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야심차게 나온 권력 시리즈 삼부작을 모두 읽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갔는데 내용은 생각보다 많이 무거웠고, 잘 모르는 부분에 있어 배운 것도 많았다. 사회 거의 전분야에 걸쳐 국정농단이 이루어지고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보니 이런 기획도 나온것 같다. 권력과 검찰 시리즈는 가장 어렵게 읽혔는데 아무래도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였던 것 같다. 사법부를 함께 읽으며 조금 보충할 수 있었다. 권력과 검찰은 검찰청을 다루고, 사법부는 사법부를 다루는 만큼 권력및 자본과 결탁한 변호사집단에 대한 책이 아쉽다. 하나 나왔으면 한다.

 

권력과 언론은 예전부터 관심이 많은 부분이라 좀 더 재밌고 쉽게 읽혔다. 권력과 언론에서는 공영방송의 구조적 문제와 장악과정, 종편의 문제, 방송의 미래 부분을 잘 설명했다면 뉴스를 읽어드립니다는 아직 박근혜치하에서 나온 책으로 지상파와 종편문제를 재밌고 보다 심도있게 다루었다. 그리고 대학초년때 읽은 신문읽기의혁명은 한때 백분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던 손석춘씨가 쓴 것으로 신문과 권력의 결탁, 신문기사가 나오는 과정에서의 비민주성과 수직적 구조를 잘지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읽고 본격적으로 소개할 책이 권력과 교회다. 언론과 검찰에 비해 교회와 권력의 관계는 은근히 수면 아래에 있는 편이다. 검찰이 확실한 공권력이고 언론이 준 공권력이라면 교회는 민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민간의 영역이 공공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되며 올바른 정치세력에 의한 견제와 개혁도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라 할 수 있다. 교회가 정치권력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강한데 이미 대한민국의 대통령중 3명이 교회 장로였고(이승만, 김영상, 이명박), 국회의원 중 기독교신자 비율(가장 암울한 국회였던 19대는 무려 41.5%가 기독교 신자)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총인구의 20%를 밑도는 수치만이 기독교신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인구대비 기독교 출신의 정치권력층 비율은 매우 높은 편이다.  

  한국사회에서 교회는 90년대 중반까지 성장일로에 있었고, 미국등 서방세계의 종교라는 점에서 선진적인 종교로 여겨지기도 했다. 한때 그들은 지친 도시노동자의 쉼터이자 사회안정망이기도 했고, 심지어 민주화 운동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영화를 잃은지 오래다. 각종 보수단체 집회에 적극 가담하거나 가담을 독려하는 노골적 설교를 하는 가 하면, 자신의 재산도 아닌 하느님의 재산인 교회를 과감히 친자에게 물려준다. 또한 세금납부를 거부하고 있으며 교회의 재정공개 및 조직의 모든 투명성을 거부한다. 그 결과 신도의 성장은 정체에 머무르고 있으며 사회적 신뢰도는 우리나라 3대종교중 압도적 꼴찌이다. 책은 교회의 이런 변질과정을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시작은 거의 100여년 정도 전인 청일전쟁 러일전쟁시기이고 장소는 평안도다. 조선시대 평양감사 자리에 대한 선호가 컸던 만큼, 서북지역은 중국과의 주요 교역지로 물산이 풍부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했다. 하지만 그랬던 것이 홍경래의 난을 시작으로 이후에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피폐화된다. 특히, 러일전쟁중 일본군의 진격로가 되면서 엄청난 수탈을 당한다. 당시 청일전쟁의 참상을 겪고 국가도 지켜지주 못하는 평안도 주민들에게 러일전쟁의 피난처가 되어준 것이 교회였다. 교회는 대부분 미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것으로 당시엔 대사관같은 역할을 해 일본군이라도 교회로 피신한 피난민을 함부로 건드릴 수 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회로 모여든 피난민들 사이에서 자연히 교회에 대한 신앙이 싹튼다. 서북지역의 교회는 미국인들이 세운 교회인데 문제는 이들이 근본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교회의 근본주의적 신앙은 초기 자본주의 시기에 급격한 도시화과정에 생성된 것이다. 미국의 도시노동자들은 도시화과정에서 굉장한 이질감과 폭력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신앙도 그렇게 된 것이다. 당시 미국노동자들의 삶과 서북의 조선인들이 처한 삶은 근본주의가 혹독한 현실과는 달리 절대적인 근본진리가 관철되는 세계에 대한 동경을 근본으로 하는 점에서 이들에게 호소력이 높았을 것이다. 서북지역은 경제력이 좋아 교육수준이 높은 지식인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서북지역의 교회신앙이 근본주의적 성격을 띠자 회의를 느끼고 사회주의쪽으로 대거 선회하게 된다. 이들이 빠져나간 서북지역의 개신교는 더욱 근본주의적 성격을 띠게 된다.

  해방 이후, 남과 북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서북지역의 개신교는 탄압을 받게 된다. 물론 북에서의 종교 탄압은 전방위적인 것이었고 개신교만이 그 대상은 아니었으나 이들이 다른 종교에 비해 다소 많은 탄압을 받았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근본주의적 성격에 많은 피해를 받았다고 여긴 이들 집단은 더욱 극단화한다. 그리고 이들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적극 이용하기 시작한다. 당시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은 강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남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주의 정권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군정은 남하한 개신교 목사에게 일본의 적산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불법적으로 불하하였고 이들은 이런 지원을 통해 강력한 우익, 반공, 친미세력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 유명한 백색테러단체인  서북청년단이 바로 이들의 지원을 통해 생겨난다. 청년단이 행한 학살과 만행은 실로 대단한데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50년 10월 북한 황해도 신천군에서 무려 3만5천의 민간인을 학살한 신천학살도 그 대표적 예다. 서북청년단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와 북한을 해방해야 한다는 종교적 정치적 사명감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 중세의 십자군 같다고 해야 할까나.

