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사피엔스의 식탁 : 인류가 선택한 9가지 식품 - 인류가 선택한 9가지 식품
문갑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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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특질은 여러가지가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특질은 바로 먹을거리다. 책은 인간의 먹을거리 변화가 얼마나 진화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고, 사회문화적으로도 인간 역사에 많은 작용을 하였으며 향후 환경에도 미칠 영향을 지적한다. 책은 그렇게 크게 3가지 부분으로 나눌수 있는데 그러다보니 과학책 같기도 사회문화역사책인 것 같기도 환경책인것 같기도 하다.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부분은 역시 농경사회 더불어 인간이 선택한 9가지 종류의 먹거리인데 대충 예상한 것도 있었고, 전혀 의외의 것들도 있었다. 책이 선정한 9가지는 우선 [밀, 쌀, 옥수수], 감자, 콩, 소금, 향신료,  설탕, 생선, [커피, 차, 카카오], 바나나이다. 하나씩 책을 따라가며 기존에 먹기만 하던 식품들의 유래와 관련 지식, 세계사적 영향력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1. 밀, 쌀, 옥수수

 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경작하는 종으로 전분외에 단백질이 포함되어 물과 반죽하면 글루텐이란 망상조직을 생겨난다. 이걸 통해 우린 밀을 빵이나 국수로 가공해서 먹는다. 밀은 재배가 까다로운 편인데 토양에 질소량이 풍부하고 강수량이 적으며 한랭한 기후에 잘 자란다. 그리고 이러한 기후는 바로 지중해성 기후대다.

 하지만 밀은 파종 대비 수확량이 고작 3배에 불과하며 3대작물중 열량도 가장 낮아 인구부양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유럽지역은 과거부터 가축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았으며 낮은 인구밀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20세기들어 새로운 육종법의 개발로 수확량이 크게 늘어난다.

 쌀은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두 종이 있으며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작물중 최고다. 거기에 쌀은 기후에 따라 2모작이나 3모작이 가능해 밀과 비교한다면 인구부양력이 무려 3배에 달한다. 쌀의 주산지인 아시아가 땅의 넓이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서구와 비교해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이유다. 쌀 역시 품종개발로 키가 작고 수확량이 많은 품종이 개발되었으며 우리나라의 통일벼도 그중 하나이다. 한때 통일벼는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세계 최대에 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품종은 맛이 떨어져 수확량이 충분한 지금에는 사라지고 말았다.

 옥수수는 파종 대비 수확량이 무려 80배에 달하며 토질이 안좋아도 잘 자라는 품종이다. 미국에서 옥수수에 주목한 이래로 하이브리드 옥수수가 개발되어 잡종 1세대의 경우 멘델의 유전법칙에 따라 장점만 나타나 수확량이 크게 증대되었다. 하지만 잡종 2세대는 열성형질이 드러나 수확량이 떨어져 잡종 1세대를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에 종자를 의존해야하는 단점이 드러난다.

 과거 아즈텍인들은 자신들을 옥수수 인간이라 칭할 정도로 옥수수 사랑이 대단했지만 지금은 전세계 사람들이 스스로를 옥수수 인간으로 칭해야 할 정도로 전세계인들은 옥수수에 의존하고 있다. 수퍼마켓에 분포한 4만 5천여 제품중 무려 25%가 옥수수를 원료로 하고 있을 정도다. 거기에 고기 수요 급증으로 인한 대량 비육을 위해 옥수수는 사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옥수수 전분은 소시지나 과자 식품 전반에 사용된다. 가격이 싸고 잘 변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과거 설탕을 사용하던 당류도 이성화당의 개발로 고과당 옥수수 시럽으로 대체된지 오래다.

 

2. 감자

감자는 재배적응력이 높고 옥수수 정도의 파종 대비 수확량을 자랑한다. 거기에 조리가 쉽고, 재배 방법이 간편하며 영양성분이 우수하고 한랭한 기후에서도 잘 자란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신대륙에서 도입된 감자는 좀처럼 유럽에서 자리잡지 못했다.

