계속 될 수 없고 아무리 달려도 쉽게 잡히지 않는 눈눈앞에 매달려 나와 같이 움직이는 당근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페소아는 사람의 이런 측면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페소아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동물들과 같다고 보았는데 설계된 본능적 측면에 매달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의존해서 살고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는 행복이 행복 바깥에 있다고 말한 점은 이런 의미로생각된다.

 이렇게 알수 없는 나 자신과 이룰수 없는 타인들의 이해나 관계맺기에서 일종의 해방구처럼 느껴지는게 예술이다. 페소아는 예술의 역할이 우리가 느끼는 바를 타인들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술을 통한 어느정도의 관계맺기는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페소아는 우리의 개별성을 제공하여 이를 통해 타인이 스스로에게서 해방되도록 한다고 말했는데 이 개별성은 또 역설적이게도 완전하 나 자신이나 진리도 아니다. 그것은 도달될수 없는 것이기에 당연하고 우리가 서로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예술을 통한 전달에서는 내 느낌의 진정한 본질을 다소 왜곡하더라도 나의 감정을 전형적인 인간 감정으로 전환하는 일이 필요하다. 즉, 우리가 남들과 함께 느끼는 동일성을 만들어내 전달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페소아의 많은 생각에 동의가 들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지만 사회적 운동이나 다른 사람과의 연대를 부정하는 부분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나 자신에 대한 이해나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맺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주창하는 부분은 공감되지만 그래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이런 부분에서 의미를 찾고 자신도 더 잘 이해하는 부분이 있지않을까나. 물론 페소아 자신도 책에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꾸준히 타인을 갈구한다. 아예 관심이 없어다면 그리 많은 단상으로 다루지도 않았을 것이다.

 페소아는 책에서 다른 사람과의 공통적인 경험, 나와 그 사람과의 접점, 그리고 상상력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데 아무래도 페소아와 나와는 그런 부분이 부족했던 것 같다. 솔직히 내겐 무척 어려운 책이었고, 단상들의 상당부분도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때그때 쓴 단상이기에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면도 많다. 시간을 두고 좀더 이해해봐야할 책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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