 전쟁이후 남한의 개신교에서 이런 근본주의적 광풍은 부흥회로 변모하게 된다. 당시 남한은 사회기반시설의 붕괴와 국가의 사회안전망 체계 미비, 그리고 도시화로 수많은 도시 빈민들이 각종 질병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치유와 기적을 행하는 부흥사의 부흥회는 실로 대단한 세력을 이루게 된다. 하지많 사회가 안정되어 감에 따라 이런 부흥회는 힘을 읽어갔고 부흥사들 중 일부는 대형교회를 이루어나가게 된다.

 한국교회는 당시 양적으로 매우 팽창해나갔는데 10년마다 신자의 수가 두배씩 증가할 정도로 엄청났다. 여기엔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교회의 경쟁력이 아무래도 타 종교에 비해 엄청나게 강했다는 것이 한몫하게 된다. 샤머니즘은 박정희의 탄압을 그리고 불교는 이승만의 정화운동으로 90년대 이전까지 사분오열된 상태였으며 천주교는 탄압은 없었으나 개신교에 비해 자본이 부족했다. 이에 비해 교회는 한국전쟁시기부터 국가가 외국단체로부터 받은 많은 후원금을 모으고 배분하는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타종교에 비해 많은 사회적 자본을 구축하게 된다.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서 자원과점 집단으로 자리 매김한 순간이다.

 이후 한국교회는 산업화과정에서 지친 도시 빈민을 수용해나가고 부재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방법을 통해 급격한 성장을 해나간다. 여기엔 한국 개신교가 한국 근대화에 강력한 주체세력으로 도구적인 태도와 자본본위적이고 반인간적 태도를 견지해나간것도 한몫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많은 자본을 갖고 있었기에 엘리트 인재들이 교회에 의해 양상되었고, 또한 역으로 사회의 각 기관들은 교회출신 엘리트에게 상당히 의존하게 되면서 양자의 권력 밀월관계가 본격화 한다. 한편, 50년대부터 존재해온 부흥세력은 이 시기에도 존재했는데 이들은 주로 산기도원에 자리잡아 활동하지만 신도들의 의식이 성장하자 열광적이고 매우 근본주의적인 성격의 산기도원은 점차사라지게 된다. 이후 이들은 거리의 전도사로 활동하나 자신들의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교회로부터도 수용되지 못하자 태극기 세력도 극우집단에 합류하게 된다.

 성장일로를 거듭하던 한국교회는 90년대 들어 처음으로 정체와 적자를 경험하게 된다. 기존의 신자들이 무비판적이고 매우 수용적이었다면 새로운 신자들은 목사의 설교와 스타일을 알아보고 교회를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주로 전후 베이비붐 세대로 강남에 자리잡아 교육수준이 높고 지대 상승으로 재산을 형성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이 지역에 교회에 몰려들어 새로운 교회가 생겨나는데 일부 목사들이 이들의 이런 다소 합리적인 상향을 파악해 새로운 대형교회를 성장시켜 나가게 된다.

 이외에도 교회들은 신자가 더 성장하지 못하고 수평적 이동만 가능한 상황에서 더 많은 신자들은 이끌어내기 위해 청년 결혼 알선이나 단기해외 체험 활동등 여러가지 상품을 개발 해내 성장을 유지해나간다.

 이렇게 성장해온 한국교회들은 여러가지 문제를 갖는다. 우선 교회자체가 계층적 문화적 필터링을 한다는 것이다. 과거 빈민 계층까지 수용하던 교회는 대형화하고 위치의 지대가 상승하자 사회 중상위계층들만 자리하며 나머지 계층은 버텨나가지 못하는 구조가 생성된다. 또한 목사들의 보수성향도 문제다. 이들은 북한과 동성애에 대해 매우 극단적인데 이 과정에서 성서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편집하여 이용하고 이를 절대화한다. 이들의 이런 행태는는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고 내부의 비판 세력을 잠재우기 위해 외부의 적을 찾는 전략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렇게 닫히고 왜곡된 교회에서 한국 정치권력자의 상당수가 배출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책은 교회의 개선 방법을 몇가지 제시힌다. 우선 수직적 권력구조를 깨는 것이다. 현행 교회는 목사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데 이들은 성서의 해석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있으며 교회의 구조자체도 부채꼴로 목사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형태다. 이런 구조를수평적인 형태로개선하고 신자하나하나가 성서화화는 것이 수직적 권력구조를 깨는 방법이다. 또한 교회의 재분배적 기능을 강조한다. 한국 교회는 기복적 신앙으로 비판받지만 기복적 신앙은 종교라면 다 갖고 있는속성이며 복을 누구에게 분배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교회는 복을 일부 권력자에게만 배분분하며 이 과정에서 재정도 불투명해진다. 이를 타파하고 일부 교회의 세습을 깨어나가고 사회의 다수 빈민 계층에게 분배하는 기능을 되찾아나가야 한다.  

 이런 것들이 가능하려면 사회에서의 비판도 필수적이지만 신자하나하나가 비판의식을 갖고 깨어있으며 질문하고 경쟁해야한다고 책을 말한다. 책을 통해 교회의 역사를 고찰해보는 것과 한국인의 무속신앙과 종교에 대한 의식의 관련성은 매우 흥미로웠다. 하지만 제목과는 다르게 좀더 역사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권력과의 밀월관계에 대한 분석은 좀 부차적인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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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14: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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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1 1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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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1 2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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