 이유는 종교 때문인데 당시 기독교의 영향으로 유럽인들은 신과 가까운 하늘의 음식인 새고기가 과일을 중시하고 땅에서 자라는 것들은 악마의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감자를 가지과 식물로 오인하여 마녀나 미신과 관련한 음식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감자에 주목한 유럽국가는 독일이었다. 프리드리히 대제는 감자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식용조치하였다. 이에 프랑스가, 그리고 다른 나라로 감자는 전파된다. 가장 극적인 나라는 아일랜드였는데 영국의 식민지가 된 아일랜드는 식량수탈로 먹을 것이 없었다. 영국인이 남긴건 유제품류 뿐이었는데 당시 기술로 영국으로 가기전 모두 썩기 때문이었다. 이런 아일랜드에 감자와유제품의 조합은 나쁘지 않았다.

 감자덕에 아일랜드의 인구는 820만까지 늘었으나 감자마름병으로 100만 이상의 아사가 일어났으며 인구는 440만까지 격감한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여러 음식이 퍼지는 계기가 되는데 감자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도시노동자에게 감자만한 식품이 없었고, 기름이 저렴해지며 감자를 튀겨먹는 풍습이 자리한다. 기존의 생선튀김과 어울려 피쉬앤 칩스가 탄생한 계기다.

 미국의 경우 유럽의 편견과 다르게 감자가 빨리 자리잡았으며 감자는 노동력을 적게 요구해 땅은 넓고 인구는 적은 미국에 매우 안성맞춤이었다. 미국은 감자를 품종개량해 러셀버뱅크종을 개발하는데 이는 분절감자로 튀김에 매우 적합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감자가 강원도 화전민들의 대체식량으로 들어왔으며 잘 부서지지 않는 점질감자인 수미감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감자는 이외에도 당면의 재료, 비타민c의 원료, 술주정등 여전히 다방면에서 사랑받는다.

 

3. 콩

농경을 시작한 문화권은 곡류와 더불어 콩류를 같이 재배한다. 이는 콩류가 곡류의 부족한 부분을 잘 보완하기 때문인데 콩류는 단백질이 무려 20%나 분포하고 대두의 경우 40%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는 콩의 뿌리에 자리한 뿌리혹 박테리아 덕에 질소고정으로 콩류가 단백질 형성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콩은 지방 역시 20%나 갖고 있어 콩기름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나머지 찌꺼기는 단백질이 풍부한 사료로 적합하다.

 콩은 한민족과 관련이 깊은데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역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각종문헌도 콩을 처음으로 활용하여 발효시킨 민족이 한민족임을 말해준다. 콩은 영양가가 매우 높지만 단백질 소화저하 혈청용해, 소화불량등의 부작용도 있는데 발효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또한 콩을 발효하면 콩단백질이 분해되어 글루탐산을 형성해 매력적인 갈색과 풍미가 더해져 음식맛을 드높인다.

 콩은 중국남부에서 동남아시아로 전해졌는데 이들은 콩간장에 캐러맬화한 야자당과 향신료 혹은 어장을 첨가하여 걸쭉하게 만들었고 이를 케첩이라 불렀다. 이것이 유럽에 전해져 유럽인들이 자신들이 활용가능한 버섯이나 토마토를 활용하여 나름의 소스를 만들어 토마토 케첩이 된 것이다.

 농업을 산업화하는데 천부적인 미국은 콩을 주목했다. 대규모 콩 가공공장을 설립하는데 이들은 콩 전체를 섭최하는 아시아와는 달리 콩에서 기름을 생산하고 잔류물을 사료로 사용하는 공정을 택했다. 또한 잡초가 많이 자라는 콩밭의 제초제로 라운드 업을 개발했고, 라운드 업에 견디는 유전자 조작 콩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4. 소금

수렵시절 인류는 육식을 통해 소금을 자연히 얻었지만 농경시 시작되며 소금의 확보는 필수적이 되었다. 실제로 세계 문명의 산지 근처에는 강과 더불어 소금산지가 있음을 이를 잘 증명한다.

