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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이 책을 읽게 되어 내용을 간단히 알아보니 오래전에 영화로 먼저 이 작품을 봤던 생각이 났다. 그때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를 크리스찬 베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찾아보니 비고 모텐슨이었다. 반지의 제왕 아라곤. 둘을 헛갈리다니 사람의 기억은 참. 어쨌든 소설을 다시 봤는데 책 내용이 짧은지라 영화로 거의 책 내용을 그대로 담아낸듯 했다.
끝까지 이름이 나오는 남자는 그냥 미국의 평범한 남편이었다. 아내를 두고 있었고, 아내는 임신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는 커튼으로 집의 창을 모두 가린채로 바깥의 지옥을 보게 된다. 지옥이 뭔지는 나오지 않는데 핵전쟁일수도, 소행성이 떨어진 것일수도, 미국이 자랑하는 옐로스톤 공원정도의 대분화가 일어난 것일수도 있다. 셋중 하나일 것 같은 이유는 전세계가 온통 불탔고, 살아남은 사람들 전체가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할정도로 대기질이 좋지 않고, 하늘이 먼지로 뒤덮였다는 묘사가 꾸준히 나오기 때문이다.
하여튼 부부의 집은 무사했고, 아내는 이 지옥속에 아이를 낳는다. 남편은 커튼을 항상 가린채로 아내와 불안하게 살아간다. 바깥은 이제 인간의 지옥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곧 식량 부족에 당면했고, 인간의 야만성이 다시 도래했다. 한층은 여전히 문명에 젖어 살아남은 생존자들, 한층은 종교에 귀의해 집단 자살을 하거나 무모한 선택을 한 이들, 다른 한층은 폭력을 일삼으로 다른 이들을 약탈하고 심지어 식량으로까지 삼는 식인종들이다.
아내는 이런 지옥을 견디지 못했다. 끝까지 만류하는 남편을 물리치고,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며 바깥으로 나아갔다. 아내가 자살을 했을지,아니면 이 지옥속에서 식인종에게 당했을지는 모른다. 집도 위험해졌는지 남자는 아들과 집을 나서 방황한다. 집은 아마도 북미대륙의 꽤 북쪽에 있었던 듯 하다. 사방이 추웠고, 그래서 남자는 해안선을 따라 아들과 남쪽을 향한다. 목적지는 없다. 가진 지도에 의존해 그져 남쪽이라면 뭔가 있을거라는 희망뿐이다.
남자가 가진 것은 마트의 카트와 그안에 싫은 통조림들과 물, 라이터, 방수포, 약간의 가솔린, 그리고 겨우 두발 남은 리볼버 권총한자루다. 책 제목처럼 그들은 길을 따라 남하한다. 하지만 길은 길을 편하게 가게 해주면서도 불안하다. 약탈의 시대에 다른 사람들도 길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길을 이용하기도 피하기도 하면서 계속 나아간다.
가는 와중에 빈집이나 건물에서 식량을 보충하고, 그게 실패하면 며칠을 굶어 위기에 봉착하기도 한다. 한번은 오래 굶은 그럴듯한 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의 한 창고는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들어가는 것을 만류하고 들어간 아버지가 본 것은 식인종들에게 붙잡혀 갇혀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식량이었다. 남자는 경악하지만 그들을 돕지 못한다. 자기 자신과 아들 하나를 지키는 것이 급급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운이 좋기도 했다. 이런 지옥의 날을 대비한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저택의 벙커를 찾아내어 아들과 모처럼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히터를 켜고,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며 만찬을 즐겼다. 마냥 그곳에 있고 싶었지만 저택은 너무나도 노출되어 있었다. 남자는 안전을 위해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가면서 길잃은 노인을 만나기도 하고, 죽어가는 이를 만나기도 했으며, 한 아이를 만났고, 자신들의 카트를 훔친 도둑을 만나기도 했다. 남자는 아이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들 모두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지옥속에서 태어났음에도 마냥 착하기만 한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면서도 야속해한다.
필사적으로 살아가던 아버지에게 죽음이 찾아온다. 부자를 노린 누군가 남자에게 화살을 쏘았고, 남자는 바로 응전했지만 한발을 허벅지에 맞는다. 가진 약품으로 소독하고 치료하며, 직접 외상을 꽤매기도 한다. 삶이 늘 고통인지 남자는 이런 수술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위기는 넘어섰지만 워낙 쇠약해진 나머지 남자는 며칠을 버티다 결국 죽는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를 두고 가지 못하지만 다행히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순교자들도, 식인종도 아닌 아직 문명을 간직한 남자였다. 아이는 그 남자를 따라간다.
아이가 새로운 남자와 남쪽을 갔는지 거기서 무엇을 보았을지는 나오지 않는다. 어찌보면 아이는 홀로 끝까지 문명을 간직했다.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것은 이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