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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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혁명을 즈음해 인간은 전세계적으로 신분사회로 들어섰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없다지만 왕후장상은 생겨났고, 긴세월을 기득권을 갖고 지위를 세습하며 독점에 들어갔다. 개인의 개성이나 능력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점차 약화되긴 했지만 가까운 조선까지도 꾸준히 세습사회였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의 조상은 평민이나 노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19세기의 대규모 족보위조나 구매로 인한 신분세탁으로 우리는 자기 조상이 모두 왕후장상인줄 안다. 신분사회가 피라미드 구조란걸 생각하면 매우 이해가 안가는 일이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를 당연시하고 있으며, 어찌보면 다소 부끄러운 일이기도하다. 진짜 조상을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완 다르게 미국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영화나 책에서 그들은 자신의 조상이 흑인 노예더라도 이런 기록이 비교적 정확히 남아있는듯하다. 그리고 책' 킨'은 여기서 출발한다. 이 책이 나온 시기는 내 나이와 얼추 비슷하다. 그래서 책의 배경도 1976년 미국이다. 흑인 아내인 다나, 백인 남편인 케빈이 등장한다. 둘은 작가이자 작가지망생이고 책에 삶을 맡길 정도로 잘나가지 못해 일을 하다 만났다. 둘은 인종도 다르고 나이차도 제법났지만 결혼해, 새집을 마련해 같이 살아간다.

 신혼살림을 차린지 겨우 며칠 째 되던 날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아내 다나가 현기증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지더니 케빈 눈앞에서 느닷없이 사라져버린것이다. 정신을 차린 다나는 강기슭에 있었고, 물에 빠져 익사위기인 소년을 인공호흡으로 구해낸다. 아이의 엄마는 이상한 옷차림이었는데 배은망덕하게도 욕을 하며 다나를 마구 때렸다. 정신을 차리고 통성명을 해보니 구한 아이의 이름은 루퍼스였고 붉은 머리의 백인아이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아인 다나의 조상이었다. 뭔가 묘한 운명을 느낀 다나는 자신이 흑인노예로 악명이 높던 1819년의 미국남부로 왔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앨리스란 흑인 소녀를 수소문한다. 앨리스는 바로 루퍼스와의 사이에서 헤이거란 아이를 낳게 되고 이 아이가 다나의 직계조상이기 때문이다. 다나는 루퍼스의 집에서 나와 앨리스를 찾게되지만 앨리스의 어머니를 몰래 만나러온 앨리스의 아버지를 잡으러 온 백인들에게 발각되어 무자비한 린치를 당한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순간 다나는 현대로 돌아온다. 다나가 1819년에 머무른 시간은 며칠이었지만 1976년에서 다나는 불과 몇초만에 돌아왔다고 남편 케빈은 말한다.

 소설의 타임루프 계기는 다나의 조상은 루퍼스가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고 다시 돌아오는 계기는 거꾸로 다나가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다. 다나는 여러번 어리석은 루퍼스가 사고를 칠때마다 과거러 불려가 조상흑인들이 느낀 비애와 분노, 불공평함을 느끼며 노예의 삶을 체험한다. 이 여행은 쉽게 끝나지 않았는데 웬지 자신의 조상인 헤어거가 등장해야만 끝날것 같음을 다나는 직감한다.

 타임루프란 소재는 매우 식상하지만 소설은 노예 흑인의 삶은 매우 상세하고 사실적이며 비극적으로 묘사하고, 이를 현대인이 체험하면서 더욱 극적으로 표현한다. 이로 인해 흔한 소재는 다소 덜 진부하게 느껴지고 즐겁지 않은 조상과의 만남은 이를 더욱 운명적으로 느끼게 한다. 소설에 나오는 흑인들의 삶은 매우 비참하다. 하루종일 백인들의 눈치를 보며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나의 자식들은 주인에 의해 얼마든지 언제든지 다른지역으로 팔려나간다. 도망친 노예가 잡히면 맞아죽거나 채찍질을 당하기 일쑤였고, 여성노예들은 언제나 백인 주인이나 관리인의 성적 노리개였다. 그들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도 사람취급 받지 못하고 언제든지 팔려나갔으며 백인 부모를 나으리라 불러야 했다는 사실은 홍길동도 울고갈만큼 극적이다.

 책 마지막 부분에 성서의 욥기에서 따온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어서 이걸로 마무리한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며 시들며 그림자와 같이 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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