나트륨은 고등동물의 세포 외액에 존재하고 칼륨이 내액에 존재한다. 이들간의 농도차로 신경세포의 전기신호가 전달되며 영양소흡수에도 관여한다. 나트륨이 부족하면 신경전달은 물론 영양전달이 안되고 근육을 움직일 수 없단 의미다.

 반면 움직임이 없는 식물을 나트륨이 필요없어 그 함량이 낮다. 인간이 소금을 찾아 헤메게 된 이유다. 과거 로마에서는 병사에게 급료로 소금을 지급했는데 소금을 뜻하는 살에서 샐러리란 용어가 파생한다.

 소금은 매우 귀했기에 국가의 번영과 관련했다. 5세기 아틸라의 훈족의 사육을 피해 베네치아에 지라잡은 이탈리아 인들은 도시의 소금을 이용해 번영한다. 지중해 연안은 겉보기에만 좋은 절벽이 가득해 소금생산에 매우 불리했다. 베네치아는 소금을 통한 무역으로 1000년가까이 번영한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국가차원에서 소금을 전매한다. 5세기까진 소금전매가 국가수입의 무려 80-90%였고, 청대에는 25%였다. 중국이 소금전매제를 폐지한건 최근인 2014년에 이르러서였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소금 수요는 커졌는데 중세 유럽의 주요 식량이 청어와 대구가 되면서 염장을 위해 소금수요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화학이 발달하며 소금은 그 활용도가 더욱 커졌지만 통조림의 등장과 냉동 냉장 기술의 발달, 건강에 대한 염려로 그 수요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5. 생선

인류는 수렵채집기부터 육식을 시작했는데 가장 안전한 육식은 아무래도 생선이었다. 인간의 뇌에는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불포화지방산이 많은데 이는 인간이 오래도록 해산물을 섭취한 증거로 받아들여지기도한다.

 유럽이 기독교화되자 교황청은 교인들에게 엄격한 금육 금식을 요구하였는데 이는 예수의 고행과 관련한다. 금육기간은 연간 무려 251일일까지 늘어났는데 예외로 생선은 허용되었다. 물고기는 예수의 이름과 비슷하고 성경에 여러차례 등장하는등 긍정적 이미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생선 수요에 비해 잡는 기술은 떨어져 초기에는 강과 양식업이 중시되었다. 여러 물고기를 양식했는데 특히 물밖에서 무려 6일이나 생존하는 뱀장어가 중시되었다. 하지만 결국 늘어나는 수요로 바다를 향하게 된 유럽인들은 청어를 잡기 시작한다. 청어는 떼로 몰려다녀 그야말로 대박 생선이었다.

 하지만 청어는 기름기가 많아 쉽게 부패하여 소금이 많이 필요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이 청어를 빠르게 가공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네덜란드는 청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얻고 이를 통해 금융업, 목재업 분야로 진출하며 스페인에게 청어무역이 봉쇄당하자 향후 향신료를 찾아 눈을 돌린다.

 청어 이후 유럽인이 주목한 생선은 대구다. 크기가 무려 1m에 달하고 무게도 100kg에 달하여 식량가치가 높은 대구는 흰살생선에 단백질이 많아 영양가가 높았다. 거기에 유순하여 상대적으로 잡기가 쉬웠는데 이 큰 대구에 먼저 도전한 것은 바이킹이었다. 이들은 북유럽과 그린란드 아이슬란드에 대구 가공공장을 세웠다.

