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에 성립한 조선을 가장 크게 뒤흔든 사건은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이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조선을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로 나누곤 한다. 그리고 그 임진왜란의 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이순신이다. 어려서 누구나 이순신 전기를 한번쯤 읽었을 것이고 그를 다룬 많은 드라마나 영화를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을 깊이 있게 다룬 책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워낙 유명해서 오히려 깊게 다가가지 않는 느낌이랄까.

이순신을 다룬 책 중 내가 처음 본 제대로 된 책은 바로 이 책이다. 지금은 어느새 나온지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고전이지만 군대에서 무척 재미나게 읽은 기억이 있다. 칼의 노래는 이순신의 백의종군 후 명량해전을 다룬 책이며, 오래된 기억이지만 음식을 먹는 장면과 음식의 묘사, 그리고 이순신의 인간미와 고뇌, 명량해전의 대단함을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교과서엔 고작 12척의 배로 적선 133척을 물리친 것으로 나오지만 이 건조한 문장만으론 그 싸움의 비장함과 대단함을 느끼긴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본 책은 징비록이다. 이순신을 천거하여 선조로 하여금 신의 한수를 두게 만든 서애 유성룡의 저작이다. 징비록은 사실상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문서였음에도 이후에 일본과 중국으로 넘어갔고, 그 덕에 임진왜란의 주인공이 일본과 중국이라고만 생각했던 양국에게 조선이 전란의 중심국 역할을 당연히 했음을 주지시키는 긍정적 역할을 한 책이다. 징비록을 보면 전란의 참혹함이 느껴지며 이순신의 제외한 거의 모든 장수와 대신들이 유성룡의 날카로운 비판을 받는다. 선조도 욕하고 싶지만 주상이므로 애써 참는 모습이 애처롭다.

다음은 이순신의 7년이다. 소설인데 이순신의 전공이외에도 의병장이나 다른 전투들도 다루어서 임진왜란을 총체적으로 느낄수 있다. 전체적으로 재밌지만 이순신을 다루지 않은 다른 부분들은 좀 지루한 면도 없지 않다. 통제사와 다른 휘하 장수들이 사투리를 쓰는게 재밌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것이 바로 이순신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난중일기다. 난중일기를 읽기전 전쟁을 직접 지휘한 이순신의 생동감 넘치는 전쟁묘사를 기대했건만 큰 오산이었다. 이순신의 전과가 집중된 임진년의 전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순신의 전과가 임진년에 집중되어 있기에 이는 몹시 안타까운 일이었는데 계속된 패전에 임진년 이후 왜군은 수군전력에 한하여 매우 수세적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순신의 3대첩중 오직 명량해전만이 난중일기에 수록되었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한창 전쟁을 치루느라 여러가지를 관리하고 전략에 골몰하고 있는 이순신이 일기까지 남긴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중일기에 수록되지 않았음에도 이순신의 전과나 전투장면은 매우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아무래도 이순신이 전투 후 올린 장계가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난중일기엔 주로 이순신의 일과 생활이 등장한다. 그리고 무척이나 많은 관직과 인물들이 등장하며 의외로 이들의 교체는 전시임에도 무척이나 잦았다. 전시였으므로 전사나 질병으로 인함도 있었지만 이보다는 주로 중앙에서 내려온 어사나 선전관 등에 의해서 징계를 받거나 압송당해 교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시였음에도 중앙에서의 중상모략과 세력다툼이 계속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순신 자체도 이 부분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오랜 전우인 권준이나 신호등이 파직되었을땐 특히 그러했다.
장수들은 통제사인 이순신을 무척이나 자주 방문했다. 그리고 이순신도 부하 장수들의 진영을 자주 방문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인간관계는 중요한 법이니 그렇다. 선물을 주고 받는 경우도 무척이나 많은데 통제사는 많이 받기도 하였으며 그만큼 많이 주기도 하였다. 서로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잦았고, 활쏘기로 내기를 하거나 종정도 놀이를 하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다소 의외인 부분은 이순신이 무척이나 많은 형벌과 처형을 명했다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순신의 인간적인 부분을 많이 미화하다보니 이런 부분이 의외로 느껴지는 것인데 1만이 넘는 군사를 책임지는 자리다 보니 형벌도 많아짐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전란 1-2년차에 목을 베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초기 왜군의 우세로 도망병이 많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항복한 왜군들 중 순순히 투항하지 않거나 거짓을 일사는 경우에 목을 베는 일이 많았으며 부하장수들중 죄가 중하면 목을 베기도 하였다. 곤장을 치는 일도 많았는데 부하 장수가 죄를 짓거나 군기 관리가 헤이하면 군장을 치곤 했으며 재밌는 부분은 직급이 높은 장수가 잘못을 하면 그 부하는 곤장을 치는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공무를 했다는 기록을 많이 남겼는데 이 공무를 쉬는 날도 의외로 적지 않았다. 이는 조선의 법도 때문이었는데 역대 왕들의 제삿날은 공무를 쉬는 날이었다. 또한 이순신 자신의 가족 제삿날에도 공무를 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매월 1일과 보름에는 망궐례를 하였는데 이는 중앙의 임금에 인사의 예를 올리는 것으로 법적으로 정해진 것 같았다.
또한 이순신은 무척이나 자주 아팠다. 생각보다 몸이 건강하지 않은듯 한데 적어도 2-3달에 한번은 몸이 아팠으며 일단 아프면 1주일 이상을 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50대로 당시론 고령이었고, 전쟁 초기에 어깨에 총을 맞았기 때문일수도 있다. 또한 난중일기에 보면 남해안은 무척이나 비가 자주 내리고 바람이 거센 날이 많았는데 이 역시 이순신의 건강에 좋지 못한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여러 사람에 대한 평을 남겼는데 가장 많은 평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원균이었다. 원균에 대한 이순신의 감정은 매우 좋지 못한데 원균과 함께 전쟁을 치루거나 통제사로 근무하면서 같이 있었던 몇년간은 거의 2-3일에 한번 꼴로 원균에 대한 비난이 수록되었을 정도다. 원균에 대한 이순신의 평은 대개 '가소롭다' '우습다' '흉악하다' '괴이하다' 등이다. 초기엔 원수사나 원공으로 불러주기도 했지만 부정적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땐 '원흉'이란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오래 함께한 전우인 권준이나 신호, 이영남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이지만 이들 역시 잘못을 저지르면 비판하는 공정한 모습도 보인다. 부하들 중에는 원균의 수하였던 남해현련 기효근을 무척 싫어한듯 하다.
이순신의 일기이니 난중일기에선 그의 인간적인 면도 느낄수 있었는데 비교적 냉정하고 차분한 그의 글에서도 감정이 복받쳐 오른 부분은 1597년 정유년이었다. 그 해는 이순신에겐 최악의 해라 말할 수 있는 해로 파직당해 백의중군을 당했고 원균의 미숙함으로 7년간 육성한 군의 대부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개인적으로는 이순신의 어머니가 죽고, 왜군에 의해 아들 면이 전사하기도 했다. 어머니와 아들 면의 죽음에서 이순신은 슬픈 감정을 숨기지 않고 토로한다.
책 난중일기는 사실 재미난 책이라곤 말하기 어렵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날씨에 대한 묘사 많은 등장인물과 이해하기 어려운 관직등이 열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 이순신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