 다음은 스페인의 바스크인으로 천일제염이 많은 자신들의 지역 특성을 이용해 오래도록 대구어업으로 번영한다. 바스키인의 어장은 오랜 비밀이었는데 영국인들이 이 곳이 뉴펀들랜드 지역임을 알아내고 이로 인해 이 지역으로의 이주가 시작된다. 미국에는 대구어장을 통해 보스턴이 설립되고 뉴잉글랜드 인들은 좋은 대구는 유럽으로 판매하고 질이 나쁜 대구는 카리브해의 노예용으로 판매한다. 대구 판매로 카리브해에서 당밀을 수입하고 이를 통해 노예무역을 하는 삼각무역이 이루어져 번영하나 미국의 독립후 노예제가 폐지되어 수요가 급감하자 북미 대구어업을 큰 타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거대하게 성장하는 미국 내수시장의 성장으로 산업자본가화하는데 성공한다.

 

6.향신료

인류는 고귀한 향으로 인해 향신료를 신에게 봉헌물로 사용하곤 했다. 또다른 용도는 병의 치료였으며 다른 하나는 음식의 부패를 막고 산미를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십자군 원정으로 유럽은 향신료의 존재를 알게되고 대량으로 유립하게 된다. 당시 유럽인은 양질의 고기는 귀족이 하품을 일반 농민이 소비하였는데 일반 농민은 대개 훈제나 염장고기를 먹고, 부패가 심해 이를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향신료는 부패취를 감추고 맛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향신료는 가격이 매우 비쌌으며 소금 무역으로 자본을 축척한 베네치아가 콘스탄티노플을 대상으로 향신료 무역을 한다. 베네치아가 공급한 향신료는 유럽 전체 공급량의 80%에 달했다.

 반면 포르투갈은 직접 향신료 산지를 노렸다. 이들은 다우전투의 승리로 인도양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정향과 육두구의 산지를 발견하고 실론섬의 계피도 차지한다. 포르투갈은 이로 번영하고 베네치아는 쇠퇴하나 곧 네덜란드가 등장한다. 이들은 포르투갈의 산지를 하나씩 빼았았다. 또한 포르투갈과는 달리 유통루트 차단을 넘어선 생산지 차단 관리에 들어간다. 이는플랜테이션 농업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비밀은 없다고 세월이 훌러 다른 나라에 향신료가 유출되기 시작하며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져 향신료의 시대는 종말을 고한다. 과학의 발달로 약리효과도 사라지고 음식 본연의 맛을 중시하게 되었으며 합성향신료도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7. 설탕

단맛에 대한 인간의 갈망한 상당한데 설탕이 없던 과거 북아프리카와 중동은 대추야자, 아시아에서는 엿기름, 그리스는 포도와 무화과가 감미료 역할을 해왔다.

 설탕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 다량 존재하며 결정화가 쉽고 맛이 상쾌하다. 설탕은 7세기 이후 이슬람 세력이 확대함에 따라 지중해 전역으로 설탕정제술과 사탕수수가 퍼져나간다. 설탕 제조 방법은 강한 노동을 요구해 초기부터 노예노동이 시작되었다.

 사탕수수는 베어지자마자 옮겨져 수액의 추출과 가열이 시작되었는데 수액이 마르면 설탕의 수확과 결정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사탕수수는 크고 무거워 옮기는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서부를 강탈하고 노예공급을 시작하였는데 베냉지역에서 노예를 공급하다가 고갈되자 콩고지역으로 거기도 고갈되자 앙골라와 아프리카 전역으로 이루어지는 식이었다. 설탕재배는 콜럼버스에 의해 카리브해로 도입되었고, 지력 소모가 심해 섬을 자갈밭화하였다. 처음에는 자메이카, 다음은 아이티, 다음은 쿠바로 이동한다.

 유럽지역에서는 차마시는 문화가 퍼져나가며 설탕소비량이 급증한다. 홍차, 커피, 카카오등에 설탕이 사용되었으며 18세기 후반 영국이 서인도제도에서 벌어들인 설탕 관련 수입은 다른나라에서의 교역수입을 능가할 정도였다. 이처럼 유럽 각국에서는 설탕자본을 통해 거대자본이 등장하고 이들이 산업자본으로 변모하였다.

 이를 위해 18-19세기 동안 무려 1000만 가까운 아프리카 노예가 수입되었고, 이들은 이동과정에서 지그재그로 누워 서로의 토사와 용변, 땀으로 뒤범벅되어 죽어나갔다. 이동과정에서 20%가 사망했다. 설탕플랜테이션은 매우 가혹하여 3년이내에 50%의 노예가 사망했다. 흡착롤러에 손과 온몸이 들어가기 일쑤여서 흡착롤러 곁엔 항상 도끼가 있었다. 이들 노예들은 영굯산 면직물과 염장대구 옥수수로 연명했다.

 유럽에서는 계몽주의와 더불어 노예해방운동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아이티가 프랑스러부터 독립을 시도한다. 성공하나 프랑스는 아이티에 대량의 배상을 요구했고, 프랑스와의 무역금지,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의 무역 봉쇄로 아이티를 탄생과 더불어 최빈국으로 전락한다. 미국은 노예제가 폐지되자 루이지애나의 설탕농업을 하와이로 이식하는데 노동력이 부족하자 쿨리라고 불리는 인도계약노동자를 도입한다.

 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불만을 제기하자 다음은 중국, 그리고 다음은 일본, 그리고 다음은 한국, 포르투갈, 필리핀 노동자순이었다.

 한편 유럽에서는 나폴레옹의 전쟁으로 대륙이 봉쇄되자 사탕무에서 설탕을 정제하는 방법이 개발된다. 이를 통해 카리브해의 설탕농업은 붕괴하고 향후 아스파탐과 이성화당등의 개발로 설탕 농업은 사양화한다.

 

8. 차, 커피, 카카오

 신대륙에 도착하기전 전 유럽은 그야말로 술에 취해 살았다. 16세기 스웨덴인은 지금의 40배의 맥주를 마셨고, 영국은 1인당 하루 무려 3리터의 맥주를 마셨다. 이는 당시 염장음식이 많아 갈증이 심했고, 깨끗한 식수를 구하기 어려웠으며 힘든 현실의 도피처 역할을 술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대륙 도착이후 17세기 부터 커피와 차, 코코아가 이를 대체하기 시작한다. 커피는 예멘지역에서 재배되며 오스만 제국이 이를 통제했다. 초기엔 이슬람과 기독교 모두 악마의 음료로 배척했으나 점차 퍼져나가며 빈에서는 비엔나 커피가 영국에서는 커피하우스가 등장한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정치 비판과 학술의 장소가 되었으며 여기서 증권사나 은행, 보험사등의 근대적 기관이 탄생하기도 한다.

 차는 육로와 해로 양자로 퍼졌는데 육로에서는 차로 발음되고 해양에서는 푸젠어로 티로 알려진다. 영국은 쌀쌀한 날씨로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은 차가 인기가 좋았다. 중국과의 차무역에서 적자가 누적되자 영국은 인도에 심은 아편으로 이를 상쇄하였고, 이는 아편전쟁으로 이어진다.

 영국은 꾸준히 인도에 차를 이식하여 아삼지방에서 차나무를 재배하나 맛이 얼싸해 인기가 없었다. 그러다 중국의 차산지와 유사한 히말라야 인근의 다르즐링에서 차나무 재배에 성공하여 중국의 차 독점이 깨어진다.

 초기 미국인은 영국인들의 차습관을 모방하나 영국과의 갈등이 심해지고 보스턴 차사건으로 이어지자 홍차를 버리고 커피를 선택한다. 아메리카노의 시작이다.

 카카오는 다 익은 열매를 발효시키면 갈색으로 변하는데 이것을 건조한게 카카오 콩이고 볶아서 분말로 만든게 카카오페이스트며 여기서 카카오 버터를 제거한게 카카오 음료이고 카카오 버터와 설탕 우유를 첨가해 굳힌게 초콜릿이다.

 산업혁명시기 코코아 음료가 영국에서 인기가 드높았는데 카카오버터로 인해 맛이 기름지고 껄끄러웠다. 네덜란드인 콘라드 반 호템이 카카오 버터를 제거한 탈지카카오를 개발해 인기가 좋았으며 브리스틀의 프라이가 카카오버터를 곧힌 판형 초콜릿을 개발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스위스의 약제사 네슬레가 개발한 밀크초콜롯이 인가기 좋았고, 미국의 허시는 자신만의 밀크 초콜릿을 미국에서 개발한다. 그는 아몬드가 들어간 초콜릿과 허쉬 키세스를 개발한다. 포레스트 마스는 아버지와 더불어 초코바 밀키웨이를 개발했으며 스니커즈를 만든다. 후에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아 허쉬의 윌레엄머리와 합작하여 만든 초콜릿이 M&M이다.

 카카오는 비극을 낳았는데 카카오 주산지인 아프리카 서부 지역의 나라가 독립하여 가나가 된다. 가나의 대통령은 아프리카 카카오 카르텔을 구성하여 이익을 챙기고자 했으나 허쉬와 다른 기업의 사재기에 밀려 실패한다. 이들의 가격 후려치기에 원주민들은 열대우림을 파괴하여 카카오 경작지를 늘려나가나 가뭄과 화재로 가나의 카카오는 붕괴한다. 카카오는 이웃나라인 코트디부아르로 이동하는데 역시 원가후려치기에 이나라는 아동노예무역으로 원가절감에 대응한다.

 최근 이런 사태를 유발한 이 기업들에 철퇴가 내려지고 자정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9.바나나

마지막은 의외로 바나나다. 바나나는 우리에겐 과일이나 동아프리카와 열대지역 주민 4억명에겐 쌀과 같은 주식이다. 바나나는 보존성이 없어 냉장기술이나 포장법등 식품 유통기술의 발달에 기여한다.

 미국의 프레스턴이 최초로 바나나 기업인 UFC를 만들고 이것이 지금의 치키타이며 바카로는 Dole을 설립한다. 바나나는 주로 중남미에서 생산되었는데 이들 기업이 이를 독점하고 1920년대에 농민들이 자신들의 적은 대가에 분개해 분쟁이 일어난다. 미국 정부는 이들 기업과 더불어 노동자 파업을 잔혹하게 진압하였고, 1940-1950년대 콜롬비아에서만 무려 18만의 농민이 희생된다.

 과테말라에서는 ufc에 대항하여 아르벤스 대통령이 당선되나 미국과 이들 기업에 의해서 추방된다. 한편 이런 행태에 대한 세계적 비난과 미국내에서의 비판적 여론으로 미국 법무부는 태도를 바꾸어 이들 기업을 독점법으로 제재한다. 그 결과 UFC는 중남미에서는 철도사용권을 그리고 미국내에서는 수퍼 독점권을 잃는다. 그 사이 미국인의 입맛도 다변화하여 바나나의 수요가 급감해 이들 기업은 사양세를걷는다.

 바나나는 씨앗이 없는 품종으로 그 유전형질이 모두같다. 과거 그로미셸종이 사용되었으나 병으로 절멸하고 현재는 개번디시 종이 주 품종이다. 이 품종 역시 파나마 병에 취약하여 아직 병이 진행되고 있어 위험한 상태다.

 바나나에 의존하는 4억명의 사람들에게 큰 위기인 셈이다. 거기에 바나나는 아기에겐 이유식 그리고 이가 약한 노인도 먹을 수 있는 영양가 높은 과일이어서 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작물이다. 우리가 바나나에 신경을 써야하는 또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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